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눅 18:15-17/ 천국을 소유한 자
  • 조회 수: 5840, 2017.05.12 16:23:35
  •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 18:15-17)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사랑의 주 예수님이 이 시간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신앙은 체험입니다. 형식과 습관이 아닙니다. 오늘 예배 가운데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옆에 분하고 인사하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또 뉴스를 들으면 마음이 답답하시지요? 바다에서 사고가 났는데 이제는 또 땅속에서 사고가 났어요. 다음 차례는 하늘에서 사고가 나는 게 아닌가 이런 이야기도 들려오는데, 여러분 세상에 들려오는 이야기에 너무 귀를 기울이면 안 되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일들이 생겨날 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 앞에 바로 서있는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기도할 때 여객선 침몰 사고로 인해서 아직도 생사를 알지 못하고 실종자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또 희생자 가족들, 구출 받았지만 마음에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상처 가운데 고통당하고 있는 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고, 또 지하철 사고로 부상을 입고 지금 병원에 입원해있는 그분들을 주님께서 속히 치료하여 주시도록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이 긍휼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먼저 앞장서서 이 절망이 가득한 이 세상에 꿈과 희망을 전하게 하여 주시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님 이번에 모든 것이 바로 되는 그러한 은혜가 있게 해달라고 주여 삼창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복음성가 121장)
    주님을 찬양하오니 주님을 경배하오니
     왕이신 예수여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슬픔에 잠겨있는 가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마음에 평안함과 위로를 넘치게 부어 주옵소서. 다시금 회복시켜 주옵소서. 더 이상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꿈과 희망을 갖고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새로운 미래를 위하여 전진해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 모두에게 은혜 주셔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저희들이 쓰임 받도록 주님 저희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시고 저들 마음속에 성령의 은혜가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 저는 누가복음 18장 15절로 17절 말씀을 가지고 “천국을 소유할 자”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천국을 소유할 자”, “천국을 소유할 자”어린아이들은 가정의 꽃이요, 희망이요, 행복이요, 이 나라의 미래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우리 교회를 더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발전시키고 충성할 장래 일꾼들이 바로 우리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국이 이 어린아이들이 소유하는 곳이다. 소유할 것이고, 어린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한 모습을 갖출 때에 우리가 주님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1. 천국을 예비하신 예수님
     먼저 천국을 예비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여러분,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 새로운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천국이 예비되어 있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옥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는 자리에서 내가 너희를 위해서 너희들이 거할 장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로 3절에 보면,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서 먼저 가시고, 그 마련해 놓은 거처를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그곳을 우리가 거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다시 데리려 오신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해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그곳을 우리에게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다 그곳에 갈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음이 끝이라고 하면 우리 모두가 죽음 앞에서 절망하고 무너질 것입니다. “당신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합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얼마나 충격적이고 그 마음속에 고통이 심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리가 거하는 장소만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있지만 죽는 그 순간 사람들은 우리가 죽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죽음을 못 느껴요. 죽는 그 순간 천국으로 그 영이 올라가니까. 할렐루야! 육신은 남겨져 있다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되어서 부활하지만은 우리의 영은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하여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거지 나사로와 부자가 죽어서 그 죽음 이후에 서로 있는 처소에서 바라보는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6장 22절로 24절에 보면,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나사로는 비록 거지로 살았지만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 천국에 갔고, 이 부자는 물질을 많이 갖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그저 물질에 취해 살다가 죽은 후에 지옥에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원히 거하게 하실 곳으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데려가기 전까지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낙원이고, 믿지 않는 사람이 가는 곳이 음부입니다. 