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를 뒤 돌아보며(렘 17 : 5-8)
  • 2013.04.11 20:13:36
  •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이 쓴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는 우리로 하여금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소년이 한 명있었습니다.
    어린시절 소년은 매일같이 나무에게 와서 놀았습니다.
    소년은 나무가지에 매달려 그네도 뛰고 , 숨박꼭질도 했으며 나무 그늘에서 단잠을 자기도 하였습니다,.
    소년은 나무를 무척 사랑했고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지나갔고 소년도 점점 나이가 들었습니다.
    나무는 홀로 있을때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이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나무가 말했습니다. 
    "얘야 , 이리와 ! 
    가지에 매달려 그네도 뛰고 그늘에서 놀면서 즐겁게 지내자"
    "나는 나무에 올라가 놀기에는 너무 컸어 나는 돈이 필요해"
    소년은 돈을 버는데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 내 사과를 따다가 도시에 가서 팔지 그래"
    소년은 사과를 따서 갔고 ,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소년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무는 슬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이 돌아왔습니다. 
    나무는 소년에게 함께 놀아고 말했으나 가정을 필요로 했던 소년은 따뜻한 집을 마련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 내 가지들을 베어다가 집을 지으려무나"
    소년은 나무의 가지를 베어다가 집을 지으로 갔습니다.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떠나간 소년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소년이 마침내 돌아오자, 나무는 너무 기뻐서
     "얘야 , 와서 놀자 "고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들었고 , 자신의 세계에 권태를 느꼈습니다.
    그는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했고 그래서 배를 원했습니다.
    "내 줄기를 잘라다가 배를 만들렴"
    소년은 나무 줄기를 잘라 배를 만들어 타고는 멀리 떠나가 버렸습니다.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여름이 가고 겨울도 갔으며 바람부는 날과 외로운 밤이 수없이 지나갔습니다.
    마침내 소년이 노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는 너무 늙어 그네를 뛸 수도 없었고 부(副)를 추구할수도 , 집을 지을수도 없었습니다.
    나무는 그에게 무엇인가 주고 싶었으나 줄것이 없었습니다.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없어 나는 피곤해 조용히 앉아 쉴만한 곳만 있으면 돼! 
    소년이 말했습니다.
    "앉아 쉬기에는 늙은 내 그루터기가 그만이야 !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 늙은 그루터기 뿐이야 이리와서 앉아 쉬도록 해"
    소년은 시키는 대로 했고,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우화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소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헌신과 희생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해 그렇게 살도록 이 우화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 한편 우리는 이 우화 속에서 우리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우화 속의 소년은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소년 시절부터 청년과 중년을 거쳐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삶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며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수 있었던 것은 우리 자신의 능력과 지혜만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 우리를 위해 자신의 일부를 떼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들이 한 두분 뿐이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염려하고 우리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성취,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소년이 어렸을 때 나무는 소년의 놀이 동무가 되어 주었습니다.
    소년이 청년이 되었을 때 나무는 소년에게 돈이 될수 있는 사과를 주었습니다.
    소년이 성장하여 자기 집을 짓고 싶었했을 때 나무는 그에게 집을 지을 수 있는 가지를 제공했습니다.
    소년이 중년이 되어 자기 삶에 대해 권태와 답답함을 느끼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했을 때 나무는 자기 몸통을 주며 배를 만들게 했습니다.
    소년이 노인이 되어 무엇을 할 힘이 없고 , 자기 한몸 주체하기조차 힘들어 했을 때 나무는 마지막 남은 그루터기를 그의 쉼터로 제공했습니다.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노인이 되기까지 나무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나무의 존재에 대해 깊이 깨닫지 못했고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소년이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 소년이 일생동안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 뿐입니다.
    허무하지 않습니까?
    왜 이 소년이 일생동안 열심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없이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어물 어물 살아 왔을지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힘겹게 살아왔을지 모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일을 그 때 그 때 처리하며 열심히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는 일없이 바빴다"고 말할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왔든 자신의 욕구를 위해 살아왔다면 허탈한 마음을 지우지 못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얻기 전까지는 그것만 얻는다면 만족과 행복에 둘러싸일 것 같이 생각되지만 , 그것을 얻는 순간 그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을 위해 그토록 고생하며 얻고자 했던가 ?
    하고  생각하면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오늘 말씀에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 사막의 떨기나무 같다" 고 했습니다.
    그는 광야 건조한곳,  건건한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고 했습니다.
     
