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의 우리 가정을 위하여(눅 23:27-30) [고난주간]
  • 2013.09.02 08:49:58
  •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백성들도 많이 따랐고 특별히 가슴을 치고 슬피 울며 통곡하는 여자들의 큰 무리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참 보기에 좋은 모습이지요. 이 비운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면 너무 비참하고 참혹할 뻔했던 예수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슬피 우는 아름다운 여성들, 슬피 통곡하는 그 애절한 신앙인들 그 모습을 예수님이 보시다가 그 뒤 모습을 예수님 돌아보시며 여성들을 위로하시는 말씀입니다. 말은 안 했지만 참 고마워...

    그렇게 칭찬한 위로의 말씀이 있었을 터인데 그런 말씀 생략했지만 중요한 충고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아 나를 위해 우는 것 고맙지만 나를 위해 울기보다도 장차 올 너희 가정의 비극을 생각하여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울 때가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지막에 주시는 그 고마운 사람들에게 장차 올 미래에 다가올 가정의 비극을 울어라고 충고한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미래에 다가올 현재 닥친 이 비참한 죽음의 현장을 목격하는 그들 마음속에 지금보다 더 어렵고 더 무시무시한 미래를 당신들의 가정의 비극을 예수님께서 미리 예고해 주신 것입니다. 미래에 어떤 것이 올 것인가 뒤에 죽 나오니 다는 말씀 못하는데 마가
    복음 13장에 잘 요약돼있는 말씀 한 절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했어요. 미래입니다.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고 자식은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하리라.' 이것이 예수님 보신 미래에 다가올 비극입니다. 물론 예수님 말씀하신 그 미래의 비극은 우리에겐 이미 과거가 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요. 그 예언의 성취가 되었어요. 그러나 이 성경을 본 우리는 이 안목으로 우리의 미래가 또 있거든 우리 미래가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신 그 미래가 가까운 장래에 있어서의 성취가 있고 우리가 바라본 또 먼 미래가 우리 앞에 있다면 우리가 지금 미래 가정을 위하여 울어야 할 때입니다. 울어야지요. 누구도 이 고통과 수치를 커버할 수 없으니까 산이 좀 무너져 가지고 이 비운을 좀 가리워 주었으면 그렇게 울부짖는 다는 말씀이 예수님의 예언 가운데 나타난 말씀입니다. 오늘 여기는 미래에 있을 이야기를 다 할 수 없으니까 가정의 달 5월을 마감하는 마지막 주일이니까 예수님의 가정관을 이야기하면서 이 본문을 세 가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 가정천국, 둘째 가족삼방, 셋째 가장중심입니다. 
     -가정, 가족, 가장-
     가정은 가족이 있고 가족 가운데는 구심점인 가장이 있거든, 가정과 가족과 가장은 설명을 해 보렵니다. 

    1. 가정 천국
     가정은 천국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오늘 구원이 너의 집에 이르겠다. 너와 너의 집에 이르겠다하고 그 집을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로 할 때 쓰신 말씀을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내 아버지의 집이 너희가 있을 만 한 곳이야 있을 곳이 많다고 그 집을 내가 건설하겠노라고 그리했죠. 그리고 나 있는 그곳에 너희들을 데려 간다고 아버지의 집은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천국의 집을 우리의 집과 똑 같은 용어를 쓰고 구원이 너의 집에 있으면 그 집은 천국이 된다. 바울도 너와 네 집이 구원받는다. 그 가정이 바로 천국입니다. 가정이 나라입니다. 이 가정이 만약 상실 될 때는 천국도 상실되는 것이죠. 기독교의 가정관은 여느 종교나 문화권에서 가정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한 시대를 살고 마감하고 분해되는 가정이 아니라 이 가정은 영구하도록 있는 천국과 똑같은 무게를 가지는 것이지요. 때문에 예수님의 가정관은 그래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그 가정의 구성은 어떻게 되는가 

