•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마21:1-11)
  • 2013.05.27 22:10:03
  • 예루살렘 성이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외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고 합니다. 
    (시 118: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는 말씀이 배경이 되는 말씀으로 예루살렘을 찾아오는 순
    례자들이 서로를 향해서 하는 인사말이었거나 혹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보일 무렵부터 기쁜 마음으로 부른 노래였다고 합니다.
    1999년 성탄절을 맞으며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어떤 모습으로 오시는가요

     온유하시고 겸손하시어 인간을 입으시고 오십니다
    `주'가 예수 자신을 가리키는 것과는 달리 여기서의 주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오시는 이'라는 말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속적인 구원자가 아니라 거룩한 왕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이오 여자의 후손으로 예언된 메시야이십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 3:15) 하신 대로 그리스도는 오실 메시야로 예언되었고 예언 된 대로 오시는 것입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미 5:3 그러므로 임신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시 45:4)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위엄 있게 타고 승전하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두려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
    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마 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겸손하신 모습으로 오십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롬 9: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히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눅 1:31,35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
    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어느 추운 겨울, 함박눈이 몹시 내리는 성탄절 날이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남편을 따라 성탄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며 아내는 계속 의심을 토해 냈습니
    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실 수 있지? 난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을 수가 없어요!" 남편은 의심하는 아내에게 계속 설명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집 문 
    앞에 이르러 이상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참새들이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먹이를 얻지 못해 집 문 앞에 비실비실 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얼른 집으로 
    들어가 먹이를 가져와서는 새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푸드득 하며 날아 가 버렸습니다. 남편은 실망하여 "새들아! 난 너희들을 해
    하려는 것이 아니야, 이것을 먹지 않으면 너희들은 굶어서 얼어 죽는다구......" 새들이 사람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날아가는 새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뜻을 어떻게 너희에게 전할 수 있겠니? 내가 새가 되지 않고서는 ......"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내의 뇌리에 번쩍 무엇인가 스쳐 갔습니다. "
    그래!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속 사랑을 베풀었지만 인간들은 하나님 품을 떠났던 거야.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인
    간으로 오신 것이야. 그리고 그 사랑을 십자가로 표현 하셨던 거야......" 아내는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가서 기도하였습니다.(비엔시 자료 중)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무엇하시려 오시는가요

    평화의 왕으로 다스리려 오십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나라에는 로마에서부터 임명받은 팔레스타인의 소위 분봉 왕이라고 일컬어지던  헤롯이  다스리고 있었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는 헤롯 
    필립1세가 그 땅을 통치하고 있었으며 당시 로마에는 매우 강력하고 현명한 군주였던 티베리우스 황제가 다스리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런 강력한 통치자들의 통
    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백성들은 아직도 새로운 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이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는 왕과 같은 자로 오시리라고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렘23:5에 보시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
    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라고 말씀하신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곧 메시야가 천한 베들레헴에서 자신에게로 
    나온다고 말씀하심으로 자신과 메시야의 밀접한 관계를 시사합니다(McComiskey). 
    사 40:9,10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마 2:2)고  말합니다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요 1:49) 라고 고백합니다
    마21:4,5절에 구약 성경의 예언의 성취인 것을 말하면서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한다라고 선포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그들을 통치하는 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왕, 그들에게 진실로 공평과 정의를 약속할 수 있는 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진정 메시야는 이스라엘의 다스리실 자로 오시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다스리는 방법은 평화의 왕으로 다스리시기에 평화라고 합니다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레 26:6)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
    하지 아니할 것이며
    (슥 6:13)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
    다 하고
    (사 52: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민 25:12)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레 26:6)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
    하지 아니할 것이며
    (사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
    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
    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백성들을 돌보고 책임지는 자로서 '왕'이라 불리우십니다.  나아가  '평화의 왕'(*, 사르-솰롬)으로 불립니다.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평화의 나라이며, 그의 다스림 역시 평화로울 것입니다(시 72:3,7;렘 33:6;미 5:4;슥 9:10 등).

    어떤 학자는 "샬롬"를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 이 평안 안에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여호수아 리프맨이라는 소설가가 쓴 책인 '마음의 평안(Peace of Mind)이라는 베스트셀러가 있는데 이 책의 젊은 주인공이 어떤 노인을 찾아가서 자기의 소원을 
    말합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젊은이가 말합니다.  "첫째는 건강이고, 둘째는 재물이며, 세째는 미모이고,  네째는 재능이고, 다섯째는 권력이고, 
    여섯째는 명예입니다." 이 소원을 말하는 청년을 지긋히 지켜보면서 이 노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청년 그러나 평안이 없이는  아무 것도 즐길 수가 없다네"

    이와 같은 가르침의 말이 이루어진 일이 있기도 합니다
    1990년 미국의 미시간 대학에 사라 파워라는 여자가 이 대학의 이사로 있었는데 그녀는 민주당 카터 대통령의 친구요, 많은 정치자금을 내놓은 미국재벌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사피로가 미시간 대학 총장시절에, 흑인 학생들의 불만과 데모가 있었는데 대학 당국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제시 잭슨 목사를 초청했다고 합니다. 타협안으로 
    흑인 학생을 12% 증가시키고, 흑인 교수를 20% 늘리기로 합의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타협 속에서 이제 분규가 해결되었다고 큰 파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
    나 축배를 든 바로 다음날 이 대학의 이사요, 부자인 사라 파워라는 여자가 시계탑이 있는 높은 건물의 옥상에서 뛰어내려서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자살의 이유
    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에 굉장한 고민과 괴로움이 있었기에 자살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미시간 대학에서 `Space for God'(마음에 
    하나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자는 뜻) 운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마음속에 희망과 믿음이 있고 용기가 있고, 평화가 있고,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의 행복이 돈과 권력과 명예에만 있는 것이 아닙
    니다.
    평화와 그리고 진정한 의를 약속할 수 있는 왕에 대한 기대는 바람직한 기대였고 이 기대는 메시야의 오심이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어떻게 맞아야 하는가요

