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의 어린이 헌장(마18:1-14)
  • 조회 수: 108, 2013.05.24 07:39:20
  • 오늘은 5월 첫 주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달 동안에 꼭 한 사람 이상 전도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는 먼저 사랑운동을 지속적으로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사랑이 있어야 되기 때문이고, 우리 가정 가운데 사랑이 있어야 되기 때문이고, 우리 믿음은 사랑이 있는 믿음이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 나라 국회는 1956년에 5월5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고 공휴일로 선포했습니다.  1957년에는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앞서 성경에 보면 천국의 어린이 헌장에 대하여 군데군데에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기 천국의 어린이 헌장 이 시간 메시지의 주제가 되겠습니다.  어린이 주일은 무엇을 말하는 주일일까요? 어린이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라는 날이기도 합니다.  생각하면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를 푸대접하므로 그들이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어린이들의 무관심 때문에 그들이 놀이 방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전화벨이 울렸는데 이모네 아들이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는데 세상살기 귀찮다고 목을 메어 자살했다고 하는 비보를 들었노라고 슬픈 음성으로 알리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이야기는 오늘 어린이들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이야기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슴앓이가 있습니다.  말 못하는 고민들이 저들에게는 있다는 말입니다.  경희대학교 서정범 교수가 펴낸 수수께끼 별곡이라는 책자가 있는데 부자지간에 짤막한 대화 한 토막입니다.  목욕탕에 들어간 아버지가 '아 시원하다 너도 들어오너라'그랬더니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정말로 시원해요?' '그렇구 말구' 아들이 탕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물이 너무 뜨거운지라 얼른 뛰쳐나오면서 아들이 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네' 이 말을 들은 아버지가 화가 치밀었습니다.  주먹으로 한 대 치려고 하니까 그 때 아들의 말입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기가막힌 말입니다.  '때려라 때려 네 아들 죽지 내 아들 죽냐?'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웃어넘길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들에게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부모 된 내가 먼저 주님 앞에 순종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형편이 어떠합니까?  나는 주님 앞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자녀들에게는 '순종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슨 순종의 열매가 가정에서 맺힐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 모두는 내 자녀들이 정직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정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경건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경건하게 살면서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잠언이 말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 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본문 말씀 속에서는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어린이 주일에 해당하는 내용의 질문입니다.

