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혈로 세운 새 언약(고전 11 : 23 - 25)
  • 조회 수: 170, 2013.07.09 20:53:00
  •  "식후에 또한 이와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전 11 : 25)

     오늘 본문, 특히 11 : 17 - 34절은 성찬예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마태복음 26 : 26 - 28절에서, 마가복음 14 : 22 - 24절, 그리고 누가복음 22 : 19 - 2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성찬의 원리를 세우시고 제자들에게 행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성찬의 의미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의 그 찢긴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24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초대 교회 때에는 성찬예식 전에 '애찬' 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순수히 성도의 교제를 목적으로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먹고 마시고 흥청대는 폐단이 생겼습니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때문에 성찬을 따로 분리하였고 애찬은 폐지
    되게끔 되었습니다.


      25절에 보면 "내 피로 세운 새 언약" 이라고 말씀하는데 성찬의 참 의미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31 : 31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새 언약이 약속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나라가 멸망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은 깨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새 언약을 세우시기로 한 것입니다.  말 그대로 '구약'은 옛 약속이고 '신약'은 새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 새 약속은 피로 세워진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일반적인 약속은 입으로 합니다.  몇 시에 어디서 만나자 하는 등입니다.  좀 더 중요한 약속은 문서로 합니다.  집 매매계약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로써 합니다.  국가간에도 그래서 '혈맹'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세상 깡패 건달들도 자기네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피로 약속하는 것을 때로 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세우는데 있어서 피의 언약을 세우는 상징적인 사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 조상 아담이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자 하나님은 사단의 도구가 되었던 뱀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 3 : 15)  우리 주님이 발꿈치를 상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상하게 된다는 것은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이니 간접적으로 피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고  선악과를 따먹자 그 육신의 눈이 밝아져 자기네의 벌거벗은 수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 입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  금방 말라버리고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어린 양을 잡아 피 흘려 죽게 함으로 그 가죽으로 옷을 해 입혀 주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롬 6 : 23)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죄를 가리워주기 위해서 어린 양으로 대신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는 어린 양으로 오사 우리의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 하였습니다 (히 9 : 22) 또한 생명은 피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레 17 : 11).  셋째,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위해 여리고 성으로 두 명의 정탐군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기생 라합의 도움으로 무사히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던 라합이 자기네 가족을 구원해줄 것을 보장 받습니다.  여리고성이 함락될 때 창문에 붉은 줄을 매어달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습니다.  이 "붉은 줄"
    은 곧 피 흘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기로 하셨습니다.  10 가지 재앙을 내리시는 가운데 마지막 애굽의 장자들을 치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른 집에는 그 재앙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출 12 : 13 하 - 14) 바로 유월절의 규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것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피가 있는 집이라면 전에 강도짓을 했든 도둑질을 했든 상관이 없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든 상관 없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기에 구약시대에는 백성이 죄 용서 받기 위하여 짐승을 성전에 가지고 와서 그 짐승에게 안수하고 자기 대신 그 짐승의 피를 흘리게 함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내가 피를 흘리 수 없기에 짐승이 대신 피를 흘린 것입니다.  그것이 구약시대 속죄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 그 제사제도는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 : 12)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함이라" (히 10 : 4).  


      전에는 대제사장이 1년 1차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자기와 백성의 죄를 속함 받았지만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를 드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히 10 : 9).  짐승의 피로 속죄함 받던 것이 옛 언약이면 예수의 피로 속죄함 받고 구원 받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그 대속의 사건을 믿고 남의 구주가 아니라 나의 구주됨을 고백하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 : 16) 아멘 !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첫째 예수님을 그리고 예수님의 대속을 인정하고 믿어야 합니다.  효자와 불효자의 차이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희생 수고를 인정하느냐 안하느냐에 있습니다.  불효자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나의 구주되심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원죄와 자범죄로 천번 만번 죽어 마땅한 자인데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 받았음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 : 9 - 10).  남녀가 서로 마음으로만 사랑하고 내색을 안한다면 어찌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는 이 말 한 마디가 마음을 뜨겁게 하고 자기 가진 것 다 주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도 그것을 원하십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사랑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의 구속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감사하며 하나님께 충성 봉사 희생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희생, 사랑을 깨달은 만큼 효도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고백하기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 3 : 17 - 18) 했습니다.  생활의 필요한 것이 없다 할지라도 오직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할 뿐이라는 고백입니다.  구속의 은총이 가슴에 와닿는 사람은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기막힌 처지에 놓인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만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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