그런데 음부에서 낙원이 보여요. 부자가 보니까 아브라함 품에 거지 나사로가 안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낙원은 천국 대기소이지만, 천국과 같은 곳이에요. 얼마나 그곳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고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곳인지, 그들이 주님을 찬양하며 기쁨 가운데 그곳에 거하게 되는데, 음부는 지옥 대기소입니다. 뜨거운 불꽃 속에 저들이 살고 있어요. 불 속에 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느끼긴 다 느껴도 타질 않아요. 그러니까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여러분, 뜨거운 냄비에 무심코 손을 데었다가 손이 데이면 ‘아, 뜨겁다’고 손 데었다고, 손끝에 조금만 데어도 난리를 피우는데, 온 몸이 불덩이 속에 들어가서 불로 태우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질 않아요. 그곳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는 지옥이에요. 음부가 그러한 뜨거운 고통 속에 있는 그런 지옥 대기소인데, 나중에 영원한 불못으로 떨어지기까지 그 고통을 다 느끼는 것입니다.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는 곳이 지옥이에요. 그래도 우리 한국 사람들 중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거기 가서 좀 잘 견딘대요. 불가마가 있어서. 누가 웃는 소리로 말했지만은 그것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뜨거운 불속에 영원토록 거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히 지옥이 있고 분명히 천국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참으로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왜? 모두 천국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잘났어도 못났어도 많이 배웠어도 못 배웠어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천국에 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을 때에 양 옆에 두 흉악한 강도가 있었는데 두 강도가 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비난하다가 한 강도가 도중에 마음이 변화를 받았어요. 왜? 예수님이 자기를 못 박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아, 저분이 메시아구나.” “예수님, 예수님 나라 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세요.” 그런데 주님 말씀하신 말씀이 누가복음 23장 43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흉악한 강도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낙원에 갔어요. 할렐루야. 우리가 장차 예수님 재림 이후에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되어서 갈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22장 1절로 5절에, 또 그가 수정 같이 많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할렐루야. 눈물도 없고 근심도 없고 질병도 없고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는 영원한 기쁨만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춰지는 그곳에 우리 모두가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너무 슬퍼서 울고 괴로워서 울고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서 말할 수 없는 고민 속에 울기도 하지만 저 천국에서는 다시는 우리가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계시록 21장 4절을 보니까,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할렐루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슬퍼 눈물을 흘리지요. 그러나 육신으로 우리가 헤어지지만 영으로 볼 때는 먼저 우리를 앞서 천국에 가신 것뿐이에요. 죽는 사람은 죽는 순간 저 천국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우리의 장례식 하는 모습을 다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천국 소망을 갖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눈물을 많이 흘려도, 주님이 천국에 오면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우리의 모든 눈물을 거두어 주시고 놀라운 은혜로 기쁨으로 평안함으로 넘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여러분, 육신의 장막은 나이가 들면 점점 노쇠해지고 결국은 언젠가 하나님이 예정하신 때에 천국을 가게 됩니다. 시편 90편 10절을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렇게 우리 삶이 마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않습니다. 왜? 저 천국이 우리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할렐루야. 19세기의 위대한 부흥사 D. L. 무디(Dwight Lyman Moody)의 임종의 모습에 대해서 그와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1899년 12월 22일 금요일 아침, 부흥사 무디의 아들 윌이 아버지 방에서 들리는 소리가 나서 급히 아버지 방으로 가니 “대지가 물러간다. 내 눈 앞에 하늘이 열려 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이와 같이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말씀을 남깁니다. “윌아! 이것은 꿈이 아니란다. 참으로 아름답고 황홀하구나. 이것이 정녕 죽음이라면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겠느냐! 이곳에는 골짜기가 없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계신다. 나는 승리하였단다. 오늘은 내가 면류관을 쓰는 날이지. 나는 수년 동안 그 면류관 쓰기를 고대하고 있었단다. 마차가 방 안에 와 있다. 나는 이제 천국으로 간다.”


