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의 마음으로(눅 14:15-24)
  • 조회 수: 116, 2013.10.19 15:30:02
  • 오늘 말씀은 잔칫집 예화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도에 대한 귀한 교훈을 줍니다. 잔치라는 것은 원래 초청받은 사람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잔치의 성공여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잔치를 즐겼느냐... 하는 것입니다. 흔히 잔치 한다고 집안의 기둥뿌리까지 뽑는다는 말이 생겼습니다. 초청하는 사람들을 위해 혼신을 다해 잔치를 준비하다 보니까 집안 경제가 흔들릴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초청받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성스레 준비한 잔치의 자리에 초청한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서운한 일이고, 특별히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아 불쾌하고 기분까지 나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초청을 받으면 어쨌든 가주어야 합니다. 요즘은 선물을 사들고 가거나 사례를 하기도 해서 부담이 되기도 하는데... 사실 우리가 한 두 번 정도는 잔치를 해 본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부모님 회갑잔치, 아기의 돌잔치, 결혼잔치... 이런 잔치 경험이 다 있는데 잔치를 할 때는 돈을 쓰기로 작정을 하니까 손님들이 오면 선물, 돈 봉투 그거 신경 쓰지 않습니다. 선물을 들고 오든, 그냥 오든 잔치의 자리에 와 주니까 그게 고맙고 반가운 것입니다. 그런데 잔치의 자리에 와야 할 사람이 오지 않으면 괜히 신경이 쓰입니다. 내가 뭘 서운하게 한 게 있나, 그 사람에게 내가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구나... 내색은 하지 않지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잔칫집에 초대된 사람들이 가지 않았다... 이런 말도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보편적으로 없이 살던 때 아닙니까? 예수님 당시에도 먹을 게 별로 없었던 시절입니다. 먹을 게 별로 없던 시절에는 잔치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게 아주 기쁜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잔칫집에 가면 먹을 게 많이 있기 때문에 잔치에 초대 받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고, 초청을 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잔칫집 대문간이나 마당에 서성거리면 분명히 먹을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그 마을의 유력자가 잔치를 한다고 하면 분명히 큰 잔치이고, 그 자리에 참석한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일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자리였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잔치한다고 해도 뭐 그렇게 큰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내가 바쁠 때 잔치를 한다고 하면 ‘그 사람 정말 민패를 끼치네.’ 그럽니다. 특별히 황금 같은 공휴일에 결혼식을 한다고 초청장을 돌리면 분명히 속으로 한 소리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공휴일에 가족 간에 무슨 계획 같은 것이 다 있는데 그 때 결혼한다고 오라고 하면 굉장히 불만이 많을 수 있지요. 이런 경우는 오늘 본문 말씀 18-20절에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이렇게 표현까지는 안 해도 내심 불만이 많은 것입니다. 거기다가 요즘은 얼마나 먹을 게 많습니까? 그러니까 잔치에 오라 그러면 ‘나 살쪄’ 이러면서 안 갈 수도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유력자가 배설한 잔치를 거절한 사람들을 대충 짐작해보면 못 먹는 가난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잔칫집에 가야 배불리 먹는 그런 수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소 다섯 겨리를 사서 시험해야 한다고 했으니 한 겨리는 소 두 마리거든요, 그러니 10마리 소를 산다고 하는 거는 큰 부자는 아니어도 여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건 밭을 산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또 잔치에 오기를 거절한 사람들을 보면 잔칫집 주인과 그렇게 좋은 관계를 가진 게 아니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정말 잔칫집 주인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밭을 샀던, 소를 샀던 장가를 갔든 그런 거 뒤로 다 미루고 잔칫집으로 쫓아갔겠죠. 장가를 갔다고 해서 술 좋아하는 사람이 술 마시러 오라 하면 마다하겠습니까? 잔칫집에 가기 싫으니까 이런저런 핑개를 대는 것입니다. 잔칫집 주인으로 볼 때에는 아주 기분 나쁜 일입니다. 소 산거, 밭 산거.... 그런 거 잔치 다음날 해도 충분합니다. 핑갯거리가 안 됩니다. 그래서 주인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놈들 봐라, 오기 싫으니까 별 이유를 다 갖다 붙이구나.’