    2. 가족 삼방이라 했어요. 
     아이들은 잘 모르니까 가족 삼각이라 할게요. 삼각은 알지. 가족 삼각이라 삼각 중에 하나가 빠지면 무너져요. 이 삼각은 절대적 균형이요. 누구냐 하면 남편, 아내, 자식입니다. 또 거꾸로 자식, 아버지, 어머니 구도입니다. 남자와 여자와 자식- 남편, 아내, 자식- 자식, 아버지, 어머니 이렇게 되있어요. 이 가족 구성 중에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면 가정이 무너집
    니다. 가정은 와해가 되버립니다. 본문 마가복음 13장에 보면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고 자식이 그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적하여 죽게 한다. 이것은 가족 전체가 붕괴되는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거기 어머니는 잘못 되었다는 말이 없어요. 어머니는 아버지와 같은 균형에 놓고 얘기합니다. 아버지와 자식 망가지면 어머니는 어떻게 될까요. 저절로 망가져요. 그래서 이 가족 삼방이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하나님의 실체와 같은 삼위일체 구도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도 우리 개체 속에도 그런 요소가 있지만 가정 구성도 이 세 가지 구도가 절대적으로 소중하게 보존되는 미래의 누구하나도 이 균형에서부터 
    이탈되지 않도록 가족 구성원을 우리가 잘 생각하면서 이것을 보존하고 지켜야 됩니다. 아이가 잘못 되어도 가정은 실패고 아내가 바람이 나도 가정은 망가지고 남편이 잘못 되어도 가정은 무너지는 똑같은 이치 우리는 이 가족 구성원 잘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가정관을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3. 가장 중심
     오늘 이야기 중 잘 들으시고 또 기독교적인 가정에 대한 정신이 이 시대에 우리가 시급하게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미래 먼 미래도 아닙니다. 다가올 앞날 우리의 가정엔 구심점을 잃고 중심을 잃어버리니까 가정이 붕괴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아비가 자식을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잘 못되면 남편 중심, 아버지 중심, 왜요. 성경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 이삭의 하나님 , 야곱의 하나님 다 족장 가장들입니다. 여자 없어요. 거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족장이며 가장입니다. 그 가장을 중심으로 역사가 있고 가정이 있고,, 그 가장이 강할 때 여자는 행복을 느끼고 살아온 것입니다. 가정에 가장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겁니다. 이스라엘 민족 속에 제사장이라는 장자가 있습니다. 그 제사장이 백성들의 모든 죄를 담당하는 제사직무를 소홀히 하면 나라는 끝납니다. 하나님 손을 놓아버려요. 한 번은 제사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여로보암이라는 임금이 나와 왕이니까 아, 제사장 안 왔구만. 내가 해야겠다. 제사장 가운 입고 임금이 와서 제단에 불을 지피다가 그 임금은 저주를 받아 문둥병자가 되고 나라는 그 길로 박살이 났습니다. 제사장이 그 제사 직무를 잘못할 때 왕이고 나라고 다 황폐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구심점인 가장이 가정의 제사장적인 위치에 서지 못한다면 그것은 벌써 가정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사회와 교회가 깨달아야 할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성 여러분들이 좀 생각해 둘 문제입니다. 남성들이 좀 자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자식들이 좀 정신을 차려야 할 문제입니다. 우선 남편 세우기를 해야 합니다. 아버지 세우기를 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권위, 명예, 입지가 확실할 때 그 아버지와 함께 있는 어머니가 행복해 집니다. 아버지가 빌빌하는데 어머니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여자의 행복을 책임질 주체가 남자이므로 남자가 건강해야합니다. 제사장적인 남자가 남자다울 때 가정이 되는 겁니다. 가정에 남자가 가장의 자리에 서고 그 제사장직이예요. 그러면 여자는 뭐예요. 왕입니다. 살림 살고, 관리하고, 지키고 하는 여자는 왕이요. 남자는 제사장, 여자는 왕입니다. 제사장 없는데 왕은 소용없어. 제사장 없는데 왕이 까불다가 문둥병자가 되었어요. 제사장이 있을 때 왕이 왕 노릇합니다. 그 자식은 어떡해 자식은 선지자 역할 하는 것이 가정입니다. 남자 병신 만들고 빌빌거리면 다 망합니다. 가장 세우기 남편이 남편 되게 사는 것, 우리 목사님은 사모와 싸웠나, 그런 게 아닙니다. 

     요즘 아이들이 참 좋은 말했는데 내 꿈 꿔. 미쳤나 이년아 너 꿈꾸게. 여자 꿈이나 꾸는 남자들 다 죽어야 되는 거라구. 꿈을 꾸려면 용꿈을 꾸든가 거대한 꿈을 꿔야지 내 꿈꿔. 그것은 똥꿈보다 못한 겁니다. 나는 TV인터뷰 때 여자들이 가끔 어떤 사람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날 사랑하고 아껴주는 남자라고 하는 걸 봅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좀뱅이가 되는 겁니다. 남자는 우주와 역사와 세계와 민족을 지도하고 지배하는 사명을 갖고 살아야지 기껏 여자 즐겁게 하기 위해 사는 것 안 됩니다. 남자가 사자, 호랑이, 코끼리, 하마가 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남자가 토끼가 되었습니다. 사자 같은 남자 봤어요. 토끼도 아니고 요즈음은 다람쥐야. 이 다람쥐 같은 남자가 있어서 어떻게 역사가 되느냐 말입니다. 기독교는 그렇지 않아 남자는 좀 장엄하고 스케일이 있고 제사장이 민족의 죄를 다 짊어지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는 것 같은 그런 어깨가 살아있는 힘이 있는 남자라야 합니다. 예수님이 미래를 보는 가정관이 무엇입니까. 미래는 가정이 살아야 민족 역사를 살리기 때문에 가정 살리기 가장이 아내를 지키고 보호하고 능력있고 힘있는 남자가 여자에게 키스해야 멋있지 빌빌거리는 남자가 와서 키스하면 느끼하지요. 남자가 남자답게 살도록 기독교 
    온 가정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각 가정에 건장한 남자가 있고 행복한 여자가 있고 희망 있는 자식들이 있는 아름다운 미래가 있는 가정이 되기 위해 울어야 할 때가 오늘입니다. 미래 가족을 위해 울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미래를 개척할 길이 보이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TV 프로 중 독일에서 온 부르노 라는 키가 큰 아이가 있어요. 이태리계 아이인데 독일에서 살아요. 그 아이가 태권도도 하고 한국말도 곧 잘해요. 그 아이 어머니가 와 인터뷰하는데 그 어머니에게 제가 감동 받은 게 있어요. 한국에 대한 인상을 몇 마디 하는데 인터뷰 시작과 끝 부분에 한국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
    다는 말을 아주 강조했어요. 한국 아이들 데리고 놀아보지도 유치원에 가 보지도 않았는데 문화적 감각이 아이들 보는 눈입니다. 아이들을 볼 때 사랑스럽게 보는 감각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것이 부족합니다. 그저 공부 잘 하기만 바랄 뿐, 그 아이의 소질, 개성, 장래성, 능력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명예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를 진실로 사랑하는 게 누군가요. 공부를 못해 0점을 연달아 받아와도 괜찮아 하고 격려해야합니다. 나는 너가 좋아. 사랑해 봐요. 공부를 잘 하게 돼 있어요. 끝없이 공부 못한다고 아이들에게 짐을 지우면 부모와 거리가 멀어집니다. 아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엄마 말 잘 들어 아이 사랑하는 것은 아이를 도구로 만드는 것입니다. 엄마가 즐기는 거지요. 아이를 사랑할 때는 아이가 나를 좋아하든 안하든 , 생각이 나와 다르고, 성적이 좋지 않아도 아이를 사랑하는 감각을 가져야 부모의 소질, 수준, 품위입니다. 예수님 보신 미래의 가정이 무엇입니까. 미래 가정의 위기가 뭐라 했습니까.

