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치의 수준(눅 14:15-24)
  • 조회 수: 33, 2013.08.28 16:42:01
  • 잔치는 수준이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호화로운 큰 잔치라고 한다면 영국의 챨스 황태자 결혼식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당시 10억의 사람들이 위성중계로 결혼식을 시청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규모만 가지고 최고의 잔치라고 말하기는 기준이 모호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 잔치의 가치가 아주 고상한 잔치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장애인 결혼식의 이야기가 이렇게 소개됩니다. 남자는 정상이지만 신부가 중증장애인입니다. 그 혼인 때문에 신랑측 부모와 하객은 마음이 많이 상했고 결혼하는 그날에도 신랑 측에서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이 되는데 많은 사람들은 결혼식의 입장에 대해 흥미진진했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안고 입장했고 퇴장할 때도 안고 퇴장했습니다. 거기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은 이 신랑이 신부를 안고 퇴장하는 모습을 보며 신랑, 신부와 함께 모두 울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결혼식은 아마도 규모를 가지고는 논할 수 없지만 어떤 가치를 두고 논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잔치는 여러 가지 수준이 있습니다.

        좋은 주인 좋은 잔치

        오늘 본문에도 주인이 큰 잔치를 배설했는데 마태복음 22장을 보면 혼인잔치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 잔치는 개념을 바꾸어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 잔치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바로 잔치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큰 잔치요, 신령한 잔치의 의미가 충분히 있습니다. 주인은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이 주인은 참 좋은 분입니다. 잔치의 성격은 잔치를 배설한 주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혼주에 따라서 잔치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이 본문에 나오는 혼주는 대단히 좋은 주인입니다.
        그리고 이 잔치는 잘 준비된 잔치입니다. 또한 이 잔치는 참석자 모두가 만족하는 잔치입니다. 이렇게 주인이 잔치를 배설해 놓고 종들을 통하여 청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초청받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거절을 했습니다. '나는 밭을 샀으니… 소를 샀으니… 아들이 장가를 들어서 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종들의 보고를 받은 주인이 다시 길거리로 나가 사람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마지막 절을 주의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이것이 이 잔치 비유에 가장 중요한 대목이 됩니다. 주인은 자기가 청했던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일에 대해서 우리가 볼 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지만 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반드시 따지고 심판을 묻고 있습니다. 이 잔치는 이와 같은 등급을 가지게 됩니다. 초청받은 사람들이 그 잔치에 참여하면 최선의 대우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 잔치에 참여를 거부했던 사람들은 최악의 결과를 이 주인이 통보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영적 잔치)에 끝까지 오지 않는 자를 그냥 두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에 응하지 않는 사람을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잔치는 참석함으로 최선의 것이 되지만 참석하지 않음으로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최선을 향하여

