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림이 있는 감사(Ⅱ) (사 38:19-20)
  • 조회 수: 321, 2013.04.01 10:20:36
  • 오늘은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지난주 설교 "드림이 있는 감사(Ⅰ)"에서는 드림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감사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 한 마디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감사합니다"입니다. 어떤 분은 사랑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사랑도 필요합니다만 어떤 때는 사랑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짝사랑은 특히 그렇습니다.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때로는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감사라는 말은 누구에게든지 기쁨이 됩니다. 부담이 없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까? 인격이 좋은 사람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인격이 좋습니까? 지식이 많은 사람이 좋습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고 지식이 있다고 할지라도 감사하지 못하고 늘 불평하고 원망,비판하는 사람은 절대로 좋은 인격자가 될수 없습니다. 자연에 대해서 감사해 보십시오. 그 자연이 주는 혜택이 엄청나게 큽니다. 우리 이웃에게 대해서 감사해 보십시오. 그러면 관계가 좋아집니다. 좋은 이웃사촌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우리가 마땅히 감사하고 또 대해서 감사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엄청난 은혜와 축복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불평하는자, 원망하는 자가 되지 말고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저 가만히 있어도 안됩니다. 계속 감사하라는 것이니다. 그래야 은혜가 있고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는 그 사람의 인격일 뿐 아니라 풍겨 나오는 향기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된다고 했는데 감사하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 올림픽이 열리던 해 집들을 많이 허물고 짓는 일을 했는데 그중 어느 판잣집을 허는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집에 못을 받은 곳에 도마뱀 한 마리가 찍혀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죽지 않고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 있었는지 가만히 보니 새끼 도마뱀이 그 어미 도마뱀에게 계속해서 먹을 것을 가져다 준 것이었습니다. 미물도 감사한 마음이 있을 때에 죽어가는 엄마를 살리는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불쌍합니다만 그들을 돕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감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도와줄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은혜를 갚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세상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제가 모스크바에 갔을 때 일입니다. 그들이 못산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못사는지는 몰랐습니다. 길거리에 거지 떼들이 가득했습니다. 연세 높으신 어른들이, 후손들에게 존경받고 대접받아야 할 노인들이 힘없이 늙어서 구걸하러 다닙니다.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그저 허리를 구부리고 구걸하고 제가 햄버거를 먹으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앉으니 밖에서 가게 안을 들여다보는 눈들 때문에 차마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햄버거를 들고 나와 할머니께 드렸더니 그분이 얼마나 감사한지 차 타는 곳까지 좇아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이 공산당입니다. 북한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두만 강변의 먹지 못한 아이들이 꽃제비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구걸하러 다니는 것입니다. 17-18살 먹은 아이들이 우리 나라의 2-3학년 아이들만큼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아이들이 집을 떠나 구걸하러 다니는 것이 공산당입니다. 여러분 공산당은 이렇게 가난합니다. 돈이 없습니다.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습니다. 공산당 혁명이 무엇입니까? 투쟁이 무엇입니까?"너 같은 부자 때문에 내가 못 산다"고 하면서 늘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그것이 투쟁이 되고 혁명이 되어 있는 사람, 배운 사람은 다 죽이고 잘 살아 보자고한 것입니다. 공산사회가 생각은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감사는 없습니다. 그러니 망하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으니 하나님이 이러한 민족과 국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절대 그런 민족에게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결국은 불행해 지고 실패하고 역사의 뒤로 물러앉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쁜 것만 찾아내고 불평하는 사람은 실패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 대로 보아야 합니다. 잘 되게 보아야 합니다. 감사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축복 받고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사하라,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부모 자식간에 감사라는 감정이 없으면 뭐가 남겠습니까? 이기적이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곳에 무엇이 남겠습니까? 동물적인 것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있으면 좋다고 하고 없으면 불평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부부 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 없는 곳에 남는 곳은 불행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곳에는 서로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서로의 향기가 나고 그 가정에서 빛이 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녀를 기르는 부모는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녀들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자녀들, 감사하는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는 후에 영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녀로 인해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정치, 사회, 경제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감사가 너무 적은 것입니다. 서로에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우리의 뉴스의 전부입니다. 좋은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정치도 감사하는 정치가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 받는 정치이고 감사하는 정치입니다. 학교의 교육이 무너져간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당연히 선생님에게 당연히 감사해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들을 보살피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교육이 잘 되는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훌륭한 인물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생활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감사가 없으면 불행밖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성도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찬양을 한 후에는 "아멘", 기도한 후에도 "아멘" 합니다. 이런 것도 다 감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아멘" 소리도 자연스럽게 우리들 속에서 울려 퍼질 때에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기도의 문이 막힙니다. 찬송의 문도 막힙니다. 주일 성수도 하지 못하고 봉사는 더더욱 못하게 됩니다. 부지런 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감사는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살아있는 사람만 감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죽은 자는 못합니다. 오늘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죽음 앞에 내 권력과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죽음 앞에 수많은 신하와 군대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나를 살리실 수있습니다"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니 하나님은 15년 동안이나 그의 생명을 연장하마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15년을 더 살게 되었습니다. 그 약속 하나만 믿고 그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산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 같이 주께 감사하며"라고 고백합니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주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살아있고 생명있음의 증거입니다. 그 생명의 증거는 두가지입니다.

