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교양과 훈계로(잠언22:6, 엡6:4, 애2:19)
  • 조회 수: 577, 2014.09.15 12:12:05
  • 오늘 구약의 본문 말씀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자녀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百年大計의 일입니다. 그런데 교육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교육 중에서도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가정교육이 아예 없는 가정이 많습니다. 오직 학원과 학교교육만이 전체 교육인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적 열매는 지금 우리가 거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90년 이후 5년간 발생한 전체적인 강도사범 중 소년 범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발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년 범죄가 점점 흉포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법무부 발표가 동아일보에 실렸습니다. 90년에서 94년까지 5년간 대표적인 흉악범죄인 강도, 강도상해, 강도살인, 강도강간, 등을 분석한 결과 전체 3만 3천 3백 25명중 소년범이 16,706명으로 50.1% 나 되고 있습니다. 년도별로 보면 90년 51.6%, 91년 48.2%, 92년 46.7%로 감소하다 93년 48.1%로 증가되었고, 94년 54.3%로 급증하였습니다. 

    이렇게 소년 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돈이 없어 공부를 안시켜서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돈을 많이 들여서 공부를 많이 시켜 사람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지식 그 자체가 사람을 만드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기독교인 자녀를 어떻게 길러야 하겠습니까?

    1.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서 늙어서도 그것을 떠나지 양육해야 합니다.(잠22:6)

    아이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는 말씀은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아주 당연한 말씀입니다.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육은 왜 시키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문학의 목적이나 예술의 목적도 인간의 행복에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인간이 가장 인격적이고 인간적일 때에 행복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 말씀은 지식보다도 삶을 말합니다. 인간의 도리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가르칠 사람이 누구인가? 교육학에 있어서는 교육을 책임져야 할 대상을 기성세대라고 합니다. 기성세대가 피 기성세대를 교육시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이,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그리고 사회에서는 어른들이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선생이 있는가? 다시 말해서 기성세대가 비뚤어지면 그것은 반드시 피 교육자는 비뚤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이 비뚤어 진 것조차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못 알고 있고, 잘못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법은 있는데 어른은 없습니다. 자식들은 있는데 부모가 없습니다. 학교는 많은데 존경할 만한 선생님이 적다는 말입니다. 

    어느 한의사는 이런 말을 합니다. 환자가 찾아오면 의사는 진맥을 한답니다. 진맥을 잘하는 의사는 틀림없이 병을 잘 고칩니다. 진맥을 하여 병을 찾아내기만 하면 그것은 반이상 고친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합니다. 의사는 진맥을 잘하기 위해 맥을 집고 청진기를 대고 각양의 소리를 듣습니다. 작은 숨소리에서부터, 온 몸의 박동하는 운동 소리를 듣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리고 드디어 병을 진단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행동을 늘 감찰해야 합니다. 작은 행동 하나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의 행동과 말을 마음에 담아 두었듯이 우리는 자녀를 바로 진찰해야 합니다. 청소년기의 자녀를 둔 부모는 늘 아이들이 아기인줄 알고 오진을 합니다. 그러니 대화가 되지를 않습니다. 또 부모의 자신의 생각이 비뚤어졌으니 아이가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잡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어느 날, 개와 닭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닭이 한숨을 쉬면서 하는 말이 요즘 나는 주인이 탁상시계를 사 와서 그 시계가 시간만 되면 아름다운 멜로디로 우니까 나는 울 필요가 없어졌다고 하소연 하면서 개에게 묻습니다. "그런데 왜 너는 도둑이 들어와도 짖지 않는 거니?" 하자 개가 하는 말이 도둑이 오면 짖는 것이 나의 일인 것은 잘 아는데 주인이 도둑놈이니 네가 누구를 보고 짖으란 말이냐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잘못 살고 있습니다. 개가 도둑을 보고 짖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법은 있어야 되지만 법이 활동하도록 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입니다. 법은 가장 나중에 활동해도 됩니다. 예절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예절보다 더 앞선 것은 우리 모두의 인간성입니다. 살아있는 양심입니다. 자녀들의 교육은 도덕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는 양심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사람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도 믿음으로 살게 해야 합니다.

