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심이 무너지는 이유(마26:31-50)
  • 2013.06.03 20:54:43
  • 아프리카 흑인의 친구로 불리는, 슈바이처 (Schweitzer, Albert) 박사는 21세 때, 다음과 같은 결심을 했다. "30세 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하여 공부하자. 30세 이후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바치자"라고. 청년 시절에 이렇듯 봉사의 결심을 한 그는, 마침내 아프리카를 복음으로 구원하는데 공헌하는 큰 일을 하였습니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드는 스무 살 때, 곧 1849년 12월 6일에 다음과 같이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움에 의해 다음과 같은 일을 약속하고 결심했습니다. 

    1. 매일 아침 될 수 있는 한 일찍(7시 20분전에) 일어나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적어도 5분 동안 혼자서 기도할 것.
    2  최근, 저지르기만 할 뿐 쓸모 없는 잡담의 죄를 될 수 있는 한 피할 것.
    3  세상 사람들 앞에서, 더욱이 동료들 앞에서, 피흘리신 어린양을 따르는 사람으로      서 겸허하고 부드러우며, 또한 열심히 행동하고, 움직여서 그들로 하여금 영혼에      대해 생각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4  매일 성경을 넉 장 이상 읽을 것.
    5 하나님께로 더 한층 가까이 다가 살 수 있도록 노력하며, 마음의 깨끗함을 구하고     그 뒤는 섭리하시는 손에 맡길 것.
    6 이 결의서를 매일 또는 적어도 한 주간에 두 번 되풀이  해서 읽을 것.

    아마 여러분들은 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계획과 결심을 가졌겠지만, 특별히 신앙 인으로서도 여러 가지 결심을 하였을 것으로 믿습니다. 신앙적 결심의 구체적인 것들은 조금씩 다르다고 해도 그 본질은 아마 다 같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 부인하지 않고 늘 동행하며 따르는 삶, 그리고 예수 닮아 가는 신앙의 인격으로 사는 삶을 결심하였을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말씀도 읽고 기도하고 선행도 하고, 전도하려는 결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결심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것을 이루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래서 성공자가 많지 않고, 신앙적인 면에서는 성자가 많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 속에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아주 좋은 결심과 결단을 하게 됩니다. 31절입니다.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 때 33절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힘있게 결심합니다. 35절에서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 하니라"라고 합니다. 또한 요13:37에서는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결심이 대단합니다. 그는 이렇게 장담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이 못되어 이 결심은 무참히도 무너지고 맙니다. "언제든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그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뿐 아니라, 저주까지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늘 주님 앞에 나와서 말씀 듣고 기도할 때면, 주님을 따라서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맹세하였던 우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밖을 나서면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닌 일에 주님을 부인하고 오히려 저주까지도 서슴지 않는 우리들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왜 그렇게 결심하고 넘어졌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거울을 삼고자 합니다.

    Ⅰ. 예수 따라가는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실패의 원인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결심하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 결심을 이루기 위해 지불해야 될 대가가 무엇이라는 것을 깊이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하고, 희생과 수고와 장애를 예상치 아니하고 이루어지는 결심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것일수록 치러야 할 대가와 희생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베드로는 그것을 생각지 못하고 결심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 따라 가는 길이 영광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요, 축복의 길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십자가의 길이요, 골고다 언덕을 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정신적으로, 추상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십자가를 져야 할 고난스러운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것을 아주 쉽게 생각하고 치러야 할 대가를 무시하고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20:20에 보면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내 두 아들을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청탁을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는 심각한 질문을 하실 때 그들은 대답합니다. "할 수 있나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들이 그 잔이 무슨 잔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고 대답한 것입니까!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결심하고 실패하는 원인인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말씀드리기를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주님만 좇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손에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 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눅9:57-61) 무슨 말입니까! 예수를 좇는 사람들은 머리 둘 곳도 없으신 주님과 함께 고난도 각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고 주를 따르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 희생과 고통과 대가를 지불할 각오를 가지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예수 닮아 가는 삶, 예수 믿고 그를 따라가는 삶! 아주 아름답고 선하고 거룩하고 좋은 삶입니다. 그러나 그를 위하여 치러야 할 대가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계산에 확실히 넣어야 합니다.

