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비스러운 성탄 누가복음 1:26~38
  • 조회 수: 197, 2013.11.17 20:30:34
  • 사람들은 이 땅에 태어나는 날을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그래서 생일이 가져다 주는 의미는 남다른 감회를 갖게 됩니다. 100일이 지나면 백일잔치, 일년이 지나면 돌잔치, 그러다 60이 되면 회갑잔치, 70이 되면 고희 잔치를 하며 기뻐합니다. 우리 주님도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 역사작인 사건이기에 생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생일이 아닙니다. 오늘은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며 경배하는 성탄절입니다. 왜 성탄일이라 하지 않고 성탄절이라 할까요? 우리 예수님의 탄생 년도와 날짜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유인즉, 1세기는 그리스도인들의 핍박으로 당시는 생일보다 사망일을 더 기념하는 풍습이 있어서 크리스마스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세기 당시 만연되었던 이단적 종교인 마니교 교리에  대항하기 위하여 주님의  생일을 성대히 경축하게 되었고, 4세기에 들어와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켰는데 12월 21일은 낮의 길이가 가장 짧았다가 차츰 길어지는 날이요, 그 후 첫 주일인 12월 25일로 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하지 않기에 성탄일이라고 하지 않고 성탄절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또 크리스마스를 X-MAS 라고도 하는 것은 "X"는 그리스어의 'Χριστός(크리스토스)"의 머리글자로써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X-mas의 "X"는 영어 알파벳의 "X"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X-MAS를 "액스마스"라하면 무식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세에 사용하던 영어 고어 "masse"(미사)를 붙인 것으로 주님 탄생하신 날 예배를 들인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던 것입니다. 

    올해 성탄절은 경제적 위기 때문인지는 모르나 차분하고 조용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이 거룩한 날을 성탄의 은총을 깊이 되새기는 날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국의 10대 뉴스, 세계의 10대 뉴스.... 이러면서 올해 가장 큰 소식이 무엇인지를 가려냅니다. 제가 볼 때 올해의 10대 뉴스는 독재자의 죽음이 1,2위를 다툴 것 같아요. 리비아 카다피, 북한 김정일.... 그 중에서 아마 독재자 김정일의 죽음이 1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발표하는 뉴스들을 보면 희망의 뉴스는 별로 없고 거의가 우울하고, 걱정하게 만드는 뉴스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그것은 좋은 일은 뉴스거리가 안 되는 이유도 있으나 인간 만사 참된 기쁨의 소식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 세상에 빅 뉴스는 다 이렇게 우울하고 좋지 못한 소식뿐일까요? 

    제가 이번 주에 아주 당돌한 꼬마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이 꼬마가 뭐라고 물어보느냐 하면.... 자기 아빠가 그러는데 ‘만약 이 세상에 하나님이 있다면 왜 세상이 평화가 없고 나쁜 일이 많이 일어나느냐....?’ 고 했다면서 저 하고 제 아내에게 따지듯이 묻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질문을 옆에서 듣고 초등학교 4학년 아이에게 어떻게 쉽게 설명해야 할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애야.... 세상이 이렇게 평화롭지 못한 것은 하나님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너무 욕심이 많기 때문이야.....’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더 설명을 하려다가 시간이 없어서 그만 두었는데, 제가 이 꼬마에게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한 아이가 자라나면서 못된 짓을 많이 해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이 아이가 감옥에 들어간 것이 누구 책임일까요? 이런 질문을 하면 철이 들지 않은 자녀는 그것이 다 부모의 책임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를 제대로 키웠으면 자기가 이렇게 됐겠느냐... 이러면서 부모를 탓하겠지요. 물론 부모가 잘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자기 책임입니다. 세상에 나쁜 부모 밑에 나쁜 자녀들도 많지만 좋은 부모 밑에서도 나쁜 자녀들 많습니다. 그리고 사실 나쁜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다 자기 자식에게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부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철이 없다 보니 부모의 마음을 모르고 부모를 거스리고, 불순종 하고, 나쁜 짓을 하고.... 그러다가 그만 감옥에 간 것입니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부모가 이 감옥 간 자식 뒤처리 한다고 눈물 빼며 바빴겠습니까? 