    영적으로 본인이 죽음을 맞이할 것을 깨달았어요. 아마 환상 가운데 천사를 보내서 그를 데려가는 것을, 데려가려고 준비하는 것을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천국 간다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으로 그 아들에게 이와 같은 말씀을 남기고 하늘나라에 간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영광 가운데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저 천국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천국 갈 때까지, 우리는 힘써 주님의 일을 해야 됩니다. 부활에 대해서 기록한 고린도전서 15장 마지막 절 58절의 결론 부분입니다. 다 같이 58절을 우리가 함께 봉독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할렐루야. “믿음이 견고해 져서 절대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너희의 수고가 너희의 헌신이 너희의 희생이 절대 헛되지 아니하고 다 하늘나라에 상급으로 예비되어서 너희들에게 주어지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천국은 가는데 천국에서의 삶이 차이가 있어요. 평생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하고 예배 잘 드리고 열심히 전도하고 주님 뜻대로 산 사람들은 면류관을 받고 주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 거하게 되지만, 예수 믿긴 믿었는데 제대로 주님을 섬긴 기억이 없어요. 예배를 열심히 나온 것도 아니고 안 나오면 안 될 것 같아서 억지로 나오고. 여기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없지만 저쪽 가면 한두 분 있어요. 교회에 열심 내지도 않고, 예배도 열심히 드리지 않고, 열심히 전도하지도 않고 턱걸이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원은 받지만 저 아래편, 천국은 가긴 가지만 주님으로부터 찬란한 영광의 광채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을지 몰라요. 여러분 모두가 주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쁨으로 찬양하고 주님을 섬기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써 주님 일을 해야 돼요. 그런데 이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순수한 믿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2. 순수한 믿음의 소유자
     둘째로 순수한 믿음의 소유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데 누가복음 18장 16절 17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훌륭한 선생님이나 랍비, 요즘으로 말하면, 유대교에서 랍비이고 교회에서 말하면 목사님인데 아이를 데려가서 기도를 받기 원했어요. 요즘도 아이를 가진 부모님들은 목사님께 가서 기도 받기를 원하잖아요. 근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이를 데려온다고 꾸짖었습니다. 왜 선생님 괴롭게 하냐고 저리로 가라고. 그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어린아이와 여자들을 인격적으로 제대로 대우를 하지 않았어요. 우리나라에도 기독교가 들어온 다음 어린아이와 여자들이 인격적으로 대우를 받은 거예요. 그래서 사람 숫자를 셀 때에도 여자와 아이들을 숫자에서 뺐어요. 세지를 않았어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모인 사람들에게 먹이고 나서 숫자를 헤아려보니 장정만 오천 명이더라 그랬단 말예요. 여자와 아이를 다 포함하면 약 삼만 명이 되겠죠.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도 장정만 60만이다. 그러니깐 20세 넘은 장정만 60만이니까 아이와 여자들을 합하면 300만 가까이 되겠죠. 그러니까 인격적으로 제대로 대우를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히려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은 어린아이처럼 죄에 때 묻지 않고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 할렐루야. 어린아이들의 머리가 좋아서 남의 것 사기 쳐서 빼앗고 그런 일이 별로 없어요. 어린아이는 참 순수합니다. 잘되는 사람 모함을 해서 참소해서 끌어내리고 또 탐욕을 가져서 남을 짓밟고 그 사람 가진 것을 빼앗아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 이런 것들은 다 어른들의 모습이에요. 솔직히 우리가 얘기해서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는 것이 죄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죄 안 지어요. 흉악한 사건들이 일어날 때, 범죄 사건이 일어날 때 보면 어른들이 그런 죄를 짓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 다시 어린아이같이 우리들이 순수한 모습으로 변화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너무나 닳고 닳아서 이렇게 굽어져서 남이 잘되는 것 보면 속상해하고 끌어내리고 없는 말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못된 속담이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말이에요. 그거 고쳐야 해요. ‘사촌이 땅 사면 축화환 꽃다발 들고 간다’ 그렇게 해야지. 배가 아프다는 말이 돼요? 요즘은 또 ‘사촌이 집을 사면 설사한다’ 그러더라고. 이런 심보를 가지면 안돼요. 어른들이 왜 그런 마음을 가집니까? 남이 잘되는 것을 축하해 줘야죠. “참 잘됐습니다, 축하합니다. 이렇게 좋은 일이 있어 너무 좋습니다.” 그래야 되는데 남이 잘되면 괜히 배가 쓰윽 아파서 이게 어린아이 같지 않아서 그래요.


