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01:18-25/ 임마누엘
  • 조회 수: 809, 2013.10.23 22:11:11
  • 1975년 기쁜 성탄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와 기쁨과 축복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본문의 말씀은 구약 이사야 7장 14절에 예언한 말씀인데 오늘 본문 마태복음 1장 23절에 인용이 되었습니다 임마누엘은 히브리 말인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보면 여러 사람의 이름을 볼 수 있는데 그 이름에는 모두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동양적인 습관인 것 같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자녀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무슨 특별한 의미를 생각지 아니합니다. 그저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을 딴다든가 할아버지 혹은 외가의 이름을 따서 아이들의 이름을 짓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 자체에 무슨 의미가 특별히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동양적인 습관은 그 이름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나 조부모가 애들의 이름을 지어줄 때 좋은 이름을 짓느라고 무던히 애씁니다. 제 이름은 저의 조부모가 지어주셨다고 하는데 아침 조, 준마 준, 말하자면 아침 준마같이 되라고 이렇게 이름을 지어주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예수님 나시기 수 백년 전부터 미리 이름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이 이름에서 예수님의 본성을 알 수가 있습니다.
    구약 이사야 9장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하였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여기에 나타난 이름에 꼭 부합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이름을 예수라 부른 것도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온 백성을 그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는데 예수 이상 더 좋은 이름이 없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것을 부르건 저것을 부르건 그의 위대한 역사를 이룩하는 데 적절한 이름인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을 읽어보아도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1장외에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다른 곳에 쓴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그의 사도들이 그를 임마누엘 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록을 통해서는 이와 같은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나신 사실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함께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 되신 것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오신 날이 크리스마스입니다.

    구약을 읽어보면 모세가 호렙산 기슭에서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는 목자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가시덤불에 불이 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불은 붙는데 가시덤불이 타지는 않는단 말이에요. 이상하게 생각한 모세가 그 불붙는 곳 가까이 갔더니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시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 것을 모세에게 말씀하시면서 그 때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모세의 동족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서 구원하라”고 하는 큰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말을 할 줄을 모릅니다. 저는 담대하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이런 큰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때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는 모세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고 담대한 마음으로 애굽으로 돌아가서 그의 백성,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내는 위대한 과업을 수행한 것입니다.
    모세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 젊은 사람 여호수아가 모세를 계승하여 이스라엘 민중을 영도하는 큰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야만 하였고 하나님이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해야 하는 일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때 청년 여호수아의 마음은 여러 가지로 무거울뿐더러 겁이 났습니다. 도무지 자신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는 이미 가나안 땅에 탐정으로 40일간을 다녀왔고 그 땅의 형편이 어떤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갔던 다른 사람들은 다녀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보고를 하는 것을 듣고 소란해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안정시키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약속한 땅을 능히 점령할 수 있다고 격려하던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런 중차대한 책임을 맡게 되니 어떻게 큰 일을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도 “두려워하지 말라 그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일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 임마누엘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하나님께 여호수아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무사히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약속한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부르실 때에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모태로부터 너를 택하였다. 너는 일어나서 내가 네 입에 주는 모든 말을 내 백성에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예레미야도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 나이가 어립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때 하나님은 주저하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임마누엘이라는 말씀입니다.

    임마누엘! 이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여기 천사가 마리아에게 장차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것을 전하면서 이제 그 이름을 예수라 하겠고 또한 이사야의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세와 함께 계시고 여호수아와 함께 계시고 예레미야와 함께 하시던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시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와 함께 계시다고 하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오셨습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영원부터 계신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 물질,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갈 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제약되는 이 육신, 약하고 썩을 인간이 되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이상을 초월하는 사건입니다. 이 사실이야말로 신비 중의 신비요, 오묘 중에도 오묘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기독교 사상의 중심이 되는 큰 신비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아멘” 하고 믿음으로 이 사실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노력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는 하나님의 친히 찾아오신 사실을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기 “함께 계시다”는 본문의 뜻은 ‘장막을 친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광야 생활을 할 때에 천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 중에 아주 큰 천막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을 성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성막 위에는 낮에는 구름이 항상 임해 있었고 밤에는 구름이 빛으로 변해서 불기둥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성막 위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올 때에 이렇게 하나님이 장막 가운데 친히 함께 계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주시고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옛날의 한 그림자입니다. 때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장막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광야같은 세상에 친히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같이 주무시고 같이 일어나시고 같이 잡수시고 같이 마시면서 같이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병자를 고쳐주시고 슬픈 자를 위로해 주시고 죄 있는 자를 사해 주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마지막에는 만민의 죄를 대속해 죽으시고 사흘만에 또한 다시 사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임마누엘의 주님이십니다. 믿는 사람들과 제자들을 향하여 늘 하신 말씀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살아계신 주님께서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은 우리가 약할 때 힘이 되십니다.
    임마누엘은 우리가 불안할 때 평안이 되십니다.
    임마누엘은 우리가 길을 잃을 때 안내자가 되십니다.
    임마누엘은 우리가 죽을 때 영원한 생명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임마누엘 주님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영접할 때 인생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주님의 오심을 축하하는 이 크리스마스에 임마누엘 주님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접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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