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만찬의 의미
  • 조회 수: 320, 2013.07.09 21:39:50
  •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우리의 삶 속에 반드시 있어야 할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 평안. 만족. 보람. 감격과 같은 것들이며 또한 그와 같은 것들에서 오는 삶의 여유와 그 삶의 여유에서 오는 너그러움과 온유함 그리고 사랑과 겸손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보통 우리들의 삶은 그와 같은 것 보다는 불안과 초조,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아니하는 공허함과 불만스러움, 삶의 무의미에서 오는 권태와, 그 권태에서 오는 짜증스러움으로 가득 차기가 쉽습니다. 

    요즘 여러분의 삶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 채워져 있는 것은 전자에 속한 것들이십니까 아니면 후자에 속한 것들이십니까?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에는 평안이 있으십니까? 사는 것이 기쁘십니까? 

    지금 여러분의 생활과 삶에 대하여 여러분은 만족하십니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십니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삶의 여유가 여러분에게는 있으십니까? 그 삶의 여유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과 너그러움이 여러분에게는 있으십니까? 

    혹시 여러분은 기쁨과 평안 그리고 만족과 삶의 보람을 상실한 채 쪼들리고 피곤하며 짜증스러운 삶, 무겁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십니까? 만일 여러분의 삶이 그러하시다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여러분은 아직도 그 이유가 가난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세상적인 실패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일과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그렇지 못한 일과 사람들만 자꾸 만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그것은 옳지 못한 생각입니다. 우리의 삶이 행복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떤 것을 만나도 행복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혹 세상의 것들을 제대로 다 만나지 못했다고 하여도 행복하게 산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세상적으로 풍요롭지 못하고 또 형통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말한바와 같은 복된 삶을 누리고 사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들이 그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은 남보다 부유하기 때문도 아니고 남보다 높은 지위를 얻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저들이 그와 같은 삶을 사는 단 하나의 이유는 저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만나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거듭난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자리가 초막이든 궁궐이든 높은 산에 거하든 거친 들에 거하든 관계없이 언제나 저들의 삶의 자리가 천국이라고 간증하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저들이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된 단 하나의 이유는 그의 마음과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저는 그 고백과 간증을 믿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에게 담대하게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교우 여러 분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기 전에는 세상의 그 어떤 것들을 만난다 할 지라도 기쁨과 만족 그리고 행복이 없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평생을 교회 생활을 하시는데도 마음과 삶 속에 기쁨이 없고 평안이 없다면 그것은 교회만 다녔지 아직도 하나님을 자신의 온전한 하나님으로 만나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고 직분도 맡아 봉사하지만 여전히 삶이 공허하고 허전하다면 그것은 물세례는 받았으나 아직 온전한 불세례는 받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저 교회생활만 하는 사람들은 자칫 잘못하면 자기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가 있습니다.자기가 교회생활을 오래 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났을 것이라고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착각에 빠져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생활이기는 하지만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교회 생활을 포함하지만 교회생활이 곧 신앙생활을 다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을 만나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만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삶을 사모해야만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고 동거하는 삶을 꿈꾸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욕심과 꿈 없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잘못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분을 우리는 만나야만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요 근본적인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 만남에 우리의 삶이 걸려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만나야만 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죄와 불의는 빛이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반역하고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서 쫓아내고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하나님이 되어 자신의 욕심을 따라 함부로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온 삶에 가득 차 있는 온갖 죄악들이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휘장이요 담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나야만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죄의 문제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절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고 또 십자가에 못박아 돌아가시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더 이상의 방법이 없는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 십자가에 나타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앞에 나아가 그 십자가를 믿음으로 붙들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는 다 사함을 받고 용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가 성도의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성만찬은 성도의 생활의 지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만찬은 은혜의 최고의 방편으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또 인간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너희는 이것을 행하여 기념하라"고 까지 강조하신 거룩한 예식입니다. 



    성찬은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예식으로 가장 구체적인 감사의 제사이며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일입니다. 그 시간엔 그리스도에게 복종을 다짐하고 성령의 임재를 향해 마음 문을 열게 되며 성도의 참된 교제(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동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임을 확인하는 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 희생과 헌신의 각오를 새롭게 하며 하나님 나라의 만찬을 미리 맛볼 수 있습니다. 



