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하며 감사하며(엡 5:15-21)
  • 조회 수: 289, 2013.10.29 20:30:37
  •  오늘 읽은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보낸 편지의 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이 아시겠지만 이 편지는 바울이 옥중에 갇혀 있으면서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의 편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대로 그의 편지 첫 부분에는 기독교의 교리 적인 면을 언급하고 다음에는 기독교의 실천면 그러니까 생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 4장 17절에서부터 다룬 그리스도인의 생활 면에서 결론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옛 사람과 새 사람, 어두움의 생활과 빛의 생활, 이교도(異敎徒)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대조시켜서 말하자면 전 날의 믿음 없이 살던 때의 일을 다 버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되었으면 새 사람답게 살라는 권면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새 사람의 생활이란 지혜있는 자가 되어 절제 있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 같이하여”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지혜는 세상 적인 지혜를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16절에 “세월을 아끼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지혜있는 사람의 첫째 할 일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으면 제일 먼저 시간을 가치있게 보내는 법입니다. 여기 “아끼라” 하는 낱말은 바울의 편지에만 나타나는 낱말인데(갈라디아 3장 13절, 골로새 4장 5절) 그 뜻은 “속량하여 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적인 방해와 향락에서부터 건져낸다는 뜻이 있습니다. 

     왜 세월을 아끼라고 합니까? “때가 악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때가 될 때 세상에 악이 성해진다는 것은 성경이 가리키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때에 모든 기회를 악과 대항하여 선하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하십니다(17절). 그것이 곧 하나님을 본받는 길이며 천국 시민의 자격인 것입니다. 어떤 사본에 보면 여기 “이해하라”는 명령형이 현재 분사형으로 나와 있는 곳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면서”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8절 이하를 보세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지혜있는 시람, 새 사람, 그리스도인의 생활 요소로서 시간을 아끼라고 말한 후에 둘째 요소로서 육적인 절제를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여기서도 옛 사람과 새 사람을 대조합니다. 옛 사람은 술취한 자요 새 사람은 성령에 취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한 곳에 취하기는 취하는데 술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고 합니다. 왜요? 술취하면 자연히 방탕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당시 에베소는 번화한 도시로서 방탕한 생활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고 술에 취하여 다니는 것이 그 사회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들은 신들 앞에 예배할 때 술에 취하여 춤을 추었고 에베소의 부인들은 로마의 장군이 입성할 때 그 수레 앞에 모여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술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 상을 주었고 이런 경기에서 술 마시다 죽은 사람이 3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술과 방탕의 세대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절제를 교훈하신 것입니다. 전에 철인 다이오지니스에게 누가 술을 주었더니 그는 이를 받아 땅에 부었습니다. 왜 그렇게 낭비하느냐? 묻는 사람에게 “술과 내 몸을 다같이 낭비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혹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성경에도 디모데에게 술을 조금씩 하라 했고 교회직분을 택할 때도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술에 이박하지 아니한 사람’을 택하라 하였고 오늘 본문만 해도 술취하지 말라 했지 술마시지 말라 한 것 아니지 않느냐?”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 중에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술마시면 지옥 간다’는 내용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령 구약 잠언 23장 29절 이하를 보세요. “재앙이 뉘게 있느냐? 분쟁이 뉘게 있느냐? 원망이 뉘게 있느냐?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냐? 붉은 눈이 뉘게 있느냐?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찌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며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하였습니다. 

     재앙과 근심, 분쟁과 원망, 까닭 없는 창상과 붉은 눈이 뉘게 있어요? 술에 잠긴 자 다시 말하면 술 때문에 오래 지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사이 계엄 하에 있기 때문에 그 동안 통금시간을 10시부터 하니까 술하는 사람들이 집에 일찍 돌아와 부인들이 좋아했습니다. 한 시간 더 늦게 11시부터 통금이 되니까 11시 10분전에 집에 들어옵니다. 이제 12시부터 하게 되면 12시 10분전에 집에 들어오게 될 겁니다. 왠지 아세요? 술마시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술친구와 만나서 마시다 보면 1차 2차 어떤 때는 3차까지 하고 나면 시간이 다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라고 했는데 요샛말로 하면 소위 ‘칵테일’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고급 양주를 자기 입에 맞게 이것저것 썩어 마시는 일입니다. 이 혼합 주는 아주 입에는 맞지만 더 취하고 뇌신경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한다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몸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자기 입맛을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해독이 얼마나 큽니까? 술먹고 음란한 일하고 술마시면서 뇌물 주고받습니다. 술마시고 교통사고 냅니다. 술마시고 기계사고 냅니다. 술마시고 죄없는 아내 때리는 남편이 얼마나 많습니까? 술로 말미암아 파탄된 인격, 파탄된 가정, 파탄된 사업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잠언 23장 31절에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댁엘 가보면 교회는 다닌다면서 응접실 진열장에 양주병을 줄줄이 진열해 놓은 것을 보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서 자랑스러운 것은 못됩니다. 