      첫째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
    본문1절입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그 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본문4절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이해가 곤란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키도 작고 배운것도 없고, 어른들에 비하여 권세도 없는데 천국에서는 어린이가 크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큰 자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가 큰 자라는 뜻입니다.  눅18:14입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자기를 높이려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방법을 가리지 않아 결과 높아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깔아뭉개고, 재롱을 부리고, 교만을 피우며, 고함을 지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네 아빠 이름이 뭐지' 아이가 대답합니다. '우리 아빠 이름은 여보예요' '그럼 너의 엄마 이름은 뭐지?' '엄마 이름은 당신이래요'얼마나 진실한 대답입니까? 꾸밈이 없고, 조직이 없고,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몇 해전에 들었던 예화입니다. 러시아의 리콜라이 황제가 덕망있고 정의가 있는 황제인데 어느 날 평민으로 가장하고 거리로 민중시찰에 나섰습니다.  낮 설은 길인지라 갈림길에서 지나가는 군인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태도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미안하지만 계급이 어떻게 되는지요?' 군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어디 자네가 한 번 맞춰보게'그러니까 황제가 묻습니다. '상사이십니까? 아니. 그럼 소위이신가요? 아니. 나를 그렇게 밖에 보지 않는가. 그럼 중위신가요?'역시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럼 대위신지요? 맞았네. 내가 육군 대위네'하면서 그 대위가 굉장히 큰 벼슬인 것처럼 어깨를 으시댔습니다.  황제는 미소를 머금고 제 갈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던 대위가 '저 사람은 보통이 아닌 것 같이 여겨진지라 '여보게' 불렀습니다. '혹시 자네도 군인인가?  예. 그러면 계급이 무엇인가?'  아무말없이 있었더니 '상사인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소위인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면 중위인가'역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제 말씨가 좀 달라졌습니다.  '그럼 당신도 대위인가요?'고개를 저었습니다.  이제는 몸이 오싹해집니다.  '그러면 소령이십니까'역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중령, 대령, 심지어는 대장까지 올라가면서 몸이 떨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원수이십니까?' 그런데 순간 황제의 얼굴이 필름처럼 스쳐갔습니다. '아차'하면서 무릎을 바닥에 꿇으면서 '황제각하 용서하옵소서'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 겸손하게 살면 얼마나 좋습니까?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첫째, 둘째, 셋째가는 미덕이라고 했고 성경에서도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천국의 잣대에는 역설이 있습니다.  발뒤꿈치를 높이 들고 높아지려는 자를 자로 재면 도리어 낮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무릎을 꿇고 낮아지는 자를 잣대로 재면 높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겸손의 덕을 보이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누가 겸손의 미덕을 보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겸손이 있는 믿음으로 주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천국에는 누가가나?
    본문3절입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어린아이들은 그냥 천국에 통과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천국에는 결단코 학벌로는 못 들어갑니다.  권세로도 못 들어갑니다.  장관이니까 그래서 봐주는 천국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유년주일학교 어린이들이 노래합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고 노래합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에는 믿음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어떠한 믿음입니까?  어린 아이를 닮은 믿음입니다.  어린아이를 닮은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어린아이에게는 여러 속성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 꼬집을 수 있습니다.  단순성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믿음은 단순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참 믿음의 속성이 단순성인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믿음은 이론적인 믿음이 아니고, 계산하는 믿음도 아니고, 따지는 믿음도 아닙니다.  머리가 아프게 복잡한 믿음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한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그냥 거듭날 수 있고, 천국 갈 수 있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따라서 천국에 가는 믿음은 소박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는 페인트칠한 믿음도 있습니다.  바리새인처럼 회칠한 무덤 같은 믿음도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돌이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돌아선다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To turn이라고 했습니다.  회개를 의미합니다. 라우디게아 교회 성도들이 어찌했습니까.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도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실상은 가난한 자로다" 그래서 수치를 보인다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돌이켜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은 돌이키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내가 걷고 있는 그 길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다고 느끼면 지금 돌이켜야 합니다.  내가 계획하는 것이 죄와 관계 있는 것이라면 미루지 말고 지금 돌이켜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못한 믿음이면 돌이켜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생각하면 돌이켜야 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누가 불량식품을 청소년들에게 팝니까?  어른들입니다.  누가 술, 담배, 약물을 청소년들에게 팔고 있습니까?  역시 어른들입니다.  그러니까 어른들이 돌이켜야 합니다. 어른들이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5월은 전도의 달입니다.  우리의 믿음 중에는 전도 없는 믿음도 있습니다. 전도와 무관한 믿음도 있습니다.  10년을 믿었습니까?  아니면 20,30년을 믿었습니까?  그 믿음 속에 전도의 알맹이가 있습니까?  한 번쯤 돌이켜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약2:20이 말합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앞에 들어오면서 읽었습니다.  '전도하셨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묻는 말입니다.  만일 전도하지 않았다면 전도 없는 믿음을 돌이키고, 전도와 무관한 믿음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의 문 앞에 버티어 서 있으면서 들어오려는 어린이를 막았던 죄가 있다면 빨리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 주일이 무슨 날입니까?  어린이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돌이켜 보는 날이라는 말입니다.