    주님을 갈망하며 거룩한 소망 삼아 가르침과 삶을 본 받아 평화를 실천하려는 마음으로 맞아야 합니다

     갈망하는 마음으로 맞아야 합니다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눅 2: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눅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눅 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눅 2: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눅 
    2: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 2: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눅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라고 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눅 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눅 2:37) 과부 된 지 팔십
    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눅 2: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
    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고 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거룩한 소망으로 삼기를 원하며 맞아야 합니다
    왈츠라고 하는 사람의 그림 가운데 <소망>이라는 그림이 있다. 둥근 지구 위에 어떤 젊은 여인이 홀로 외롭게 앉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눈은 수건으로 싸맸는
    데 앞을 보지 못한다. 그 가슴에는 비파를 안고 있는데 그 비파의 줄이 거의 다 끊어지고 오직 한 줄만이 남아 있었다. 뒤에는 희미한 별 하나만 반짝이고 있었다. 
    이 여인은 우주에 외로이 혼자 앉아 보지 못하는 눈으로 오직 남은 한 줄의 비파를 가지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그 줄은 소망의 줄이다. 그 별은 소
    망의 별이다. 이 그림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메시야를 우리의 소망으로 삼아야 하며 이러한 마음으로  영접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확신하며 맞아야 합니다
     미국의 링컨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에 머도크라는 배우가 그 당시에 가장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머도크가 하루는 링컨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
    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한 밤중이 되어서 이 머도크가 우연히 잠에서 깨어나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문을 열고 나와보니 대통령집무실
    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열려져 있는 사이로 가만히 들여다보니 대통령께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이 백성을 축복해 달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은혜를 내려달라고 간절하게 목메어 기도하는  부르짖음이
    었습니다. 또 하나는 자신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고백하는 기도였습니다. 나는 참으로 무능하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준 이 나라를 축복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머도크는 대통령이 기도하는 음성을 듣고 "아! 우리 나라의 가는 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 나라의 앞날은 소망이 있구나"하는 생각
    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렇게 나라의 지도자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축복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도 중요합니다만 보다더 주님의 구속을 확신하여야 하며 주님을 맞아야 합니다

     본받아 살기를 원하며 맞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휴지통이 많이 놓여 있기 때문에 깨끗하게 정리가 된 역 홀을 보고, “나는 우리 집의  휴지통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가시 돋친  말, 비꼬는 대답, 
    냉정한 말대꾸, 이러한 가정의  쓰레기 같은 것을 모두 자기 마음 속에 받아 넣어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욕을 먹어도 미소로 답하고, 빈
    정거려도 따뜻하게 웃어주는 인간이 되려고 결심한 것입니다.
    주님의 삶을 본 받아 그 덕행을 실천  하기를 다짐하며 맞아야 합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 안에서 평화의 실천자들이 되기를 원하며 맞아야 합니다
    (롬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고 합니다

    랍비는 유대인의 교사인데. 한 랍비에게 열 두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가정은 화목과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형제우애를 강조하면서 격려
    하며 살 것을 권면했습니다. 어느 날 밤. 가족이 잠들 무렵, 한 아들이 랍비에게 와서 "아버지. 다른 형제들은 잠만 자는데 저는 자지 않고 계속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얘야, 그래서는 안 된다. 다른 형제의 흉을 보는 것보다 다른 형제와 같이 자는 편
    이 훨씬 나은 거란다"

     어떤 사람이  자기 가정이 복잡하여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말다툼하고, 형제는 서로 싸우고, 친자는 서로 욕하는 상태였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집 안엔 불평만이 가득 찼습니다. 이웃집은 친자 2대의 대가족이므로 옥신각신하기 쉬울 터인데도 풍파도 없이 언제나 온화했습니다. 아주 감동이 되어 
    물어봤습니다. “댁은 어떻게 그리 평화스럽습니까?”대답은 이상했습니다. “댁은 선한 사람만 한 데 모였지만 우리 집은 악한 사람뿐이니까요.”놀라워하는 얼굴
    을 보고 그 이웃 사람은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댁에서 가령 실수하여 항아리를 깼다고 합시다. 즉시 '누구야. 이런 곳에 분재를 놓아둔 이가?',  '당신은 눈뜬 
    소경이요'라고 하게 되지요. 모두 저마다 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아, 내가 그런 곳에 놓아둔 것이 잘못이었어요', '아뇨, 제가 부주의한 탓이지요
    ' 하며 모두 자기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집안이 평화롭고 안정이 되지요.” 이것이 평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주님 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삼아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심게 하소서.
    상함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는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는 기쁨의 씨를 뿌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오 거룩하신 주님
    나로 하여금 위로 받으려는 것보다는 위로해 주는 자가 되게 하시고,
    이해 받으려는 것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며,
    사랑 받으려는 것보다는 사랑해 주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내가 먼저 용서할 때 너도 용서를 받으며,
    내가 먼저 줄 때 나도 받을 수 있으며,
    내가 죽을 때 영원히 살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옵니다.
    아멘
    이 기도문이 주는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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