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욘1:1-2,7)
  • 조회 수: 49, 2013.05.03 07:14:06
  •  어느 고을에 효자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효심이 얼마나 극진하고 마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한지 그 고을에 새로 부임해 오는 원님들마다 제일 먼저 그를 관가로 불러들여 상을 내리고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노부를 모시고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치하의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많은 세월이 흘러 새로운 원님이 부임해 왔습니다. 전임자들이 그랬듯이 몇 번의 만남 끝에 이젠 긴장감보다는 여유와 당당함이 엿보였습니다. 
      '듣자하니 효자로 소문이 자자한데 어떻게 노부를 공경하는고?' '말씀드리기 황공하오나 아버님께서 아무 걱정 없이 아무 불편 없도록 편안하게 보살펴 드리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연세는 얼마시며 아버님이 혼자 되신지는 얼마나 되었는고?' '예, 금년 65세시고 홀로되진 지는 15년이 되었습니다.' 
      효자는 스스로의 대답에 만족해 하며 '전임 원님들처럼 나에게 칭찬과 후한 상금을 내리시겠지'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원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저 불효 막심한 놈에게 곤장 스무 대를 쳐라' 효자의 볼기짝이 떨어져나가고 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원님은 추상같은 한 마디의 훈계를 했습니다. '네가 나이 50에 혼자 되었다고 생각해 보아라. 네 자식들이 무엇을 해 주어야 네 마음이 가장 기뻐겠느냐?'

       동네 사람들의 등에 업혀서 죽을 몸이 되어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가 무슨 큰 잘못을 했기에 심한 매를 맞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죽을 모습으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습니다. 끝까지 듣고 계시던 아버님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이제야 원님다운 원님이 오셨구나!"

         요나의 문제와 오늘 우리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무식한 채로 자기 생각을 고집하며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때로는 사람들로부터 잘한다고 칭찬들으면서, 때로는 자신도 만족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 성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추적을 피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욘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 욘1:10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 하니라 " 
        이런 생각은 요나 자신의 생각일 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민하는 경우는 있지만 말씀을 거역하고 도망쳤다는 기록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선지자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알면서도 불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비극은 습관성 불순종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중독된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제 고집대로 할 수도 있습니다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불순종,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모른 척하는 것이 어느덧 습관이 되어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해야 편하게 된 것이 우리 시대의 비극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암덩어리입니다. 마치 요나 처럼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에 불순종하고도 배 아래서 편안히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던 배짱 좋은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요나가 어떤 사람입니까? 왕하14:25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2세 때 이스라엘이 다윗왕 때처럼 크게 부강하고 영토를 회복하리라는 예언을 했던 애국선지자였다. 요나의 아버지 이름은 아밋대. 그 뜻은 "아멘, 즉 믿습니다이다." 이고 '요나'라는 뜻은 "비둘기"란 뜻입니다.  아멘인 아버지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던 믿음좋은 아버지였습니다. 믿음좋은 아버지의 그 아들 요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비둘기"라고 지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장차 비둘기처럼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기를 바래서 그렇게 지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뭏든 '믿습니다' 아버지에 '비둘기' 아들. 그는 경건하게 성장했고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는 말씀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간 실격된 선지자였습니다. 요나의 모습엔 이스라엘 사람이란 타이틀, 신자라는 명함이 있었습니다. 선지자라는 신분이 있었고 경건한  모양, 신앙의 구색과 형식은 다 가졌으나 그의 신앙과 가치관은 크게 잘못된 점이 있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말았습니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의 속알맹이는 순종이다.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헛것이요 죽은 것입니다.  약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었느니라" 약2:20"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다" 26에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것이니라"
    사도 요한을 통해 주신 말씀에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읽지도 않고 듣는 것도 소홀히 하니 순종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울이란 사람은 키가 크고 용모가 준수하고 겸손한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의 1대 임금이 되는 영광을 누렸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귓가로 흘리고 순종하는 것을 엉털이로 했기 때문에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저 아말렉 족속을 치되 남녀노소와 우양과 모든 짐승까지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 해놓고는 그것들 중 살지고 좋은  것은 남겨두었고, 아각왕을 살려두었습니다. 즉 부분적 순종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순종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의  말슴을 읽고 듣는 일에  무관심하고 듣고고 읽고도 그대로 행치 않았던 부분들을 다 주께 내어놓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부탁한 말씀은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는 말씀입니다.  

         니느웨는 세속세계를 말합니다. 즉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사는 도시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요, 회개해야 할 사람들이 사는 곳이요, 아직도 구원받을 기회가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이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나를 니느웨로 파송했던 것입니다. 요나가 가야 할 곳은 니느웨입니다. 요나가 가야 할 곳은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시온성이 아닙니다. 요나가 가야 할 곳은 비둘기 같은 평화가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런 도시는 망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도시는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도시는 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이방의 도시요, 죄악의 도시에 가서 전해봐야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바로 니느웨요, 교회가 아니라 죄악된 세상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의로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죄인들이 사는 곳입니다. 오늘의 니느웨는 바로 우리의 삶의 자리요,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이 살아가고 있는 죄악의 도시입니다. 바로 이런 곳에 관심을 가지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의 니느웨는 어디입니까? 가정입니까? 집안입니까? 회사입니까? 아니면 학교입니까?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웃입니까? 우리가 싫든 좋은 가야 할 니느웨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성을 향하여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부르시고 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외치라고 하십니다. 적어도 구원받아야 백성이 있는 곳은 모두가 니느웨성이요, 우리가 생각할 때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곳이 바로 니느웨입니다. 