     탈무드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노아의 홍수 후에 노아가 포도원을 만들었는데 그때 마귀가 몰래 와서 포도나무 밑에다 양과 사자, 돼지 그리고 원숭이의 피를 비료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양처럼 순하고, 다음에는 사자처럼 포악해지고, 다음에는 돼지같이 미련해지고 마지막에는 원숭이같이 별의별 짓 다 한다고 합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말씀합니다. 
     지금까지는 소극적인 면으로 세상에 술에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적극적으로는 성령의 충만을 받고 찬송하며 감사하며 살라고 권면하십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본문을 현재 수동 명령형으로 늘 받으라는 뜻입니다. 그릇의 뚜껑을 열어 놓고 빗물을 받는 것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충만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은 후에 간단없이 반복하는 상태이며 계속적으로 받아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 19절 20절에 우리가 늘 해야 할 일을 밝히 말씀합니다. “시와 찬미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였습니다. 술취한 사람은 유행가나 부르지만 그리스도인은 찬송하라고, 술취한 사람은 방가 끝에 서로 욕하며 원망하지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한 마디로 찬송하며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찬송과 감사를 빼버리면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도 같을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마음 속에 계실 때 우리 입에는 자연히 찬송이 나오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4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시편 103편을 쓴 다윗도 그 첫 절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다시 말하면 “내 마음 속에 있는 것들아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하는 뜻입니다. 

     옛 성도들은 입술로 찬송을 부를 뿐더러 마음으로 또한 찬송을 불렀습니다. 입술만의 찬송은 부족합니다. 마음 속에 항상 찬송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입술로는 찬송을 잘 부를 수 없는 분들도 우리 가운데 많이 계실줄 압니다. 노래에 별로 소질이 없는 분, 또 예수 믿기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분 입술로 찬송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으로는 누구든지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그 마음 속에 찬송이 충만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 해 전에 어느 할머니가 계신 댁을 심방하였습니다. 그런데 같이 가시는 분이 그 할머니에 대해서 소개하기를 “이 할머니는 찬송가 600장을 다 부를줄 아시는 분이예요.” 그래서 저는 속으로 음악을 전공하신 분인가? 나는 목사지만 찬송가 중에는 익숙하지 못한 것들이 더러 있는데 도대체 그 할머니는 어떻게 찬송을 다 척척 부를 수 있을까? 궁금한 생각을 가지고 그 댁엘 가서 같이 예배를 드리며 찬송할 때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저는 그때 그 할머니가 어떻게 600장이나 되는 찬송가를 아무 것이나 척척 부르는지 그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 할머니는 찬송가를 펴시면 몇 장이던 상관없이 가사를 읽으면서 곡은 어느 찬송이나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곡으로 부릅니다. 

     그러면서 이 할머니는 우리가 보통 성경을 보통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을 하는 것처럼 이 할머니는 찬송가를 시간 나는 대로 1장부터 차례대로 통창(通唱)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곡을 다 알아서 곡에 맞게 부르면 더 좋을 거예요.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으면 이 할머니처럼 해도 상관없어요. 마음으로 찬송하면 됩니다. 

     여러분 마음에 찬송이 있으면 육신의 건강에도 유익합니다. 잠언 17장 22절에 “즐거운 마음은 양약이로되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하였습니다. 교회에 매 주일 출석하면서 찬송을 열심히 부르는 사람은 심장병, 간경화증, 결핵, 만성 기관지염, 자동차 사고, 자살 같은 것이 적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여러분이 찬송을 열심히 부릅니다. 외국 분들이 손님으로 오셨다가 예배를 같이 드리고 나가면서 하시는 말씀은 성도들이 같이 찬송을 부르는데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말씀을 듣습니다. 여러분, 우리 찬송을 부르실 때 좀더 열심히 부릅시다. 입술로만 아니고 마음으로 찬송 부릅시다. 