     가정에 대한 정의가 잘못 됐습니다. 가정에 대한 정의가 우리는 확실합니다. 가정이 바로 천국입니다. 하나님이 가정 단위로 복을 주셔요. 하나님 복은 절대적 가정 단위로 주십니다. 단 한번도 예외가 없습니다. 가정이 복 받는 근거고 그릇이고 이것이 고로 천국입니다. 찬송가 중 '내 영혼이 은총입어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 초막이나 궁궐이 집입니다. 초막은 우리가 살고 궁궐은 임금이 사는 집입니다. 집이 바로 천국이란 말입니다. 우리 집이 천국이라는 그런 정의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과거, 현재, 미래로부터 온 하나님의 축복이 가정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갈 때도 아버지의 집이 그 집으로 연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가정에는 누가 중요합니까. 여성이 물론 중요하지요. 여성만 중요한 건 아니예요. 아내와 남편과 자식이라는 이 삼각구도 삼방 이것이 가족입니다. 가족 할 때는 한꺼번에 이해가 되야 하는데 누구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누구하나도 무시되어선 안됩니다. 우리 사회는 그 규정이 완전히 깨졌어요. 세 가지 균형이 같이 있는 집이 없어요. 아이가, 여자가, 저 만큼 높은 집들이 있어요. 남자가 저 만큼 군림
    하는 집도 있는데 안됩니다. 가정은 세 가지 엄격한 구도 위에 가정이 서는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 같이 우리 가정이 세 가지 가족의 분담, 역할, 의미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뭐라 했습니까. 가장이 구심점이 되야 합니다. 남편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남편이 여자를 무시하고 살수도 없지요. 남편이 우뚝 자기 입지에 설 때 그 옆에서는 아내가 참 돋보이는 그런 그림이 기독교적 그림입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그래요. 단 한번도 그 질서가 바뀐 적이 없어요. 삼위일체를 말할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그 질서를 바꾸면 안 됩니다. 부, 자, 령으로 나갑니다. 아버지가 남편입니다. 가족은 남편을 중심에 세우고 가족이 잘 이상적으로 그 구심점을 이루는 남편과 더불어 가족을 받들어 가는 이상적인 이 질서가 바로 예수님이 염려하신 가정관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오늘 설교를 통해 참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교인 중 혹 한 사람이라도 아, 우리 목사님은 너무 늦게 가신다. 시대가 어느 시대라고 저런 설교를 할까 그런 말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러분! 시대가 천년 만년이 지나도 이 질서가 깨질 때는 그 가정이 온전치 못합니다.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가장을 중심에 세우고 그가 하나님 앞에 제사장 직인 직무를 감당 할 때 다른 가족의 안위가 있습니다. 그가 신앙적인 직무를 바로 수행하는 구심점이 될 때 그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축복과 평화를 얻는 것이거든요. 이 질서 문란하게 만들고 아무나 가정 구심점에 와 가지고 여로보암이 제사장을 앞질러서 분향하려다 즉석에서 저주를 받은 하나님의 역사 질서를 지키며 여러분 가정에 남자는 제사장직 책무를 짊어지고 여성은 그 옆에서 왕의 직무를 지고 잘 다스리고 아이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나서 그 미래를 그들 어깨에 메어주는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이상적 가정이 되시길 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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