    2.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엡6:4)

    양육은 생활을 통해서 가르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듯이 언제나 같이 다니며 함께 기도하고 전도하고 예수님 처럼 말하고, 그렇게 해야 가장 설득력이 있습니다. 요즘 부인들이 몸매를 날씬하게 하기 위하여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밥을 굶고, 약을 먹고, 에어로빅을 다니는 등 야단입니다. 온갖 신경을 몸에다 쏟습니다. 거기에 여인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자의 아름다움은 몸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인의 아름다움은 가정을 사랑하고 위하여 수고하는 것에 있습니다. 어머니의 아름다움은 몸매에 있지 않습니다. 자녀들 앞에 몸매 자랑을 해도 별로 효과 없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을 때에 사람은 가장 추하게 보입니다.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학원에 보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목회자를 존경하고, 교회를 사랑하도록 해야 합니다. 가정이 중요하고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서는 인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는 성공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버림받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자녀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시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고 하고 있습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유대인들은 임신을 하면 성경을 가장 많이 읽고 배속에 아이에게 성경을 이야기해 줍니다. 우리는 임신을 하면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어댑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가르칩니다. 6세까지 율법을 다 가르칩니다. 유치원이 다른 것이 아니라 성경 공부하는 곳입니다. 공부는 언제 합니까? 남들을 못 따라 갑니다. 하는 사람은 성경말씀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공항에 내리면 마치 세계 인종 전시장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세계 각처에서 흩어져서 살던 사람들이 모여서 나라를 이룬 민족입니다. 그런데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망한 후 이 사람들은 살 곳이 없어 세계 곳곳에 훑어져 2천년이 되도록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나서 그곳에서 결혼하고 그곳 사람들의 풍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곳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생각은 언제나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교육이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디에 가서 살던지 성경을 가르칩니다.

    우리 인간의 인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는 3세 전후입니다. 이 때에 성경을 가르치면 성경적인 인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 어려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면 늙어서도 떠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를 다니는 목적이 아주 단순합니다 착한 아이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교회에 가라고 합니다. 그러니 아이는 보내고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 자신은 그렇게 사는가가 문제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언제나 예수 제일주의로 살아가고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어떤 어린이 전도협회 목사님이 놀고 있는 어린이들을 전도를 합니다. "너 예수님을 믿니? 아이들이 "애는 교회에서 살아요." 라고 말합니다 목사님 아들입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니?" "사무엘이요.!" 그런데 구원의 확신이 그 아이에게 없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교회에 가 앉아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변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가르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외할머니 때부터 신앙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외할머니 로이스가 믿음으로 딸 유니게를 잘 길렀습니다. 그러니까 그 딸이 아들 디모데를 믿음으로 잘 길렀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술도 대물림하는 기술이 전통이 있고, 실력이 있듯이 신앙생활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어떤 목사님 동생 남편이 되는 매제가 안수집사로 임직을 했습니다. 그 교회를 건축하고 교회당 봉헌식과 함께 임직을 하는데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교회당을 건축하면, 기도 응답의 축복과 물질 축복을 받습니다."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 가족은 예배가 끝나고 나서 저녁 식사는 외식을 하기로 하고 식구들이 모였습니다. 거기서 매제가 간증을 합니다. 시골에서 교회를 건축하는데 약 2억 2천만원이 들었는데 어떻게 그 일을 해 냈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대로 온 교회 성도들이 교회당을 짓고 나서 많은 물질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동생도 땅을 사고 집을 지으려고 기초를 해놓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주님의 축복이 넘치는 것을 자식들이 보아야 합니다. 부모가 철저하게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자녀들은 그 믿음을 본받는 것입니다.

    3. 자녀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애2:19)

    성도 여러분! 자식을 낳아 길러보면 어려서 업고 다닐 때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아이가 성장하면 그렇게 못합니다. 한국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종속적인 관계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은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정을 위하여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에는 부모의 기도가 가장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는 그 아이를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부모의 기도가 자식들에게 그대로 이루어 진 것을 봅니다.

    어떤 잘 믿는 집사님의 가정에 문제를 일으키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달래고 얼래고 사랑을 베풀어도 바르게 살지를 않습니다. 부모는 최후 수단으로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리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몰래 검불이 많이 있는 헛간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저녁마다 기도를 했습니다. 얼마의 세월이 흐른 뒤 아버지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가장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헛간에 볼일이 있어서 무엇을 찾으러 들어갔는데 이상한 움푹 패인 구멍이 바닥에 나 있었습니다. 아들은 무엇일까하여 궁금이 여기고 그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머릿속에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아버지가 나를 위하여 이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다가 자신이 직접 그곳에 맞추어 무릎을 꿇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자신의 무릎이 맞는 것을 보니 살아계실 때 아버지가 자기를 위하여 밤마다 기도했다는 사실이 가슴 뭉클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그 아들은 바른 길을 걷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본문은 어떤 말씀입니까?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애2:19) 이는 시대의 풍조에 떠밀려가는 자녀의 혼미하게 주려 죽어가는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저주한 자식은 그대로 저주가 임하고 부모가 축복한 자식은 그대로 축복이 임합니다. 자녀교육 잘하는 법은 예수 잘 믿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 것은 하루 종일 교회에 와서 사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삶에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생활의 법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 찬송이 있고, 기도가 있고, 예배가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린이 주일만이 아니라 일년 365일 어린 우리의 자녀들을 위하여 이 세 가지를 유념하면서 잘 양육하여 복된 앞날을 하나님 앞에 약속받게 하는 자녀로 만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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