        먼저 그곳으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가서"라고 했습니다. 가야 합니다. 가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아직도 사랑하시고 있는 니느웨 백성들을 향하여 외치는 일입니다.  "40일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고 온성을 돌면서 외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나를 니느웨로 파송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마가복음1:3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예수님도 전도하러 오셨습니다. 
        막16:15-16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눅9:60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이핑게 저핑게 되지 말고 이유를 달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유가 많습니다. 요나도 적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도 딤후4:2 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유언까지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8장 19-20절 말씀은 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아들과 아버지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입니다. 유언은 가급적이면 지켜야 합니다. 아니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세우실 때 어떤 목적으로 불렀습니까? 사람낚는 어부로 불렀습니다. 가롯 유다가 죽고 난 다음에 보궐로 다른 한 사람을 세울 때 그 이유를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행1:22)고 했습니다. 행전22:15절에 보면 예수님이 바울을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르실 때에 바울을 부르신 목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행22: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
        누가복음 19:10절에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니느웨성에 잃어버린자가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요나4장 11절에 보면 니느웨성에 사는 사람들, 적어도 구원받아야 할 백성들.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12만명이나 된다고 했습니다. 당시의 도시로서는 대단히 많은 인구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야 할 니느웨 칠곡은 인구가 얼마입니까? 정확한 인구는 무르겠습니다만 적어도 15만명은 넘습니다. 그중에 8%의 기독교인을 제외해도 13만8천명이나 됩니다. 바로 이를 위하여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니느웨로 가서 외쳐라"고 말입니다.  요나가 어려움을 겪고 난 다음에 니느웨 성읍을 찾아가서 외쳤을 때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백성들이 쉽게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어렵고 힘들고 잘 믿을 것 같지 않은 사람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역사 하시면 쉽게 오히려 더 빨리 영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명령만 행하십시오. 요나처럼 다시스로 가지 말고 니느웨로 가십시오. 쓸데없는 곳에 가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숨지 마시고 가십시오. 그리고 전하십시오. 

        코카콜라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구매 욕구를 가지게 하여 물건을 사도록 광고하는 일에 대하여 연구한 보고에 의하면 18회 정도의 광고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번 광고를 접하게 되면 그것이 입력이 되어 사람들이 필요를 느끼게 되고 구매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을 전도하는데도 평균적으로 16번의 전도가 필요하다는 연구보고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서 외치고 또 외치고 또 외치는 것은 적어도 16번은 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칼벵은 말하기를 "신앙의 본질은 그 빛을 끄지않고 이를 사방에 퍼뜨리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살아있는 믿음, 살아있는 교회,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는 교회는 불을 끄지않고 계속 타오르게 하여 그 빛을 사방에 퍼뜨리는 교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의 제자된 모든 성도들에게 맡겨진 최대의 과업이며, 그리스도의 최후의 명령이요, 제자된 성도들의 최대의 임무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거라사인 땅에 미치광이를 고쳐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8-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린 사람이 한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데가볼리를 복음화 하기 위하여 한 미치광이를 불렀습니다. 할 일은 많은데 할 사람이 없어 미치광이까지 동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오늘 우리 칠곡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오늘 니느웨 성인 이 칠곡 지역에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십수만명의 생명을 위하여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니느웨로 가고 있습니까? 요나처럼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전도는 하지 않고 핑계를 대고 나는 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이 기도할 때 전도대상자가 있습니까? 니느웨 성읍에 가서 전도한 것이 언제입니까? 혹시 까마득하게 잊어버린지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다시스로 가는 우리가 풍랑을 만나 고통당하고 계시는 분은 없습니까? 풍랑을 만나도 왜 만나는지를 알지 못하고 우둔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바람이 자기를 기다리며 파도가 잔잔해 지기를 기다리는 미련한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아직까지 니느웨로 가지않고 다시스로 가고 있어도 요나와 같은 풍랑을 주지 않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사명을 망각하고 살고 있지도 모릅니다. 

        독일의 예술가 에어하트는 밋츠라프의 목판화 중에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려고 입을 벌리고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미소짓는 물고기'입니다. 왜 작가가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요? 물고기의 미소는 비웃은 미소가 아니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의 미소입니다. 여유 있는 미소입니다. 요나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물고기의 입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도망쳐서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의 입 속에 자기를 던질 때 자유와 구원이 온다는 것을 아는 자의 미소입니다. 들어가면 출구가 없어 보이는 그 흑암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구원의 길이 있음을 알기에 요나는 공포에 휩싸였으나 물고기는 미소짓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가서 외치는 일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는 가운데 풍랑을 만났고 그 풍랑은 자신 때문인 것을 깨닫고는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요나는 원인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일말의 양심은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큰 물고기로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이 물고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아직도 늦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불순종하여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갔더라도 하나님은 미소짓는 물고기 예비해 두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은혜의 장치를 마련해 두셨기 때문에 우리가 니느웨로 가서 외치지 않아도 죽지 않고 환란 당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전도의 비결』이란 책에서 죠지 스위팅은 말하기를 "천년을 사는 동안 단 하나의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그 밖의 아무 일도 하지 못했을지라도 나의 삶은 무한히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은 정말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일입니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하고 물질로 부자되게 했다 하더라도 한 생명도 영생으로 전도하지 못하면 가치 있는 삶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C. 섬너 웨프는 항상 그의 학생들에게 "전도지를 주머니에 넣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으로 옷을 다 갖추어 입은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가라고 명하시는 니느웨로 가십시오. 그것이 여러분도 살고 니느웨도 사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다만 우리는 명령을 순종할 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도 환란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방향을 선회하여 하나님이 가라고 명하신 니느웨로 가십시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할 사람을 향하여 담대하게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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