      세 번째 천국으로 인도할 자는 누구인가?
    답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인도해야 합니다.  바로 내가 전도자이어야 합니다. 본문6절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깊은 물에 빠져 죽게 되는 영원일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어린아이를 실족하게 할 때가 많습니다.  '초라하다, 작다, 그리고 코흘리개다'그래서 없신여기고 교회당 밖으로 나가라고 쫓을 때도 있고, 성경을 배워주는 일을 소홀히 할 때가 있으며, 예배드리는 일에 무관심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다 어린아이들을 실족케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본문10절입니다.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없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했습니다.  한 영혼을 위하여 천사까지 동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린이 주일을 지키시는 성도님들이여!  본문5절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일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이 전도가 주님의 뜻이고, 이것이 천국의 상 받을 조건인 것을 밝힌 말씀입니다.  본문14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이 소자중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가운데에 하나라도 꼴찌 하나라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작은아들이니까 버려 두라' 하지 않았습니다.  '딸자식이니까 무관심 하라'하지 않았습니다.  본문12절입니다.  "너의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눅15장에 있는 잃은 양 비유를 연상케 합니다.  그 목자가 잃은 양을 어떻게 찾았습니까?  5월 전도의 달을 지키면서 그 방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① 들에 두고 방법입니다.  거기 4절에 보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라고 했습니다.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한 마리를 찾아다닌 것은 실용적인 가치로 보면 낭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한 마리 양을 잃었는데 가슴아파해야 합니다. 불쌍한 양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 양은 배워도 가치가 있고,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소홀히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잃은 한 마리 양 같은 인생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대로 두면 지옥에 갑니다.  전도가 무엇입니까?  이러한 영혼을 불쌍히 여겨 예수님 앞에 나오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주의 품에 안길 수 있고, 편히 쉴 수가 있는데 내가 전도하지 않으므로 이 인생이 거꾸러지기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이 방법으로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달려가는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② 찾도록 방법입니다.  역시 4절에 보면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고 했습니다.  양은 연약한 동물입니다. 제 힘으로는 집을 찾아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목자가 찾아가야 하고, 만나주어야 하고, 데려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누가 전도자입니까?  우리입니다.  아니 나입니다.  내가 전도자이어야 합니다.  5월의 주인공은 나요, 5월의 주인공은 잃은 양 한 마리입니다.  여기 찾도록 이라는 말은 찾을 수 있도록 이라는 뜻입니다.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 많습니다.  시간을 쏟던지 물질을 투자하던지 힘을 쓰고 애를 쓰던지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어찌했던 찾아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기회를 선용해야 할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날아가 버리는 참새가 될 것입니다.  
      ③ 어깨에 메고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사랑의 방법이기도 하고, 잔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거기5절에 보면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라고 했습니다. 왜 찾은 양을 어깨에 메었습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양이 지쳐 있기 때문입니다.  목자를 떠난 양은 떠난 시간부터 지치고 피곤하고 상처를 입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깨에 메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피조자 인생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형상 닮은 인생은 누구나 예수님께 돌아올 권리가 있습니다. 전도자는 그 길을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고기가 물을 떠난 것은 죽음이요, 나무가 흙을 떠난 것은 역시 죽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돌아와 돌아와' 찾고 계십니다. 누구를 통해서 말입니까?  전도자 나를 통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 길 인도하는 전도자, 인도자, 안내자입니다. 나팔을 불어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찾은 기쁨 때문입니다.  잃은 양을 찾아 어깨에 맨 것은 찾았다는 깃발과 같습니다.  개선장군처럼 돌아오는 목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목자는 잃은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서 물을 건너고 산을 건넜습니다.  골짜기를 헤매다가 음매음매 울고 있는 잃은 양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목자는 가슴에 끌어안았을 것이고 뽀뽀를 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기에 어깨에다 메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전도는 한 영혼을 어깨에 메고 즐거워하면서 돌아오는 일입니다.  특별히 어린이 주일을 지키는 성도들이여! 어린 양 같은 어린아이, 우리 가정에서 찾아야 합니다. 주변에 너무 많이 잃어져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두드리면서 이 아이들을 구원의 방주로 이끌어 내야 합니다.  그래야 지옥 가지 않고 천국 갈 수가 있습니다.  잃은 양을 찾아 주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내·남편·자녀


    본문 말씀 : 골3:18-21
     

    전도는 주님의 지상명령 우리 모두 전도하자.

