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에 빚진 자 (로마서 1:14~17)
  • 조회 수: 85, 2012.12.23 10:00:22
  • “헬라인, 유대인. 지혜로운 자, 야만인..... 모두에게 빚 진 자다...... ex)안철수 후보가 대선출마하며 자신 있게 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빚을 지지 않았다.”  세상에 살면서 빚을 안진 사람이 있을까? 물론 돈을 빌리지 않아서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빚을 졌고, 살아오면서 가족과 선생님, 친구들, 그리고 나의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빚을 졌어요. 우리가 무인도에서 옷을 벗고 살지 않는 한... 그런 면에서 우리는 빚쟁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크게 빚진 대상은 하나님이죠.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은 주님께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왜? 자신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다니던 자, 주님을 핍박하던 자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자기에게 환상가운데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계속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은 저주받아 마땅한 자였는데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그래서 자신을 복음에 빚진 자로 고백한 것입니다.

     

    빚은 갚아야 하죠. 갚지 않을 빚은 없습니다. 누구에게? 하나님께... 어떻게? 사도 바울은 헬라인, 야만인, 지혜 있는 자, 어리석은 자에게.... 곧 복음을 모르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얻게 함으로써 그 빚을 갚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러 로마에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만 빚 졌습니까? 우리도 복음에 빚진 자요... 빚을 갚아야 하는 인생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5000년 동안 각종 우상을 숭배하며, 샤머니즘 정령숭배... 등 안 믿어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3년마다 전쟁을 치러야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조선조 말에는 급기야 나라까지 빼앗기고 식민 통치를 받는 치욕을 겪었습니다. 어둠과 황폐함이 난무하며 멸망해가는 나라였습니다. 복음을 들고 이 조선 땅에 찾아온 수많은 선교사들을 대동강에서 불태워 죽이고, 성경책을 도배지로 바르고 담배말이 종이로 썼습니다. 선교사들을 서양귀신이라 저주하며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며 죽였습니다. 그렇게 무지하고 야만적인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형 교회의 대부분은 한국 땅에 있습니다. 또 선교사를 미국 다음으로 많이 파송했습니다. 한국은 복 받은 나라입니다. 전에는 우리 모두 복음의 핍박자요 훼방자였습니다. 그런데 죄인 중의 괴수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복 된 소식을 전해주시고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도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가면 한국에 복음을 전하겠다고 들어와 죽음을 당한 선교사들과 그의 어린 자녀들이 수 백 명이나 묻혀 있습니다. 약 한 번 먹이지 못하고 타국 땅에서 죽어갔던 어린아이들을 지켜보던 부모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곳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가 있습니다. 부유한 영국의 귀족으로서 주님을 믿고 결혼도 하지 않은 선교사로서 흑암의 땅 한국으로 건너와 이 땅을 바라보며 기도했던 내용입니다. 좀 길지만 읽어드릴께요.

     

    “주여,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 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속내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 귀신, 양귀자 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그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이들이 이 한국과 무슨 상관이 있어서 이렇게 이 땅을 안고 애절하게 기도했겠습니까? 사도 바울처럼 복음의 빚진 자로 알고 이 땅에 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기도를 읽을 때 우리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우리가 우리 민족을 위해 복음의 나팔수 되기를 거절하는데 100년 전에 이 땅에 건너와 이 민족을 위해 헌신하다가 이 땅에서 죽어서 저 양화진 묘역이 생긴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세계 열방을 품고 선진들의 피 뿌림 과업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부끄러워해서야 되겠습니까? 철없는 자녀는 외양으로 볼 때 보잘 것 없는 부모라고 해서 부끄러워합니다. 자기를 어떻게 희생하며 키웠는지 모르고.... 우리가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사람들로부터 침 뱉음과 저주를 받으며,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기까지... 그게 다 나를 위한 것이고,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심 이었습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 또한 없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를 부끄러워하고,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단 말입니까? 그 당시에 헬라인이 구한 것은 지혜였습니다. 로마인들은 명예와 권력을 구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구한 것은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담대하게 이 복음을 자랑한다고 선포합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6절) 그래서 바울은 이 복음을, 기쁜 소식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남을 너무 의식하다보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부끄러워합니다. 나를 어떻게 볼까 주님도 예수님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눅 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주님이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끄러움이 웬 말인가. 사도 바울은 목숨조차도 조금도 아까와 하지 않았습니다. (행 20: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복음은 불난 집에 불인지 모르고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불이야’하면서 ‘빨리 나오라’고 소리지르는 것과 같습니다. 거기에 무슨 부끄럼이 있겠습니까. 외치지 않는 사람은 ‘영적 살인 방조죄’에 해당합니다. 외치지 않으면 이 돌들로도 외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고전 9:16)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복음은 전해도 되고 그렇지 않아도 되고... 한 것이 아니라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미친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2. 복음의 능력을 알아야 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씀합니다(17). 하나님의 의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뜻이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합 2:4). 또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16).이라고 했습니다. 능력 있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으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라는 거룩한 부담감을 가져야 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의 능력을 알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하기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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