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엣 것은 잊고 앞을 향해(빌립보서 3:07-16)
  • 2013.11.05 06:44:08
  •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1989년 그리고 1980년대를 보내는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면서 감개무량함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봉독하신 말씀 중에 빌립보서 3편 13-14절을 다시 읽습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우리가 성공적이고 승리적인 생활을 하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전진하는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은 지난날의 실수, 지난날의 잘못, 지난날의 죄악, 지난날의 실패를 잊지 못하고 거기에 붙들려 있는데 있습니다.

    어떤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날 폭풍우가 심해서 과수원 한복판에 수천 알이 달려 있던 사과나무 하나가 그만 뿌리째 뽑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과수원 주인의 친구가 왔다가 그것을 보고 주인을 향해서 ‘아니, 이렇게 많은 사과가 달려 있는 좋은 나무가 그만 뿌리째 뽑혀 버렸으니‧‧‧‧‧‧.’이 말을 들은 주인이 ‘예, 어젯밤 그만 폭풍에 이렇게 나무가 쓰러졌습니다.’ 친구말이 ‘그러면 이 나무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주인은 ‘예, 이 나무에 보시다시피 훌륭하게 익은 사과들이 많이 있는데 지금 다 딸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이 뿌리째 뽑힌 나무는 불살라 버리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생활의 철학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번 우리 삶이 뿌리째 뽑혀서 쓰러진 것 같은 상황에 처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실패 가운데서도 남은 것이 있고 거둔 열매가 있고, 태울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진리를 실패한 사람은 알게 됩니다.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저는 수없이 많은 분을 만나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하나님께 보내고 땅 위에서 슬퍼하는 사람, 사업의 실패로 말미암아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 어려운 병으로 신음하는 사람 이렇게 삶의 뿌리가 뽑혀 있는 것과 같은 우리의 삶의 체험 속에서 우리가 거두어 들일 수 있는 열매가 담겨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과수원 주인의 말은 성공적인 삶의 중요한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사과를 따고 난 뒤에 쓰러져 버린 나무는 불태워 버리는 게 좋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과거에 체험해서 유익이 되는 것은 거두어 들인 다음 이제는 썩어질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마음을 두지 말라는 말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에 우리는 이미 여러 가지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우리가 얻은 것은 다 따고 나무는 태워 버리셔야 합니다. 인생 행로는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이미 우리의 지난날에 생긴 것이지 지금 생겨나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어제 지은 죄에 매여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시편 103편 12절에 분명히 말했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한 죄를 용서하신 다음에는 기억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뿌리 뽑혀 말라 버리고만 나무를 부둥켜 안고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지난날의 잘못이 아무리 큰 죄라고 할지라도 거기서 우리가 거둘 열매, 값진 교훈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죄뿐만 아니라 과거의 후회스런 일 역시 잊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날을 되돌아 볼 때 내가 만일 이렇게 했다면 좋았을걸. 내가 그 일은 저렇게 했었으면 됐을 터인데 하는 말을 저절로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지난날의 실수는 몰라서 그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날의 실수를 통해서 열매를 거둘 수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배우고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기회는 또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뿌리가 뽑혀 쓰러져 소망이 없게 된 나무는 과감하게 태워버려야 합니다. 지나간 과거는 우리의 삶의 이정표이지 앞으로의 갈 길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목표는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운전을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마는 차를 운전하게 되면 자연히 백밀러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백밀러를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또 가끔 보아서 뒤에서 오는 차가 접근해서 충돌하지 않을까 조심해야만 하는 겁니다.
    그러나 백밀러만 보고 운전하게 되면 길 아래로 떨어지든지 다른 차와의 충돌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종종 잠깐, 잠깐 뒷거울을 보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앞을 잘 보고 나가야 운전을 바로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제 한 일이 죄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오늘 갈 길이 있습니다. 또 가야만 할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이 있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수시로 과거의 나무를 태워 버리려야 합니다. 지나간 과거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많습니다. 아랍 속담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대에게 잘못한 일의 생각이 떠오르거든 모래 위에 적어 두시오. 그러나 그대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대리석 위에 이를 조각하시오.”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손해를 주는 분노, 적개심, 복수심 같은 것을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나에게 손해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두 없애 버리고 마음 속에 감사와 기쁨 같은 다시 말하면 우리의 심령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들로 마음 속을 가득히 채우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다시는 예수님과 이야기 하지 못하리라는 죄책감에 빠져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너무 가슴 아픕니다. 차라리 예수님 앞에 나는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는 말, 장담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몇번씩이나 장담했던, 큰 소리쳤던 베드로가 어린 여자 앞에서 세번씩이나 부인했을 때 그의 좌절감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우리도 사실 이와 비슷한 체험을 많이 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와 함께 조반을 드시고 나서 베드로를 따로 세워 놓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네가 십자가 지기 전에 나를 모른다 하지 않겠다고, 부인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장담했는데, 어떻게 됐느냐?’고 묻는다면 베드로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걸로 베드로와 예수님과의 대화는 끊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약점을 꼬집는 분이 아니십니다.