    이 세상이 평화가 없고 불행한 일이 많이 생긴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다.... 이러는 것은 인간의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말입니다. 인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려는 인간의 얄팍한 술책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제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 세상이 벌써 멸망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 지구상에 핵무기들이 있는데 이 핵무기들은 지구를 20번 파괴하고도 남음이 있는 엄청난 것들입니다. 이게 미국에도 있고,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그리고 지금은 북한에도 있습니다. 이런 무기를 가지고도 한 번도 터트리지 않고 60년 넘게 이 지구를 유지해 온 것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평화가 없다.... 이게 아니고,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나마 세상이 이렇게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겸손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겠지요. 하나님이 나쁜 짓 하려고 하면 못하게 막으면 되잖아요. 하나님이 막으면 되는데.... 그러면 이건 또 자유에 관련된 문제가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이나 SNS.. 이런 데서 하도 익명으로 정부나 개인을 터무니없이 비방하고 그래서 정부가 이걸 통제하겠다.... 그러니까 그만 언론의 자유.... 이러면서 또 벌떼처럼 일어서는 겁니다. 나쁜 소리, 좋은 소리... 이것은 개인이 구별할 일이지 정부가 그걸 통제하면 안 된다.... 이러는 거죠. 부모들도 자식이 말을 잘 듣지 않으니까 어떨 때는 폭압을 쓰고 싶은데... 그러면 그건 나쁜 부모가 되버리는 거죠. 아빠는 독재자야, 아빠는 말이 안 통해.... 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부모라는 것은 참으면서 철이 들 때까지 뒤치닥거리 하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이 구약시대 내내 그렇게 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안 되니까 이제 인간의 죄라는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바로 이게 성탄절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소식이 없는 이 암울한 세월에 우리는 세상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이 성탄절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주의 나심을 전하는 성탄절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로 성탄의 소식입니다. 우리는 이 성탄절을 참 밋밋하게 보내지만 성탄절은 여러 가지로 신비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저는 세 가지 측면에 있어서 성탄의 신비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성탄은 수 천 년 전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기에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예수 탄생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기록되기 이전부터 성탄은 예언되었고 그것을 성경의 예언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3:15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하셨습니다. 여기서 여인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은 동정녀 탄생으로 태어날 아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경의 사회적 배경에서는 여자의 후손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여자는 모여 있는 사람의 숫자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그런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남자의 후손은 되도 여자의 후손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똑똑하게 여자의 후손이라 그렇게 표기한 것은 남자와의 관계에서 태어난 자연인이 아니라 바로 동정녀 탄생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심오한 예언이 창세기 3장 15절에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생 예언들이 있습니다.  든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여인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여인의 후손이라고 표현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 탄생은 창세기 3장의 기록에 나옴을 보아 적어도 몇 천년 전 예언을 통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또 창22장 17절에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여기서 “씨”란 단어는 복수가 아닌 단수 즉 한분을 의미합니다. 그분이 오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 한분이십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예수님만이 주인공이십니다. 구약성경에 그리스도 예수라는 이름이 올라있지 않지만 그러나 실상은 전체가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주전 1500년대에 기록된 창세기 출애굽기 모세5경도 예수님에 대해, 그리고 그 후대 1000년 전 다윗도 예수님에 대해, 그리고 700년 전의 이사야 성경도 전부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한번 이사야 성경을 읽어볼까요? 이사야9장 1~7절입니다.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그 예언대로 예수님은 오셨고 결국 예수님의 성탄은 어쩌다 이루어진 사건이 아닌 역사적 사건이며 신비의 사건임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4000년, 2000년 전에 예언이 실제로 일어난다!" 이것이야 말로 신비 아닙니까? 우리나라 역사의 700년전이면 언제입니까? 고려 말이나 조선 초기입니다. 마치 세종대왕 때 예언한 것이 오늘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들 기적이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성경을 보세요. 어찌 그 예수 탄생이 신비가 아니라 할 수 있나요? 그런데도 그것을 믿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2. 처녀가 잉태되어 이루어진 신비사건입니다. 어떻게 處女가 잉태를 할까? 말도 안 된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일부 불신자들은 예수를 사생자라고 까지 모독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예수님을 우주인의 아들이다." 라고 합니다. "병자에 손을 얻은즉 낫게 했다. 물위로 걸었다. 죽은 자를 살렸다" 이 모든 것은 우주인의 신비한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이단들과 사이비 종교에서 자신들의 교주를 메시아로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간교한 거짓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처녀에게 잉태되셨나요? 

