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 명(요6:52∼59)
  • 조회 수: 98, 2013.06.15 07:28:17
  •  어느 병원에서 원목으로 일하는 목사님께서 쓴 글을 보았습니다. 목사님은 그 병원에서 수없이 죽어나가는 환자들을 목격하고 그 동안 겪었던 일을 일기형식으로 기술한 내용 중에 일부입니다. 
      퇴근길에 내가 들렸던 곳은 소아과 병동이었다. 갓난 어린아이가 두 시간 안에 죽게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갔을 때, 대기실에는 그 아기의 아버지와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성직자 복장을 한 내가 나타나자 아이가 죽어서 장례식을 하러온 줄로 생각하고 깜짝놀라 일어섰다. 
      그래서 나는 내 신분이 원목임을 밝히고 자리에 앉게 하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말을 꺼냅니다.  목사님, 내 아들과 며느리는 2년 전에도 아이를 낳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도 역시 태어나자 마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이런 일이…… 
      하시면서 할머니는 말을 잊지 못했고, 나도 할 말을 잃었다. 기억나는 한 가지는 함께 손을 붙잡고 기도한 것뿐이다. 나는 어린아이가 죽게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내 기도를 통해서 소망을 갖기를 원했다. 나는 무슨 말로 기도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한 것만 기억이 난다. 
      드디어 의사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아이가 죽었다고 말했다. 그 어린 생명은 세상에 태어난지 12시간만에 숨을 거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아이 아버지는 한참동안을 말없이 앉아 있더니 끝내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 아이는 12기간 밖에 못 살았어요 2년 전에 죽은 아이보다 두 시간 더 살았군요, 왜 나에게 이 가혹한 형벌이 주어지는 것입니까?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라는 결론을 안고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이처럼 짧게 살다가 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백살이 넘어 장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를 살든지, 어떻게 살든지, 그 삶의 결론은 하나입니다.  결국은 목숨이 끊어지고 흙 속에 묻혀서 썩어진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결코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에는 내일 해야할 일들을 계획하며 잠이 들지만 그 다음날 아침에 다시 눈을 뜨게 될 것을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생명과 죽음은 참으로 신비한 관계입니다. 방금까지 숨을 쉬며 생명이 있던 사람이 어떻게 그 다음 순간 숨을 멈추고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지 실로 신비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힘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신비를 풀어보려고 나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토마스 만 이라는 독일 사람이 「행복으로의 의지」라는 책에서 인간의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힘은 행복을 향한 의지라고 주장합니다.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는 한 그것을 이룰 때까지 자기의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힘이 인간 속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행복을 향한 의지가 인간의 생명을 다소 연장시킬 수 있다고 해도 그 의지가 죽음자체를 이겨낼 수는 없습니다. 죽음은 결국 행복도, 의지도 모두 삼켜버립니다. 죽음의 힘 앞에서 인간의 의지는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한사람은 「생명의 존엄」이라는 글을 쓴 알버트 슈바이쳐 박사입니다. 그는 주장하기를  행복한 사람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불행한 일들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밖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궁극적으로 나를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슈바이쳐 박사는 인간이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유지하는 이유는 그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고귀한 것이다 고 생각했고, 이 생각이 그로 하여금 아프리카 흑인들의 생명을 위해서 일생을 헌신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슈바이쳐  역시 생명의 본질을 완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명을 주실 때에 그 생명이 하나님의 손을 완전히 떠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손을 떠나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을 이제는 인간의 것이고 하나님과는 단절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슈바이쳐는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지만, 그 인간의 생명이 지금도 하나님의 생명과 신비한 교제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 53-59절까지를 다시 읽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이것이 세례 받는 의미요, 성만찬 속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길은 행복으로의 의지도 아니요, 불행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아닙니다. 또한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죽음을 이기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하나가 되는 것뿐입니다. 이 놀라운 일이 세례와 성만찬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 시간 주의 성찬에 참예하여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여러분들은 죽음으로 끝나는 유일한 생명을 벗어나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인 영생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지금 주님의 거룩한 성찬에 초대받았습니다. 감사와 감격으로 영생의 기쁨을 가지고 이 성찬에 참예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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