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성탄의 의미 (사11:9-11)
  • 조회 수: 182, 2013.04.01 07:34:29
  • (사 11: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 11: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사 11:11)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하루해가 저물어 어두움이 깃들 지라도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아니하는 까닭은 밤이 지나고 나면 동쪽에서 밝은 태양이 힘있고 솟구쳐 오르는 희망의 아침이 오기 때문이며, 아무리 겨울이 춥고 음산하여도 절망하지 아니함은 얼마가 지나고 나면 따스한 봄이 온다고 하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루가 끝나는 종말에만 밝은 태양을 예비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멸망을 당하게 되는 역사의 종말에도 인류에게 희망과 용기와 기쁨과 생명을 항상 예비해 주셨음을 우리는 성경과 세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서 계시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주신 성경이며, 때가 되매 성경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 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성탄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성탄은 인간에게 최대의 소망이며 최선의 대안 이며 최상의 위로라는 사실을 꺠닫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발견한 사 람입니다.

    1. 메시아 탄생의 예언

    오늘 우리가 예배를 시작하면서 신앙고백이라는 순서가 있었으며 그 시간에 우리는 사도신경을 암송하였습니다. 사도신경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립니다 라고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순서입니다.

    그 내용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이러한 고백을 하였을 것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은 종교적인 신화나 제자들이 지어낸 조작극이나 비과학적인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믿는 근거는 그것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에 의해서 오랜 세월을 두고 주도면밀하게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초자연적인 사건입니다.

    인간의 출생은 누구를 막론하고 태어날지 안 태어날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빨라야 열달 이내에 밖에는 더 빨리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을지라도 인간들과 같은 부부 관계가 영원하신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수 천년 전부터 모세(신18:18), 사무엘(행3:24), 다윗(시40:6), 그외 선지자들(눅24:26) 을 통해서 예언되어져 왔습니다.

    그 예언의 내용을 살펴보면 여자의 후손(창3:15), 인간(여인의 몸)에게서(사9:6), 다윗의 왕위를 계승(영적으로)하는 왕으로(삼하7:12), 베들레헴에서(미5:2), 영원한 권세를 가지는 왕으로(단7:12), 공의와 지혜로 통치하시는 왕으로(사9:17), 처녀의 몸에서 탄생(사7:14)되어질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이처럼 예언되어진 대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로 예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사실적이기 때문에 이사야서를 구약의 복음서라고 합니다. 이사야는 주전 6세기경 유다 사람으로 웃시야왕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유대 나라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 쌓여 북쪽 이스라엘처럼 언제 멸망을 당할지 모르는 위협 속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민족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놀라운 약속의 예언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은 그 예언이 좀더 구체적으로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시되 유다 자손 이새의 가문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구체적으로 예언하였습니다.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유대인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현실 불가능한 신화를 거부합니다. 그렇다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은 꾸며낸 신화이든지 아니면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초자연적인 기적이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언은 때가 되니 문학적으로 신학적인 의미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사실로 이루어진 것을 기념하는 날이 바로 며칠 후 우리가 맞이하게 될 성탄입니다.

    그 것이 바로 마태복음 1 장에서 (마 1: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주고받는 약속들은 마치 금도금한 가짜 반지와 같아서 처음에는 번쩍거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퇴색 해버리고 마는 것처럼 지켜지는 것도 있고 말로만 끝나 버리는 것도 있어서 다 믿을 수 가 없습니다.

    그러나 거짓된 것이 아무리 화려해 보일지라도 그것은 마치 때가 되면 시들어 버리는 잡초처럼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역사 속에 소멸되어 버리고 말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는 값진 보석과 같이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갈지라도 그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성육신 사건입니다.

    그것은 결코 기독교인들의 자작극이나 자화 자찬이 아닙니다. 만일 동정녀 탄생이 사기극이라면 어떻게 그 오랜 역사 속에서 살아남아 오늘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구약의 예언의 말씀이 때가 되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더욱 확증하 게 하는 증거들은 그 진리를 믿는 사람들의 변화된 삶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2. 메시아 탄생의 목적

    고아의 비극은 가난이 아니라 부모가 함께 하지 아니하는 그 자체에 모든 원인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피조물된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비극의 궁극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결코 잘못된 정치 구조나 물질의 궁핍 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이 인간을 떠나가 버리고 인간이 단순한 육체적인 존재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입니다(창 6:3, 삼상 16:14).