    어린아이들은 얼마나 순수하고 단순합니까? 그 아이들이 와서 까꿍하면 그냥 다 웃잖아요. 누군지도 모르는데 처음 보는 사람인데 지하철 타서 옆에 있는 아이한테 까꿍하면 웃고 있고. 아이들이 이렇게 순진한 거예요. 그냥 누가 와서 웃기면 웃고 울다가도 사탕 주고 딸랑딸랑하면 딸랑이 가지고 와서 달래주면 뚝 그치고 그런 순수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앞에 와서 예배드릴 때에 찬송을 불러도 너무 좋고 기도해도 나무나 감사해서 눈물만 나오고 말씀 들어도 너무 좋고 그래야 되는데 와서 구경꾼으로 앉아있으면 은혜 못 받아요. 그럼 얼마나 교만한 겁니까? 여러분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저에게 누가 책을 보내주셨어요. “그래도 행복합니다”라는 책인데 사진작가, 평신도 선교사인 김성민 선생님이 찍은 사진을 보내왔는데 이 사진은 아프리카에 있는 조그만 나라 레소토라는 나라에 에이즈 걸린 아이들을 같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엔젤스 홈’에 가서 사진을 찍은 내용입니다. 지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노록수, 김은혜 선교사님 부부가 레소토라는 이웃나라에 에이즈로 인해서 많은 아이들이 버림받고 있고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대하고 가보니 정말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250만 인구 가운데 37%가 에이즈 감염자라고 그래요. 실질적으로 약 50% 정도가 된다고 그래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병에 걸려서 죽는 거예요. 이 에이즈라고 하는 것은 무분별한 성생활을 통해서 옮겨지는 병인데 약이 없어요. 이 병에 걸리면 죽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방탕한 삶을 사니까 에이즈에 걸려 죽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들이 죽어서 에이즈가 걸린 채로 태어나 죽어가는 아이들, 이 버림받은 아이들을 모아서 같이 저들을 돌보고 있는데 이 아이들의 얼굴에는 전혀 그런 죽음에 대한 공포나 절망이 없어요. 곧 죽을 아이들인데. 저마다 꿈을 갖고 있어요. 음악에 미술에 재능이 있어서 장차 내가 이와 같은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고 영광 돌리기 원한다. 아주 지속적, 주기적으로 보건소에 가서 진찰 받아야 하고 병과 싸워서 고통이 심하지만 예배드릴 때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해맑게 웃고 찬양할 때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사진작가 김성민 씨가요.“엔젤스 홈 고아들은 ‘세상은 우리에게 절망을 줬지만, 우린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습니다. 그 아이들은 전혀 가난하지 않습니다. 많이 가지진 못했지만 그 아이들은 자신의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러기에 더욱더 주님께 기댑니다. 이들은 그럴듯한 기도방도, 큼직한 예배당도, 잘 짜여 진 오케스트라도 없지만, 하나님을 향해 늘 기쁨으로 노래하고 춤춥니다. 스스로 부모나 건강한 육체를 선택할 수 없었지만, 당장 내일의 삶이 불안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꿈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행복합니다. 아이들은 아픈 것보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보다, 오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합니다.”


