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후 9:6∼15)
  • 조회 수: 320, 2013.07.11 20:52:11
  • 다음 주일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리지 아니하겠습니까만, 이처럼 1년 중 6개월을 보내고 한 주일을 정해서 일년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퍽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나 개인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우리 가정에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더구나 우리 교회에 베푸신 은혜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평소의 생활이 감사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생활과 일생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를 읽어보면 그는 언제든지 제일 먼저 성도들을 향해 문안을 한 다음에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편지를 읽어보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권면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이와 같은 글을 쓴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만 감사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생활을 보면 그의 생활 자체가 감사의 생활이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감격이 사무쳐 있었고 따라서 그의 하루, 하루의 생활, 한 달 한 달의 생활, 아니 일생의 생활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생활이었습니다.
    특별히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때 로마의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엡5:20절이나 빌 4:6절이나, 골 3:17절에 사도 바울은 감사를 넘치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사도 바울은 감사의 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의 감사 생활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우리는 보통 모든 것이 다 평안하고, 환경이 좋아야 감사한 생활을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경우는 좋은 환경이나 평안한 생활 때문에 감사한 것은 아닙니다.

    [고후 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고후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고후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고후 11: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고후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2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의 일생을 기록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매를 몇 번 맞고, 감옥에 몇 번 들어갔고, 몇 번 파선을 당하고, 길의 위험과 산의 위험과 도적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도 핍박을 받았고, 이방 사람에게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다메섹에서도, 에베소에서도, 고린도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로마에 가서도 대부분 감옥에 있었습니다. 바울의 일생은 거의 핍박과 환난과 곤고의 생활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감사의 생활을 했습니다.
    어떻게 그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의 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까?
    또한 사도 바울이 몸이 건강해 서 혹은 사업이 잘 되어서 감사한 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고후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고후 12:7에 보면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육체 가운데 찌르는 가시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가 분명히 심한 고통을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육신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냥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찌르는 가시를 그냥 가슴에 안고 지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몸이 건강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건강하기 때문에 그가 감사와 기쁨의 생활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우리 몸이 건강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러나 사도 바울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 가정이 다 평안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 이 가정에 베푸신 축복입니다.
    우리 가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의 경우는 이 가정에서 오는 기쁨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종일 일하고도 평안히 들어 와 쉴만한 집 일정한 가정이 없이 평생을 살았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울은 일생동안 나그네로서 이곳 저곳을 방랑하며 육신적으로도 평안히 쉴 곳이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도 바울의 감사한 생각과 생활이 어디서 생겼습니까?
    그것은 밖이 아니라 그 속에 있었습니다.
    그의 처한 환경이나, 그의 건강이나, 그의 가정이나, 그의 재산이 나, 그의 명예나, 그의 지위나, 그의 성공이나 그런 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의 감사생활은 그 속 깊은 심령 속에서 우러나왔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대로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인하여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말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 은사가 무슨 은사였을까요?

    첫째로 그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되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신앙은 말하자면 그의 삶의 뿌리요, 그의 감사는 거기서 자란 나무에 맺는 열매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뜻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받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새 생명의 복을 깨닫게 되고, 성령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망극하신 은혜를 받은 다음에 바울은 외쳤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다시 말하면 바울은 그리스도를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구속과 해방의 기쁨은 언제든지 그로 하여금 이 은혜를 감사하여 보답하려는 감사의 생활로 변하게 한 것입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의 감사는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언제나 자기 자신과 함께 계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 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육에 속한 자기는 죽었습니다.
    그 대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속에 살아 계신 것을 항상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4:18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살아 계신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사도 바울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중해에서 큰 풍랑을 만났었습니다. 사실 그 배에는 바울뿐만이 아니라 로마 군인들과 뱃사람 그리고 로마로 호송되어 가는 많은 죄수들이 있었습니다.
    이 배에 타고 있었던 사람은 276명이나 되었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은 그 대로 있어서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진 절망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이 풍랑의 와 중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망 중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고 있는 한,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가 계속되고 있는 한 풍랑 은 두려워 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풍랑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풍랑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풍랑 만나 절망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안 심하십시오. 우리는 마침내 이 풍랑을 극복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의 사명도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의 상황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편에 서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풍랑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하늘을 바라보시겠습니까?
    찬양을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바울처럼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님께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4:13절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현재에 자기와 같이 계셔서 간단 없이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므로 풍랑을 만날 때도, 핍박을 받을 때도, 돌에 맞을 때도, 파선을 당할 때도,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었습니다.
    언제든지 주님의 능력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을 당할 때 사도 바울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밖에는 할 것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다 이와 같은 믿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에서 구속을 받으셨습니까?
    우리가 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하시는 것을 아는 이 새로운 믿음, 참 믿음, 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도 순경이나, 역경이나, 괴로울 때나 평안 할 때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감사로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주를 위해서 무슨 열매를 맺든지 열매를 맺는 사람일수록 감사한 마음이 더 많이 있습니다.
    주를 위해서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다면 그 사람은 감사한 마음이 더 많습니다. 사도바울은 항상 빛나는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우리를 위하여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는 것을 분명히 알고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조금 환난을 당하지만, 이 세상에서 내가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지만, 이 모든 것은 하늘나라의 큰 영광을 더하게 하는 것이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사실 감사는 믿음의 척도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마는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모릅니다.
    사람들은 괴로우면 감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건강할 때는 감사해도 병이 나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점점 자라나면 평안할 때도 괴로울 때도, 건강할 때도 병들었을 때도, 성공해도 실패해도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는 우리 믿음의 척도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그리스도의 신앙에 들어가게 될 때는 문자 그대로 성경 말씀처럼 모든 일에,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또한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 계셔 나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사도 바울과 같은 은혜를 받아서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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