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얻는 그리스도인(잠 11:30)
  • 조회 수: 60, 2013.10.04 13:42:09
  • 지난 주일에는 이 가을에 사랑, 평안, 기쁨으로 충만한 존재의 열매, 인격의 열매를 맺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가을에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사람,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과 평안, 기쁨을 주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가을의 자연과 함께 풍미를 더해주는 인격이 되어야 하겠다는 뜻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윗은 음악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면서 하나님일 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다윗의 인격 때문에 다윗을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윗을 좋아했습니다. 사울왕도 처음에는 다윗을 좋아했습니다. 게다가 요나단도 다윗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요나단이 동성애적인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이 아닌가 할 정도로 다윗을 좋아했습니다. 요셉도 그런 일물이지요. 우리는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저는 잠언 11장 31절 말씀에 근거하여 또 하나의 열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잠언 11장 30절 말씀을 소리 내어 함께 읽어보죠.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제가 이 말씀을 통하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전도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인격의 열매를 맺어야 하지만 더 나아가서 전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내가 무엇을 하고 사느냐? 하는 것도 참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과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과제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전도입니다. 그런데 사실 인격의 열매는 자연적으로 전도의 열매로 연결됩니다.

     

    우리가 인격의 열매를 맺자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존재, 예수님을 닮아가는 인격을 갖자는 거죠. 마찬가지로 전도의 열매를 맺자는 것은 예수님이 그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인격을 통하여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은 것처럼 내가 예수님의 인격을 나타낸다면 예수님처럼 나에게도 분명히 전도의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1장 30절 말씀에 “의인의 나무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 본문의 문장 구조에서 ‘의인’과 ‘지혜로운 자’는 같은 의미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성도, 그리스도인을 뜻합니다. 잠언에서 ‘지혜’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의미하다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라는 것은 하나님께 지혜를 받은 자이므로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을 뜻하죠. 의인이라는 말도 결국은 성도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의인과 악인을 구별짓는 오직 한 가지의 선이 있다면 그 인생에 하나님과 함께 하느냐, 함께 하지 않느냐.... 여기에 따라서 의인과 악인으로 판가름 난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사도바울이 의인을 똑같이 해석했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니 의인, 지혜로운 자... 다 같이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또 문장 중에 ‘생명나무’, ‘사람’이라는 단어도 일맥상통하죠. 결국 의인의 열매가 생명나무라는 것은 의인에게 많은 사람이 따른다는 말로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로 가든지 사람들이 좋아하고, 믿고 따르는 그런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변하여 새 사람 되어 사랑, 평안,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산다는 것이며 그렇게 살 때에 많은 신, 불신자들이 그를 좋아하고, 믿고 따르니 자연스레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예수님을 따라 가는 자가 되었다면, 그리고 예수님이 내 삶의 존재의 이유요, 예수님 때문에 기쁨을, 보람을, 삶의 감격을 얻었다면 그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열매! 신앙생활에서 빠뜨릴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히시리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은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행위의 문제입니다. 즉 내가 주님 믿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하느냐... 이 문제 또한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세우는 일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있죠. 예배, 봉사, 구제, 전도.... 이러한 것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전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봉사, 구제, 사랑의 섬김.... 그 끝에는 전도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전도가 되어야 그의 나라를 세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다. 너희가 예수 믿을 때에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알고 보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그런데 그 이유가 뭐냐? 주님이 나를 선택하신 이유, 너희로 가서 무엇을 하게?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열매를 맺으려면 가야돼요. 가서 열매를 맺고자 내가 너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주님 앞에 왔습니다. 주님 앞에 와서 은혜 받고, 주님 앞에 와서 구원받고, 주님 앞에 와서 용서받고, 주님 앞에 와서 기쁨을 얻고, 주님 앞에 와서 인생의 의미를 얻었어요. 그렇다면 이제는 가야 돼요. 가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그런데 우리가 왜 안가요? 왜 안가요? 가는 게 두려울지 모릅니다. 전도하다가 내가 그냥 사람들 앞에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왕따 당하지 않을까, 우리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어요. 아마 예수님 말씀을 듣던 그 당시의 제자들에게도 이런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상명령, 마지막 명령에서 마태복음 마지막 장에 보시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를 삼으라. 그러면서 무슨 약속을 하셨어요?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뭡니까? 항상 함께 하리라. 주님이 같이 가 주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가고자 한다면, 순종하고자 하면 함께 가 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어떤 일을 한다고 했습니까? 성령이 하시는 일? 나를 증거한다... 예수님을 증거한다.... 여러분! 전도하실 때에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전도하기만 한다고 결심하면, 작정만 하면 성령이 함께 증거하실 것입니다.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 주실것입니다. 그 성령을 믿고 가시길 바랍니다.

