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요3:16-17)
  • 조회 수: 166, 2013.06.11 18:29:41
  •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예수 믿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입니다. 먼저 결론부
    터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해 주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일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아니 사랑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일이 
    뭐죠?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인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 주신 일입니다. 언젠가 제가 밤
    에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는 내용을 잠시 들은 적이 있는데, 물론 일부러 들으려고 한 것은 아
    니었고요, 하도 그 기도에 간절한 사연이 담겨 있어서 가만히 들어보았는데, 그 기도의 거의 대
    부분이 자녀 때문이었습니다. 자녀의 장래를 위한 한 여성도의 간절함이 배여 있었습니다. ... 그 
    만큼 부모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자식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랑하는 아들을 하
    나님이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은 이 세상을 사랑한 결과인데,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세
    상이 과연 그렇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하냐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보는 이 세상은 우리 육체가 시키는 데로 하는 것 같
    습니다. 그 한 실례로, 우리 육체가 조금만 아파도, '아야-'하면서 병원이나 약국에 가야하고, 조금만 배고
    파도 먹어야 합니다. 제가 지난 한 주 동안 금식하면서 참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많았는데, 
    받은 은혜 못지 않게, 약간은 힘든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먹는 거였습니다. 이 
    배고픔의 유혹을 견디기가 좀 어렵더라고요. 저와 함께 기도한 두 분의 목사님이 더 계신데, 금
    식마지막 하루를 앞두고 같이 금식기도 한 목사님께서 사모님께 전화를 거는데 제가 옆에서 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굉장히 심각하게 전화로 이야기하는데 '여보, 준비됐지, 나는 마음
    의 준비가 끝났어.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시키는 데로 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그 내용을 잠시 
    들으니까 막 긴장이 되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가만히 목사님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니까요, 스타일이 다 다르더라고요? 또 부
    르는 찬송이나 복음송도 다 달랐습니다. 그런데 전화하신 목사님은 가만히 들어보니까 주로 많
    이 부르는 찬송이 뭐였냐 하면,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였거든요... 그러니
    까 저와 또 다른 목사님이 굉장히 궁금하면서도 막 긴장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
    었습니다? '목사님 기도응답 받았습니까?' 그러니까 '예 받았습니다.' 아- 그래요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아까 사모님한테 한 전화내용이 궁금한데 무슨 중대한 결정이 있나봅니다 그러니까 이 
    목사님이 심각하게 저를 보며 하시는 말씀이 '아- 아까 그 전화요? 제가 집에 도착하면 바로 
    밥 먹을 수 있도록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끓여놓으라는 말인데, 자꾸만 죽을 고집하기에 잠시 
    목소리에 힘을 좀 준 것뿐입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듣고 보니까 진짜 심각했군요 하면서 잠
    시 웃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제게 이런 깨달음이 왔습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내 육체에는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이
    렇게 빨리 반응이 나타나는데, 내가 내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과연 얼마만큼이나 영적인 민
    감성을 가지고 있나하고 내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니까요, 제가 대답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만
    큼 내 영적인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민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 육도 필요하지
    만, 영은 더더욱 필요한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영의 삶을 사는데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육체의 사람은 조금만 먹을 것이 떨어져도 금방 압니다. 물질이 떨어져도 압니다. 돈
    이 떨어지면 더더욱 빨리 압니다. 그래서 육체의 사람들은 늘 그 걱정이 가만 보면, 물질 아니
    면 돈 때문에 걱정입니다. 그만큼 돈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잘 안 되는 것을 가지고는, 왜 영적인 교제가 안 이루어지는지, 무엇이 내게 문제인지 
    진짜 영적인 배고픔을 모르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영과 이성을, 마음과 심령을 깨끗하게 해주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
    리가 주일예배를 바로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일만이라도 하
    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일만이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찬
    양과 기도의 능력으로 봉헌으로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으면 최소한 그때만이
    라도 우리가 범죄 할 생각들을 죽이니까 얼마나 감사하냐 이 말입니다. 이런 기대감이 주일마
    다 예배하는 자들에게서 회복되어서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서 죄지을 생각들을 죽이고 하나님  
    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만 되면 그렇게 좋습니다. 아니 토요일 저녁만 되면 
    그때부터 주일이 기다려지면서 기대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혼자 방에서 신이 나서 뛴 적도 있
    습니다. 왜요? 이 날만이라도 하나님이 나를 능력으로 깨끗하게 하실 것을 믿으니까요? 