    반면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복을 받을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 같아서 더위가 오더라도 두렵지 않고 , 가뭄이 닥쳐도 걱정이 없습니다.
    그뿌리가 물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잎은 항상 푸르르며 열매는 맺히지 못하는 법이 없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산 소년과는 달리 나무는 소년을 위해 살았기 때문에 더 없이 행복했습니다.
    나무는 소년에게 자기의 일부를 주었을 때 기쁨이 있었습니다.
    소년이 나무를 떠나 한참동안 보이지 않았을 때 나무는 소년을 기다렸고 그리워했습니다.
    나무는 소년이 자기를 필요로 했을때는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그것은 나무의 일방적인 희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소년에게 자기를 줄수 있었을때만 기쁨을 느낄수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해 주길 바랍니다.나무는 소년을 의지했습니다.
    오히려 소년이 나무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나무가 소년을 더 필요로 했습니다.
    나무의 희생은 어떤 면에서 자기 만족을 위한 희생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희생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
    내 몸을 전부 내어줄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봉사가 아니라면, 그것은 사람을 의지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여러분은 "사람을 의지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했습니까?"
    사람을 의지한다는 것은 사람의 힘을 빌어 자신의 욕구를 성취하고자하며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며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 한해 뿐만 아니라 여러해 동안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여러모로 힘써왔습니다.
    여러분은 저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중보기도해 달라고 부탁해왔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앞으로도 갈수 없고, 뒤로도 물러날 수 없는 당혹스런 처지에서 스스로 기도하기에 너무 힘들어 기도를 대신 해 주도록 부탁했을것입니다.
    목사의 기도는 교회 공동체를 대표하는 기도요,  목사가 기도함으로서 교회 공동체가 나를위해 기도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일 것입니다.
     
    중보기도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것일까요?
    그로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면 ,당장의 고난이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얼마못가 또 다른 난관을 만나 주저 앉게 될것입니다.
    고난은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고난을 이겨나갈수 있는 힘은 "믿음"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많은 환자들을 보면 "의사"를 욕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의사가 성의껏 환자를 치유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환자는 자기의 잘못된 생활습관은 고치려하지 않고 의사에게만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의사는 병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병을 고칠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병이 난것도 "나"요 병을 치유할수 있는 것도 "나"입니다.
    왜 병이 났는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몸과 마음에 무리가 오게 되고 결국 병이 된것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의사도 큰 도움은 되지 못합니다.
    한곳을 막으면 다른 곳이 터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고난을 당할 때 스스로 그 고난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목사는 여러분이 스스로 고난을 이겨 나갈수 있도록 도와줄 뿐입니다.
    환자가 의사만 의지해서는 병을 치유할수 없듯이 교인들도 목사만 의지해서는 고난을 이겨나갈 수 없습니다.
    의사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가 있어야 됩니다.
    목사도 필요합니다.
    단지 의사와 목사는 도와주는 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고난을 스스로 이겨나갈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서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자기 전부를 남에게 주고도 서운해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율법주의적 신앙생활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
    2000에는 좀 더 성숙한 신앙생활을 할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숙한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해할수 없는 일을 당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뜻을 알게 하실 때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자기 판단과 추측으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
    고 했는데 이처럼 거짓된 자기 마음이 근거없이 해석한 것을 신뢰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약하여 자주 상처를 받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나쁜 뜻으로 해석하고 불쾌해 하며 분노하는 것을 여러번 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무엇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들어 주실 것을 믿는것입니다.
    여러분은 넘어지더라도 일어설것이며 , 실망스런 상황에서도 끝내 낙심하지 않을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이것이 거짓되고 상심하기 쉬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치유력입니다.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오더라도 우리 자신의 삶의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은 날로 더 해질줄 믿습니다.
     
     
     
     
     

댓글 0 ...

번호 제목 등록일 
2 2013.04.09
2013.04.11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