    오늘 본문의 35절을 보세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 그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役事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진 성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얼마든지 사람을 잉태케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흙으로 만드신 하나님이 왜 처녀가 성령으로 잉태케 못하실까요? 

    생명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신비로운 것입니다. 흙이 변해서 생명이 됐다는 말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인 것입니다. 또, 생명의 성장의 신비, 생명이 자라나는 신비입니다. 더 나아가 죽음의 신비입니다. 잘 자라다가 왜 또 죽는 것인가? 신비입니다. 그런가하면, 정말 신비한 것은 그것은 생명의 소생의 신비입니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또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고도 명확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신비입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 인간의 머리나 지식으로, 경험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해가 안 된다고 못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이 지구를 창조하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분이 하시는 일은 그야말로 신비인 것입니다. 너무 너무 신비하여 신묘막측(神妙寞測)하다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人間으로 오신 것이 신비입니다.  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낮은 곳에 오셨을까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成肉身이라 하는데 왜 그렇게만 하셔야 했을까요? 그것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이해케 하려고 인간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지은 죄를 대속키 위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으로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야만 대속의 사건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32절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 

    중요한 단어는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하나님으로 하나님 자신이신데 인간으로 오시기에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면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하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요, 신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된다. 이것은 놀라운 사건이고 신비의 사건입니다.  이것은 겸손이다, 또는 낮아지심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비하라고 표현되나 실상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요, 신비입니다. 

    그래서 어느 유명한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Incarnation 즉 성육신 이 사건은 오직 믿음으로만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기적의 종교이다. /기적을 믿지 않는다면 기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의 신앙은 동정녀 탄생이라고 하는 기적을 시작으로 해서 예수님의 부활이라고 하는 기적을 믿는다.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적 속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이 기적이고 그 기적 속에 내가 구원받은 것이 기적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나심은 엄청난 영광이요, 엄청난 우주적인 사건이며 기적입니다.   

    저는 엄마들이 아이들과 대화를 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엄마는 완전히 아이가 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아가야 맘마~ 까꿍, 그랬어~ 아고 우리 애기 배고팠어 찌찌먹자 합니다. 그러면 다 알아 듣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이유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구원, 이것을 전하려고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이해 할 수 없어 기적이라고 신비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기적도 신비도 아닌 오직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여러분이 얼마나 가슴속에서 느끼고 계십니까? 

    혹 아직도 의심하고 아직도 마음 밖에 내세워 놓고 믿을 수 없다고, 이해 할 수 없다고 박대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찬송가 535장을 보세요. 

    (1)주 예수 대문밖에 기다려 섰으나 단단히 잠가두니 못들어 오시네 

    나 주를 믿노라고 그 이름 부르나 문밖에 세워두니 참 나의 수치라

    (2)문 두드리는 손은 못박힌 손이요 또 가시 면류관은 그 이마 둘렀네 
    이처럼 기다리심 참 사랑이로다 문 굳게 닫아두니 한없는 내 죄라

    (3)주 예수 간곡하게 원하는 말씀이 네 죄로 죽은 나를 너 박대할 쏘냐
    나 죄를 회개하고 곧 문을 엽니다 드셔서 좌정하사 떠나지 마소서 아멘

    아직도 예수를 모셔 들이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이 시간 영접하세요. 마음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마음문 밖에서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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