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의 소원 눅 (16:19-31)
  • 조회 수: 239, 2012.12.23 09:51:42
  •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잔치를 했습니다. 그는 돈이 넘쳐나는 부자였으나 그의 집 대문 앞에서 온 몸이 헌데 투성이로 음식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거지 나사로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천국은 하늘이 아니라 이 땅이었습니다. 돈으로 건강을 챙기고, 돈으로 권세를 부리고, 돈으로 출세하고.... 그런 그가 아까운 세상을 죽어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토록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습니다. 히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말씀합니다. 죽음이 찾아오면 아무리 권력이 세고, 돈이 많아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왕후장상이. 그 어떤 영웅호걸이 죽음을 피해 영원히 살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부자의 이야기는 현실에 도취하여 필연적인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평소에는 돈 벌고, 출세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일에만 소원을 가졌던 이 어리석은 부자가 지옥에 떨어지자 두 가지 소원이 생겼습니다. 적어도 그에게는 평소에 거들떠 보지도 않던 하찮은 것들이었죠,

     

    1. 지옥에 간 부자의 첫 번째 소원은 목 축일 한 방울의 물이었습니다. “불러 아뢰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24절) 지옥에 간 부자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목이 말랐으면 이런 소원을 말했겠습니까? 지옥은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성경에 지옥에 대한 묘사가 여러 가지로 표현되는데, 시 116:3에는 고통만 있는 곳으로, 전 9:10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는 곳으로, 아 8:6에는 잔인한 곳으로, 사 14:11에는 구더기와 지렁이로 뒤덮인 곳으로, 마 5:22과 계 20:10에는 꺼지지 않는 불 못이 있는 곳으로, 막 9:48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으로, 막 9:48에는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는 곳으로, 눅 16:24에는 기갈당하는 곳으로, 살후 1:9에는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는 곳으로... 이렇게 묘사됩니다. 이런 지옥에 가게 되면 이 땅에서 누리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물 한 모금이 간절한 소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 라고 하셨죠. 우리는 지금 누리는 것이 다 라고 생각하여 죽음 너머의 세계에 무관심하고, 무지하게 되면 이 부자와 같이 물 한 모금이 절실한 그런 절망의 상황에 빠질 수 있음을 알고 지옥은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정말 성도들이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죽을 때가 되면 철이 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죽을 병에 걸리면 그동안 살아온 것이 후회 되고, 더 잘 살았어야 할텐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지옥을 믿어야 우리 신앙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옥과 천국... 비록 우리가 가 보지는 않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천국과 지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제 성경이 틀린 적이 있습니까? 사람은 살과 뼈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은 우리가 죽는다고 소멸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이 가야 할 곳은 따로 있는데 그게 바로 천국과 지옥입니다. 왜 귀신을 이야기합니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신 이야기 없는 데가 없습니다. 이것은 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고, 거기가 바로 천국과 지옥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확실히 믿고 천국 가야지, 지옥에 떨어지면 영원토록 이 부자처럼 물 한 방울을 갈망하며 고통 가운데 있게 됨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지옥에 간 부자의 두 번째 소원은 아직 세상에 살아 있는 가족들에 대한 염려입니다. 눅 16:27-28에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언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세상에서는 형제들은 고사하고 자기 영혼 하나 챙기지 않았던 그가 이게 왠일입니까? 죽어보니 철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소용 있겠어요? 다 철 지난 깨달음이요, 지나간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꼴입니다. 이 부자는 지금 지옥에서 세상에 살고 있는 남은 다섯 식구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왕에 이렇게 되었지만, 그들만은 이곳에 오지 말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장소가 바로 지옥입니다. 세상에서는 명문대학교에 보내고, 자식 출세하고, 돈 많이 벌고, 대접 받는 그런 소원만 가지고 있었지, 그 자식들, 형제들 지옥가는 문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철지나고, 때 지난 후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한 번인들 천국과 지옥을 생각해 보았겠습니까?

     

    오늘날 지옥 이야기를 하면 웃기는 이야기 내지는 유치한 농담으로 듣는 경향이 있는데, 정말 우리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옥을 인정하지 않거나 잊어버리고 산다고 해서 지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딕슨 박사는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강단에서 지옥에 관한 설교를 더 많이 했다면 우리 사회에서 지옥과 같은 현실이 더 적어졌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지옥 불을 보여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잠 24:11에 “너는 사망으로 끌러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전도는 시급성과 긴박성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지옥으로 떨어져가는 가족을 하루바삐 건져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에게 다섯 형제는 누구입니까? 일단 사람이 죽게 되면 구원 유무에 따라서 구원받은 자는 천국으로, 구원받지 못한 자는 음부 즉 지옥으로 가게 되는데 아브라함은 지옥과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기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일단 사람이 죽으면 또 다시 구원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일지라도 죽은 후에는 구원 받을 길이 전무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다섯 형제, 즉 내 사랑하는 가족... 더 늦기 전에 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물론 이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기는 것이기에 산을 옮기는 심정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청합니다. 나사로를 나의 집에 보내어 나의 형제 다섯에게 전도해서 이곳 지옥에 오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하고 거절당합니다. 그러나 부자는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라고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논리로 부탁했습니다만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31절)고 했으니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모세와 선지자... 다시 말해서 주의 종들, 전도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비록 죽은 자, 조상이 되살아나서 전도해도 절대로 안 듣는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찾아오면 무서워할 수는 있겠지만 사람을 회개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은 귀신을 보았다고 난리를 칩니다. 무서워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신도 그렇게 귀신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영락공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산 자는 산 자이고, 죽은 자는 죽은 자이다’ 라는 말을 뼛속 깊이 느낍니다. 그 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 자신이 멀지 않은 장래에 죽은 자로 이 곳에 온다는 것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떠들고, 웃고.... 조금도 숙연한 모습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으로 변화 받지 못하는 자들이 죽은 자의 귀신을 본들 무서워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예수를 믿겠습니까? 이 말씀은 무슨 뜻이냐 하면 죽은 귀신보다도 살아있는 우리가 더 확실하게 지옥 갈 영혼들을 천국으로 건져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 부자는 음부에 가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내가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죄를 짓지 않고 회개 했을 텐데, 그리고 내 가족, 형제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구원받게 인도했을 텐데, 늦었지만 이제라도 내 형제 다섯에게 경고해서 그들은 이곳에 오지 않게 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으로 음부에서 전도했으나 버스가 지나간 뒤에 손 흔드는 격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다급한 마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추수 때가 지나가기 전에 추수해야 합니다. 우리가 추수 때가 되었는데도 전도하지 않으면 그 열매를 마귀들이 와서 다 따갑니다. 때늦은 전도는 사실상 무의미하며 이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 총동원전도주일을 바라보며 우리의 배우자, 자녀, 형제, 친척, 이웃.... 기회가 되는대로 전도하여 하나님의 집을 채우는 큰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하나님... 어리석은 부자는 이 세상에 있을 때에는 깨닫지 못하다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고, 그 지옥을 경험해보고서야 내 가족, 내 형제를 구원해야 하겠다는 철지난 소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후전도가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있을 때에,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우리 가족, 우리 형제, 우리 이웃 구원을 위해 열심히 전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때가 가까웠는데 세상일에만 바빠서 지옥 갈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너무 많습니다. 우리 중에도 그런 사람이 없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천국과 지옥을 확실히 믿고 영혼구원에 앞장서는 저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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