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여자, 사랑받는 아내(벧전 3:1-7)
  • 조회 수: 23, 2013.08.18 17:33:43
  • 어떤 산골 마을 앞산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는 인자한 어른의 얼굴 모습을 띄고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었는데 언젠가 그 큰 바위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타나서 마을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그러한 내용의 전설이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언제 그 사람이 나타날 것인가를 기대했고 때론 그 마을 출신의 성공한 사람들은 내가 혹시 그 사람이 아닐까?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만은 모두 다 아니였습니다. 날마다 그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대화하고 그 인물이 나타나길 고대하던 한 소년이 마침내 성장하여 그 마을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그는 사랑과 지혜와 온유함으로 그 마을을 섬기고 가르쳤습니다. 어느 날 그 마을의 지도자가 된 소년이 마을사람들을 보고 얘기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이 바로 자기들이 기다리던 큰 바위 얼굴과 똑같은 사람임을 발견합니다. "맞다! 바로 저분이야! 저분이야 말로 우리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큰 바위얼굴의 주인공이야!" 하고 외치게 됩니다. 나다나엘 호르손의 "큰 바위 얼굴"이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이란 무엇을 바라보느냐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변해간다고 하는 소위, "바라봄의 법칙"을 말해줍니다. 좀더 전문적인 용어를 채용하자면 사람이란 누구를 모델로 하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변해간다는 진리를 이야기 속에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이 소년에게는 큰 바위얼굴 자체가 그의 모델이요, 그의 스승이 되었던 것이올시다.

     

     많은 여자들에게 당신은 어떤 여자가 되고 싶습니까? 당신이 되고 싶은 여자의 모델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으면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되고 싶은 여자의 제1호는 퀴리부인입니다. 프랑스의 과학자로 라듐을 발명한 그래서 원자력 시대를 열었고 노벨상을 수상한 퀴리 부인이 전세계적으로 여성들에게 가장 되고 싶은 모델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그 여자는 한 분야의 전문가였고 또한,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은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입니다. 왜 그녀를 닮고 싶어하냐면 예술적인 안목이 있었고 많이 배웠으며 자식을 잘 길러낸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의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은 누굴까? 하는 겁니다. 자고로, 교육의 90%는 모방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이 시대의 교육의 문제는 뭔고 하니 지식은 많으나 모델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말은 많아도 따라가며 닮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것이 이 시대의 큰 문제가 됩니다.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누구를 닮아가야 할 것이냐? 모델을 어떻게 잡을 것이냐는 신앙생활과 가정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소위, 문제가 여성들을 조사해 보면, 하나같이 그들 마음속에 있는 그들이 모델로 하고 있는 여자들이 그렇고 그런 여자라는 것. 그리고 때로는 존경하는 여자가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아름다운 여자. 사랑받는 아내의 모델을 제시해줍니다. 누구입니까? 본문에서. 아! 읽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은 여자의 3대 미덕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1절 보시면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순복. 순종이 여자의 제1의 미덕이라 가르칩니다. 2절 말씀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보니라.

     

      정결. 다른 말로는 순결입니다. 순결이 제2의 미덕이요, 4절 보시면

     

     "오직 마음의 숨은 사람을 온유하며 안정한 심령의" 그랬습니다. 온유하고 안정된 마음. 이것이 여성의 3번째 미덕이올시다. 이와 반대되는 3가지 잘못된 것도 본문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순종의 반대 개념은 무엇이냐? 말많고 시끄러운 것이요. 순결의 반대는 무엇이냐? 3절에 나옵니다. 외모를 지나치게 꾸미고 단정하게 하는 것이요. 온유하고 안정된 마음에 반대는 무엇이냐 하면 놀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3대 미덕이 이런 것이라고 성경이 제시할 때에 본문을 읽으면서 많은 여성들은 반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여자보고만 순종하라고 하는 거냐? 이것은 가부장적 사회제도에서 나온 잘못된 고정관념의 산물이요, 성차별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남성중심적 가치관속에서 여성들은 잘못된 교육을 받아왔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뭐냐? 동등하지 아니한가? 이렇게 항의를 한단 말이죠. 이게 소위 여성계의 요구올시다. 여러분 이러한 항의는 정당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는 정말로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여자가 남자보다 못하다고 하는 곳이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반발해야 하는가 하면 반발의 시작이 어디냐 하면, 과거의 잘못된 여성상 때문입니다. 과거의 여성상은 3가지입니다.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소위, 남존여비 사상이지요.