    실수는 했지만 그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감격한 가운데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이 두 분 사이에는 더 이상 과거를 따질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있었습니다. 이제 새로 일어나 가야 할 시기가 왔다는 사실을 두 분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를 향하여 말씀했습니다. “네 양을 먹이라.” 이것은 내일을 바라보며 꾸준히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뒤엣 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앞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열매를 거두고 나무를 불태워 버려야 합니다.

    사실 오늘도 내일이 되면 어제로 변하고 맙니다. 우리가 어제의 일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내일 일을 근심하지 아니하며 오직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갈 때 우리는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이 땅 위에 사는 동안 절대로 내일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내일은 언제나 내일이지 내일을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오늘에 삽니다.
    시편 118편 2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우리는 오늘을 기뻐하고 오늘을 의미 있게, 오늘을 보람되게 하셔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동네 이발소에 ‘내일은 이발 무료’라고 큰 종이에다가 세일 광고를 출입문에 내붙였습니다. 어느 청년이 이발을 하러 갔다가 그 광고를 보고 ‘아, 내일은 이발무료니까 이왕 하루 더 참았다가 내일 공짜로 이발해야지’하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 더 기다렸다가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 기분 좋게 잘했습니다. 그리고 옷을 입고 이발사에게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드리고 난 후 뭐 공짜니까 그냥 나오려고 하는데 이발사가 청년을 불렀습니다. ‘청년 이발료를 내셔야죠.’ 그래서 이 청년이 ‘아니,저는 오늘은 이발료가 무료라는 광고를 보고 와서 이발을 했는데요.’그러자 이 이발사가 ‘그래요. 나가 보시지요. 언제부터 이발료가 무료인지 보십시다.’ 언제부터 이발 무료요? 내일, 언제나 내일은 내일이지 오늘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분명히 소유하고 있는 날은 오직 오늘입니다.

    우리는 이 날 즐거움과 기쁨을 얻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분명히 소유하고 있는 날은 오직 오늘입니다.
    우리는 이 날 즐거움과 기쁨을 얻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어제의 회한에 묻혀 내일을 근심하며 보낸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물론 때로는 과거를 되새기며 미래를 꿈꿀 때가 있습니다. 늘 그러면서 살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 여기서 삶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시간에 성실한 자세로 임하게 되면 엄청난 능력을 얻을 수가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교회에서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사진사들이 많이 오셔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봅니다. 그 사진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번 찍은 사진은 몇 세대를 거쳐 내려가면서 보관되어 좋은 자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 찍고, 옆에서 비디오 카메라로 강한 빛을 비추며 사진을 찍는데, 어떨 때는 주례할 때 혼선을 가져올 정도로 사진사들이 왔다갔다 하고, 이거 대단히 미안합니다만은 사진 찍는 분들은 사진 찍는데 정신이 없어서 경우를 따지지 않습니까? 그저 주례 앞이고, 신부 앞이고 왔다갔다 하면서 생각 없이 찍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새로 부부가 되는 남녀가 하나님의 제상 앞에 서서 식을 올리는 처음 그 순간, 그 시간은 사진 찍는 것 이상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사진은 기록에 남기는 것뿐이지 그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보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내일을 생각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체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충실해야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제 때문에 근심하고 내일 때문에 염려하느라고 오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을 산다는 삶의 태도가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편협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순간에 중요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하루 한순간이 대단치 않은 것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이 순간을 두배로 늘려나가다 보면 한달, 일년 후에는 엄청난 숫자가 되는 것입니다.