     그리고 마음에 찬송이 있으면 무슨 일이나 잘됩니다. 마음으로 찬송하며 공부하면 공부가 잘됩니다. 이런 마음으로 시험을 치르면 시험도 잘 치를 수가 있습니다. 부인들이 찬송하며 집안 일을 보면 청소도 잘되고 찬도 맛있게 되고 빨래도 잘되고 다림질도 잘되고 어린애가 젖을 먹여도 건강에 좋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노래하면서 일하게 되면 능률이 오르고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가 있습니다. 마음으로 찬송하면서 차의 운전을 하면 교통사고가 적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찬송하며 공무원 일을 보면 더 국민들에게 친절하게 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온 식구가 찬송하는 마음이 있으면 가정이 화평하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万事成)이란 옛 말은 의미가 있습니다. 집안이 평화스러워야 만사가 잘 됩니다. 장사하는 분들도 마음으로 찬송하면서 장사하시면 장사도 잘될 줄 압니다. 이런 마음은 언제나 그 얼굴에 반영이 됩니다. 화평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물건도 잘 팝니다. 
     뿐만 아닙니다. 찬송하면 마음이 담대해집니다. 찬송하는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불안도 근심도 걱정도 사라집니다. 오직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모든 면에서 봉사도 잘합니다. 
     어떤 책임이든지 기쁨으로 감당하게 합니다. 교회에서 뿐 만 아닙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어떤 면에서든지 수고를 아끼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자연히 이런 분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주님에게로 이끕니다. 전도를 잘 합니다. 백합화의 향기와 같아서 어디서나 그 향기를 뿜게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찬송하며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특색이 무엇입니까? 찬송할 뿐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계 어느 문헌보다도 “감사”란 말이 많은 책입니다. 일찍이 로마의 유명한 문인 키케로는 말하기를 “감사하는 마음은 최고의 덕일 뿐 아니라 모든 덕의 어머니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야 가정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합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순종하며 열심히 공부합니다. 회사에서는 정직하게 부지런하게 자기의 책임을 잘 감당합니다. 공무원이면 정직하고 충실한 공무원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마음이 어디서 옵니까? 믿음에서 옵니다. 감사한 마음은 믿음과 같이 성장합니다. 처음에는 평안할 때에만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장성하면 역경과 환란 가운데서도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말하자면 문자 그대로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이렇게 감사는 믿음과 정비례합니다. 믿음이 적으면 감사도 적습니다. 믿음이 그저 보통이면 감사하는 마음도 보통입니다. 믿음이 커지면 감사하는 마음도 커집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이 어느 정도나 하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 내 마음 속에 감사한 마음이 어느 정도나 되나 하는 것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언제나 밝은 면을 바라보는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언제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햇빛을 먼저 보시고 그늘부터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령 여기 비가 내립니다. 한 사람은 “아 오늘은 먼지가 없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오늘은 길이 질어서 큰일 났구나” 합니다. 같은 장미를 바라봅니다. 한 사람은 “아, 참 이 장미가 아름답구나” 하고 격찬을 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똑같은 장미꽃을 보면서도 “그 장미 가시가 많군” 합니다. 

     여러분, 될 수 있는 대로 어두운 면을 바라보지 마시고 밝은 면을 바라보는 습관을 가지도록 하십시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캄캄한 밤에도 별을 보고 감사합니다. 검은 구름 위의 무지개를 보고 감사합니다. 슬픔 속에서도 소망을 보고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찬송하고 감사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 전파하다가 억울하게 붙잡히고 매맞고 감옥 깊이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원망하고 불평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밤중에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에 정말 뜻밖에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리고 고랑이 들리고 나중에는 옥사장과 그의 가족이 다 예수 믿고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찬송하고 감사하면 기적이 나타납니다. 

     오늘 특별히 감사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믿음의 권속 하나 하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마음으로 찬송하며 감사해서 우리의 삶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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