      5월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전도하셨습니까?' 스스로를 향해서 한 번쯤 물어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기도 합니다.  '아내. 남편. 자녀' 이 시간 메시지의 주제입니다.  우리들 중 더러는 아내들이요, 더러는 남편들이며, 우리 모두는 자녀들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 해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세 번이나 이혼한 불행한 여인이 있는데 그는 남편의 사랑을 아예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에게 성장한 아들이 있었는데 역시 그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장한 그 아들이 성격이 빚나가더니 술을 마시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1963년11월22일 정오 준비했던 소총을 가지고 얼마 전에 취직한 서적창고 꼭대기 층에 올라갔습니다.  미국의 최고 권력자가 그 앞을 지나는데 기회를 놓칠세라 그 총구에서 불이 품도록 한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암살 당한 사건이 있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닥슨은 이 사건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습니다.  가정의 비극이 우리 사회의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였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내와 그리고 그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들이 만들어낸 역사적인 비극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우리 믿는 성도들의 가정을 작은 에덴에다 비유하곤 합니다.  여기 작은 에덴이라는 말은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는 행복한 가정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본문 말씀을 통해 바울도 이와 같은 가정이 되기를 원하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예수님을 믿는 일은 복 가운데 가장 귀한 복이니라'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는 믿음의 대상이 같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에서 아버지는 부처를 부르고, 어머니는 하나님을 부르고, 자녀들은 알라신을 부른다면 그 가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적인 갈등이 심할 것이고, 정신적이 혼란이 생겨날 것입니다.  
      
      행복을 추구했는데 도리어 가정 파탄을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물론 종교의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4월초 팔일과 기독교의 12월25일은 그 내용이 전혀 다릅니다.  온 가족이 한 분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행4:12이 답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가는 곳이 같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족이 등산 가기 위해서 밤새껏 준비를 했습니다.  날이 밝자 이들이 배낭을 메고 대문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무등산에 가자 고집하고, 아내는 설악산으로 가자 고집하고, 또 자녀들은 지리산으로 가자고 한다면 어떻게 등산이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이 되어 남편은 낚시터로 아내는 교회로 했을 때에 낚시터로 가야 할까요, 교회로 가야 할까요.  

      또 주일이 되어 남편은 중앙교회로 가자하고, 아내는 광주교회로 가자 한다면 그 가정이 갈등이 심하게 될 것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인생은 나그네와 비슷합니다.  날마다 길가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더딜 수도 있고 빠를 수도 있습니다. 즐거울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도착하는 곳은 천국입니다.  가족은 천국에 함께 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한 가족인 것입니다.  아내는 천국으로 가는데 남편은 지옥으로 갈 경우 천국 가고 있는 아내의 가슴이 얼마나 미어지겠습니까?  따라서 바울은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가정되기 위해서 우리 모두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18절을 보면 "아내들아"했고, 19절을 보면 "남편들아", 20절을 보면 "자녀들아"했습니다.  각각 부르고, 그 임무에 대하여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1절에서 "아비들아"불러서 부모와 자녀간에 올바른 관계에 대하여 당부하고 있습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에게 주는 소중한 교훈인줄로 압니다.  