    돌을 다루는 석수가 대리석을 쪼개는 모습을 여러분은 보신 적 있으십니까? 큰 바위 같은 대리석을 쪼개기 위해서 한가운데 정을 놓고 쇠방망이로 치기 시작합니다. 열번, 스무번, 쉰번, 백번, 백오십번, 이백번 계속 쳐도 돌은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백 한번만에 칠 때 쩍하고 갈라집니다. 이 이백 한번 째의 망치질. 그것 자체가 돌을 깬 것은 아닙니다. 이 이백 번의 망치질, 이미 그 전에 이백 번의 망치질이 소위 누적 효과를 내서 그 단단한 돌이 이백 한번째 칠 때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하루 한순간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전혀 아무런 진전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같은 생활의 반복일는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우리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처럼 되어 버리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포기하지 아니하고 계속 꾸준하게 우리의 하는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에게 승리와 성공을 얻게 될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 한번의 노력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전의 모든 노력이 누적되어 그 효과를 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시며 함께 해 주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놀라움과 감격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며 하나님의 충만하신 능력이 힘이 되어 주고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원하시는 바가 있으시면 내일로, 다음 주일로 아니 내년으로 미루지 마시고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제일 위험한 상태는 지금의 모습, 현재에 있는 곳에서 만족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를 못하고 어떠한 꿈도 가지지 못합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나 버린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모닥불이나 피워 놓고 방을 세든 것으로 만족했다면 오늘날의 이 밝은 전기불을 발명하지 못했을 방을 세든 것으로 만족했다면 오늘날의 이 밝은 전기불을 발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말을 타고 다니는 것으로 교통수단을 만족하게 여겼다면 오늘날 어떤 자동차나 기차나 비행기나 기선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만들어 입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오늘처럼 아름답고 편한 옷을 만들어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현재에 대한 불만이 앞으로 나아가고 전진하는 요소가 됩니다. 반면에 지금의 상태에 지나치게 불만을 가지거나 자신의 모습을 불쌍히 여기는 것도 역시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욕하고 멸시해 보아야 이득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러한 상태에서 남을 비방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은 더욱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의 실정이 이 지경이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할 수 없다고 포기하기 쉽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책을 펴 보세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듣지 못하는 사람, 신체 불구자가 여러 가지 신체 결함을 가지고 위대한 일을 이룩한 사람들의 이름을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은 환경과 조건이 좋아서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여러 가지 악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악조건을 극복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 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백미터를 경주하는 선수들의 몸가짐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가하게 산책면서 여기저기 감상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내 몸이 비록 백미터 앞에 가 있지 못하지만 내 눈은 이미 백미터 앞에 가 있습니다. 그리고 몸은 꼬꾸라질 정도로 앞에 나가 있습니다. 아마 그냥 놓아두면 꼬꾸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력을 다해서 팔과 다리를 움직일 때 쏜살 같이 백미터를 나아가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백미터를 달리는 사람들 중에서 내 뒤에 몇 사람이나 떨어졌나 돌아보면서 달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앞만 향해 나가야 합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릴 뿐더러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자세를 취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바쳐 추구할 만한 가치 있는 것들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자신의 문제로 인한 근심 같은 것은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가오는 새해를 아니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행복한 사람은 뒤를 돌아다보며 부정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앞을 바라보며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남의 장점만을 보기 원합니다.
    사복음서를 다 읽어 보아도 예수님이 남을 비방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죄를 미워하셨습니다. 그러나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사셨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몰두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 기웃거리지 아니합니다. 상관하지 아니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될 때 시기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항상 남에게 줌으로 기뻐하고, 받음으로 즐거움을 얻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삶이 불행 가운데 살기에 너무나 짧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불행하게 하려는 문제까지도 하나님은 결국 소원으로 바꾸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언제나 감사와 감격과 행복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보내면서 옛 것은 온전히 잊어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옛 것은 흘려 보내고 새 것을 받아들이십시다.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억울하게 하고, 괴롭혔던 근심도 묵은 해로 보내고 형제간의 다툼도 저 멀리 멀리 흘려 보내십시다. 우리의 교만과 거짓도 다 뒤로 흘려 보내고 온 겨레가 한마음으로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십시다. 우리를 괴롭히던 질병, 실패와 절망도 다 흘려 보내고 우리 앞에 펼쳐지는 평화와 행복을 맞이 하십시다.
    뒤 것은 다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힘있게 좇아가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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