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기적을 봅니다.(막16:1-8)
  • 조회 수: 225, 2013.02.08 20:43:56
  • 1. 들어가는 말

    몇 해 전 비행기사고로 우리 나라 의사 여러 명이 죽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캄보디아에 있
    는 대학에 의료기구를 전달하려고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전원 사망했습니다. 그 중 한 사람
    은 제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같이 신앙생활을 했고, 집에도 자주 가고 부모님도 같은 교회
    에 다니기에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귀국 후 다른 친구와 함께 인사차 그 집에 들러서 부
    모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그 동안 그 일 이후로 지내왔던 얘기
    를 하는데 어떻게 말을 할지 몰라 안타까웠던 순간이었습니다. 뭐 말로 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그 가정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 형제의 가정도 깨졌고, 아버지는 이 일로 인해
    병으로 드러눕고, 어머니는 많은 고통 중에 지내게 되었습니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
    니다. 어떻게 그 어려운 시간을 견디어냈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떻게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슬픔의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 그 죽었던 아들이 나타났습니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저 이렇게 천국에서 예수님 하고 잘 지내고 있어요, 이렇게 좋은데 있
    는데 왜 우세요, 우리 천국에서 볼 수 있도록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세요. 아버지
    도 교회 열심히 다니라고 하세요. 동생들에게도 하나님 잘 믿으라고 하세요"라고 말했습니
    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이것에 집착하니까 그런 꿈을 꾸었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슬픔에 빠질 때 절망할 때는 종종 이런 꿈을 동일하게 꾸는 것입니다. 동생들도 이런 꿈을
    꾸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마음이 진정되고 위로가 되고 정신이 좀 차려지더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죽은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꿈에 아들은 종종 산 사람처럼 나타나
    얘기하고 위로하고 하면서 대화를 합니다. 누가 이것을 착각이라고 환상이라고 현실이 아니
    라고 한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 꿈을 통해 그들은 만나고, 힘을 얻고, 용기를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만 볼 수 있는 기적입니다.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랑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떨어져있어도 서로
    통하는 게 있습니다.  

    요즘 인기를 끄는 드라마인 '허준'을 보면 종종 이렇게 허준이 얘기하는 것을 듣게됩니다.
    "우리 스승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의 스승은 죽
    은 사람이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허준의 마음속에 살아있으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인다고 없어진 게 아닙니다. 안보여도 존재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2. 본문을 향하여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는 이런 사랑의 능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서 먼저 15장 43절부터 봐야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아리마데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당당하게 예수의 죽은 시체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벌써 죽었
    는가? 의아해하다가 확인해본 후 시체를 내주었습니다. 요셉은 세마포를 사다가 예수의 시
    신을 싸고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막아놓았습니다.

    47절, 요셉이 이렇게 하는 것을 은밀히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
    세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이 여인들은 이 자리를 보아둔 뒤에 자기 처소로 갔습니다. 바
    로 안식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본문으로 연결됩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
    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습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오
    후부터 토요일 오후까지니까 이들은 토요일 저녁에 향품을 샀습니다. 그리고는 밤이 되어
    아무 것도 못하고 다음날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여인들은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
    고 무척 지루하게 이 시간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아마 어서 날이 밝기 만을 기다리면서 뜬
    눈으로 날을 샜는지도 모릅니다. 어서 예수님을 보고 그 몸에 향품을 발라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2절, 여인들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갑니
    다.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들입니까? 이미 돌아가신 주님이지만 생전에 예수께 받은 사랑을
    잊지 못해 다시 무덤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 무덤을 향해 갈 때만해도 예수께
    서 다시 살아나신다 든지 하는 것은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런 것은 생각할 수도 없
    었습니다.   여인들은 부활을 기대하고 간 것이 아닙니다. 생전의 주님 사랑에 대한 기억을
    좇아 향품을 바르고 고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좇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가기는 하지만 이들에게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틀전 본 무덤을 막고 있는 커다란
    돌에 대한 고민입니다. 연약한 여인의 힘으로는 이 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가면서 여인
    들끼리 얘기합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주리요" 이 얘기를 하면서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습니다. 가기는 가지만 희망 없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가다가 눈을 들어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돌이 벌써 굴려졌습니다. 심히 큰
    돌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무덤 안에 들어가 보니 죽은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흰 옷 입은 청년만 보입니다.
    천사였습니다. 이 청년을 보면서 또 한번 놀랍니다. 죽은 예수는 없고, 산 사람만 있기 때문
    입니다.  더구나 더욱 놀랄만한 이야기를 이 천사에게서 듣습니다.

    6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죽었다고 생각했던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엊그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두
    눈으로 똑바로 보고 무덤에 시신을 장사 지내는 것까지 보고 갔는데 몇 일만에 다시 살아났
    다는 것입니다.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운명하시는 순간에 그 현장에서 보
    았습니다. 눈물도 흘렸던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에게
    는 믿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뭐에 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7절,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이제는 이 부활사건을 전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도 믿기 어려운데 이 소식을 다른 사람
    에게도 전하라는 것입니다. 충격의 연속입니다.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현은 바로 이럴 때 쓰
    는 표현입니다. 여인들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하고 상상치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8절에는 이 여인들의 놀람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심히 놀
    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물론 여
    인들이 영원히 이런 침묵을 지킨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는 가서 부활사건의 증인이 되어 제
    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놀라워서 감히 입을
    열어 증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3.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오늘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사랑의 능력입니다. 사랑은 모
    든 것이 절망적인 때에도 포기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사랑했던 여인들
    은 사랑의 기적을 체험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 

