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가정을 세웁시다.(골3:16-18)
  • 조회 수: 345, 2013.07.27 20:56:47
  •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 바로 세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머리이시며 몸이신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였습니다. 이렇게 지체된 자들이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품고 겸손과 온유의 마음을 품고 거기에 오래 참음의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거기에 용서와 용납과 사랑으로 단장을 하여 교회를 섬길 때 하나님의 교회가 아름다워지고 교회는 바로 세워 질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일은 봉사하는 것도, 헌신하는 것도,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은데 무엇보다도 화목하면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의 말씀같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7:1) 하신 그대로입니다. 교회의 평강을 깨뜨리는 사람은 교회의 문턱에 앉아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사람과 같은 사람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 바울은 교회 공동체를 말씀하고 가정 공동체에 대해서 이런 가정을 세우라고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대단히 지혜로운 일이요,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은 먼저 가정의 기초를 말씀드리면서 가정을 세우기를 원합니다.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Ⅰ. 행복한 결혼이란 무엇인가?

    1.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인을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시는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자 자기 종을 고향에 보내 며느리 감을 구합니다. 주인의 며느리 감을 찾기 위해서 엘리에셀이 창24:12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늘 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사실 중요합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일인데 이 대사에 어떻게 기도 없이 가능하겠습니까! 아직 결혼을 앞둔 사람이라면 "하나님 제 생애를 함께 나눌 수 있는 파트너를 순적히 만나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쉬지 않는다면 문제는 상당히 달라지리라고 봅니다. 문제는 나의 파트너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짝이라는 것을 알 수 없을 때 답답한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뜻을 기드온과 같이 시험해 보았습니다. "아침 일찍 우물가에 기다리고 있다가 물 길러 오는 여인이 있을 때에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면, 물만 주지 않고 약대에게도 물을 주겠다고 말하는 그 여인이 내 주인의 며느리 감인 줄 알겠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려 놓습니다. 과연 기도 한 대로되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자 하나님께서 절대로 간섭하십니다. 가정을 세울 때에 평생을 함께 나눌 나의 파트너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사람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내 평생의 행복지수와 상당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채점을 해 보십시오! 

    2. 결혼이란 한 남자가 부모를 떠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19:5에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라." 라고 하십니다. 여기서부터 성공적인 가정을 세우는 여부가 결정됩니다. 결혼 이후에도 그 부모의 지배를 떠나지 못함으로 인해서 불필요한 고부 사이의 갈등이 생겨나고 이로 인하여 심각한 불행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하고 난 뒤에 심각하게 생기는 문제 중에 하나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문제인데 이것은 자식이 그 부모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남자가 장가를 갔으면 자기 부모에게서 떠나 새살림을 차려야 할텐데 만날 자기 아버지에게 가서 돈을 타다가 살림에 보탠다거나 아니면 자기 어머니 음식 솜씨를 얘기하면서 반찬 투정을 한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결혼하고 나서 무슨 일만 있으면 훌쩍 훌쩍 울면서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한다든지 무슨 속상한 일만 있으면 친정으로 달려가는 일들은 그 부모를 떠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애지중지 길러 온 아들딸이지만 하나의 가정을 이루도록 부모들은 미련 없이 문자 그대로 그들을 떠나 보내 주어야 합니다. 물론 결혼 후에도 부모들이 자녀들 곁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의 도움인 정신적인 지원은 지속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녀들 사이에 끼어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부모를 버려도 좋다는 말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홀로 설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3.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육체적인 연합하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부부간의 성적인 교제입니다. 이것은 부부에게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래서 고전7:4에 성경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성윤리, 성적인 자세에 대해서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태도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라고 했으니 이것은 서로의 욕구에 응해 주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 중심의 부부 생활을 하고 남편은 아내 중심의 부부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필요와 욕구를 뛰어 넘어 철저하게 상대방 중심의 성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흔히 이혼하려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유 중에는 성격 차이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90%라는 것입니다. 성격 차이가 아니라 성(性)차이 때문이라고 해야 정확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적인 불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고전7:3에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니라."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의무이니 서로의 의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4. 결혼은 서로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지붕 아래 산다고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동상이몽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이 같은 불행은 없을 것입니다. 창2:18에 보면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서로가 통할 수 있는 관계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와를 지으시고 그를 아담에게 이끌어 주신 것은 서로 통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배우자를 주신 것인데 정서적인 교감과 감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없다면 그것은 부부가 아니라 어떤 분은 좀 심하게 표현을 하는데 웬수라는 말을 합니다. 

    서로 답답한 심정을 아내나 남편에게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이 커뮤니케이션이야  말로 성공적인 결혼 생활로 연결되는 것이고 부부를 진정으로 하나되게 하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밀한 정적인 교제의 결여가 행복한 가정의 장애물이라는 것입니다. 

