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일도 있습니다!
  • 조회 수: 104, 2013.08.22 22:00:54
  •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 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자연계에는 놀라운 일이 많습니다. 어떤 조류 학자가 영국 웨일즈 해안에서 섬새 한 마리를 잡아 다리에 띠를 맨 후 미국 보스톤으로 가져갔습니다. 거기서 그새를 풀어 주었읍니다. 그랬더니 그 새는 정확히 12일 반만에 4,900km나 떨어진 영국의 자기 보금자리에 돌아왔읍니다. 섬새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 길을, 아무런 표시도 없는 바다를 홀로 건너 자기의 보금자리로 안전하게 도착했던 것입니다. 누가 훈련을 시킨 것도 아니지요. 무엇이 그 새에게 길을 가르쳐 주었을까요?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자연계의 신비입니다.
            이처럼 자연계를 비롯한 인간 세상에는 우리들이 생각하기도 어렵고 믿기도 어려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기적>이란 말이 생겼습니다. <기적>이란 말을 들으면 우리 마음은 약간은 흥분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외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기적을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생애에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을 안고 살아갑니다.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구세주가 될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마리아도 기적이란 현상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천사의 말을 듣고 몹시 놀랐습니다. 본래 남자와 여자의 관계 속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것인데, 어떻게 남자를 모르는 처녀가 아기를 낳는다는 것인지 마리아는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천사의 말에 대한 마리아의 반응을 보세요.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무언가 엄청난 일이, <기적>이라고 밖에는 부를 수 없는 일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기적이 무엇입니까? 신약 성경에서 기적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단어는 <세메이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위해 이루시는 기적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핵심은 그 일의 내용에 있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그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를 두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 일을 누가 이루느냐>하는 주체가 중요합니다. <세메이온>이란 말은 사전을 찾아보면 <기적>이란 뜻은 나중 뜻이고, 가장 먼저 나오는 뜻은 표, 증거, 표시란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그 일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표시, 하나님의 증거일 때 세메이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복음 2장 12절에 보면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란 구절이 있습니다. 거기서 <표적>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세메이온입니다. 목자들이 베들레헴의 마굿간을 찾아갔을 때 아기가 강보에 싸여서 구유에 뉘어 있을텐데 그것이 세메이온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안방에 잠든 아기를 이불에 싸서 구유에 가져다 눕히는 것을 보고 기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일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세메이온이라고 하신 이유는 목자들이 그 광경을 보았을 때 직감적으로 <아,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로구나!>라고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아기가 구유에 뉘여져 있는 그 모습은 목자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는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보고 하나님을 느끼는 것, 이것이 기적입니다. 그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행하시면 다 표적이요, 이적입니다. 일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이 하나님을 나타내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매일매일 경험하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하나님이 행하셨으므로 기적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저도 지금까지 다치기도 많이 했고, 여러 가지 병으로 병원에 가기도 했습니다. 눈 수술을 두 번 했고, 새총에 맞아서 눈조리개가 파열되기도 했고, 운동을 하다가 척추에 금이 가서 다리 신경이 마비된 일도 있습니다. 숫하게 감기도 많이 앓았고, 기관지염도 많이 앓았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저절로 낫거나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면 나았습니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음식을 먹을 때 손끝에 많은 병균도 묻어 있었을 것입니다. 때론 상한 음식도 먹은 일도 있을 것입니다. 날마다 공기 중에 있는 엄청난 박테리아를 호흡할 때마다 들이마십니다. 지금도 장기 속에는 엄청난 세균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멀쩡합니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때가 되면 소화가 되고, 때가 되면 조름이 오고, 때가 되면 눈이 떠집니다. 자잔한 교통사고를 다섯 번이나 당했습니다. 그래도 이만큼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일은 저만 경험하는 게 아닙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체험하시는 것입니다. 아니 그게 우리 인생 자체입니다. 이런 일들 두고 기적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기적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몸살이 나서 눈물과 콧물이 흐를 때 감기약을 먹으면서 잠시 기도하기를 잊지 않습니다. <주여, 이 약을 주셔서 감사히 먹습니다. 약효가 있게 하사 속히 낫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약이 효과가 있어서 한잠 자고 깨끗이 일어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합니다. 감기가 떨어지는 그 일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읽었습니다.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일어날 때 우리는 경외감을 느낍니다. 