    이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령한 은혜를 성도들에게 더하여 주시려고 자신의 살과 피를 떡과 포도즙으로 지정하여 이것을 먹고 마시도록 제정하신 성례입니다. 성만찬에서 떡을 떼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주님의 몸이 희생됨을 의미하고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서로 교통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또 포도즙을 마시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하여 보혈을 흘리신 것을 인식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 예식은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계속해서 거행해야 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식사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며 죽으심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빵을 떼시고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빵은 내 살이다 이 잔은 내 피다”사람의 몸은 살과 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잔을 마시게 되면 예수님의 몸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의미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 구원받은 사람들이 광야에 왔을 때 먹을 것이 없어서 다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을 살게 한 것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만나입니다. 이 만나를 먹고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백성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만나를 먹음으로 인해서 멀리 있던 미래의 가나안 땅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만나는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졌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 만나를 먹음으로 생명을 유지하다가 가나안 땅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산 것은 만나 그 자체의 능력이 아니라 만나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물질, 만나 이것을 먹고도 생명을 유지하는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시게 되면 이것은 그보다 더 큰 능력과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살을 먹으라, 피를 마시라 하는 것은 단순히 빵을 먹으라, 포도주를 마시라는 식사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 바치는 그 사랑을 먹고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대속 사역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육신의 빵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 이상의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인 빵과 포도주를 먹고 믿음으로 성찬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두 가지 큰 은혜가 있습니다. 



    첫째는,영혼이 살게 됩니다 



    영혼이 살게 되어서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먹는 것은 약간의 빵과 포도주이지만 이 물질이 영혼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살과 피의 상징이요 싸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빵과 포도주를 먹을 때에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의 죄를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먹는 행위가 우리의 죽었던 영혼을 살게 하고 또 산 영혼을 계속 구원의 생명력을 공급받고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나는 생명의 떡이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고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성찬식은 우리의 영혼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받아 들이는 행위로 떡과 포도주를 먹을 때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선한 행동을 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하거나 수양을 많이 쌓고 특별한 일을 한다고 해서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을 사람만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영혼이 말씀으로 그것을 받아 먹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참 성도는 이 성찬에 참여하면서 영생을 확신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살아있음을 경험하고 천국을 확신합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얼굴이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찬 참여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주신 생명, 영생을 확신하고 천국의 소망 가운데 성찬에 참여하여 이 은혜를 새롭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번째는, 예수님과 한 몸이 됩니다. 



    예수님은“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주님과 한 몸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 본래 내 살이고 어떤 것이 나중에 주어진 예수님의 살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과 우리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비로운 상태입니다. 이것은 나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잘라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머리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더욱더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능력의 역사가 오늘의 시대에는 예수를 믿는 자에게 주님과 한 몸이 되게 하시는 새 창조의 역사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계3:20에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와 같이 신비로운 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타락 후에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이 새롭게 회복되었습니다.“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 실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참 신앙인은 신비로운 일도 하고 역사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성만찬의 의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성부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서의 성만찬입니다. 



    성만찬에 참여하는 자는 뜨거운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구속의 사랑 때문입니다.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게 하신 구속의 사랑을 뜨거운 감격과 감사로 받아야 할 하나님의 은사가 바로 성만찬입니다. 



    순교자 저스틴은 주님의 만찬을 대할 때 마다 죄로 죽었던 나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려 주신 하나님의 은총 앞에 먼저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인들은 늘 성만찬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칼빈도 "주님의 만찬은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하나님의 은사"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결국 성만찬의 첫 번째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속의 은총에 대하여 감사하는 감사의 예전입니다. 



    2.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성만찬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6:56) 

    세계가 하나님의 자녀로의 인침이라면, 성만찬은 그 인침을 계속해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을 받아 먹고 마실 때 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요, 내 안에 주님이 계신 것을 새롭게 새롭게 확인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성만찬을 받는 자는 이제 더 이상 죽음을 통한 희생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내 대신 죽음을 당하시고 피를 흘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만찬은 바로 이 희생의 주님의 몸에 내가 연합하는 신비의 체험입니다. 



    3.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으로의 성만찬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생활과 그 희생에 대한 실체의 표징입니다. "아남네시스"란 말은 "기억"이나 "회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과거에 있었던 한 사건의 결과를 현재 속으로 이끌어 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행하신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의 사건을 하나님 앞에서 성만찬이라는 의식을 재현함으로써 그 사건으로 하여금 지금 내가 성만찬을 받는 여기에서 똑같은 효력을 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서 성만찬의 의식이 거행될 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현재적인 사건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거리에 버려진 아이가 어린이 보호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옷을 새로 갈아 입혔는데 낡은 모자를 벗기고 새 모자를 씌워 주려고 하자 자신의 모자를 움켜 쥐고는 손도 못 대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아이의 모자 안감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옷감으로 만들어 남겨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에게 그 모자는 단순한 모자가 아니라, 거룩의 상징이었습니다. 어머니 자신이었습니다. 