    그래서 세상이 물질과 향락을 향해 달려갈 때,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하고 기
    도하며 서로를 축복하고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그래야 합니다. 여천공단
    을 위해서 그래야 합니다. 형제의 아픔과 고통을 위해서 그래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동안 정말 사람의 아들로 남고 싶었고, 사람의 아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래
    서 예수님의 생애동안 있었던 복음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거기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하기를 
    저가 분명 나사렛 촌사람인 것 같은데, 어쩌면 하는 일들이 그렇게도 하나님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다 끌어 모아보니까 결론이 예수는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7:24절에서 그의 생애동안 그가 끊임없이 고백했던 내용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요, 죄인인데,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하면서, 나를 건져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스스로 자신
    이 죄인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펴놓고 보니까 내 인생이 하나님 보시기
    에 짐승같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서 피 흘려주시기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피 값으로 비로서 짐승이었던 내가 사람으로 변했고, 사람에서 다시 성도로 부
    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 나라의 권리를 상속받은 것입니다. 

    나는 의로운 것이 없지만 하나님 나라의 부활의 권리를 찾은 것입니다. 이런 뜨거움을 다시 회
    복해야 합니다. 이것을 두고 자유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자유. 이 
    자유를 예수 믿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 5:1, 13절에서, "이 자유를 위하여 부
    르심을 입은 너희는 굳세게 서서, 다시는 자유함을 입은 너희가, 죄의 종노릇하는 멍에를 메지 
    말고" 이제는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합니
    다. 

    제가 지난 한 주 동안 기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문제가 있었는데 '나는 누구인가?'하는 거였습
    니다. 내가 내 자신을 향해서 '나는 누구인가?'하고 물었을 때, 내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아직도 
    자연인의 모습이 남아 있었고, 지성인의 모습이 남아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철저한 영적인 사
    람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 속에 비친 모습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위
    선의 탈을 써야만 했고, 참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목회 하면서 배운 것은, 좋아하지 않은 것도 좋아해야만 했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좋아
    해야만 했습니다. 또 마음에 없는 말을 다 담고, 얼마나 살아야만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
    니까 내 마음속에 남는 것은, 말못할 사연들이 너무 많이 쌓이게 되더라고요? 오로지 하나님만
    을 사랑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또 다른 내 모습이 비쳐진 것입니다. 그러니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역사 하시는 자유를 누릴 수가 없는 것은 너무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기도하면서 하나님 무엇이 문제입니까? 나를 고쳐주옵소서. 깨닫게 하옵소서. 그러
    면서 계속 기도하기를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계속 제 머리 속에 요 3:16절 말씀
    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
    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계속 되세기
    면서 '아- 그렇구나. 하나님은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시는구나.' 그래서 멸망 받을 나에게 영생을 
    주고 싶어서 나를 찾아오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니까 막 감격이 복받치는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멸망으로 인도하지만, 하나님은 가만히 나두면 멸망 받을 우리에게 사
    랑으로 다가오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고 싶어하시는 분이시구나! 하는 것이, 완전히 내게 깨달
    아 지기까지는 내가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 그런데 깨달아지니까 비로서 하나
    님에 대해서 자유함이 오더라고요. 사랑에 대해서도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물질에 대해서
    도, 감사에 대해서도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자유가 내 믿음을 더욱 굳세게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자유함? 이것은 결국 내가 그 분야에서 최고라는 말과 같습니다. 피아노를 잘치는 분들은 피아
    노 건반을 자유자재로 갖고 놉니다. 이 사람은 피아노에 있어서는 자유입니다. 또 정주영씨는 
    현대에 있어서 만큼은 최고의 자리에 있으니까 자유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나라를 경영하
    는데 있어서 자유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자유가 있습니다. 권리입니다. 이런 자유와 주님이 주신 권리가 내 속에
    서 나를 통해 영광 받을 그 날까지 나를 계속해서 훈련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고난이라
    는 쓴잔을 통해서, 자녀를 통해서, 물질의 빈곤을 통해서, 또는 배우자를 통해서 자녀를 통해서 
    나를 계속적으로 훈련시켜 나갑니다. 또는 예배의 훈련, 기도의 훈련, 봉사의 훈련, 전도의 훈련
    을 시켜나갑니다. 