        여기서 우리는 종들의 역할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종들은 주인의 명을 받아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거절하는 사람도 있고 초청에 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향하여 목표를 잡고 일을 해야 합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도 학문을 닦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최선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선입니다. 이 차선을 유지해야만 앞으로 최선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차선이 무너지면 다시는 최선으로 도약할 수 없습니다. 최악으로 떨어진 사람은 다시 도약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도 차선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최악에 머물러 버리면 최선으로 가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시험치기 1시간 전에 자기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공부합니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몰라 공부할 것이 없습니다. 최악으로 떨어져 있는 학생은 과외를 시켜도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차선에 머물러 있는 학생은 과외를 해서 노력하면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최악에 머물러 있는 그 사람은 전화를 해도 심방을 해도 식사를 나누어도 효력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최악으로 떨어지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예배를 외면하면 최악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예배는 잔치입니다. 이 잔치는 주인이 배설한 놀라운 은혜의 잔치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전도집회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초청한 사람이 오면 최선의 잔치가 됩니다. 나도 즐겁고 그 사람도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청을 거절하면 안오는 그 사람은 영적인 측면에서 최악으로 가는 것입니다. 한가지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내가 초청한 사람이 안온다고 나마저 잔치에 불참하면 함께 최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잔치를 외면하는 최악에 이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잔치에 참여하여 은혜를 받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은혜를 받는 최선의 잔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잔치에 내리실 은혜와 축복을 마음을 열고 풍성히 받아야 합니다.
        인천에 있는 S교회 목사님과 제가 같이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공부하는 가운데 목회여담을 소개하는 시간에 그 분이 자기교회 집회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자기 교회는 1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전 성도가 함께 참석하여 은혜받는 목표를 걸고 집회를 한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판사 장로님이 한 분 계시는데 이 어른은 집회 기간이 되면 낮 시간, 저녁 시간을 위해 해마다 휴가를 낸다고 합니다. 집회가 시작하여 마칠 때까지 집회에 한번이라도 참석하지 않는 제직들의 명단을 가지고 집회에 참석하게 하기 위해 밤낮으로 수종을 든다고 합니다. 영향력이 있는 분이 이렇게 하니 아무 말을 안해도 분위기가 달아 오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교회에서는 집회기간이 오면 누구라도 비상을 걸게 되었고 모든 일을 조정해서 이 집회에 전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전통이 이 장로님을 통해서 세워졌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이러한 자세로 교회를 섬길 때 나 자신뿐 아니라 남들로 하여 은혜를 받게 합니다. 이럴 때 우리가 최선의 잔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최선이 되지 못한다면 나 자신만이라도 참석하는 차선의 잔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3일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풍성히 부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을 열고 이 잔치에 함께 즐기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잔치는 예배입니다. 여기 모여 예배하는 것은 작은 의미의 예배입니다. 우리의 전 생활 영역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시편 24편1절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내 삶의 모든 영역이 '여호와가 주인이시다'라고 여호와를 인정하는 삶이 참 예배입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갔을 때 바로가 그의 부인 사라를 탐내어 물을 때 아브라함이 분명히 말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 누이'라고 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고 바로 왕이 아브라함을 애굽에서 내쫏는 일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정쩡하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해 '너는 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나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살아야 합니다. 내 삶의 모든 일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인정하며 살아야 됩니다. 그것이 예배이며 예배자의 삶입니다.
        악어는 먹이를 물면 자기가 죽기 전에는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끈질깁니다. 중국 사람들은 악어에 대하여 민속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악어지갑을 무척 좋아합니다. 한번 들어간 돈은 안나온다는 뜻이랍니다. 또 남녀가 악어벨트를 선물하면 '당신은 내 것이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를 '너는 내 것이다'라고 주인되심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여호와가 나의 주인이시다'라고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모여서 예배 드리는 모든 분들은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인 것을 드러내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영의 잔치를 배설해 놓고 모든 사람들을 날마다 부르고 계십니다. 이 잔치가 최선의 잔치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헌신해야 합니다.

       

     맺는 말

     

        한번은 겉절이를 해서 먹는데 조그만 소금 덩어리가 하나 씹혔습니다. 그때 제가 실감을 한 것은 '아, 음식 속에 녹지 않은 소금 덩어리가 얼마나 안좋은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성도들 집에 여름에 심방을 가면 가끔 미숫가루를 내어놓는 집이 있습니다. 미숫가루를 잘 풀지 않으면 다 먹고나서 밑에 덩어리가 있습니다. 김치 속에 녹지 않고 있는 소금 덩어리나 미숫가루 속에서 풀어지지 않는 덩어리는 좋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덩어리가 되면 안됩니다. 풀어져야 됩니다. 세상 속에 들어가서 녹는 소금이 되어야지 나 혼자 굴러다니면 안됩니다. 
        우리가 베푼 이 잔치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잔치입니다. 우리가 뭇 사람들을 초청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내가 은혜 받음으로 또 하나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잔치의 수준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향하여 언제나 올라가야 되고 분주한 상황이 오더라도 잔치를 불참해서는 안됩니다. 이 잔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예배입니다. 이 축복을 여러분들이 충만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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