     

     둘째는, 여자들을 소유물로 생각을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여자들을 죄인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유혹에 약한 여자라고 몰아붙였던 것이죠. 그래서 여자는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하고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여자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 과거적 여성상의 결정적 약점이 됩니다.

     

     시작은 남자 때문이지요. 남자들이 여자를 하나님이 주시는 소중한 선물로, 동등한 파트너로 영접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여자들은 반발하고 권리를 주장하게 되는 겁니다. 이건 옳은 것이요.

     

     그렇다면 현대적 여성상의 문제는 뭐냐하는 겁니다. 동등함을 요구하는 것은 좋은데 남녀의 구별과 독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남자와 다 똑같아 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금녀의 영역까지 파고 들어오는 것을 성공의 모델로 생각하는 개념을 갖게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심지어 남자보다도 더 남자다운 여자들이 자꾸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젊은 여자들을 가리켜서 탱크 걸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용어도 남자 용어를 막 씁니다. 여자끼리 형, 짜식, 임마, 이런 소리를 막 쓴단 말이요.

     

     성경은 말합니다. 성경적인 여성상이 있다고 성경적 여성상은 무엇이냐 하면은 첫째는, 남녀는 동등하다는 겁니다. 철저하게. 그러나 차이가 명백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되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분명하게 성별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남자다워져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져야 하는 겁니다. 현대 여성운동의 문제점은 잘못된 남자들의 편견을 부수다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여자의 여성성. 하나님이 부여하신 여자의 독특성을 부정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성문필가인 "시몬느 드보봐르" 라고 분은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여성자신이 자신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변화를 시도하라. 그러나 여기 단서가 하나 붙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테러리스트가 된다거나, 질서를 깨뜨리거나, 여성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절대로 차별은 안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부모님들 중에서도 딸이라고 해서 아들과 차별을 하거나 혹은, 딸이라고 해서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거나, 이것은 잘못된 가르침이올시다. 또한 여성 자신들도 자신을 비하시켜서 나는 여자인데,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개발을 소홀히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여자도 하나님 앞에서 남자와 완전히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성의 3가지 미덕에 대해서 생각을 합시다. 왜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 3가지를 강조하셨는가 하는거요. 먼저 첫번째 미덕인 순종에 대하여 1절에서 말씀합니다. 봉독합시다.

     

     1절: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순종하라고 말했습니다. 어이구, 남편이라구 남편 같아야지, 존경을 할 만 해야지 말을 듣든지 순종할 것 아니냐,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오늘 본문에는 단서를 붙여 났습니다.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자라도" 그랬습니다. 도를 순종치 않는 남자, 이는 누굽니까? 이방인이지요, 종교성도 없고 도덕성도 없는 소위 도가 없는 무도하고 폐역한 남자라 할지라도 그런 말입니다. 그런 남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남편에 대해서 아무리 잔소리하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도 그것 때문에 남자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말입니다. 그럼 언제 남자의 마음이 움직이냐? 순종하는 자세를 가진 아내 앞에서 남자의 마음은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어떤 여자 집사님이 남편을 예수 믿게 해야 되겠다 생각을 해서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항상 자기 목사님의 설교 테입을 크게 틀어 놓았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이 남편이 교회가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출을 해버렸답니다. 왜 그런가 하고 나중에 알아봤더니만 듣기가 지겨워서... 말로 되는 게 아닙니다. 술 먹는 남편들의 마음은 술을 잔뜩 먹고 들어 왔는데, 아내가 아무 말도 안하고 남편의 건강을 염려해주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한답니다. 내가 나쁜 놈이야... 그런데 술 먹고 들어오는데 아내가 팔짱을 끼고 오자마자 문간에서 오늘 또 술 먹었어!!! 그렇게 말을 하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이 든답니다. 나도 그렇지만 너도 별 수 없구나, 그러는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싹 사라지는 거에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더란 말이지요. 순종하는 자세를 통하여 마음은 바뀌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순종의 능력이 무엇인가를 말씀합니다. 1절 하반절에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랬어요. 아내의 행위로 인하여 구원받게 할 수 있다. 아내의 순종하는 자세와 사랑과 친절은 구원받지 못한 남편을 하나님께로 오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미덕에 대하여 생각합시다. 2절 말씀 함께 봉독합시다.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로 봄이라

