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눈(마18:1-14)
  • 조회 수: 151, 2013.05.24 07:28:22
  • 지난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이었던 하비비나 수카르노라는 전설적인 국부의 딸 메가와티를 누르고 일반적 예견을 보기 좋게 뒤집으면서 압둘라흐만 와히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두고 타임지는 재미있는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와히드는 정치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 입지가 매우 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기반은 제3당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건강도 심각합니다. 뇌졸중으로 한 쪽 눈을 잃고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 만 할 정도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인도네시아 지도자로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권력을 실제적으로 행사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회의적인 분석도 있습니다만 어찌 되었든 그는 민주적 선거에 의해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지지를 받은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는 이 일을 두고 인도네시아말로 가겟(gaget) '놀랍다'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타임지는 분석합니다.

      타임지는 이 요소를 세 가지로 분석했습니다. '첫째는 겸손, 둘째는 관용, 셋째로는 위트와 유머'라고 분석합니다.  제3당이라는 연약한 정치적 기반 때문에 와히드는 무리수를 두지 않고 각 정파의 조화와 화합을 이끌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세입니다.

      와히드는 이슬람의 지도자입니다.  그런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최대의 적은 이슬람이란 이름 하에 자행되는 폭력과 수하르토 독재이다. 이슬람국가 건설이라는 급진주의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이념에 맞지 않는다"  와히드의 둘째 강점은 타종교에 대하여 관용적 태도를 가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셋째는 그의 위트입니다.  당선 연설 중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핸디캡을 연설 속의 짧은 위트를 통하여 불식시켜 버렸습니다. "나는 지금 긴 연설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말을 해 버리면 나중에 책임질 일이 많기 때문이지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이 말에 박장대소하고 신뢰감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실은 없고 말만 많은 우리네 정치현실하고는 대비됩니다.     와히드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타임지에서 분석한 내용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이 하나의 사건이 강하고 큰 것만 좋은 것이고 그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합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에 대하여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 가르침은 제자들이 '누가 큰가' 논쟁한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한 시청각 교육자료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재료는 놀랍게도 사람이었습니다.  사람 중에 특별히 어린아이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들으면 다음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어떻기에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그래서 아이들의 특성을 부지런히 찾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순수성, 그리고 어린아이의 깨끗함, 가능성 등을 손꼽습니다.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만 주님의 본디 의도는 아닙니다.   가만히 보세요.  예수님은 돌이키라고 말씀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여기서 돌이키라는 말은 나이를 뒤로 돌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끔까지 너희의 논의를 돌이키라는 말씀입니다.

      1절을 보시면 마태복음은 상황을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그러나 마가, 누가의 병행구절을 보면 이 논의가 지금 바로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마가복음 9장 33절 이하를 보시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제자들은 잠잠합니다. 마가는 이 사실을 44절에서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제자들에게 계속되는 한 가지 논쟁이 있었는데 '누가 큰가'입니다. 높은 자리에 대한 욕망입니다. 자신들 안에 크고자 욕망이 불타고 있음을 들켰습니다. 문제는 그것 때문에 다투었습니다. 이것이 발각된 것입니다. 이때 주님은 어린아이를 두시고 설명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여기서의 말씀은 어린아이의 특성을 가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어린아이같이 되라는 말씀은 어린아이처럼 무시해도 괜찮을 정도의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큰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사람의 수에 넣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의 수로 넣지 않아도, 충분한 대접을 받지 않아도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낮은 마음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람이 무시당하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사람도 아닌가?'  또 어른들이 중요한 논의를 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끼어 들면 '애들은 가라' 애들을 내 보냅니다. 요즘 아이들은 안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면 아이들은 '나는 사람도 아니가?'합니까?  '알았어요' 합니다.  그 이유는 어른들은 자신들의 비교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우가 이러면 아이들도 노여움을 가질 것입니다. 만약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는데 '누구누구는 나가서 놀라'고 그러고 '누구누구는 우리와 함께 얘기하자' 그렇게 한다면 아이들도 노여워 할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은 어른과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끼리의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끼리의 자리다툼방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 큰가를 논쟁하고 '큰 자' 되기를 갈망하는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한가지를 교훈하고 계십니다.  '너희를 사람취급하지 않아도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 낮은 자의 모습을 가지라'  높아지려는 의식이 높은 자리가 투기와 시기와 분노를 불러 일으킵니다. '내가 누군데 지들이 그래'  시각이 늘 '남이 나를 대접하고 있는가?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집중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서 멀기만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누가 천국에서 큰 자입니까?  자신을 어린아이의 신분으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평화가 있습니다.  비로소 예수 닮은 자로  서는 것입니다.  여기에 화해와 협력과 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 여인네들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안수해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엄마들을 향하여 꾸짖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큰 자가 되기만을 바라고, 큰 자들만 생각하고, 큰 자들만 대접하는 의식을 가진 제자들에게 바로 너희가 천하게 여기고 내어쫓았던 그 아이들의 위치로 내려가라.  그 위치에 있는 자가 천국에 함당한 자라고 가르치십니다. 너희들이 무시한 존재들이 천국의 주인공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윌리엄 캐리에 관한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일컬어 위대한 선교사라고 말하는 것을 서슴지 않습니다. 세계 선교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의 임종시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가 임종 할 때 곁에 있는 사람이 묻습니다. "선교사님의 장례식 설교에 어떤 성경 구절을 택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다음 성구를 인용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그리고 아울러 비문에 다음과 같이 적어 달라 부탁했습니다.  "윌리암 캐리 1761년생  죄 많고 약하고 능력 없는 벌레에 불과한 나는 당신의 긍휼하신 거룩한 손에 기대어 잠드나이다"