      본문 말씀의 이해를 돕는 중요한 열쇠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안에서' 라는 열쇠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했습니다. 또 20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왜 바울이 이처럼 '주안에서'를 강조하고 있을까요?  주안에 있는 남편은 다른 남편들보다 자기 아내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고, 주안에 있는 아내들도 다른 아내들보다 자기 남편에게 더 순복하기 때문입니다.  또 주안에 있는 부모는 다른 부모들보다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기 때문이고, 주안에 있는 자녀들은 다른 자녀들보다 부모에게 더 순종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가정마다 아내. 남편. 자녀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각각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 아내가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시 아내는 강하다는 말도 됩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영어로 Women power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내의 위치는 대단한 위치입니다.  아내가 없는 가정은 삭막한 광야와 같고,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도 같습니다.  가정에서 아내는 의사, 변호사, 무언의 웅변가, 교사, 안내자입니다.  아내는 새벽을 깨우고 화단에 장미를 피웁니다.  그러니까 가정에서 먼저 아내가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아굴라의 아내 브리스길라가 예수님을 믿고 결과 그 가정을 장미화단으로 바꾸지 않았습니까?  바울도 예수님을 믿는 아내들에게 당부합니다. 다시18절을 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 왜 가정이 불화 합니까?  아내가 남편에게 잘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왜 가정에 전도의 문이 막히겠습니까?  아내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가성 죄 많은 한 여인을 보십시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습니다.  정말 죄 많은 여자입니다.  때문에 스스로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 인생은 개 같은 인생이야' 그러니까 사람들도 그를 이방인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죄인도 예수님을 만날 권리가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생애의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인데 현모양처가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있는 아내는 누구보다도 남편에게 순종하며 자녀를 사랑합니다.  남편의 흉이나 보고, 교회 험담이나 하고, 자녀에게 욕을 하면 그가 믿는 예수를 어떤 남편이 믿으며 어떤 자녀들이 믿는 다는 말입니까?  사랑하고 순종해야 될 남편을 향해서 '아이구 저 마귀, 사탄아 물러가라'한다면 언제 가정 복음화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믿음 있는 아내들이여!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더욱 열심히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지요?  사랑할 때 예수님 다음가게 사랑을 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남편에게 미소를 던지고, 자녀들에게 애정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부부를 보십시오?  아내 하와가 잘 했더라면 인류의 역사가 바꾸어 졌을 것입니다.  욥의 아내를 보십시오?  욥이 고난을 받아 잿더미 위에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을 때 욥의 아내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욥2:9을 보면 "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롯의 처를 보십시오?  도피성 소알을 향해 갈 때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몇 번 당부했으나 기어이 돌아보더니 소금기둥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비극이 혼자만의 비극이 아니고 온 가족의 비극이라고 여길 때 아내의 위치는 대단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아내 되어 넘어져 가는 가정을 일으키는 주부가 되어질 때 사회에 미래가 있고 국가에 부흥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 사랑이 있어야 사회에 사랑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둘째 남편이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남편과 믿지 않는 남편이 있습니다.  어느 편이 더 부정을 피우겠습니까?  부정을 피우는 인생인 점에는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통계가 밝혔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3%가 부정을 피운데 비해서 믿지 않는 남편들 97%가 더 많은 부정을 피운다는 통계였습니다.  우리 주변에 지금도 도박을 하는 남편이 있고, 아편을 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외박을 하는 남편이 있고, 머리채를 끌어당기며 아내를 구박하는 남편도 있습니다.  정말 정글 속에 남편들인 것 같습니다.  왜 이 모양일까요?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어찌되겠습니까? 지옥으로 갑니다.  왜 예수님을 믿지 안 믿습니까?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깨닫지 못합니까?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고인 물에 독 균이 득실거리고 있는 것을 안다면 누가 그 물을 마시겠습니까?  죄를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물 마시듯 하는 남편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달콤한 것으로만 착각한 남편들입니다.  그러나 죄는 안데르센 동화집에서 나오는 분홍 신 닮았습니다.  신은즉 하다고 신고 보면 미쳐서 돌아가는 그렇게 하는 것이 분홍 신이기도 합니다.  또 자신을 깨닫지 못합니다.  허물 투성이 자신인데 믿음도 없는 자신인데 '나는 이만했으면 됐지, 나는 의롭다'이렇게 착각하는 남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생의 날이 무엇입니까?  베틀에 북보다 더 빠릅니다.  그런데 백 년 살 것 같이 사는 남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남편들이여!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돌아와 돌아와♬

      또 시편128:3을 모두가 기억해야 합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비전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복은 누가 누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남편이 누릴 수가 있습니다.  또 무엇을 깨닫지 못합니까?  지옥을 깨닫지 못하는 남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이 없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지옥에서는 펄펄 끓는 지옥 불이 타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장이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인생의 종국이 아닙니다.  천국을 가든지 지옥으로 가든지 반드시 내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아내들이여!  남편의 그 손목을 얼른 붙잡아 메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먼저 믿는 남편들이여!  아내의 손목을 꼭 잡고 '여보 사랑해요'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가정이 행복하겠습니까?  돈이 많은 가정 일리가 있습니다. 아파트의 평수가 넓은 가정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행복한 가정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고넬료 가정처럼 온 집으로 더불어 예수님을 믿는 가정입니다.  옥중의 간수장 한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더니 온 가정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기뻐하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모두가 그러한 가정이 되도록 꿈을 키우고 기도를 키워야 할 것입니다.

      셋째 자녀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평생토록 뗄 수 없는 괴롭히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아들 압살롬 가시입니다.  아삽롬 아들이 아버지 다윗에게 불효를 했습니다.  반역을 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으려 하다가 결국 전쟁을 일으키더니 죽고 말았습니다.  그 때 다윗의 심정이 어찌했습니까?  삼하18:33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무슨 뜻입니까?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가 내 잘못이다. 내 탓이다. 내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아' 통곡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백 번을 통곡하고 후회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22:6이 말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의 자녀들이 순종하기를 원하시지요?  그렇다면 내가 먼저 예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나는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서 자녀들아 믿음으로 살라 훈계가 훈계되지를 못합니다.  다윗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우리야의 아내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야를 전쟁터로 내 보내 죽게 했습니다.  결국을 무엇입니까?  

