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마26:40-43)
  • 2013.06.03 21:06:31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면에서 [시험의 바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를 가든지 시험거리가 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특별한 일들만 시험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다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환난만이 시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평안함도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가난만이 시험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유해짐으로서 더 큰 시험을 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실패만 시험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공함으로서 더 큰 시험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병들었을 때만 시험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건강할 때도 건강하기 때문에 더 큰 시험이 올 수 있습니다. 또 나쁜 환경에서만 시험이 오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환경으로 인해 더 큰 시험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 
    종살이하던 애굽에서만 시험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널 때에도 시험이 있었습니다. 또 메마른 광야에 있을 때만 시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서도 시험이 있었습니다.

    또 시험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죄 많은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죄가 없으신 분에게도 많은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또 시험은 은혜 받지 못한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충만한 사람에게도 시험은 옵니다.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순전하고 깨끗한 사람이었지만 상상할 수도 없는 큰 시험을 당했습니다. 또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시험이 오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도 시험은 옵니다. 예수님처럼 40일 금식기도를 마치신 후에도 마귀가 당당히 찾아와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또 믿음이 약한 사람들만 시험을 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도 시험은 옵니다.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은 믿음의 사람에게도 엄청난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죄가 많은 사람이라거나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시험이 오는 것과 시험에 드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시험이 오는 것은 찬바람이 부는 것과 같고, 시험에 드는 것은 찬바람 때문에 감기에 걸리는 것과 같습니다. 찬바람이 분다고 해서 모두가 다 감기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찬바람이 불면 시원하다고 오히려 기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매우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병약한 사람은 찬바람에 조금만 노출되어도 금방 코를 훌쩍거리며 목이 따끔거리고 기침을 콜록콜록합니다.

    마찬가지로 시험이 많다고 해서 누구나 시험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시험에 드는 것은 믿음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무엇이든지 시험이 될 수 있고, 또 시험에 잘 들게 됩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 처음 본 사람이 자기를 보고 웃었다고 공연히 화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사람을 보고 실없이 웃느냐고 기분 나빠하는 이런 사람은 보통 병든 사람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에 나와 간증하는 것을 듣다가 시험이 들어 낙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들 은혜를 받아 기쁨으로 돌아가는데, 이 사람만 볼이 부어 투덜대며 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은 교회 헌금에 인색하면서도 성전건축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을 보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을 보고 시험에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예배시간에 설교를 듣고 은혜 받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오히려 설교를 듣다가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담임 목사가 십일조에 대한 설교를 하면 목사가 돈밖에 모른다고 투덜대며, 교회는 돈만 내라고 한다면서 교회에 가기 싫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건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에 병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믿음에 병이 들면 시험에 잘 들게 됩니다.

    성도들이 시험에 잘 들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1. 욕심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14절을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게 되는 것은 바로 욕심 때문입니다. 항상 마음을 비운 사람은 다 내려놓고 다 포기했기 때문에 시험이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사람의 끝없는 욕심입니다.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왔던 아람나라의 나아만 장관은 자신의 병이 깨끗이 치료되자 준비하여 온 많은 금은 보화 예물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이 고쳐주셨으니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그 물건들이 탐나서 배가 아팠습니다. 그는 나아만 장관 일행이 가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엘리사가 요청한 것처럼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 챙겼습니다(왕하 5:22). 욕심 때문에 미혹을 받아 이런 일을 꾸민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저주를 받아 문둥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2. 깨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들게 되는 것은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약해지는 것은 평소에 기도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강해지려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은혜를 받기 위해 기도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 맞도록 전심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마음으로는 원했지만 육신이 연약하여 졸다가 모두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께서 로마병정들에게 붙잡혀 가실 때에 모두들 놀라서 도망갔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도 예수님을 멀찍이 좇아가다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 부인하는 부끄러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같이 하루에 세 번씩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기도하는 사람은 아무리 큰 시험이 와도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험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니엘 1:8절 이하를 보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하여 환관장에게 이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환관장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동무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로 보시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까닭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하게 되리라”고 염려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다니엘은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과연 그들의 말대로 열흘을 시험하였더니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였다고 했습니다. 한창 자라는 나이인 젊은이들이 맛있는 음식 앞에 어찌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기도의 사람들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뜻을 정하고 그대로 실천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다니엘 6:1을 보면, 다리오 왕은 전국에 방백 120명과 총리 3명을 두었는데 세 명의 총리 중에 다니엘이 가장 훌륭했습니다.

