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14:01-09/ 옥합을 깨뜨려서
  • 조회 수: 251, 2013.10.29 07:27:00
  • 오늘 뜻깊은 그리고 감격스러운 감사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언제인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만, 이렇게 일년에 한 번씩 특별한 주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감사와 감격이 없는 신앙생활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걷는 나그네 생활과 같다고 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만남」지를 받아보시면 “감사절의 유래”를 보시겠습니다마는 17세기에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102명의 성도가 온갖 역경과 고생 끝에 미 대륙에 건너가 거기서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추위와 본토 인디언의 위협, 굶주림과 질병의 시련 속에서도 농사를 하여 1623년의 첫 수확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감사한 것뿐이었고, 감격스러운 일 뿐이어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뜻을 살려 전 세계의 교회가 그 해의 추수를 하나님께 감사하는 뜻으로 특별 감사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감사의 예배는 감사와 감격으로 하나님께 정성어린 예물을 드리며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주님의 사랑을 받은 한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모습입니다. 하루는 하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만찬에 초대하여 예수님께서 그 바리새인의 집에 가셔서 식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죄 많은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이미 동리에서 소문난 손가락질 받는 더러운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어느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거기에 찾아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주 비싼 향유 기름을 넣은 옥합을 준비해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와서 그가 준비하여 가지고 온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발 곁에서 울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닦으면서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며 거기에 향유를 발랐습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인은 이 광경을 옆에서 보고 “아, 이 사람이 참 예언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인이 어떤 여인인 것을 알 터인데, 저렇게 소문난 더러운 여인이 접근해도 가만히 계실까? 혼자 의아한 생각을 가지며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바리새인의 생각을 벌써 아시고 그에게 말씀했습니다.
    “시몬아, 내가 내게 할 말이 있다.”
    “선생님, 말씀하십시오.”
    “한 돈 놀이꾼에게 두 사람이 빚을 졌어. 한 사람은 5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또 한 사람은 5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이 다 형편이 갚을 수 없이 딱하기 때문에 불쌍해서 둘 다 탕감해주고 말았다. 그러면 두 사람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했겠느냐?”
    “그거야 의례 많은 것을 탕감 받은 사람 아니겠어요?”
    “네 말이 옳다” 그러시면서
    “이 여인을 보느냐? 내게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내게 발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인은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칼로 닦았다.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않았으나 이 여인은 이 방에 들어와서부터 쉬지 않고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지만, 이 여인은 내 머리와 발에 향유를 발랐다. 이 여인의 옥합을 깨뜨린 것은 그의 모든 정성을 다 드린 것이다. 이 여인의 많은 죄가 사해졌다. 그것은 그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적게 사함을 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하느니라.”
    “온 세상 어디에 가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한 일도 전해서 저를 기념하게 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 여인의 아름다운 행동은 오늘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이름 모를 이 여인의 사랑과 헌신을 봅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믿고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에 대하여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을 극진히 사랑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함을 받아서 다른 사람이 볼 때 그가 주님을 위한 헌신의 생활은 미친 사람과 같이 보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소유한 것을 만족하게 여겼고 그의 온 몸을 불살랐고 그의 전 생애를 관제와 같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옥합을 깨뜨려서 부었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주님께 헌신할 수 있었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을 사랑하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께 온 이 여인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예수님께 끌려 왔던 여인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이 여인은 더러운 죄를 지었으므로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당장 돌에 맞아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자기가 사는 것은 자기의 삶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있는 삶인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예수님이라면 아까울 것 없이 자기의 모든 것을 다해서 헌신한 것입니다.
    동리의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 싸늘한 눈초리도 느꼈습니다. 가는 곳마다 자기를 냉대하는 설움도 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죄 사함을 받고 새 사람이 된 체험을 감격해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익숙히 아는 감사의 시 가운데 시편 116편은 매우 유명합니다. 어느 무명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쓴 감사의 시입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란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가 생존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 구원을 체험하고 감격한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결단이 따르는 것입니다. 헌신이 없는 감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 여인은 매우 값진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이렇게 비싼 것 아마 팔면 300데나리온 이상 받을 것인데(그 당시 노동하는 사람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품팔이 하는 사람의 일년 수입에 해당하는 값진 기름을 순간에 없애버리는 것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모두가 아깝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사건은 바리새파 사람 시몬의 집에서 생겼습니다(예수님에 의해서 문둥병이 고침을 받은 사람의 집이었습니다. 이미 고침을 받았지만 아직도 문둥이라고 부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손님이 오시게 되면 세 가지 일을 했습니다.
    하나는, 주인은 손님의 어깨에 손을 얹고 평화의 키스를 하였습니다. 오시는 손님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밖에서 들어오는 손님에게 시원한 물을 준비했다가 손님의 발에 끼얹고 닦아주며 손님을 위로하는 것이 주인이 손님에게 지켜야하는 예의였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좋은 냄새가 나는 향료를 태우거나 향수를 손님의 머리에 몇 방울 떨어뜨리는 것이 중요한 예의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그의 최선을 다해서 예수님을 맞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어 하던 차에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눈물로 발에 적시고 머리털을 풀어 씻고 발에 입을 맞추며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앞에서 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 뒤에서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얼굴도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자기의 지성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 여인의 헌신에서 배우는 바가 큽니다. 이 여인은 자기 죄에 대해서 깊이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뒤에서 울었습니다. 눈물이 온 얼굴을 적시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넘쳐흘러 예수님의 발에까지 떨어져 예수님의 발을 적셨습니다. 아름답게 꾸몄던 이 여인의 머리를 풀어 타올 대신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이 여인은 전에 범한 죄에 대한 슬픔과 지금 주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기회를 가져 자기의 상한 마음이 치료받게 된 것을 생각할 때 감겨스러운 눈물이 함께 섞였다고 봅니다. 더구나 이 여인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기쁨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었고 사랑의 경배로 발에 입을 맞추었고 정성의 기름으로 머리에 부었습니다.
    참으로 주님께 회개하는 사람은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며 사랑합니다. 따라서 주님은 언제나 온전히 정성으로 드리는 예물을 받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너무나 상반되는 두 가지 마음의 자세를 가진 사람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시몬입니다. 그는 주님을 필요하게 느끼지도 않았고, 그래서 사랑도 없었고, 따라서 용서도 받지 못했습니다. 시몬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은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의로운 사람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무런 감격도 감사도 있을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사람의 성품 가운데 하나는 자만심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만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찾아온 이 여인은 주님이 그렇게도 필요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했고 그에게서 받은 은혜가 컸기에 감격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신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1장 15절에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면서 이런 나를 충성되이 여겨 귀한 직분 맡겨주신 것이 감격스럽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감격이 있습니까?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던 더러운 이 죄인을 예수님께서 구속해서 새 사람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된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얼마나 감사합니까? 무엇으로 이 놀라운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죄 많은 여인은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께 부었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 나의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붓는 감사와 감격 그리고 헌신의 예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오늘 우리를 향해서 “내가 네 예물을 받았다. 그리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는 말씀을 다 들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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