     

    1.살아있는 감사는 감사하는 자의 생각이 살아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늘 감사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다, 죽어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영적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아닙니다.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러기에 이사람은 감사가 없습니다. 죽은 자의 주인은 마귀가 됩니다. 그래서 불평과 불만만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에게 정복당한 증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때문에 언제나 감사합니다.

    수능시험이 끝났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이들의 수고가 그대로 잘 나타나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진로가 결정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수능시험 때문에 몇 아이는 자살을 했습니다. 자살한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그 부모의 아픔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의 엄청난 잘못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왜 이 아이가 죽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까? 이 아이의 생각은 딱 한 가지였을 것입니다. '공부 잘하면 행복하고 공부 못하면 망한다' 그의 부모들이 이렇게 말했을런지도 모릅니다. "너 그렇게 공부해서 뭐가 될래?" 공부 한가지로 그 아이의 인생을 점친 것입니다. 이 아이를 죽도록 몰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는 공부한 대로 실력이 드러나지 않자 죽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공부만 잘하면 인생이 잘됩니까? 소위 유명한 대학만 졸업하면 그의 인생이 성공한다고 볼수 있습니까? 공부 못하면 망한다는 생각을 하는 아이가 있다면 누가 그런 생각을 갖도록 인도했습니까? 하나님이 그랬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해도 괜찮다고 성경에 있습니까? 그 시간에 어느 고3 학생들은 빵을 만드는 일을, 미용원에 가서 머리 잘르는 일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공부만 잘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물었더니 "그것은 그 아이의 문의이고 저는 제 문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는 적어도 자살하도록 만들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보는 나, 남이 보는 나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나"입니다. 하나님이 나 자신을 볼때, 내 자녀를 볼때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방을 지나가실 때 귀신 들린 한 사람을 보셨습니다. 자기 집에도 살지 못하고 산 속 무덤가를 배회하면서 쇠사슬에 묶여 자신을 자해하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이 더이상 가망이 없다고 하면서 어느 한사람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한생명과 돼지 이천마리와 바꾸셨습니다. 그 돼지는 예수님의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돼지와 귀신들린 한 젊은이의 생명과 맞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엄청난 재산을 잃어버린 주인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예수님 아니라 그 누구라고 해도 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을 다 감당하기로 이미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생명을 살리시고 그를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우리를 살려 주신 것입니다. 공부를 못해도 그는 천하보다 귀한 생명입니다.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이 이 아들과 딸과 함께 하실때에 이 아이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살게 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복있는 사람이 될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 생각을 끊임없이 나 자신이나 우리 자녀들에게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보아도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거란다" 라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너무 어려울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높은 망루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 왜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받고 불의 한 사람이 잘 삽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듣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기적이고 탐심이 있고 착취하고 쾌락과 타락을 일삼고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내가 알고있다. 그들도 구원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렇게 계속해서 살게 되면 징벌을 받을 것이다. 너는 그것을 보지 말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에는 안믿는 사람들 보고, 불의한 사람들을 보고 불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자 하박국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식을 가득찼습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상대적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사슴의 발 같게 하시고 나를 높이실줄로 믿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내가 감사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감사한 마음을 주시기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불붙는 가시나무 떨기를 보았습니다. 야곱은 환상의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업을 시작할 때 이렇게 하면 잘 될 것 같다고 계획을 하고 이렇게 살면 인생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계획을 합니다. 그러나 그 계획이 우리로 하여금 다 성공한다고 믿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몽입니다. 그 속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네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것 처럼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는 것이 그 비전을 통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에 늘 감사로 가득차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늘 승리할줄로 믿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살아갈때 주신자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신 자도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 욥의 신앙을 본받아 우리는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야 될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에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산 자로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축구경기를 TV중계로 보신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 방송에서 생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의 수와 녹화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의 수중 어느 숫자가 더 많을까요? 어느 방송의 시청율이 더 높을까요? 생방송은 이길지, 질지를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녹화방송은 거의 이긴 경기만을 녹화 방송합니다. 어느 방송의 시청율 높을까요?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생방송일 것 같습니다만 녹화방송의 시청률이 더 높습니다.이긴 경기를 아침에도 보여주고 낮에도, 저녁에도 보여줘도 또 보게 되고 또 보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긴 것을 알고 안심하고 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알기에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승리케 하시는 것을 믿으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살아있는 감사는 행동이 있는 감사입니다.