하루의 시작과 그 시작에 동참하는 내 육체와 맑은 정신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않고, 우리 각자의 육체와 정신 속에 계심을 느끼고 감사합니다. 그 현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봅니다. 그래서 이 평범한 일들이 하나님을 가리켜 주는 표적이 됩니다. 날마다의 생활이 표징입니다. 즉 세메이온, 기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기적의 첫 번째 차원입니다. 이것을 <평범한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 종류의 기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일, 우리가 흔히 기적이라고 하는 일들입니다. 마리아가 처녀로 잉태하여 예수님을 낳은 것을 비롯해서 성경에는 온갖 기적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적을 <특별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특별 기적도 체험했습니다. 이미 다 아시는 대로 중학교 3학년 당시에 모든 병원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름도 잘 모르는 이상한 마비증세를 앓았습니다. 얼굴과 상체가 마비되었습니다. 4월부터 11월말까지 여러 달을 앓았습니다. 그 때 저희 부모님과 저는 진정으로 기적을 갈망했습니다. 정말 간절하게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서원을 했습니다. 기적을 일으켜 주신다면 목사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교회 예배 시간을 통해 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 그 교회 목사님은 병자들을 위해 기도한 후에 <오늘 여기 온 사람들 중에서 얼굴과 상체에 병이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고치실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마비가 풀리기 시작하여 두 주일만에 본래 모습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다시 한 번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삼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는 증거, 세메이온이요, 기적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저를 예로 들어서 말씀했습니다만, 잘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평범한 일이어서 모든 사람이 다 경험하는 일일지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지금 우리가 먹고 마시고 숨쉬고 살고 있는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면 지금 우리는 매일 매일을 기적 속에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하시면 다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의 기적 속에서 살고 계심을 믿습니까?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날마다 신기한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날마다 신비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평범하지 않은 일, 누구나 깜짝 놀랄 일도 일어납니다. 그 횟수가 드물고, 그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희소할 뿐이지 우리 모두를 놀라게 만드는 일이 지금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 비록 처녀이지만 아기를 낳으리라는 것은 바로 그런 기적이 마리아에게 나타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종류의 기적, 평범한 기적과 놀라운 기적이 우리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의미에서 기적을 믿으십니까?  

            또 하나님의 기적은 두 가지 면으로 다가옵니다. 그 첫째는 <논리적 기적>입니다. 한 영국 선교사가 뉴우질랜드에 가서 헌신적인 선교를 했습니다. 많은 원주민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주일에 여러 마을 원주민들을 한 군데 모아서 성찬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씩 차례로 나와서 성찬을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무릎을 막 꿇으려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바깥쪽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문 입구에 잠시 서 있더니 다시 들어와서 성찬 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성찬식이 끝난 후 목사님은 그를 불러서 그 이상한 행동을 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펑펑 울면서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우리들은 원수를 갚지 않는 사람을 가장 비겁자라고 합니다. 저는 평소에 늘 원수를 갚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말해 왔습니다. 저 부친을 죽인 원수를 만나면 반드시 죽이겠다고 공언해왔습니다. 그런데 성찬을 받으려고 가보니, 저 바로 뒤에 성찬을 받으려고 따라오는 사람이 여러 해 전 저희 부친을 죽여서 그 피를 마시고 살을 먹은 이웃 마을의 추장, 바로 제 원수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를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치솟아서 당장 죽이려고 무기를 가지러 밖으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아버지여, 이들을 용서하옵소서,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도 모릅니다'라고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왜 여기 모였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시 들어와서 성찬을 받은 것은 그 원수를 용서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논리적 기적입니다. 아버지를 죽여 피를 마신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당연히 원수를 죽여 복수해야 합니다. 그것이 뉴질랜드 원주민 사회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논리를 뛰어 넘는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서 그를 용서한 것입니다. 모든 감정과 인간 관계, 상식적인 은원 관계의 논리를 초월하는 기적이 그 원주민의 가슴속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에덴 동산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 인간들, 날마다 가증한 죄악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모든 논리를 초월한, 무조건적 사랑으로 용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생각한다면 우리를 용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도 안됩니다. 우리를 처벌하셔야 합니다. 지옥에 던져 넣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논리적 결론을 뛰어 넘는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 그 사랑과 그 선물인 영생, 이것이 기적 중의 기적인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은 <능력적 기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이루십니다. 