    할렐루야. 이 아이들은 얼마 가지 않아 다 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으로 인해 우리는 기쁩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린아이들의 모습이에요. 어른이라면요 “어휴 내가 에이즈에 걸렸네, 나 이제 죽네.” 밤낮 거울 들여다보며 “얼굴에 또 뭐가 생겼네.” 아마 어른들은 그러다가 더 빨리 죽을 거예요. 그런데 이 아이들은 해맑은 미소 속에 예수를 만난 것이 나무 기뻐서 그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춤추고 그러다가 이 병으로 아이들이 죽어 가는데 그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순수하고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어서 책을 한 권을 만들었어요. 여러분 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손에 손을 잡고 열심히 주님 일을 하다가 같이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순수함이 많이 사라졌어요. 예수를 처음 믿었을 때에는 너무나 예배드리는 것이 좋고 그냥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주님 섬기는 것이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열심이 식어지고 감사가 사라지고 그래서 어느 순간 내가 구경꾼 같은 모습으로 와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회개하고 첫사랑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꾸 더 높아지려고만 하고 여러분 낮아져야 주님이 높여주시죠. 주님 앞에서 우리가 순수한 모습으로 변화되기만 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토미 테니(Tommy Tenney) 목사님이 「간절한 매달림/ The God catchers」이라는 책에서 이와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가장 귀한 피조물인 인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신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뻐하고, 찬양하고, 배고파하고 (이거는 배고파한다는 표현은 사실 영적으로 갈급해한다는 말입니다.) 갈급해하고 , 두려워하고, 그분께 매달릴 것을 요구하신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되기를 바라신다.” 여러분,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시고 다시 첫사랑의 모습을 회복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 교회가 첫사랑을 잃어버려서 책망을 받았잖아요. 계시록 2장 4절로 5절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 시간 주님 은혜 가운데 감사를 회복하십시오. 기쁨을 회복하십시오. 찬양을 회복하십시오. 예배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주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 겸손한 신앙의 소유자
     셋째로, 천국을 소유하는 사람은 겸손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낮아져야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높아지기만을 원하고 칭찬받고 대접받기만을 원합니다. 여러분, 칭찬받기를 원하면 남을 칭찬하시고, 대접받기 원하면 남을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섬겨라.” 이렇게 말하지 말고 섬김을 받기를 원하면 먼저 남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관심도 높은 자리, 섬김을 받는 그 자리, 이런 거였어요. 이 세상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까지 그런 자리를 갖기 원했어요. 그래서 질문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절에,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님 마음이 답답하셨어요. 그래서 어린아이를 불러 세워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절과 3절에,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사람들이 참 교만해요. 이건 이해하고 들어주세요.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남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교만한 사람. 그래서 이 사람들은 이렇게 사람의 외모를 보고 외모가 허름하면 무시하는 그런 경향이 있어요. 좀 좋은 차를 탄다고 조그만 차를 타는 사람을 멸시하는 그런 경향이 있어요. 권력을 좀 가졌다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권력 없는 사람을 짓밟는 분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여러분, 권력은 허무한 것입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십년 가는 권세가 없다고 그래요. 보세요. 그런 사람들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다 문제들이 발견돼갖고 나중에 다 감옥에 들어가고. 여러분, 배웠다고 못 배운 사람 무시하면 안 되고요, 가졌다고 없는 사람 무시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을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줘야 되고 더 배운 사람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쳐서 그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 우리가 사람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면 안 됩니다. 특별히 교회 내에서는 오히려 없는 사람, 배우지 못한 사람, 몸에 장애가 있는 사람, 여러 가지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고 사랑으로 돌봐야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마가복음 9장 35절에 주님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따라하세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여러분, 이렇게 고백해야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모든 것이 되십니다. 섬김의 삶을 살길 원합니다.” 마태복음 20장 26절로 27절에,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여러분, 섬기는 자가 행복합니다. 섬김을 받는 것이 오히려 더 피곤해요. 섬기는 걸 받는데 익숙한 사람은요 늘 불만이 많아요. ‘왜 더 잘 섬겨주지 않지?’ 