      거기에서 나온 아들 압살롬이 대가를 치루게 한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넘어뜨린 영웅이요, 또 군인으로 정치가로 성공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영도한 종교적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버지로서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아마 다윗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설마 내 자녀들이야 잘 되고 형통하겠지'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위한 성경공부에 무관심했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재물만 믿어도 천국 갈 수 있겠지 착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찌되었습니다.  넷째 아들 아도니야도 압살롬이 죽은 후 아버지 다윗에게 반역을 하지 않았습니까?  부모가 심는 대로 자녀들에게서 거둡니다. 그러니까 부모들이 자녀들 앞에 본을 보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담배를 피우면서 '아들아 담배 피우지 말라' 나는 술을 마시면서 '술이란 가정 파탄의 원인이란다'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가 없습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 알을 따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중앙교회 아내들이여!  또 남편들이여!  자식 농사를 잘 지어야 할 것입니다.  눈물로서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식탁에 아빠의 지정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그 자리에 앉아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가 출장중입니다.  일곱 살 꼬마가 대뜸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엄마가 야단을 치려고 했다가 '오늘 한 번만이야'눈을 감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장난꾸러기 누나가 아빠자리에 앉은 동생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아빠 식사가 끝난 다음에 내 숙제 좀 도와주세요'했습니다.  

      그랬더니 꼬마의 말입니다.  '아빠는 바쁘다 네 엄마한테 도와 달라고 해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꼬마의 대답 속에 그 아빠의 평소 모습을 읽을 수 있지 않습니까?  '송아지 송아지 엄마 닮았네' 이야기처럼 자녀들은 엄마의 걸음을 걷기 마련입니다.  한자를 가르치는 입이 고장난 아버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충성 충 자를 가르치는 데 발음이 빗나갑니다.  '퉁덩 퉁' 그러니까 아들도 '퉁덩 퉁' '이놈아 아빠는 퉁덩 퉁 해도 아들은 퉁덩 퉁 해야 할 것 아니냐'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본문21을 보십시오. "아비들아 네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 자녀들이 격노할까요?  ① 지나치게 책망할 때요, ② 부모가 이중적일 때요, ③ 자녀에게 무관심할 때입니다.  이러한 때 자녀들은 낙심 납니다.  

      여기 낙심 난다는 말은 용기를 잃는다는 뜻입니다.  자녀가 용기를 잃는 일은 그들의 미래를 잃는 일과도 같습니다.  따라서 자녀들을 격노케 말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자녀들을 격려하라는 뜻이요, 자녀들에게 용기를 넣어주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순종하는 자녀들을 원하십니까?  자녀들이 예수님을 믿게 해야 합니다.  꿈이 있는 자녀들이기를 원합니까?  자녀들에게 격려해야 합니다.  용기를 넣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꿈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한 화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그리고 싶어했습니다. '무엇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고' 어떤 종교인에게 물었습니다.  '그거야 믿음이지요' 젊은 아가씨에게 물었더니  '사랑이 아름다워요' 한 군인에게 물었더니 '평화처럼 아름다운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화가는 생각했습니다. '믿음, 사랑, 평화 정말 아름다운 것이야

      그런데 이 세 가지를 닮아 한 가지로 그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골똘히 생각했으나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발걸음이 집 대문에 이르렀습니다.  초인종을 눌렀을 때 꼬마아이가 달려나오면서 아빠 하면서 그 품속에 덥석 안겼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서 믿음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또 아내가 나오면서 '여보' 쳐다보았을 때 그 눈에서 사랑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에 들어서자 찬송이 울려 퍼집니다.  꽃이 꽂아있습니다.  피아노가 있고, 식탁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 평화 평화로구나' 화가는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우리 가정이로구나' 사랑하는 성도여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믿음 있는 가정, 사랑 있는 가정, 평화가 넘치는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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