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가정(엡 5 : 22 - 6 : 4)
  • 조회 수: 22, 2013.07.19 21:48:53
  •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날이 갈수록 심각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짐승의 마음처럼 변하면서 사납고, 잔인하고, 참으로 물어 뜯고 뜯기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정의 소중함도 중요시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역류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는 가정의 달을 맞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도는 가정을 행복하게 지켜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가정이 행복하고 안정될 때 봉사와 헌신이 나오게 됩니다. 늘 다투고, 늘 불안한 상태에서 참된 봉사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인생의 안식처요, 정신적인 안식처요, 육신의 휴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들의 생각에 가정이 늘 전쟁터와 같이 느껴진다면 그 가정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5월 둘째 주일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성도로서 해야 할 마땅한 의무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주어진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어떤 가정이 행복한 가정인지 말씀 속에서 깨닫고 성경의 원리에 따라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아내와 남편의 위치를 찾는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 22절부터 33절까지는 아내와 남편의 위치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는 하나님 앞에서 인격은 동등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게 취급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각기 다른 기능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기능적인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인격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에게 각기 다른 기능을 주셨습니다.
    ① 아내의 주된 위치는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입니다(22절).
    성경은 먼저 '아내들이여'라고 결혼한 여인들에게 먼저 권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해야 할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남자를 먼저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창조하신 창조의 질서에 의존하여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11:3-12,딤전2:11-13).
    둘째로는, 몸의 지체로서의 구분됨을 통해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11:3,엡5:23).
    몸의 지체들이 머리의 지시에 순복하지 않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할 것인지는 명백한 일입니다. 지체가 머리의 명령을 불복하면 몸이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하지 않으면 그 가정은 희망도 없고, 무질서와 분쟁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고 말함으로 그 복종의 범위와 정도가 절대적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24절).
    ② 남편의 위치는 권위를 행사하여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보면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아내에게만 순복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남편에게도 자기 희생적인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사랑은 아가페적인 사랑이어야 합니다.
    남편의 권위는 자기 희생적인 사랑을 통하여 나타나게 됩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것처럼 남편은 아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정도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부는 두 인격체지만 하나의 동기, 하나의 방향,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한 몸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부부 관계도 언급하면서 서로의 필요를 채우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본능적인 욕심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결혼 제도를 만드신 것도 본능적인 욕심을 하나님의 법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욕과 수면욕, 식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본래적인 욕심들입니다.
    육신이 피곤할 때 사람은 자고 싶은 욕심이 자연히 생기고, 배고플 때 식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의 성욕 역시 장성한 사람에게는 본능적인 발생입니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는 상대방의 욕구에 민감해야 함을 바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전7:3-5).
    1980년대부터 여성 해방운동이 꽃을 피우면서 불행한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이혼을 요구하는 것이 여성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라고 호도하고 있습니다. 이혼을 해서 새 출발하는 것이 인생이 가진 희망이라고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탄적인 속삭임이 수많은 가정들을 힘없이 무너뜨리고 말았고, 갖가지 사회적인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인내를 통해서 서로가 가까워져야 합니다. 남편에게 순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인내로서 순복하고, 남편이 사랑할 수 없는 경우에도 인내로 사랑하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2. 부자간의 위치를 찾는 가정입니다.

    본문 6장 1절부터 4절은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먼저 '아비들아'하지 않고 '자녀들아'한 점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의 의무가 있기 전에 먼저 자녀들이 부모에 대한 의무를 지켜야 함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부터 나타난 말세의 현상 중의 하나가 부모에게 순종치 않고 거역하는 것임을 바울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권위는 신적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권위에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가 가진 재산이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내 부모님이기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을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태도는 성도가 취해야 할 태도는 아닙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순종할 때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제함으로 이룰 수 있는 기독교의 순종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어긋나는 것에는 아무리 부모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순종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부모보다 하나님이 더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순종은 사랑의 마음과 감사의 마음 그리고 존경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여기 '순종'은 '잘 듣는다',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즉 순종은 부모의 말에 항상 따라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순종 이상의 의미로 부모를 공경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공경'은 '값을 지불한다'는 뜻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값을 지불할 수 있는 마음 자세가 필요합니다.
    가정에서는 자녀보다 부모가 더 우선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들을 보면 이 진리가 역행하고 있습니다.
    부모에 대해서는 돈 드는 것이 아깝고, 어버이 날이라야 뭔가 조그마한 선물을 하고 생색을 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녀에 대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에 값을 지불하는 이상한 현상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자식만 귀여워하고 물질을 투자하지 부모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부모님이 계신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들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들입니다.
    우리의 생각들이 이제 바뀌어져야 합니다. 내 자식보다도 부모님을 크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자녀들이 땅에서 장수하고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는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기를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부모된 우리로서는 자녀를 어떤 기계나 동물처럼 다루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녀들도 비록 나이가 어릴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인격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과잉 요구, 비인격적인 요구들은 삼가야 할 부분입니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의 잘못에 마땅히 징계를 해야 하지만 분노를 일으키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롬10:19,골3:21).
    이것은 곧 부모가 사랑의 징계를 해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채찍과 꾸지람이 없으면 자녀들이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잠13:24,22:15,잠29:15). 그러나 책망 속에서 부모의 화풀이 식의 꾸지람은 오히려 자식에게 분노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마땅히 믿음의 부모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여기 '교양'은 자녀에게 본을 보여 자녀를 인도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의 행동으로 자녀를 훈련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훈계'는 '권면', '경고', '교훈'의 뜻으로 말로서 자녀를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훈계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감정에 따라 비슷한 일을 어떤 때는 혼내고, 어떤 때는 칭찬하고 하면 아이들의 가치관이 혼란스럽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행복한 가정'이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부부 관계가 좋고 질서가 있는 가정입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며 부모님을 공경하는 가정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가정입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가정의 공동체를 이루어 행복이 넘치는 축복의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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