    행동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행동입니까?

    첫째는 말입니다. 말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종과 같습니다. 종은 쳐야 소리가 나듯이 아무리 감사한 것이 있어도 소리내어 감사하지 않으면 감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아침에 아버지가 일어나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얘기하면 다른 식구들이 혹시 불평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그 불평이 쏙 들어갈 것입니다.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난 자녀들도 아버지가 일어나자마자 "아! 지겹다" 라고 한다면 기분 좋게 일어난 자녀들 조차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시면서 첫마디를 뭐라고 말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신앙이 좋으셔서 감사로 하루를 시작했을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다른 소리를 모두 흡수해 버립니다. 온 가정의 모든 불만과 어두움을 흡수하여 은혜롭게 됩니다. 종도 쳐야 소리가 나듯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감사의 말을 하지 않으면 절대 기쁨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말의 종교입니다.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해서 구원받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유교는 말을 못하게 합니다. 다 감추게 합니다. 밥을 먹을때 맛이 있어도 맛있다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사랑해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는 다릅니다. 우리 인간의 언어 가운데 단어는 감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축복받은 나라는 감사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물건을 살 때에도 감사, 만날 때에도 감사, 헤어질 때에도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받은 나라의 증거입니다. 감사의 말을 많이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한번 해 볼까요? "감사합니다." 감사의 말을 하루에 열번 이상 하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6000개 정도이고, 어른이 사용하는 단어는 25000개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단어들 중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감사합니다' 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일 년에 세번, 유대인들은 유월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에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까지 오는 길을 결코 짧은 길이 아닙니다. 어느 사람은 일주일이 넘게 걸립니다. 그러나 그 감사는 의무입니다.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감사하고 나쁜 일이 있다고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절기는 누구나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배가 풍랑을 만나면 가장 먼저 항구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항구에 가면 천연적이든 인공적이든 방파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풍랑 속에 있는 배는 파도로 인해 어려움에 처할 때에는 항구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안전하게 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인 다윗, 그가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받을때 어디를 찾아갔습니까? 하나님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고백하는 것입니다."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라" 하나님만 소망으로 삼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있는 사람만 와서 감사를 한다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없는 사람도 고통중에 있는 사람도, 찾아와서 주님앞에 내어놓습니다. 과거에 비록 죄를 지어 고통받는다 할지라도 주의 전에 나와서 감사제를 드릴때 하나님께서 모든죄를 용서하시고 내게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이 어렵고 험난한 세상가운데 잘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찾아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우리의 인생의 항구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의 방파제가 되셔서 풍랑이 지날 때까지 안전하게 지키시는 것입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고 만만이라고 했습니다. 천천이면 백만이고 만만이면 일 억입니다. 그 일억의 군대를 가지고 나와 내 가정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하나님의 교회에 찾아 나와 추수감사를 드리는 여러분, 여러분의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여러분의 힘이 되고 능력이 되시고 요새가 되셔서 여러분을 지키시고 승리케 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는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롬1:21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어떻게 하신다고 하셨습니까?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신다" 고했습니다. 내버려 둔다는 말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게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그러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살겠다라는 마음으로 감사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한 대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의 표현을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억지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서 감사함으로 넘치게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감사는 살아있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살아 있고 행동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이런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크고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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