성경에는 이런 일들로 가득합니다. 이런 일을 보고 들을 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마리아도 그렇게 물었습니다.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의 질문에 대하여 천사 가브리엘은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서 나이 많은 엘리사벳이 잉태하여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기적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또 그 분이 창조하셨으므로 그 분은 창조 세계 속에 또 다른 기적을 계속해서 일으키시는 것을 믿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한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상상과 지각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대학의 캠퍼스에서 한 학생이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물었습니다. <야, 그 책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믿냐? 정말 홍해가 갈라졌다고 생각하니?>  그가 대답합니다. <내 관심은 홍해가 갈라진 데 있는 게 아니야. 나는 홍해를 어떻게 만드셨는가에 더 관심이 있어. 홍해를 만드신 분이라면 그걸 잠시 갈라놓는 게 뭐가 어렵겠어?>
            여러분, 지금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은 그 분이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늘과 땅과 바다가 있습니다. 그것들이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들을 벌써 오래 전에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드신 그 분이 우리 안에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왜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없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그 하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얼마든지 우리 안에 놀라운 기적을 일으켜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날마다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가르쳐 주는 평범한 기적들을 체험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랄 기적을 체험하게 되길 기원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다니> 이렇게 감격하는 논리적 기적을 체험하시길 기원합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그 능력도 체험하시길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육체가 기적의 장소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기적의 장이 되고, 우리 가정과 교회 안에 엄청난 기적들이, 세메이온들이 나타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리고 기적을 맛보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시길 기원합니다. 마리아는 어떻게 처녀 잉태의 기적을 맛보았습니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바로 이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그녀의 인생이 하나님의 손안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그 순간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능력 속에 던져 넣어 맡긴 사람들은 모두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여러분을 믿음으로 맡기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먼저 이기적이고, 자존심 강한 우리 자신이 우리 스스로를 부인하고 우리 자신을 주님께 맡기는 내적 기적이 우리 안에서 먼저 이루어질 때 하나님을 통한 기적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기대하는 가슴 설레는 나날을 살 것인지, 혹은 날마다 따분한 계산기적 인생을 살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기적을 바라보는 인생, 그리고 맛보는 인생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기적의 사람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은 기적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리에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기적을 행하시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헤롯왕 앞에서는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도 기적을 원했지만, 주님은 거절하셨습니다. 여러분, 대문만 나서도 집 바깥에 기름진 농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씨를 뿌릴 생각을 하지 않고, 사렙다 과부에게 일어난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기대하면서 곡식 가루통만 쳐다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사람입니다. 이미 자리를 들고일어나 갈 수 있는 건강을 주셨음에도 계속 자리에 누워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놀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땀흘려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주셨는데도 일은 뒷전에 두고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길 바라고 하늘만 쳐다본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도전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미 물 속에 물고기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시는 것도 모르고 계속 배 위에 서서 풍랑이 멈추게 해 달라고 소리를 지른다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요나는 물 속에 자신을 던졌고, 그랬더니 이미 준비된 물고기가 그를 받아 구원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미 우리를 천국으로 태워다 줄 은총과 사랑의 기차가 출발해서 힘차게 달리고 있는데도 자꾸만 천국행 자전거를 타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믿는 자에게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지금도 우리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아모쪼록 우리 모두의 생애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드러내는 세메이온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애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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