섬김을 받는 게 당연하니까. ‘어, 저 사람 나한테 인사 잘 하더니 요즘 인사도 잘 안하네?’ 인사를 잘 하고 안하고 그런 것 다 신경 쓰고 살고요. 섬김을 받다 보니까 별 필요 없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워갖고 본인이 피곤해지는 거예요. 여러분, 섬기며 살면 얼마나 행복해요? 왜? 내가 섬김을 통하여 그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고 기쁨을 줄 수 있으니까. 할렐루야! 요셉을 보면요, 그 일생이 섬김의 삶이었어요. 형들에게 미움 받아서 노예로 팔려갔고, 얼마나 잘 섬겼는지 그 노예에서 그 집에서 가장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고,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갔는데도 얼마나 잘 섬겼는지 그 간수장, 교도소장이 감동을 받아서 교도소 열쇠 꾸러미를 줬어요. “너 이 감옥을 잘 돌보라고.” 죄수가 죄수를 돌보는 일이 역사상 없어요. 근데 얼마나 잘 섬겼는지. 그리고 거기서 그가 국무총리까지도 했어요. 국무총리가 되어서 또 얼마나 나라를 잘 섬기고 백성을 잘 섬겼는지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고 13년 동안이나 그가 노예생활을 하고 감옥에 있다가 그 다음에 그가 국무총리가 되고 그 다음에 자기를 판 형들이 왔을 때 “이제 복수의 기회가 왔구나. 전원 감옥에 집어넣고 곤장을 100대 씩 때려라.” 한 것이 아니고 그들을 다 용서해주고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막 복수의 칼을 갈고 “때가 왔도다. 능지처참하리라.” 할 수 있죠. 자기는 국무총리가 됐으니까 그 강대국의.그런데 다 용서했어요. 할렐루야! 용서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용서를 안 하면요 내가 병들어요.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목사님의 「나를 낮춰야 주님이 높아진다」 영어제목은 Humility(겸손)인데요,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이 되도록 우리의 자아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겸손, 우리의 자아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겸손을 구해야 한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이 높임을 받도록 해야 한다.”마태복음 11장 29절 우리 예수님 말씀을 기억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할렐루야! 섬김의 삶을 살다가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세상을 떠난 다미엔 신부의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하와이 정부청사 앞에는 얼굴이 흉터에 일그러진 그 다미엔 (Damien) 신부의 동상이 있습니다. 나병환자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원래 벨기에 태생입니다. 아주 부자 집에서 태어났는데 예수님을 만난 다음 그 모든 재산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선교의 길을 떠나서 하와이 군도에 있는 몰로카이 섬으로 갑니다. 몰로카이 섬에는 나병환자들만 모여 사는 곳이었어요. 우리나라도 옛날에 문둥병자라고 그래갖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멸시하던 때가 있었어요. 소록도에 우리나라 나병환자들이 모여 있죠. 한센이라는 사람이 그 병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해서 한센 씨 병이라고도 합니다.


    근데 이 나병환자들이 몰려 사는 곳에 가서 거기는 절망과 죽음만 가득한 곳인데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아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어느 날 어느 움막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미엔은 몸이 성하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 우리처럼 나병에 걸려서 몸이 썩어봐! 어디서 소망을 찾고, 하나님을 찾겠다는 말을 할 수 있겠어!” 그런 말이 들려왔어요. 충격을 받고 엎드려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들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저들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야하니 제게도 나병을 주세요, 예수님은 저를 위해 그 귀한 몸을 버리셨듯이 저도 그들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아, 주님 앞에 기도하고 나서 얼마 후에 본인이 나병에 걸렸어요. 눈썹이 빠지고 손발 마디가 다 사라지고 머리털이 빠지고 죽음의 병이 찾아왔는데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에게 나병을 허락해주심을 진실로 감사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제가 저들 앞에서 ‘우리’라는 말을, 떳떳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저들에게 ‘하나님은 나병에 걸린 우리도, 지극히 사랑하신다.’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이 다미엔 신부가 나병에 걸린 모습을 보고 온 나병환자들이 큰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가 마흔 아홉 살로 일찍 세상을 떠날 때 온 섬에 있는 나병 환자들이 다 몰려와서 눈물로 그를 장례를 치르며 천국에 보냅니다. 여러분, 쉽지 않아요. 예수님의 사랑이 그 섬김의 은혜가 임해서 그 겸손과 그 낮아짐과 온유의 모습이 임해서 이와 같은 사랑을 실천하며 마지막 가는,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나병환자를 돌보다가 주님 품에 안긴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섬김의 삶을 삽시다. 주님 앞에서 낮아지십시다. 천국 갈 때까지 가장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 영광을 나타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큰 은혜가 이 땅에서 그리고 저 천국에서 큰 상급으로 우리에게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할 때 만입이 있어도 다 감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의 그 모습으로 변화되어서 주님 앞에 가장 순수하고, 또 주님의 은혜를 받은 그대로 가장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으로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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