    Ⅱ.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 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결심이 무너진 이유는 자신의 연약함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연약함을알지 못하면 매우 교만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마26"34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실 때에 베드로는 말하기를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결국 내가 제일이며, 내가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과신과 교만인 것입니다. 사실 말로는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이렇게 말만 하고 실행치 못하는 사람이 실패하는 것입니다. 말만하고 실행치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연약함의 존재인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으면, 아 그렇습니까? 저는 너무 약합니다. 마음은 원인데 육신이 약합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는 착각했습니다. 말하고 결심하면 그것을 이루는 힘이 자신에게서 온통 나오는 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다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하고 불과 서너 시간만에 베드로는 여지없이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잠27:1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도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의 뜻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리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50절에 보니 예수님을 잡으려고 할 때에 검을 빼어 잡으려는 자의 귀를 베는 사건을 저지르고 맙니다. 마태는 베드로라고 하지 않았지만 요한은 그가 베드로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요18:10-11) 아마도 의분으로 그렇게 했다고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그의 혈기였다고 하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표출한 것입니다. 

    우리 사람을 하나님은 로버트로 만들지 않으시고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찬송을 하다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다가 감격하여 아멘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목이 터지도록 외칠 수 있습니다. 박수를 치고 춤을 출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만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놀라운 특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연약함이 무엇입니까! 그의 혈기였습니다. 혈기를 통제할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질병의 원인은 감정이나 욕구를 스스로 처리하지 못함으로 발생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를 잘 내고 신경질을 잘 부리고 혈기를 내는 것도 만병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혈기를 잘 부리는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욕구 불만 때문입니다. 둘째는 약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주의 성령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사탄의 노리게 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학자는 말하기를 혈기는 감추어진 폭탄이라고 했습니다. 폭발하는 분노는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게 될 것입니다. 위궤양, 고혈압, 편두통, 우울증, 심하면 정신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제하지 못할 때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잠22:24,25에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질까 두려움이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혈기와 분노는 전염성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우리의 영혼까지 파괴시키는 무서운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연약함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연약함을 알아 겸손히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와 허물에 대하여 정죄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인간의 연약함을 알아 우리도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 함이 허사인 줄 믿고 전적으로 주를 의지하여 어떤 시험에도 넘어지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막10:27)라고 하셨습니다. 바울도 말하기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384장에 2절에 보면 "내 힘만 의지 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힘만 의지 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힘있는 장수 우리 대장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넘어지지 않고 승리할 것입니다. 지금 넘어졌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혹 계십니까! 힘있는 장수! 예수 그리스도를 힘있게 잡으시고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Ⅲ.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결심에 대하여 기도의 뒷받침이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 없는 용기는 만용인 것입니다. 죽기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할 수 있는 운명의 그 밤에 주님은 겟세마네에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가십니다. 주님 마26:41에 말씀하십니다."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우리의 시험은 무엇입니까? 마음에는 결심하는데 육신이 약한 것이 문제입니다. 

     때문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다시 말하면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 정말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또 이미 주신 복을 유지하려면! 앞으로 원대한 꿈을 이루기를 원하거든! 이 실패의 자리에서 성공의 자리로 도약하기를 원하거든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 없이 위대한 신앙인, 위대한 성자가 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베드로는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도하여 성령 충만을 받고 매사에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나서야 그는 진정 주님의 양을 먹이고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서도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이 된 베드로가 얼마나 담대한 사람이 되었는가를 사도행전 4장 13절 이하에서 만나게 됩니다.  전도하다가 유대 공회에 잡히게 되었는데 그들을 다시 놓아주는 조건으로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하는 말이 "하나님 앞에서 너의 말 듣는 것이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로 베드로는 무서운 시험을 만난 것이고 바로 그 자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여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고 승리한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9:29)

    예수님은 기도로써 시작하여 기도로써 마치신 분이십니다. 사역을 시작하는 초기에 광야에서 40일 금식 기도하셨습니다. 사역을 행하시는 중에도 종종 성경은 "산으로 가시다!"라는 말씀으로 그가 기도의 사람인 것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과 같은 처절한 기도로 매달리셨습니다. 제자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홀로 외롭고 고독함에 떨어 질 것을 알 때에도 그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신뢰하였던 가롯 유다 에게 배신을 당할 때도 그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뇌와 아픔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도해 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심으로 고난의 잔을 마실 힘을 얻으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기도할 필요가 있으신 분이십니까!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그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과 같은 처절한 기도의 모습을 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까! 수많은 시험과 장애물과 넘어질 위기를 만날 때마다 승리하는 비결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결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결심이 위선이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어도 결심한 그 순간은 진실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결심이 무너진 것에 대해서 우리는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대선의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그 만한 대가를 지불하시는데 인색하지 마시고,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굳게 의지하시고, 내가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는 증거로 주 앞에 기도를 쉬지 않는 성도들이 되어서 무너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늘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댓글 0 ...

분류  제목  등록일 
분류 없음 2012.12.27
분류 없음 2013.01.08
분류 없음 2013.01.09
분류 없음 2013.01.24
분류 없음 2013.01.26
분류 없음 2013.02.07
분류 없음 2013.02.07
분류 없음 2013.02.07
분류 없음 2013.02.07
분류 없음 2013.02.07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