    우리가 요즘 신앙생활을 잘 하지 않습니다. 기도, 말씀, 예배참석.... 모든 게 옛날보다 좀 못해요. 옛날에는 주일 예배가 잔치였어요. 주일이 그렇게 기다려졌어요. 구역예배도 그렇게 기다렸어요. 반드시 신앙적인 면에서 그런 것은 아니고 주일이 되면 인상 좋은 친절한 아줌마, 아저씨들을 교회에서 만나잖아요. 그리고 교회에서 신나게 놀 수도 있고.... 하여튼 교회에 뭐 특별한 것은 없지만 교회 가는 게 재미있었어요. 이게 다 신앙에서 만들어내는 분위기였어요. 그리고 요즘 어린이대회.... 아이들이 너무 안 하려고 해서 문제지만 옛날에는 안 시켜주면 참 섭섭하고 뭐든지 시켜주면 마치 뭐라도 된 듯이 으스댔어요. 어릴 때를 뒤 돌아 보면 교회, 예배생활이라는 게 잔치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바쁘다는 그 핑개 때문에 기초적인 예배생활은 물론이고, 기도, 말씀, 전도, 봉사... 이런 걸 못해요. 마치 소 산거, 밭 산거.... 그거 보러 간다고 잔치를 거절하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교회를 떠나는지 몰라요.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한 미국, 호주, 영국... 이런 선진국들에서는 1950년대 이후 교회가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왜냐... 물질에 풍요롭고 삶이 즐거우니까 천국잔치 그런 거 관심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런 자리를 한국이 채웠어요. 이제 한국도 선진국 수준이 되니까 교회에서 하는 천국잔치 그런 거 별 관심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자꾸 밭 산거, 소 산거... 그거 보러 간다고.... 하나님 앞에서 말도 안 되는 그런 이유를 들먹이면서 예배의 자리를 빠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복음이야 이쪽이 막히면 저쪽으로 뚫고, 동쪽이 막히면 서쪽을 뚫고 나가겠지만 그 잔치의 자리, 그 축복의 자리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자리가 되니까 이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잔치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잔치가 취소되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든 잔치의 자리를 채우시고 잔치를 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주인이 종들에게 명령을 합니다. 22절에 보니까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그래도 자리가 남으니까 산과 들로 나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다 데려와서 자리를 채우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종은 어쨌든 주인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종으로 자처하고 부름 받은 성도들은 종의 역할을 하면서 거리거리, 산과 들에까지 나가서 복음을 전하여 빈자리를 채울 것입니다. 이제 이 땅에서 더 이상 복음이 먹히지 않으면 선교사를 통해 다른 나라, 다른 미 종족들로 그 자리를 채울 것입니다. 이제는 중국과 복음을 전하지 않은 소수 미 종족에게로 선교사를 통한 복음의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절한 잔치의 자리를 그들이 차지할 거란 말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천국의 잔치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의 잔치도 멈추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만 그 축복의 자리에서 떨어질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지금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고..........


    또 다른 쪽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것은 마치 천국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하는 종의 모습과 같습니다. 부잣집 종이라고 해서 부잣집 사람들만 상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이 가라고 하면 부자도 만나고, 가난한 사람도 만나고, 장애우도 만나야 합니다. 이게 종의 모습입니다. 주인을 귀찮게 여기는 것은 종의 마음이 아니죠. 주인은 관계가 그리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다 화해의 손을 내밀며 종들을 통해서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이들이 거절하자 주인은 종들에게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갖가지 장애우들에게 가서 그들을 불러 자리를 채우게 했습니다. 그래도 자리가 다 차지 않으니까 길과 산울가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대로 강권하여 데려다가 잔치 집을 채우라고 종들에게 명했습니다. 사람들을 강제로 권하여서라도 데려오라는 이 말씀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마음이 있으면 이 말씀을 항상 명심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서 하나님의 집을 채워야 할 것입니다.


    전도의 문이 지금처럼 언제까지나 열려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1945년 8월 6일에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져서 불과 3초 동안 30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원자탄이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며칠 전부터 경고문을 실은 전단지가 하늘에서 뿌려졌습니다. 벽면에 붙일 수 있을 정도의 크기부터 작은 전단지까지 수도 없이 많이 뿌려졌습니다. “광도시민 여러분! 1945년 8월 6일 오전까지 50리 밖으로 잠시 피하시오. 그날 오후에 원자탄이 투하되면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경고문을 읽고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습니다. 어떤 사람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일부러 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설마 죽기야 하겠느냐는 방심이 화를 불러들였습니다. 정작 그날이 되자 서쪽하늘에서 비행기 한대가 날아오더니 히로시마 상공을 몇 번인가 돌고는 높이 올라가면서 원자탄을 투하했습니다. 섬광이 번쩍하며 버섯구름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리고 3초 후에 30만 명이라는 많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경고를 무시하고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입은 것입니다.


    지금도 이 지구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죽어 가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죽기 하루 전에 복음을 들었다면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 대장은 날마다 전도하기로 결심하고 전도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그는 비가 그치면 전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미 날이 어둑 어둑해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까 갈등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산을 바쳐 들고 정거장으로 가보았습니다. 역시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산을 끄고 비를 맞으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라고 누가 듣든지 말든지 큰소리로 외쳐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왠 사람이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가 하고 구경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여 윌리엄 부스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하여 그 순간에 십여 명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종의 심정이 되니까 어쨌든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그 마음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에도 우리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몇 몇 집사님들과 커피와 복숭아 홍차 한 통씩을 만들어서 송도 윗길 교차로에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두 시간 정도 전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적당히 흐리고 시원한 날씨를 주시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얼마나 친절한 사람들을 붙여주시는지 ‘수고한다, 고맙다’는 소리를 연신 들었습니다. 욕을 들어도 전도하리라.... 이런 각오로 전도를 나갔는데 ‘수고한다, 고맙다’ 이런 소리를 들으니까 조금도 피곤하지 않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런 마음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난 뒤에 오는 그런 평안함이었습니다.


    정말 신앙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내 집을 채우라’는 주님의 명령을 듣고도 전도하지 않는다면 마음에 평안함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총동원전도주일만 보면 안 되고 이 총동원전도주일을 준비하는 그 시간들 자체가 우리에게 복을 부르는 그런 기회로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이런 저런 핑개로 전도를 생각처럼 그렇게 많이 못했으나 그래도 총동원 전도주일을 정해 두었으니까 이 기간 만큼만이라도 전도해야 하겠다.... 그래서 이번 전도주일을 앞두고 몇 주간은 우리 일생에 미루어 둔 숙제를 한다는 그런 느낌을 가지고 전도합시다. 그러면 순종하고 난 후에 밀려오는 마음의 평안함, 기쁨, 만족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하고 난 뒤에 오는 순종의 평안함, 감사, 기쁨.... 이런 종의 마음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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