    이를 시기 질투한 관리들이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일을 꾸밉니다. 그들은 앞으로 30일 동안 왕 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절을 하거나 기도하거나 섬기는 자에게는 사자 굴에 집어넣기로 법을 정하여 왕의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습니다(단 6:10). 이처럼 다니엘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봉하심으로 무사히 구출되었습니다. 그 대신 다니엘을 모함한 원수들이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 시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고3 학생들은 한 달에도 몇 번씩 시험을 치릅니다. 그들이 지긋지긋한 시험을 자주 치는 이유는 자신의 실력을 측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시험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과목이 무엇인지 또 어느 부분이 약한지 강한지 알게 되어 공부의 방향을 정하게 되며, 더 확실한 공부를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크고 작은 시험은 우리의 믿음의 실력을 향상시킵니다. 그러므로 시험은 치면 칠수록 실력이 향상됩니다.

    성도들에게 오는 시험은 괴롭지만 이기면 복이 됩니다. 첫째로, 믿음의 실력을 향상시켜 믿음이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둘째로, 믿음을 인정받습니다. 셋째로,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넷째로, 장차 천국에 가면 하늘나라의 큰 상급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약 1:12, 2-4).

    이처럼 성도에게 오는 시험은 믿음의 시련입니다. 시험이 왔을 때, 평소에는 알 수 없었던 믿음의 실력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도 큰 시험을 두 번 당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때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믿고 기다림으로 해서 100세에 독자 이삭을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신 큰 시험이 왔을 때에도 하나님의 명령에 지체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시련이 왔을 때 잘 참고 기쁨으로 이겨나가면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믿음이 건강한 사람은 시험이 왔을 때 기뻐합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시험을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저는 수영로 교회를 개척했을 때, 얼마나 시험이 많이 오는지 시험이 올 때마다 밤새도록 부르짖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고 응답을 받았으며 능력을 받아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시련 뒤에는 반드시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언제나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험이 오면 반갑고 기뻤습니다. 시험은 교회가 부흥되려는 싸인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제가 시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자 오히려 시험이 왔다가도 얼른 도망갑니다. 찬양하고 감사할 때 믿음의 시련은 결코 우리에게 시험이 되지 않습니다. 시험에는 기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면서 참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해결이 되고 모든 것이 전화위복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시온관에 성전건축을 하려고 할 때 동네사람들이 예배시간에 꽹과리를 치며 얼마나 방해를 했습니까. 또 백산에 수양관을 건축하려 할 때에도 큰 시련이 왔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더 좋고 더 넓은 수영만에 교회가 건축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시험을 참고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반드시 때가 되면 해결됩니다.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시험에 들게 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떠나셨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험에 깊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경 말씀을 믿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원망불평은 기존에 있던 믿음까지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믿음은 더 큰 믿음이 생기게 합니다. 더구나 왜 나만 이런 고난을 당하느냐? 왜 나만 이런 불행을 당하느냐고 투덜대지만 나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사단에게 속는 것입니다.

    좋은 날을 기대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 욕심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욕심은 모든 병의 뿌리가 됩니다.

    고린도전서 10:13절을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믿고 아무리 큰 시험이 와도 감당할 수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참고 기다리다보면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셔서 잘 감당하고 넘어갈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왔을 때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믿으며,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망 불평하거나 섭섭한 마음을 갖지 않으며, 오직 믿음을 가지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끝까지 참기만하면 어떤 시험이 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시험이 오히려 큰 축복을 가져오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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