      교회는 대접받으려는 곳이 아닙니다. 높이 올라가려는 곳도 아닙니다. 누가 큰가 경쟁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의 표지는 낮아지려고 하는 곳입니다. 교회의 표지는 신분이 귀한 사람, 돈이 많은 사람, 권세가 있는 사람이 들어와서 어린아이의 신분처럼 되기를 소망하는 곳입니다. 낮아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 곳,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닌, 서서먹는 자 되기를 힘쓰는 곳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회론이 되기를, 그리고 여러분의 신앙의 첫째 목표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천국에서 누가 '큰 자'인가를 가르치신 주님은 이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소자로 볼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가르치십니다.  천국의 삶을 소개하고 계신 것입니다. 5, 6절을 보십시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소자"를 영접한다는 말입니다. 이 얘기를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12절부터 14절까지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여기서 논의 점은 양 99마리와 1마리에 대한 중요성의 문제입니다. 산술적으로 생각하면 99마리와 1마리의 중요성은 이미 답이 나왔습니다. 당연히 99마리에 손을 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일반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인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99마리를 양을 산에 두는 모험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주인이 셈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에 99마리의 중요성을 무시했기 때문일까요?  이유는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산술적 계산이 통하지 않습니다. 경중이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교회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야 합니다.  이 마음 품기를 위하여 신앙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99마리도 대접을 하지만 1마리를 대접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99마리여서 소중하고 그리고 1마리여서 덜 중요한 논리가 자리할 수 없는 곳입니다.  이 말은 99마리보다 1마리가 더 중요하다거나 아니면 또 1마리보다 99마리가 더 중요하다는 논리가 아닙니다.  99마리와 1마리의 경중을 따지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공동체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길 원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올바른 교회론입니다.  1마리여도 소중하고 99마리에 속해 있어도 소중한 마음이 교회의 마음이요,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의 마음입니다.  

      우리 교회가 새로운 발돋움을 위하여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지난 성지가족 한마당 운동회와 구역별 찬양축제를 보면서 우리 모두는 느꼈습니다.  경기에서 지고 찬양대회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마음 상하신 분 없잖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에 가능성의 문을 열어 주는 고무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고 우리  교회의 저력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과 함께 아울러 갖추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살피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해야 합니다.  이 반성과 새로운 모색이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사람의 소중함을 폐기시키는 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99에 배하면 1이라는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는 마음이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것은 1마리가 99마리보다 더 소중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잃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보시기 바랍니다. 잃었던 것을 찾은 것이 기쁜 이유는 잃었던 것을 찾음으로 인해 99마리가 더욱 빛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인의 마음입니다. 1마리를 잃어버리면 99마리를 가지고 있어도 잃었던 그 한 마리 때문에 99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잃은 것에 대한 아픔으로 99를 인하여 기뻐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 정신이 바로 그리스도의 정신이고 이것이 교회의 마음일 때 바로 그 자리가 천국입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많은 분들이 신앙 생활하는데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경제적 차이를 막론하고 모두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고 존귀히 여길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돈이 없어서 설움 받고, 능력이 부족하여, 학력이 부족하여, 생긴 것 때문에 설움 받는 다면 올바른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분들이 살맛을 느끼고 '사회에서는 이것 때문에 홀대를 받아도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곳이 있고, 여기에서는 이런 사람에게도 존귀함을 인정해 주는 곳이구나' 교회는 이렇게 느낄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는 곳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모자라는 것은 아픔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는 아픔이 있습니다. 아픈 구석이 없는 분이 없습니다.  모자라는 구석이 없는 분이 없습니다.  지금 옆에 앉아 예배를 함께 드리고 있는 그분 안에도 어떤 부분이든 간에 한 구석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아픔이 바로 우리에게 있는 100중에 99가 아닌 1이 잃어버린 부분인지 모릅니다. 잃어버림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만약 잘 못된 부분이 50이고 정상적인 부분이 50이라면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산술적인 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이 100중의 1이라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슬픔이 있고, 긴장이 있고, 고통이 있고, 삶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회오리가 될 수 도 있습니다.  

      발톱이 파고들어 발가락에 염증이 생겨 수술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는 이것 때문에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부분 건드려 놓으면 그 아픈 것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짜릿합니다. 눈물이 핑 돌아요. 다른 발가락은 건드려도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과 같습니다. 본래 가지고 있는 아픔을 건드리면 그렇습니다.  상처는 아픔은 싸매 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100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가 천국입니다. 제 가슴에 눈물이 있습니다. 교회 현장에 이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무서운 경고입니다.

      무엇이 부흥입니까?  무엇이 성장입니까? 오늘은 代降節 첫째 주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주님의 나라를 기다립니다.  대강절 절기를 맞이하여 검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부흥이요, 성숙이요, 성장입니다.  우리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어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존귀히 여기는 역사가 나타나 하나님의 칭찬으로 여러분 삶이 건강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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