    5. 결혼은 사람의 의지로 나눌 수 없는 언약의 관계가 되는 것이 결혼이요, 부부입니       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라"라고 하셨습니다. 결혼은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둘이 건넌 것입니다. 죽음이 두 사이를 갈라놓기 전에는 나뉠 수 없는 언약의 관계입니다. 두 번 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날 결혼하는 사람들이 평생에 단 한번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와 소신을 갖고 결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일생에 단 한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사이에 두고 하는 언약이기 때문에 사람이 나눌 수 없고, 나누어서도 안 되는 사건임을 알아야 행복 지수가 올라갑니다. 
    합한다는 말은 히브리말로 "다바크"라는 말인데 그 뜻은 "아교로 착 붙이다. 달라붙다. 굳게 결합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이라는 종이를 아교풀로 착 붙인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나누는 것은 이것을 떼어내는 것인데 떼어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하게 떼어지겠습니까! 그래서 결혼은 부부 쌍방간에 남편과 아내가 함께 승리하는 게임이거나 함께 패배하는 게임이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나누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군대 갈 때엔 한번 기도하고, 바다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을 하려거든 세 번 기도하라."라고 했답니다. 그만큼 결혼이라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Ⅱ. 행복한 가정을 위해선 모든 가족이 주안에 있어야 합니다. 

    골3:18, 19에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하는 말씀으로 먼저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골3:20)고 교훈 하시고, 21절에서는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고 하시면서 가정에 대해서 지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안"이라는 말씀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골3:18하)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3:20하) 그렇습니다. 온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려면 모든 가족 구성원이 주안에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주안에 있어야 한다는 말은 단순히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골3:18)하면서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을 아내들에게 하시면서 주님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다시 말하면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는 아내는 어떤 아내만이 가능한가 하는 것입니다. "주안에 있는 아내"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어떤 남편이 아내를 괴롭게 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주님 안에 있는 남편"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사실을 전제하고 말씀하심을 우리가 기억하고 이 본문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똑같은 교훈을 에베소서에서 더 명백히 말씀하십니다. 엡5:25에서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할 것을 권하면서 누구를 실례로 들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희생하신 것처럼 남편들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안에 있지 않는 남편이 이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를 어떻게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불신 남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교회를 위해 몸을 주시고 피를 흘리신 그 희생을 전혀 모릅니다. 십자가를 지신 희생의 사랑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남편은 압니다. 거듭난 남편, 주님 안에 있는 남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압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압니다. 만일에 남편들이 그렇게 사랑하고 아내를 괴롭게 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은 가정 천국을 이룰 것입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3:20)라고 하면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도 주안에 있는 자식이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는 모든 가족이 주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한 가정을 세우는 비결입니다. 

    반대로 주님밖에 있는 자들은 불신자들인데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알지도 못하고 복종도 하지 않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한 가족 중에 영적으로 다른 것은 가장 비참한 일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진정한 화목과 행복을 위해선 가족 모두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그리스도인 아내, 남편, 자녀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행복한 가정과 복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덧붙인다면 이제 결혼을 앞둔 분들에게 말씀드리는데 평생을 함께 할 파트너는 물론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교회만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면 실패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그가 성령의 충만한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전부인 사람입니다. 그 앞에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이것을 철저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Ⅲ. 행복한 가정은 말씀의 권위에 서있는 가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원칙은 성경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는 말은 모든 생활의 근본 원리를 성경에서 찾고 그 원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원칙으로 삶는 가정과 교회는 질서가 있습니다. 화목이 있습니다. 은혜스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속에 어느 하나라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좋은 대로 생각하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공동체는 교회 공동체이든! 가정 공동체이든 갈등과 혼동과 무질서의 늪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사사기에서 그 참담함을 발견해 봅니다. 삿22:25에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음으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행진하면서 가나안 땅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의 삶이 시작되면서 그들은 비참한 자리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게 되면서 부터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왕이신 하나님 말씀 한마디에 살고 죽었는데 그 왕을 버리고  사람을 기준으로 삶기 시작하면서 무질서와 혼돈, 그리고 갈등의 늪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원리가 있고 가정마다 생활 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상대적입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원리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초를 삼는 것입니다. 마24:35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했는데 그렇습니다. 천지는 변해도 영원히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원리는 시공을 초월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은 이 같은 성경을 생활 원리로 삼고 살기 때문에 사실 주안에 있는 가족들끼리는 갈등과 혼돈 속에 살아 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세대 차이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각자가 원하는 것이나 추구하는 것이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의 원리는 하나입니다. 모두가 성경 말씀을 생활 원리로 받아 드리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견의 차이가 날 때에도 일단 성경 말씀에 비추어 명확할 때 거기에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매력이고 아름다움입니다. 아마도 명확한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적인 권위나 자존심이 개입 될 필요도 없고 개입되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 유일의 권위로 삼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모두가 순복하는 유일한 권위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그 가정의 최고의 훈계자가 되며 최종의 재판관이 될 때 그런 가정은 화목하게 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가정은 참으로 행복한 가정이 될 충분한 조건을 갖춘 가정입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지금 함께 하는 여러분의 파트너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사람인줄 아시고 열심히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미혼인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해서 순적히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만나되 성령 충만한! 주님께 다스림을 받을 줄 아는 파트너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의 첫 번째는 온 식구가 주안에 있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생활과 삶의 기준이 말씀이 되는 가정입니다. 그 말씀이 명하실 때 다른 이론이나 이유나 사설이 필요 없는 이런 가정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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