    3절을 다시 보십시다. 여인들은 무덤 문이 이미 돌로 막아져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곳에는 이들을 위해 돌을 옮겨줄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향품을 사들고 무
    덤에 가야 예수님께 접근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포기해야죠.  그런데
    포기하지 않습니다. 뻔히 안 되는 줄 알면서, 상황이 어려운 줄 알면서도, 이들은 나아갑니
    다. 무엇이 이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오게 만들었습니까? 예수에 대한 사랑 때
    문입니다. 이 사랑은 여인들의 신앙이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기에 안 나갈
    수 없었습니다. 비록 무덤에 들어가 예수님을 못 뵌다 하더라도 그냥 앉아있을 수 없었습니
    다.   그래서 무덤을 향해 나왔습니다. 허탕쳐도 좋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허탕치는데 괜찮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은 항상 보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
    오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가보니 무덤을 막고있던 돌이 굴려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
    시면서 이미 사랑의 역사를 이루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
    시키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이것은 사랑의 능력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멈추
    게 하지 않습니다. 가만있게 만들지 못합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일어나 나가 도전하
    게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은 항상 하나님의 풍성한 응답을 누립니다. 

    주님을 찾는 자--기적을 보리라

    그렇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을 찾는 자, 주님께 나오는 자,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기적을 봅니다. 이건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만 보는 기적입니다. 만일
    이들이 "가봤자 헛일이다"라고 체념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탄식과 절망의 한계 안
    에 머물고 말았을 것입니다. 3절의 표현처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라고 말하는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라는 표현에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보입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일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데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해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막힌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은 이미 앞서 가시면서 모
    든 것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봅니다.  무덤 문이 열린 것은 여인들의 사랑에 대
    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두 번 째 기적--위로의 능력

    두 번째 이 여인들이 경험한 것은 무엇입니까? 6절, 하나님의 위로와 부활소식이었습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
    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천사를 통해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은 여인들
    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때 다른 제자들은 흉악범과 동일하게 처형당한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다 도
    망갔습니다. 제자의 삶을 버리고 옛날의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인
    들도 허무함과 낙심에 빠져있었습니다. 이런 여인들에게 주님이 주신 선물은 위로였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찾는 자가 받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던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
    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3-4) 어떤 절망과
    슬픔 중에 있더라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 그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합니다.

    죽은 예수: 산 예수

    본래 여인들이 무덤에 가면서 찾았던 예수는 어떤 예수입니까? 6절, 천사의 대답 속에 답이
    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여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습니다. 역사 속에 존재하셨으나 지금은 이미 사라져버린
    예수 그리스도, 과거의 예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예수를 찾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죽
    은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슬픔 중에 있는 여인들에게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그런 예수
    였습니다.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무덤에서 이들이 천사
    를 통해 발견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바로 그 무기력의 현장에, 허무의 장소에 여전히 살아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가 살
    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천사를 통해 소개된 예
    수님 입니다.  그 예수님은 먼 과거 속의 예수님이 아니라, 현재 슬프고 놀란 여인들을 위로
    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의 하나님, 바로 여기의 하나님, 현재의 하나님입니다.

    죽은 예수를 찾아 무덤에 나갔던 여인들은 뜻밖에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한 분만의 부활이 아니라 이제 이 사실을 믿는
    모든 사람의 부활이 된 것입니다.

    그때 그 현장에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이 사실을 믿는 모든 신자의 삶에 현재형으로 살아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놓쳐버리고, 끝나버렸다고 생각하는 그 현장에
    도 여전히 현재형으로 살아 계시면서 새로운 시작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예수님 이라면 무엇을 못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부활하신 하나님을 만나
    는 모든 사람의 삶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요, 언제나 새 출발이 되
    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이 어떤 환경 속에서도 그 능력으로 새 일을 시작할 것이
    기 때문입니다.

    복음--사랑하는 자에게만 맡긴 것

    세 번째 여인들이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부활의 소식을 알리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7절
    시작과 마지막 부분은 "가서'라는 말과  '....뵈오리라 하라'로 끝납니다. 가서 부활의 소식
    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갈릴리에서 주님이 그들을 만나기를 원한다는 것을 전하라는 것입니
    다.
     
    장사지내러 갔다가 부활소식을 알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치 장례식에 갔다가 결혼소식
    을 듣는 것 같습니다. 여인들은 슬픈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갔지만 기쁜 소식을 듣고 내려옵
    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여인들이 받은 최고의 복은 무엇입니
    까? 부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기에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사람에게 주의 일을 맡기십니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에게 맡기십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일할 때 오래가지 못하거나 기쁨으로 하지 않기 때
    문입니다.

    그런데 잘 보시면 특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덤에서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을 먼
    저 말해준 존재는 천사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천사가 사람들에게 부활의 소식도 알리면 되
    지 않겠습니까? 뭐 여자들을 시키고 말고 할 것 없이 천사들이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데 그렇게 안 합니다. 굳이 여인들에게 맡깁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인
    간보다 먼저 알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까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기쁜 소식은 예
    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맡기신 일입니다.  
    좋은 소식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알릴 때 더 감동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
    을 정말 신나게 전하는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부활
    의 기쁜 소식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주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하기
    쉽습니까? 살아났다는 소식이 전하기 쉽습니까? 살아났다는 얘기입니다.

    4. 부활신앙은 사랑하는 자에게만 주신 선물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부활을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릅니다. 예!
    그럴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기 이전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부활은 이성으
    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해되는 것도 아닙니다. 설명해도 안됩니다. 부활은 신앙으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는 이
    성으로 해결되지 않는 수많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죽어도 함
    께 있습니다. 물론 육체로 함께 있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정신 속에, 의식 속에 늘 살아있습
    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끼리만 통하는 비밀이요, 기적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예수님
    은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동행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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