    성만찬은 곧 주님께서 이 "아남네시스" 가운데 임재하셔서 우리와 친히 교제를 나누시는 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는 아남네시스 안에서 자신의 교회의 기쁨에 넘친 의식을 통하여 지금도 살아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의 커다란 문제점은 오늘 우리 교회가 성만찬을 행할 때에 항상 그의 죽으심과 희생만을 강조하고 기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단지 살았다가 죽어서 기억을 남겨준 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과거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장사지낸 바 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분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즉 "떡을 떼어 나누는 가운데 신자들과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는 갈보리의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예수나 무덤에 누우신 예수가 아니라 하늘 나라의 잔치를 준비하며 당신의 식탁에 우리를 초대해 주시고 당신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을 위해 기꺼이 당신의 식탁을 열어주시는 부활하신 승리의 구세주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주님의 죽음과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의 부활과 앞으로 있게될 하나님 나라의 메시야적 향연의 약속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즐거운 축제"인 것입니다. 



    4.성령 초대로서의 성만찬 



    성만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임재는 분명히 그 중심이며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즉 성령께서는 성만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신앙 공동체에 임하게 하십니다. 

    또한 성찬 제정의 말씀 안에 포함된 모든 약속을 성취시켜 주십니다. 



    또 성령님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례전적 상징이 되도록 하시며,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맛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교회는 새로운 창조의 생명과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확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늘나라의 삶을 이 땅에서 보여주는 공동체입니다. 또한 성찬은 하늘나라의 만찬을 예표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의 전체 행위는 하나의 성령 초대의 기도의 성격을 지닙니다. 그래서 사도시대 이후 성만찬의 예전에서 "성령 초대의 기도"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여왔고, 이 기도는 빵과 포도주와 공동체에 성령의 역할에 대한 설교를 함으로써 성만찬의 의미를 더욱 강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5.성도의 교제로서의 성만찬입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아 지체를 이룬 무리들이 이제는 동일한 신앙 속에서 삶의 내용과 방향을 같이 하게 됩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의 결정체를 이룩하는 특수한 공동체가 형성되어집니다. 



    성만찬 때의 교제는 모든 교회가 하나가 되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라도 거기에 참여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그리고 그들의 동참자들과 하나됨을 말해주며, 그런 효험을 가지는 것입니다. 



    성만찬의 또 하나의 명칭인 "커뮤니온 서비스"(Communon Service)는 바로 이런 성도의 교제를 나타내주는 단어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고전10:16-17,11:17-22) 그러므로 세계 어디서나 성만찬을 거행하는 무리들은 동일한 그리스도의 지체인 것입니다. 



    가룟 유다와 함께 앉으신 주님만 생각하면 모든 사람을 다 용납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여러분, 주님이 받으셨는데, 우리가 뿌리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성만찬을 받는 모든 사람들은 한 하나님, 한 주님, 한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동일한 지체임을 계속적으로 다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만찬 의식은 하나님의 한 가족 안에서 형제들과 자매들로 간주되는 모든 사람들간의 화해와 참여를 요청합니다. 



    6.하나님 나라의 식사로서의 성만찬 



    마지막으로 성만찬은 약속된 하나님의 통치를 소망하도록 해주며, 또한 그것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심을 축하하고 확신하는 축제입니다(고전11:26,마26:29). 그러므로 성만찬은 이미 이 땅에 오신 하나님 나라와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열어주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천국의 잔치를 미리 경험케 하는 식사인 것입니다. 



    한스 큉(Hans Kung)이란 신학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점에서 성만찬을 잘 설명해 줍니다. "과거의 관점에서 주의 만찬은 회상과 감사의 식사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주의 만찬은 교제의 식사요 언약의 식사요, 미래의 관점에서 주의 만찬은 메시야의 종말적 식사에 대한 예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만찬이 그리스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현현해 주는 귀한 예전임을 말한 것입니다.(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따라서 성만찬은 이 땅의 마지막 날에 기쁨과 영광 중에서 우리 주님과 함께 나눌 하나님나라의 식사의 표징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은 성례전에서 내가 죄사함을 받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이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제는 주님을 위해 살기로 새롭게 다짐을 하게 되며, 감사와 감격의 삶 속에서 우리의 잠자는 신앙이 이 예식에 참여함으로써 다시 깨어나게 됩니다. 이 성례전에 믿음으로 참여함으로써 영적인 풍성한 은혜를 입게 되고 감격과 감사가 넘치는 축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식에 참여하는 여러분은 확신있는 믿음으로 거룩하게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심과 같이 우리는 우리 이웃과 눈에 보이는 형제들을 사랑하며 기꺼이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의 성만찬은 새로운 의미의 성만찬이 되어야 하고, 주님이 명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성만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에 받은 말씀대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오늘 나에게 다시 살아 역사하시며 나를 변화시키는 성만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세례와 성만찬을 통해 내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인쳐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내 안에 주님의 생명이 있으며, 주님의 인격이 있으며 주님의 사랑이 거하심을 믿습니다. 

    주님 앞에 가는 그날 까지 주님의 분신으로 항상 승리하는 증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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