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저들을 데려다 채우는 곳(눅14:15-24)
  • 조회 수: 48, 2013.08.27 12:42:42
  • 교회는 어떤 곳인가? 오늘 여섯 번째 설교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어떤 곳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잔치 집과 같다고 했습니다.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교회는 잔치를 배설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잔치 집과 같은 곳입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즐길 것 등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는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받아 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 곳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곳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는 곳입니다. 교회는 갈한 자에게 생수를, 슬픈 자에게 기쁨을, 절망한 자에게 소망과 용기를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곳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에는 예수님의 구속의 살과 피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말씀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성령의 위로와 도우시는 힘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교회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잔치 집과 같은 곳입니다. 집 주인이 잔치를 준비한 다음 많은 사람들을 잔치에 초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다음 모든 인류를 교회에 초청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잔치에 초청한 세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첫째 종류의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이었는데 모두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다 일치하여 사양하여 가로되." 첫째 종류의 사람들은 재산도 있고 직업도 있고 가정도 있는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같이 교회에 오기를 거절했습니다. 세속적인 일에 지나친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공모나 한 듯이 한 목소리를 내며 주인의 초청을 사양하며 거절했습니다. "다 일치하여 사양하여 가로되." 사람들은 누구나 교회에 오도록 초청을 받고 있지만 부유한 사람들과 세속적인 사람들은 교회에 오기를 싫어합니다. 사양의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밭을 샀으므로 가 보아야 겠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소를 샀으므로 가 보아야 겠다는 것이었고, 셋째는 장가 들었으므로 가 보아야 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현대적인 이유를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골프치러 가야 하므로 교회에 올 수 없다는 것일 것입니다. 즉 재산과 사업과 가정과 취미 때문에 교회에 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분석하신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부자들을 초청했지만 대부분의 부자들은 예수님의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려고 왔다가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했습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

     

    2. 둘째 종류의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이었는데 대부분 초청을 받아 드렸습니다. 

     "빨리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 주인의 분부를 받은 사도들과 전도자들이 세계 곳곳으로 다니면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잔치에 초청했습니다. 이들 세상적으로 불행한 사람들은 대부분 주인의 초청을 받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잔치에 참여했습니다. 이들이 주인의 잔치에 참여한 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나와서 자리를 채웠습니다.
     여기 가병소저들은 문자적으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과 저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지난 2천년 동안 문자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신체적으로 병든 사람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교회가 손양원 목사님이 목회했던 전남 여천군의 애양원 나환자 교회였습니다. 여기 가병소저들은 또한 영적으로 마음이 가난해 진 사람들, 영적으로 자기는 병신이요 소경이요 절름발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난 2천년 동안 영적으로 가난해진 사람들과 자기는 영적으로 병신이요 소경이요 절름발이라고 고백하는 병든 사람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초청에 응답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과 세리와 창기 같은 버림 받은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나는 의인이나 건강한 자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과 병든 자들을 부르러 왔노라."
     여러분들 중에 물질적으로 가난한 분들이 계십니까? 교회는 바로 여러분들과 같은 가난한 자들을 초청하는 곳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신체적으로 병신인 분들이 계십니까? 교회는 바로 여러분들과 같은 병신들을 초청하는 곳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신체적으로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분들과 신체적으로 다리를 저는 분들이 계십니까? 교회는 바로 여러분들과 같은 소경과 저는 자들을 초청하는 곳입니다. 또한 여러분들 중에 영적으로 마음이 깨어져서 가난해진 분들이 계십니까? 교회는 바로 여러분들과 같이 마음이 깨어져서 가난해진 자들을 초청하는 곳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영적으로 자기가 병신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교회는 바로 여러분들과 같이 자기가 병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초청하는 곳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영적으로 자기가 소경이라고 생각하는 분들과 다리를 저는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교회는 바로 여러분들과 같이 자신이 소경이요 저는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초청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거지들이 모이는 곳이고 병신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성 프랜시스는 스스로 거지가 되었고 성 다미안은 스스로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는 가난을 애처로 삼고 고난을 스승으로 삼으며 병자들을 친구로 삼는다고 고백했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1948년 여순 반란 사건이 일어나기 몇 달 전 부산의 큰 교회인 초량교회에 담임 목사로 초청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 주일 동안 금식 기도를 한 후 손양원 목사님은 애양원의 가난하고 병든 나환자들과 함께 남아 있기로 작정하고 순교 당할 때까지 애양원 교회를 섬겼습니다. 거지들과 병신들이 있는 교회가 참으로 좋은 교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문제는 교회 안에 거지가 없고 병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부자이고 모두 건강한 자들이고 모두 의인들이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거짓 말을 한 사람이 하나도 없고 죄를 범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소경이 하나도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한탄하며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41). 교회는 거지들이 모이는 곳이고 병신들이 모이는 곳이고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문자적인 거지와 병신들 그리고 영적인 거지와 병신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아마 하나님은 지금 교회 안에서 죄인들을 보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은 지금 교회 안에서 병신들을 보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여러분들과 제가 거지가 되어야 하고 병신들이 되어야 하고 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지들과 병신들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거지들이 되고 병신들이 되고 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셋째 종류의 사람들은 길과 산울 가에 있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주인이 이렇게 분부했습니다.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여기 셋째 종류의 사람들은 재산과 직업과 가정이 있는 첫째 종류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재산도 직업도 가정도 없는 가난하고 병든 둘째 종류의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주인의 초청에 응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길가에도 있고 깊은 산 골짜기에도 있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셋째 종류의 사람들에 대한 주인의 분부의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강제로 붙잡아 오라는 것입니다. 강권하여 데려다가 집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첫째 초청은 초청장을 보낸 정중한 초청이었고 둘째 초청은 사람들을 보내어 데려온 친절한 초청인데 비해 셋째 초청은 강제로 끌고 오라고 한 강권적 초청이었습니다. 김선도 목사의 어머니는 네 아들을 강제로 매를 때리면서까지 붙잡아서 주님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특히 셋째 아들 김국도는 때려서 강제로 데려왔습니다. 결국 네 아들은 모두 목사가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이 말한바 외부적인 강요가 때로는 내부적인 자발성을 불러 일으킵니다.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원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이것이 주인의 마지막 세 번째 분부입니다. 물론 이번 셋째 초청에도 첫째 종류의 사람들은 대부분 초청을 거절할 것입니다. 셋째 초청을 받아 다릴 사람들은 대부분 둘째 종류의 사람들, 즉 가병소저들일 것입니다. 이 세 번째 분부가 지금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분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7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아름다운 교회당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채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번 9월부터 석 달 동안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하나님의 집을 채우는 총력전도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 일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에 함께 하시고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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