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의 능력 (요20:1-18)
  • 조회 수: 226, 2013.03.31 10:27:21
  • 오늘은 전 세계가 부활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서 여러분의 인생이 역전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남긴 월남 이상재 장로님에게 한 번은 일본 신문 기자가 질문하기를 "간디는 평소에 100세를 산다고 하였고, 누구는 몇 세를 산다고 하였는데, 선생님은 몇 년이나 사실 작정이십니까?" 하였습니다. 이상재 장로님은 그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사람이 한 번 났으면 영원히 살지, 죽기는 왜 죽어!"라고 했다고 합니다. 독립운동가로, 정치가로, 외교관으로, 교육가로, 그리고 교회 봉사자로 다양한 일생을 보내신 월남 이상재 선생님의 생의 비결은 이와 같은 "부활의 신앙"이었다고 믿습니다. 1907년 평양 대 부흥이 일어날 때 강력한 회개의 역사도 일어났는데 한 번은 길선주 목사님께서 장대현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시는데 한 순사가 독립운동 혐의를 가진 교인을 잡으러 교회에 왔다가 길선주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기를 내가 진짜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하면서 회개 하고 예수님을 믿었던 일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빚을 받으러 교회에 왔다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부활의 능력은 초대 예루살렘교회와 한국의 교회를 뒤흔들어놓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최초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을 봅니다. 그녀는 본래 일곱 귀신이 들렸던 창녀였습니다. 그가 주님께 은혜를 받아 고침을 받고 정말 주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녀가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열심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죠. 그런데 그녀의 문제는 주님이 평상시 여러 차례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녀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시체에 바르는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시신을 찾으러 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11절을 보니 무덤 밖에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초월적인 천사들을 굴 안에서 만났지만 그의 감각이 마비되어 있다 보니 단지 그들이 동산지기라 생각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어디에 두었느냐고 묻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빛난 옷과 그들의 품위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아무 감각이 없이 마리아는 자기의 슬픈 생각에만 잠겼습니다. 마리아의 이런 모습은 초월에 대한 감각이 없는 현대의 지성인들과 같습니다. 심지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 앞에 나타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묘원지기로 생각하고 예수의 몸이 없어진 데 대해서만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사람의 사고방식은 자기가 경험하는 것의 범위를 넘어가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다시 사셨다는 것을 의아해 하며 자연과학의 세계관을 매개로 하여 생각하려고 합니다. 부활 자체도 잘 믿지 않지만,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했다면 지금 어디로 가 계실까? 아직도 우주의 신비를 간직한 태양계의 유성 가운데 목성이나 해왕성 같은 것 중의 하나에 가 계시지나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주변의 어떤 사람은 예수의 몸은 썩어버렸지만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의 심중에 예수님이 살아난 것이라고 그럴듯하게 부활을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불신을 만들어 낸 것은 사람들에게 부활의 신비한 내용을 감당할 영적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연 과학적이요, 논리적인 사고에 영합하며 자기가 좋게 여기는 대로 신앙을 왜곡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부활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뭔가 합리적인 인식능력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틀린 일입니다. 부활은 자연과학과, 인간의 지식, 상상력을 뛰어넘는 가공할만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우리 마음이 받아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면 부활이라는 것을 막연히 받아드려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닙니다.

     

     누가복음 24장 30-31에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해서 낙심하였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떡을 축사하시고 떼어 주실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성경을 풀어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겁게 된 것은 바로 성령의 부어주심입니다. 우리 심령에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기도의 불, 말씀의 불, 봉사의 불을 붙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그 심령이 불타니 영안이 열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 되고 낙심에서 용기, 절망에서 소망을, 좌절에서 새 힘을,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러한 사람으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자연과학으로, 형이하학적인 것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고차원적인 성령의 역사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모든 제자들과 초대교회의 수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신앙을 받아드린 것은 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믿음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사람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신앙으로 무장할 때 어떤 능력을 가집니까?

     

    첫째, 부활신앙을 통해 단절을 이음표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이 나타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 죄의 결과는 죽음이며 동시에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단절은 쓰라림, 슬픔, 비극 자체입니다. 이 단절 앞에 모든 인생은 가슴을 찢는 아픔과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절망감을 경험합니다. 고뇌와 불안과 소외와 고독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은 단절된 것을 이어놓는 이음표였습니다. 죽음을 생명으로, 모든 고뇌와 절망을 환희와 희망으로 이어놓은 이음표였습니다. 현대인들이 정신병에 잘 걸려요. 정신신경과에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아픈 현실을 감당하지를 못합니다. 오늘의 고통, 오늘의 역경을 내일의 희망으로 이어주지를 못하니까 그만 단절감을 느끼고 정신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오늘과 내일을 이어주는 능력입니다. 오늘이 다가 아닙니다. 지금이 다가 아닙니다. 내일이 있어요. 내일을 생각하는 신앙.... 이게 바로 부활신앙인 줄 믿습니다.

     

    둘째, 부활은 마침표를 쉼표로 바꾸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인생들은 죽음을 마침표로 여기고 “죽으면 그만이야” 합니다. 죽음 앞에 인간들은 무기력하고 무능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마침표를 쉼표로, 끝을 시작으로 바꾸어 놓은 사건이었습니다.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처럼 주님은 오늘의 사건을 통하여 내일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길이 막혔어도, 실패했어도, 앞길이 망망해도, 부활의 주님을 믿고 바라보며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 부활은 흩어짐이 아니라 묶음표였습니다. 흩어짐이 왜 일어납니까? 실패했다고 보기 때문에.... 주님은 흩어진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처음에 부르셨던 곳, 배와 그물과 부친을 버려두고 따랐던 갈릴리에 찾아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이곳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흩어진 제자들을 하나로 다시 묶어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처량하기 짝이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큰소리치며 모였는데..... 처음 사랑은 다 사라지고, 제각기 자기 삶을 찾아 떠나는 모양입니다. 주님 안에서 실패하면 우리가 어디를 가든 성공하겠습니까? 제자들을 보십시오. 실패했다고 다시 그물과 배가 있는 곳으로 가지만 거기서 뭐 좋은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주님이 그들을 찾지 않으면 그들의 인생은 정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들을 찾으신 것 아니겠습니까? 고전15장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라는 주님의 말씀을 꼭 붙잡고 더욱 더 모이기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님은 부활을 통해 “내가 살았고 이제 너희도 살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살아났으니 우리도 살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다시 살고, 우리의 교회도 다시 살고, 막막한 이 대한민국도 부활신앙으로 우리가 뭉치면 다시 한 번 한강의 기적을 꽃 피우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꼭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성령의 부어주심을 받고 절망에서 소망을 좌절에서 용기를 두려움에서 평강을 자포자기 인생에서 꿈을 가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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