     

    안 가면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를 생각해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고의 프라이드가 뭐냐? 선택한 백성이다. 이 선민의식, 나는 선택한 백성이다. 주님이 우리 민족을 선택하셨다. 뭐, 지금도 유태인들은 이 사상이 아주 견고합니다. 주님이 나를 선택하셨다. 그런데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약의 역사를 봐도 그렇고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처럼 고통을 많이 겪은 민족이 없어요.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신 이유가 어디 있느냐? 가서 열매를 맺어라. 그 하나님을 이방인에게 전하고 축복을 이웃들과 더불어 나누라고... 그런데 거꾸로 유대인들의 최대의 실수는 뭐냐 하면 선택의 특권은 즐겼지만, 선택의 특권은 강조했지만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 선택의 이유를 몰랐어요. 그리고 선민의 의무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나를 선택하신 이유? 가서 열매를 맺고자....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세요? 그들을 깨달으라고 끌고 다니세요. 광야를 끌고 다니시고, 바빌로니아에, 갈대아에 포로로 끌고 가시고, 만신창이가 되도록 끌고 다니신 것입니다. 깨달을 때까지, 채찍을 치시고... 그래서 마침내 이 소명을 감당하는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하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결국 두 가지예요. 실컷 매 맞고 순종하는 것 하고 알아서 순종하는 것, 둘밖에 없습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직사하게 얻어맞고 나중에 깨닫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미리 하나님 뜻대로 할께요, 가서 이 복음 전할께요. 여러분?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내야지, 카드를, 태신자 카드를. 그것부터 순종해야 돼요. 오늘 다 써 내 놓고 가세요, 그것부터 내야 돼요. 우리가 열매 맺기 위하여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죠? 말씀과 기도 가운데 주님과의 지속적인 교제.... 이게 바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전도의 열매를 맺는 데는 말씀, 기도와 더불어 정말 중요한 것은 주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주님께 대한 순종! 전도의 열매를 맺으려면 순종해야 합니다.


    열매 맺는 방법을 한 마디로 말하면 주 안에 거한다는 거예요. 주 안에 거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말씀을 경청하고, 또 이야기하고 그러잖아요? 요한복음 15장 9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그런데 어떻게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느냐? 그 대답은 10절에 있어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성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했습니다. 이 순종하는 아들을 보았을 때 아버지 하나님이 얼마나 기뻤겠어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래요. 우리는 그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그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 안에 거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계명은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 니라" 그러면서 13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이렇게 하셨죠. 여러분, 전도행사를 통해서 이런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가장 중요한 계명도 전도하는 것이고, 그 명령도 전도하는 것입니다. 너, 나 사랑하느냐? 전도하라, 이웃을 위해서. 나는 그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버렸다. 아니 주님은 목숨도 버렸는데 우리는 뭐 전도도 못하나요? 전도하는 그리스도인, 전도의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 이게 진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왜 전도안합니까? 전도를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수줍은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디모데는 굉장히 순수하고, 수줍은 청년 지도자로 보입니다. 거기다가 몸도 좀 왜소하고 병도 좀 있는 것 같은 모습.... 이게 바로 성경에 나타난 디모데의 모습이죠. 이런 그의 모습에서 우리가 짐작하건데 적극적인 사도바울이 좀 디모데를 탐탁찮게 여긴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를 향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일본 교회가 잘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일본 목사님들을 통하여 조사해본 결과 한국인과 일본인의 성격의 차이에서 기인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왜 일본 교회는 자라나지 못하느냐? 전도하지 않느냐? 만장일치로 일본 목사님들의 결론이 뭐냐 하면 일본 사람들은 너무나 지나치게 남을 의식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프라이버시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남에게 예수님 얘기를 꺼내는 것을 그렇게 어려워한다.... 그러니 교회가 자랄 수 있겠는가... 이런 결론이 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에는 살인 방조죄가 있잖아요.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람이 죽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 옆에서 어떤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살인은 하지 않았어도 죽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래서 살인방조죄가 성립이 되는 거죠. 어떤 술 취한 사람이 멋도 모르 고 바닷가 절벽 쪽을 향해 간다고 하면 그걸 보고도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하여 그 사람 그대로 가도록 버려두어야 마땅할까요? 아니면 그의 길을 막고 안돼요! 돌아서야 돼요, 그래야 살아요!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을까요? 전도라는 게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런 행위입니다.  한 생명을 건지는 기쁨, 그 생명의 열매를 드리는 기쁨! 이게 바로 전도지요. 이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을까요? 이 가을에 전도를 많이 하여 생명의 열매를 주 앞에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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