    무신론과 불신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들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대안을 준비하여 그 때 그 때마다 그의 백성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사 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66:11)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그에 백성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슬픔과 고통 중에서 위로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잘못된 결과를 바로 고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잘못된 결과를 가져다 준 잘못된 원인을 바로 고치는 일이 최우선인 과제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인류가 당하고 있는 고통과 슬픔과 죽음은 하나님의 작품이 아니라 인간의 죄가 가져다 준 재앙이었습니다. 그 죄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서 가장 많이 강조하신 것이 믿음이며 예수께서 하신 가장 큰 일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신 일입니다.

    바로 그 첫 출발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인간의 역사 속에 태어나신 성탄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역사 속으로 임마누엘 하신 것이기 때문에 온 인류가 성탄절을 명절로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이사야 선지는 메시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받게 될 축복을 구체적으로 예언하고있습니다.

    1) 메시아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구현되어 악한 자들이 심판을 받게 되는 정의 사회의 구현입니다.

    (사 11: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사 11: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사 11:5)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어제나 오늘이나 현실 세계는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은 권세자나 부자에게 매달리고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오심으로 세상은 공의롭고 정직한 평등 사회의 구현되고 빈핍하고 겸손한 자가 보살핌을 받고, 이 세상의 행악자는 엄정한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왕들의 악한 통치와 철저하게 대조되는 모습입니다(1:23;3:15;10:1,2).

    2) 메시아의 오심으로 나라와 나라, 개인과 개인은 물론 심지어 짐승세계에 까지 평화가 구현되어질 것입니다.

    (사 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사 11: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사 11: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복된 세계는 미움도, 갈등도, 다툼도 없는 조화의 세계였으며, 푸르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동산에서 이리와 표범, 곰, 사자 등의 맹수들이 어린 양과 염소, 송아지 등과 어울려 놀 수도 있었던 곳입니다.

    그 세계는 또한 동물들이 인간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질서의 세계입니다. 그 날에는 독사조차도 해롭지 않다. 태초의 세계에서 향유되었던 인간과 동물(자연계)의 친화가 그지없이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 대신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바다물처럼 세상에서 창일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 11: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메시아의 오심으로 온 세상 어디를 가도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우주적인 평화가 보장되기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 구속되고 먼저 여호와를 아는 지식, 곧 여호와를 참으로 경외하고(잠 1:7) 온 마음으로 그를 기뻐하며(11:3) 기꺼이 그 앞에 복종하는 지식이 온 땅에 편만하게 퍼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언대로 메시아가 오셔서 그의 통치가 실현될 그날에는 죄악 세상은 마감되고, 적대하던 모든 세력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평화와 공존의 새 세상을 이루지게 된다는 예언입니다.

    성탄절은 이 같은 모든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께서 약속대로 세상에 오신 날이기 때문에 세계 만국 교회가 세계적인 명절로 수 천년 동안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3. 메시아의 탄생과 교회

    성탄절이 그렇게도 축복된 날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점차 그같은 성탄의 기쁨을 상실해 가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지상의 교회와 성도들이 성탄을 크게 기뻐하였었지만 그 회수가 반복되어질 수록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권태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2000년전에 그 예언대로 세상에 오셨으며 지상에는 그를 기념하는 수 많은 교회들과 그를 믿는 수 많은 크리스챤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2000년 전 예언대로 오셨다면 그 약속된 평화도 세상에 이미 이 루어져야 하는데 왜 20세기가 지나도록 이 땅위에는 여전히 전쟁과 대립과 갈등과 미움으로 가득한 가 하는 것입니다.