     

     여기서 두려워한다고 하는 것은 남편 앞에서 벌벌 떤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자세를 말하는 겁니다. 내가 정말 믿는 여자로서 하나님 말씀대로 잘하고 있는가? 그러한 자세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자세로 살아갈 때 당연히 그 여자는 정결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이것을 보는 남자의 마음은 세상 여자들이 어떻게 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내 아내는 믿을 수 있다. 왜?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여자이므로 이러한 여자가 남편 보기에는 이쁘다는 겁니다. 어떤 여자 보다. 3절 같은 여자 보다. 함께 봉독 합시다.

     

      너희 단장(丹粧)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화장하고 옷 치장하는 여자보다, 순결한 여자가 더 이쁘다고 하는 거지요. 뭐 그렇다고 해서 화장하지 말라 그런 말은 아니지요. 화장도 해야지요, 적당히 해야 할 줄 압니다. 단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정결한 행위가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정결함이 없는 외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천박한 것이 될 뿐입니다.

     

      세번째 미덕인 4절 함께 봉독합시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 그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여인들이... 여러분 남자라고 해서 항상 용감하냐? 절대로 그런 거 아니지요, 얼마든지 두려워 떨 때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니, 남자들이 두려워 떠는데 어떻게 여자들이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 비결이 뭐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지요. 그 비결이 중요한 겁니다. 자, 안 믿는 남편이 병에 걸렸습니다. 살지 죽을지 얼굴이 노래지고 두려움에 떱니다. 예수 믿는 아내가 말합니다. "여보!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런 말, 이러한 자세, 이것이 바로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이 되는 겁니다. 그럴 때에 6절은 말씀합니다. 함께 봉독합시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이러한 자세가 하나님의 딸다운 자세인 것이다. 그런 말이지요. 정말 사라라고 하는 여자는 철저하게 순종한 여자였습니다. "네 고향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을 떠납니다. "어디로 갑니까? 여보" "모르겠어, 하나님이 떠나래" 그 아내가 따라 옵니다. 따라 왔어요. 또한 애굽으로 가면서 말합니다. "당신 너무 이쁜데 내 아내라고 하지 마시오"" 내 여동생이라고 하시오. 그래야 내가 안전할 거요." 사라는 순종합니다. "이것도 남편이라고"그런 말 안 했어요. "내가 그렇게 해서 당신이 안전하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왔지요. "아들 이삭을 바치래" 웬만한 여자 같으면 그냥 할켵을 겁니다. 자기의 독생자를 내어 줍니다. 자, 이러한 사라를 아브라함이 무시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 철저히 존귀히 여깁니다.

