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음과 거둠(갈 6:1-10)
  • 조회 수: 358, 2013.07.15 08:16:13
  • 오늘은 유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시간은 참 화살같이 빠릅니다. 그 시간이 우리를 실어 오늘이라는 정거장에 내려놓았습니다.  벌써 반년이란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되어 버렸고, 이제는 절반의 기회를 빼앗긴 반년의 시간만 남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시간의 주인은 아닙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을 살아가는 주역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쯤에서 우리는 지난 시간을 한번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과연 지난 반년을 어떻게 살았습니까?   기독교계의 시성(詩聖)이었던 타고르는 "죽음이 나의 문을 두드릴 때 나는 당신앞에 생명이 가득찬 생명을 갖다 놓겠습니다"라는 유명한 고백의 시를 썼습니다. 그러나 정말 죽음이 우리의 문을 두드릴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풍성한 열매를 보여 드릴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심고 거둠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살이에 주신 원칙이요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난 반년의 시간동안 무엇을 심었습니까? 지금 우리의 밭에는 무엇이 자라고 있습니까?  또한 이 한해의 끝에 나는 무엇을 얼마나 거둘 것입니까? 지금은 우리가 이 물음 앞에 한번 서 보아야 할 점검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특별히 1999년은 심고 거두는 신앙의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붙들고 "심는대로 거두리라"라는 공동체의 표어를 정하고, 함께 심으며, 함께 거두는 멋진 추수꾼의 삶을 살 것을 결심했습니다.  이제 그 반년의 점검을 시작합시다. 


    거둠에 대한 점검

    이제 추수에 대한 기대를 점검해 봅시다. 나는 추수(거둠)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까? 혹시 지난 반년의 삶을 사는 동안 추수의 기대를 잃어버리거나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았습니까? 기대를 포기하는 것은 내일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내일에 대한 기대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상실된 삶은 비극이요 절망입니다. 살았으나 죽은 것과 방불합니다.  기대가 없으면 계획도 없고 의욕도 없고 열정도 없습니다. 오늘을 사는 동력은 내일의 기대라는 연료입니다. 

    세기말의 시간을 달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내일에 대한 소망적인 기대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만연된 타락과 방종의 뿌리는, 내일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데 있습니다.  21세기의 마지막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거둘수 있다는 내일에 대한 소망과 기대입니다.  내일의 거둠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우리는 오늘을 아무렇게나 살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가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기대는 우리를 용감하게 만듭니다. 기대는 우리를 능력있게 만듭니다. 기대는 우리를 참고 인내하게 만듭니다.  기대는 우리를 고통 중에서도 노래하며 웃게 합니다.  기대는 추수를 경험하게 합니다. 이것이 추수의 기대가 가져다주는 은총입니다. 


    그럼 사람들은 왜 기대하지 않고 삽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심지 않았으면 기대하지 않습니다. 

    파종하지 않은 사람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기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기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심지 않은 사람은 추수의 기대를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심지 않았기에 기대를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움입니다. 

    심음의 수고가 선행되지 않고는 거두지 못합니다.  성경은 7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상식으로 통하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실제적인 삶의 영역에서는 이 상식이 너무 쉽게 간과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심지 않고 거두기를 원합니다. 너무 지나친 요행이나 변수를 기대합니다.  유명한 달란트 비유에서 예수님은 심지않은 것을 거두려는 사람을 가리켜 악하고 게으런 종이라고 말씀합니다.  심지않고 거두려는 사람들을 본문 7절에서는 "스스로 속이는 자"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이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 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십니다. "

    물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심지않은데서도 거둘 수 있는 분이십니다.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기적의 하나님이시오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고 거둘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말하기를 "기쁨의 추수를 거두기 위해서 오늘 눈물로 씨를 뿌리라"고 했습니다. 

    심음에 대한 점검

    이제 우리의 심음을 점검해 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심었습니까?


    1.무엇을 심었습니까?(파종의 종류)

    성경은 두 종류의 파종과 추수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는 육의 파종이고 다른 하나는 영의 파종입니다. 육의 파종은 썩어질 것을 거두는 허무의 추수를 가져오고 영의 파종은 영원한 생명의 추수를 가져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8절)

    육체적인 파종이란 육체적 욕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육을 목표로 하여 전 인생을 투자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적 현실감각이 전부인 사람입니다. 
    영적 파종이란 성령으로 육체를 조정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령과 감각을 같이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영을 따라 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럼 왜 이렇게 다르게 심게 됩니까? 그것은 거둠에 대한 기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목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난 반년동안 무엇을 심었습니까? 

    2.얼마나 심었습니까?(파종의 양)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둘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진리입니다. 당신은 얼마나 심었습니까? 당신이 거두기를 소원하는 만큼 심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자신이 없고 부끄러우면 지금이라도 심음의 열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3.언제 심었습니까?(파종의 시기)

    심음에는 때가 있습니다. 종자는 시기를 놓치면 못쓰게 됩니다. 심을 수 있는 기회에 심으야 합니다. 반면 추수에도 시기가 있습니다. 씨를 뿌린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거두는 시기가 반드시 옵니다. 지금은 심음의 기회가 있습니다. 내 인생의 한때를 심음의 기회로 삼읍시다.  


    둘째, 확신이 없으면 기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기대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심으면 거둔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9절의 말씀도 보십시오.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심었으면 분명히 심은 대로 거둡니다. 이것은 변함이 없는 진리입니다. 


    셋째, 낙심에 붙들리면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낙심하지 말라"라고 가르칩니다.  낙심은 사람들에게서 기대를 빼앗아 가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사람들은 이 낙심이란 질병에 감염되기만 하면 너무 쉽게 기대를 포기해 버립니다.  그럼 우리를 낙심케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단의 도전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성격의 연약함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살이의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불편함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 성급한 기대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부족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나의 삶은 기대를 가진 삶입니까? 아니면 기대를 잃어버린 삶입니까? 혹시라도 기대가 사라진 삶이라면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를 확인하십시오. 


    심은대로 거둡니다

    1928년 헝가리 출신의 종군기자 엘리에젤이 쓴 "밤"이라는 책에 2차 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나치주의자들에게 죽음을 맞는 비참함을 배경으로 기록했습니다. 그 글에 실제적인 인물이던 아이히만이라는 독일군의 앞잡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중앞에서 유대인의 어린 소년을 장대에 매달아 놓고 유대인들을 그 아래를 지나게 합니다. 그때 엘리에젤이 묻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그때 아이히만이 하는 말이 "하나님은 저 소년과 함께 죽어가고 있습니다"  
    얼마후에 연합군이 승리를 합니다. 아이히만은 도망을 갑니다. 아르헨티나의 한 시골로 숨었습니다. 어느날 직장에서 돌아오는데 이스라엘 비밀경찰이 그를 붙잡았습니다. 그는 곧 국제 재판에 전범으로 회부되었고 사방 유리로된 특별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립니다. 거기서 엘리에젤은 묻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때에 아이히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아이히만을 심판하고 계십니다"

    옳습니다. 반드시 심은대로 거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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