    여러분 왜 내가 믿는 예수, 좋은 예수, 나를 끔찍이도 사랑해서 멸망 길로 가는 나를 십자가의 
    은혜로 붙잡아서 구원의 길로 걷게 하신 예수, 그 좋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불구하고, 아직도, 
    당신이 한번도 당신의 형제와 이웃에게 "예수 안 믿으면 당신은 반드시 죽습니다." "당신의 정
    체를 모르면 죽습니다."하는 이 사실에 대해서,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저는 감
    히 그 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냐고요?' 

    여러분 누가 전도합니까? 전도에 대해서 자유를 누리는 자가 전도할 수 있습니다. 누가 헌신합
    니까? 헌신에 대해서 자유를 누리는 자가 할 수 있습니다. 누가 은혜를 누립니까? 은혜에 대해
    서 자유함을 갖는 자가 은혜를 누립니다. 이런 자유가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
    습니다. 그 희망이 뭔지 아세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데,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
    다. 첫째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 있고, 둘째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우리 인간의 반응을 하
    나님께 나타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이 하신 일은 우리를 사랑해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구원의 
    길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 3:16절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하나님이 세
    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했습니다. 무슨 말이죠? 독
    생자이신 예수를 내가 믿을 때, 구원이 있는 것이지,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바로 구원인데, 이 구원을 누가 준비해 주
    셨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가 믿
    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이 내 것입니다. 내가 믿어야지 다른 사람이 믿은 것을 가지고 내가 
    구원받을 수는 없다는 말이죠... 그러므로 여기에는 내가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한
    데 이 의지가 어디에서 나오냐 하면 사랑의 힘에서 나오는데, 이 사랑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이신 예수를 내어주심으로 친히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은혜가 아닐 수 없죠...

    (2) 그러므로 이 큰사랑을 받은 우리 역시 이번에는 하나님께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어떻게 보
    일 수 있습니까? 두 가지로 보여야 합니다. <1>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입
    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희망을 갖는 다는 말은 우리의 삶이 여기서 끝이 아님을 알아야 합
    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에는 이 곳과 같지 않습니다. 전쟁도 없고, 싸움도, 다
    툼도, 미움도 없는 오직 사랑만이 있는 나라입니다. 사 11:6-9절의 표현을 빌리면, 거기에는 "이
    리와 어린양이 함께 거하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함께 있고,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해도 전혀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2> 이런 희망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복음 전도의 사명을 잘 
    감당해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이라도 계시나 천사를 통해서 전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
    지만, 그렇다면 그 공로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천사겠죠...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제가 우리 큰딸에게 명희야 너 저기 있는 책 좀 갖다 줄래... 이때 내 딸의 반응은 아빠는 왜 
    내게 이런 일을 시키지 그러면서 내가 정말 아빠의 딸 맞아? 아빠는 딸의 순종을 통해 칭찬하
    고 싶었는데 딸이 칭찬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못된 짐승과 착한 짐승이 함께 어울리는 것처럼, 약한 짐승과 강한 짐승이 
    어린아이와 함께 딩굴며 노는 곳처럼, 그 나라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초청의 문이 열려져 있습
    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나라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게 뭡니
    까? 내가 믿는 예수를, 받은 은혜대로, 받은 사랑대로 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여서 구원의 
    기쁨과 축제를 같이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추수감사절 때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때 우리교회가 가졌던 그 감격적인 사건을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 영혼 초청 전도집회"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때 초
    청되었던 분들이 거의 100여명에 가까웠는데, 이 가운데도 그때 등록하신 분들이 다수 계십니
    다 만은, 우리교회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이 우리에게 위임하신 영혼구원 사역
    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 2000년에도 "한 영혼 초청 전도 사역"을 준비하
    고 있습니다. 이미 저는 2달 전 여러분에게 이번 한 영혼 전도사역에 초청할 그래서 전도할 영
    혼들의 명단을 놓고 기도하라고 부탁한 바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교회가 다음주부터 한달 동안을 "태신자 작정의 달"로 정하고, 전도 대상자를 받고자 
    합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 때 진짜로 영혼을 추수한 감사의 달로 지키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와 우리교회의 작은 소원이지만, 하나님은 가장 크게 기뻐하시는 일일 것입니다. 여러
    분이 받은 구원의 기쁨과 은혜를, 사랑을, 구원받아야 할 우리의 이웃과 함께 나누는 큰 기쁨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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