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집을 채우라(눅14:15-24)
  • 조회 수: 86, 2013.08.27 12:43:24
  • 참으로 하나님의 구원운동은 신비롭기만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해 내고 있습니다.
    이런 진리를 깨달은 바울은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천국의 비밀을 죄인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많은 비유들로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교회운동, 천국운동을 "큰 잔치"(눅14:16) 운동으로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유사한 비유가 마태복음 22장 1절에서 14절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의 비유는 누가복음의 비유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는데 마태복음에서는 어떤 사람이 곧 '임금'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 잔치는 '혼인잔치'로서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베풀어진 잔치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큰 잔치는 "모든 것이 준비된"(17절) 잔치였습니다.
    여기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는 것은 그 잔치의 풍부함과 완벽함을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잔치입니다.
    실로 신약시대 이후의 교회운동은 모든 인생들에게 영육을 만족시켜 줄 거대한 생명운동 잔치입니다.
    임금이요,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 집을 채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 '내 집'은 오늘의 교회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을 통하여 "내 집을 채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 때 우리의 사명을 확인하고 충성된 종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1. 임금(주인)의 명령입니다.

    본문 16절의 '어떤 사람'은 23절에서 "주인"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주인은 마태복음에서는 "임금"(22:2)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기 '임금'은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예수)을 위하여 큰 잔치(혼인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잔치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운동, 천국운동의 중심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이 베푼 잔치이기에 큰 잔치요, 혼인잔치이기에 큰 기쁨의 잔치입니다. 그리고 이 잔치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베풀어진 잔치이기에 종말 때까지 계속되는 잔치입니다.
    임금은 이 큰 잔치를 베풀고 "내 집을 채우라"(23절)고 종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너무도 중요한 명령이요, 긴급한 명령이요, 생명을 구원토록 하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이 명령을 옛부터 지금까지 계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1:28)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이 아브라함 때에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났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창13:14)고 명령하셨습니다.
    '내 집을 채우라'는 명령이나,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이나,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명령은 모두 선교명령이요, 전도명령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사도 바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고 명령하셨습니다.
    오늘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내 집을 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이 일이 너무나 중대하기에 하나님은 내 집을 채우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이 여러분들 가슴에 타오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종이 받은 사명입니다.

    본문 17절에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21절에서도 '그 종에게 이르되', 23절에서도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종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다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종들입니다. 기쁨의 소식을 맡은 종들입니다. 준비된 잔치를 알리는 종들입니다. 부활과 영생의 소식을 알리는 종들입니다. 대속의 십자가의 비밀을 맡은 종들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알리는 종들입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 명령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뿐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고전4:2).
    당시 유대인들의 관습에는 손님을 일단 청하고 준비가 되고 시간이 되면 다시 종을 보내어 손님을 모셔오도록 하는 이중초청이 있었는데 일단 초대를 받고 승낙한 사람은 두 번째 초대를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두 번째 초대를 거절하면 선전포고로 간주했습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잔치에 재차 초대를 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18절).
    어쩌면 이것이 종이 당하는 고독일 수가 있습니다. 아픔일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만족스러운 결과가 없어 좌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종은 결과에 예민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에 내가 지금 순종하고 있느냐에 더욱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스스로 신비스런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을 전도하지 않습니다. 천사를 통해서 전도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부르시는데 있어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고, 복음을 먼저 받은 자들에게 이 일을 계속하도록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전도의 미련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내 집을 채우는 교회운동, 천국운동의 일군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3. 초청의 대상은 죄인입니다.

    본문 21절에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고 하였고, 23절에서도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초청에는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처음 초대받은 사람들은 유대인을 가리키고 있는데 저들은 구원의 초청을 거부하고 말았습니다(18-20절).
    한 사람은 밭을 샀기에 큰 잔치를 거절했습니다. 이것은 마음이 세상 것으로 가득찬 결과 세상 재물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지 못하는 멸망 받을 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배금주의 사상, 황금만능주의 사상은 성도가 배격해야할 무서운 독소입니다.
    또 한 사람은 소를 구입해 시험하러 간다고 초청에 불응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 자체가 나를 묶어둠으로 교회운동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분주히 뛰어다닌다는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벌려 놓은 사업이 나를 천국운동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도 밭을 사고 소를 샀기에 시간이 없다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사업이나 직장의 일 때문에 죽을 시간조차 없다고 엄살을 부리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장가들었기에 가지 못하겠다고 거절했습니다.
    이것은 곧 세상 쾌락 때문에 천국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결혼은 오히려 두 사람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기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이런 목적에서 빗나간다면 육체적인 욕망으로 끝날 것입니다.
    여기 '가지 못하겠노라'(20절)는 강한 반발이요, 극에 달한 도전입니다.
    이렇게 주인의 초청에 불응한 이들에게는 이제 이 큰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영원한 멸망이 선고되고 말았습니다(24절). 새 하늘과 새 땅,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되는 비참한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잔치의 초청에 거절했어도 잔치는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내 집을 채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21절에 나타난 '시내의 거리'는 넓은 길 곧 부자의 거리를 말합니다. '골목'은 좁은 길 곧 빈민층의 거리를 가리킵니다. 이 길은 소외된 사람들이 다니는 길입니다.
    그 거리에는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연회에 초대되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병신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결혼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소경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밭을 보러 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저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밭갈이를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곧 인간적으로 멸시를 받으며 경제적으로 아무런 능력이 없는 버려진 존재들입니다.
    천국의 복음은 이렇게 이 세상에서 의지할 소망이 없는 자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진정 이들은 자신들의 영적 궁핍상태를 알고 있는 자들이요,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큰 잔치에 들어왔으나 아직 자리가 있었습니다(22절).
    아직도 "남은 자리"가 있습니다. 아직도 넉넉한 은혜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하여 종은 다시 길과 산울가로 나갔습니다.
    '길'은 성밖의 공용도로요, '산울'은 울타리인데 이것은 성밖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곧 유대인의 불신으로 이제 하나님의 나라의 초청잔치에 이방인들이 포함되는 축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방인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23절)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강권'이란 말은 물리적인 강제력을 사용하여 데려오라는 의미가 아니라 끝까지 설득하여 데려오라는 뜻입니다.
    폭력이 아니라 설득입니다. 사랑과 이성의 설득입니다. 이것이 전도의 집요함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인의 마음을 가진 종들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죄인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강한의지와 사랑과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금도 종들을 보내어 죄인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 집을 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시내의 거리와 골목과 길과 산울가로 나가는 종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특히 교회이전을 한 우리 교회로서 아직도 남은 자리가 많기 때문에 더욱 주인의 명령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내어 하나님의 집을 채우는 신실한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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