     

      오늘 본문은 참 의미 심장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라"라고 하는 여자의 이 "사라"란  의미가 뭐냐 하는 거에요. 이름의 의미가 성경은 "열국의 어미"라고 표현 합니다만은 쉽게 우리 말로 말하면 "사라"라는 뜻은 "공주"라는 뜻입니다. 프린시스(Princee) 공주라는 뜻이요. 우리 나라는 공주에 대한 개념이 아주 철저하게 오해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주병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무 일도 안하고 노력도 안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백마 탄 왕자님이 오셔 가지고 말에서 내려서 무릎을 척 꿇고 사랑을 고백해주는 이걸 기다리며 스스로 공주라고 착각하는 여자들이 많은데, 이건 공주가 아니지요. 애완용이지... 정말로 진짜 공주는 말이죠, 요즘도 세상에 공주가 몇 명 있잖아요. 그들의 스케줄을 한번 보세요. 얼마나 바쁜가?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그 많은 스케줄은 거의 다 연약한 자와 어른들을 섬기는 일에 그 시간을 다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로 공주가 무슨 일 하는 줄도 모르고... 소위 명문 가문의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른을 잘 모시고 예의 바르게 접대를 잘 한다고 하는 것이지요. 이게 소위 명문 가문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좋은 집에 시집가면은 일 안하고 편할 것 같아요. 화장만 곱게 하고 아무 일도 안하고 손에 물방울도 안 묻히고 사는 줄 압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일이 많은 거에요. 많은 여자분들이 속으로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공주처럼 대접을 받을까? 그걸 가리켜서 신데렐라 콤플렉스라고 부르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은 공주가 무슨 일을 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정말 마음 속 깊이 귀히 여김을 받으려면, 공주 대접받으려면, 사랑 받는 아내 되려면 방법이 나옵니다. 순종하고, 정결하고, 안정된 마음, 온유한 마음을 가지라고, 그리고 부지런히 섬기고 공경하고 대접 할 때에 정말로 공경받는 여인이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이구, 뭐 비민주주의네요. 또 젊은 사람들은 그럴 겁니다만은 비민주적 좋아하네... 여러분! 민주주의가 뭔지 아십니까? 민주주의란? 너와 내가 일대일로 타협하는 것이지요. 나도 네 영역 손 안 될테니 너도 내 영역 손되지마라, 그 전제하에서 민주주주의는 성립을 합니다. 그러나 부부 관계란 결코 민주적인게 아닙니다. 나를 다 주는 것이요, 그리고 동시에 그를 전부 다 얻는 것이올시다. 민주주의하고는 개념이 다른거요 완전히... 나를 다 주는 것 같으나 어느샌가 그분의 모든 것이 내 것 되는 행복이 부부간의 행복의 본질이올시다.  무슨 놈의 민주주의, 역사적으로 크리스쳔 여성들은 이렇게 살아 왔습니다. 실패 했느냐? 아니요. 로마를 정복했습니다. 로마시대 당시에 크리스쳔 여성들은 이렇게 살았고, 객관적으로  볼 때는 가장 억울하고 손해보는 것 같았습니다만은 이렇게 살아감을 통하여 많은 로마의 귀족들이 생각을 합니다. 크리스쳔 여성밖에는 궁극적으로 믿을 여자가 없다. 그래서 그러한 여자를 선호합니다. 아내로 삼습니다. 그들은 가정에서 순종하고 자녀를 낳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잘 기릅니다. 그들이 커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권세를 잡습니다. 로마의 귀족이 되고 그들에 의하여 로마는 정복되고 로마는 세계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합니다. 이 3대 미덕은 결코 무능한 것이 아니올시다.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파워요, 미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순종과, 정결과, 그리고 안정된 마음은 여성의 특징이며, 가장 큰 매력이며 동시에 남자의 마음을 가장 확실하게 잡는 방법이고, 더 나가서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하나님이 여자에게 주신 여성성의 핵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적 여성상도 뒤로 하고, 현대적 여성상도 지양해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인은 성경적 여성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갈 길이요, 사랑 받는 아내의 갈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여성들이 이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남자와 여자로 만드심이 결코 무의미함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잘못된 남성상도 깨뜨려 주시고, 잘못된 여성상도 깨뜨려 주셔서 하나님이 만드신 가장 남성다운 남자, 가장 여성다운 여자가 되게 하시고 우리 수서의 모든 여인들은 아름다운 여인이 되고, 사랑 받는 아내가 되고 존경받는 어머니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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