    (사 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사 11: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사 11: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된 평화가 아직도 지구 도처에는 여전히 전쟁과 죄악과 죽음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아직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러나 회의하거나 의심하지 마시고 더욱 믿음의 눈으로 성경을 보고 세계를 보고 역사를 보고 미래를 소망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진실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입니다. 육신의 부모도 자식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한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어찌 약속을 지키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과 점진적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과 지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하였으나 때가 되면 미래에 반드시 이루어질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동정녀 탄생은 2000년 전에 이미 이루어진 약속입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루시겠다고 하는 평화와 무궁한 번영에 대한 약속은 점차 이루어져 가고 있으며 마침내 주님의 재림을 통해서 완성되어질 약속들인 것입니다. 아직 이루어지 아니하였다고 해서 결코 국회위원들의 선거공약과도 같이 공허한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질 가능성은 이미 그와 같은 일이 인간이 범 죄하기 전 에덴 동산에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이미 경험했던 일이기 때문입 니다.

    (사 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예수께서 이미 200년 전 세상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와 같은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주님의 책임이 아니라 무엇보다 죄에 노예가 되어있는 타락한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 새 사람이 되어지는 새 창조의 역사가 무엇보다 먼저 선행되어져야만 한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 점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주어지는 새로움을 넘어 먼 미래의 종말에까지 확대되어갈 것입니다. 그 메시야 왕국의 평화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계 21:5)는 요한 계시록에 그림처럼 생생하게 기록되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 미래에 완성될 이 새로움은 이미 하나님께서 최초의 낙원 상태의 회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확신을 더해 주는 것이 바로 성탄에 대한 올바른 믿음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혼자서 다 이루시는 약속이 있는가 하면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그의 백성들과 더불어 함께 이루어가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어느 누구도 개입됨이 없는 주님의 단독 사역이지만 그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되어지게하는 일은 하나님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통해서 더불어 이루어가시는 사역입니다.

    성탄절의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이새의 가문에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아기 예수가 태어나게 할 수 없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단독 사역입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 땅위에 이루어지게 될 평화와 정의 구현이라는 약속은 그의 몸된 교회와 그의 백성된 우리 성도들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 나가시는 과제라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 11: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결 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들이 세상에서 때로 죽을 것 같고, 망할 것만 같은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라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세상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절망하지 아니하고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서쪽으로 해가 기울면 어두움이 덮이고 풍요롭던 가을이 가고 눈보라가 몰아닥치는 한 겨울이 몰려오는 알면서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까닭은 내일이면 동쪽에서 밝은 태양이 떠오르고, 몇 달 후면 새 봄이 어김없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적으로는 두 번의 대전을 치렀고, 국가적으로는 왜정 36년과 6.25 사변이라는 쓰라린 상처를 경험하게 하였던 20 세기를 보내며 새로운 천년 21 세기를 맞이하는 문턱에서 성탄절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눈이 오는 한 겨울에도 양지 바른 곳에는 눈이 녹아 대지가 드러나며, 아무리 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때가 되면 추위는 물러가고 봄이 오는 것처럼 만사가 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사 11: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복음이 들어가기 전에는 우상, 무신론, 전제주의 통치 밑에서 억압받던 많은 나라와 백성들이 기독교를 받아드린 후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얻었습니다. 이웃과 반목하고 사단에게 억눌려 죄에 노예가 되어 사망의 길로 달려가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함을 얻고 죄에서 자유 함과 평화를 얻고 기쁨 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사람, 어느 가정,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다 약속된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돌처럼 굳어 버린 인간들이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여전히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성탄의 주님을 내 마음에 모셔 드림으로 내가 어떤 형편에서든지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나의 마음속에 임해야 합니다. 그 평화를 혼자서만 즐기고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누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을 증거하여야 하고 내가 속한 가정과 직장과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실제의 삶속에서 정직과 진실함으로 실천하는 일을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실천하는 구체적인 삶이 동반되어져야 합니다.

    그러한 개개인의 연대와 참여가 가정을 회복시키고 교회를 회복시키고 사회와 민족과 세계를 회복시켜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약속하신 성탄의 축복이 과거 에덴 동산에서 이룬 것처럼 미래 천국에서 이루실 것처럼 현실 세계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진정한 성탄 축하는 어떤 것일까요? 만들어진 평화만을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성탄의 주님을 내 마음과 가정과 교회 안에 주님으로 영접하여 평화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반목과 갈등과 미움을 버리고 성탄의 주님을 본받아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고 더 나아가서 성탄의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성경의 예언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구현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는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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