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소망 (벧전 1:1-7)
  • 조회 수: 194, 2013.11.16 21:13:31
  • 영국의 목공소에서 일하던 가난한 청년이 가난과 배우지 못한 무식함 때문에 절망 속에 살고 있다가 아는 분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니 그에게 인생의 소망과 의욕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망치는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너무도 행복하게 열심히 10년 일하고 난 후 그는 드디어 가구 제조업을 경영하는 사장이 되었습니다. 이제 돈도 명예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자기 공장 뒤편에 있는 언덕에 올라 산책하다가 넓직한 바위를 발견하고 걸터앉아 아름다운 마을 정경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는 가슴에 밀려오는 행복감을 느끼며 그가 이런 작은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은 자기가 걸터앉은 바위가 자신을 편안히 받쳐주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에게 자신의 인생을 떠 받쳐주는 바위와 같은 존재가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행복의 근거는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부활하신 주님 살아계셔서 자신을 인도하시는 예수님이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종이 한 장을 꺼내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 시가 바로 '에드워드 모트'가 지은 찬송가 488(통539)장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여러분을 받쳐주는 든든한 반석이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에드워드처럼 불안해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모두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고 산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시련을 극복 하고 고난 속에서도 새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AD 64년 7월 어느 여름 날, 로마의 중심가에서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악독하기로 유명한 네로 황제가 지저분한 로마시를 새롭게 건설하겠다고 저지른 불이었습니다. 그는 불타는 로마 도성을 바라보면서 춤을 추며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화가 난 로마 시민들의 항의가 시작되자, 네로 황제는 백성들을 잠잠하게 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소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억울하게 붙잡혀 원형경기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어떤 그리스도들은 십자가형틀에서 고통스럽게 죽음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사지가 갈기갈기 찢어져 죽임을 당했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 지금의 터키 지방인 소아시아로 갔습니다. 그리고 소아시아의 바위 굴 속에 피신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어떠한 소망도 없었습니다. 언제 그 굴에서 나갈지 모를 암담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서신이며 이 서신을 통해 베드로 사도는 산소망을 굳게 가지고 모든 고난을 견디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3 - 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여러분 그냥 소망이라고 해도 될텐데 왜 산소망이라고 했습니까? 사실은 우리가 많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진짜 이루어질 것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조금 있으면 고3 자녀들이 수능시험을 치게 됩니다. 저마다 합격의 소망이 있습니다. 1등을 하는 수능생들에게는 서울대학이 산소망이 됩니다. 확실하다 이겁니다. 그러나 반에서 10등 정도 하는 수험생들도 서울대학교에 대한 소망이 있겠지만 그것은 대부분 소망으로 끝나지, 현실이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산 소망이란 반드시 이루어질 사실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산 소망이란 헛된 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베드로 사도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통해 얻은 구원, 천국의 입성, 하늘의 유업.... 이런 것들을 산소망이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죄 값을 치렀습니다. 심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죽어 마땅하고, 지옥에 떨어져야 할 인생이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죄 값을 주님이 다 지불하시고, 불타는 지옥에 떨어질 절망을 다 털어내고 천국에 들어갈 소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천국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천국은 허상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 천국은 철학적인 것도 아니고, 관념적인 것도 아니라 실제적인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사를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낡은 집, 더러운 집을 처분하고 새 집으로 이사를 가면 얼마나 설레는지 모릅니다. 이사를 하는 불편함은 있습니다. 그러나 새 집에서 살 것을 생각하면 그 불편함마저도 행복감을 줍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존 애덤스가 노인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애덤스가 지팡이에 의지해서 산보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습니다."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그는 인사에 답례하면서 말했습니다. "네, 애덤스는 지극히 건강합니다. 그러나 그가 사는 집은 몹시 파손되어 지붕이 떨어지고 벽이 벗겨져 기둥까지 밖으로 나타나는 형편입니다. 게다가 강한 바람이 불면 흔들거리기까지 해서 받침기둥을 대야 할 지경입니다."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그렇게 쓰러져 가는 집에서 살고 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어서 그 사람은 그에게 반문했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요? 농담이겠지요." 이 말을 들은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의 대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자, 보십시오. 이처럼 지붕은 떨어지고 벽도 떨어져 기둥이 밖에서 보이지요?"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손에 든 지팡이를 흔들며 말을 이었습니다."바람이 불면 집이 흔들려 위험하기 때문에 받침기둥을 이처럼 대고 있지요.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쓰러져 가는 집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머지않아 이사를 합니다. 저 곳으로."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약속 받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산 소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소중한 안식처인 집을 빼앗기고, 피땀 흘려 일군 재산과 생명과도 같은 기업을 빼앗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요즘처럼 경영하던 회사가 부도났다고 넥타이로 목매달거나,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리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원한 하늘나라의 기업을 약속 받았기 때문입니다. 
    울산에 사신 어떤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남편이 일찍이 돌아가시고 혼자서 행상을 하시며 세 딸을 키우며 대학까지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 후 딸들이 다 좋은 데 시집을 가고, 특별히 장녀는 사업을 하여 돈을 잘 버는 남편 덕에 젊을 때부터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호강을 합니다. 그런데 이 장녀가 혼자 허름한 집에서 사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파 아파트를 하나 사서 드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권사님은 한사코 그 아파트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파트가 답답해서 싫은가 보다 하고 그 다음에는 울산 북구 쪽에 별장처럼 집을 예쁘게 지어서 거기에 사시면 어떻겠느냐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거기도 싫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만 큰 딸이 화를 버럭 내면서 돈 잘 버는 딸과 사위가 있는데 어머니가 이렇게 허름한 곳에 살면 이웃에서 자기 욕하지 않겠느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권사님이 하루는 모든 딸들을 다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정 원한다면 나를 위해 집을 한 채 지어라. 내가 원하는 집은 바닥을 반드시 유리로 깔아야 한다. 유리뿐만 아니라 기둥을 12개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기둥의 밑바닥은 반드시 보석을 박아야 하는데, 그 보석의 색깔이 다 달라야 하고 문은 12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랬더니 ” 자식들은 “어머니, 억지 부리지 마세요. 그런 집이 어디 있어요?” 하자, “없으면 그만둬라. 예수님이 그런 집을 지어줄 것인데 내가 뭐 답답해서 별 것도 없는 그런 집에 소망을 두겠느냐?” 그러나 니네들은 참 걱정이다. 세상만 좋은 줄 알고, 믿음이 그렇게 형편없으니.... 열심히 신앙생활 하여 하늘에 집을 짓고, 하늘에 보화를 쌓아라...” 이렇게 권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그 큰 딸이 교회에다 집 한 채 값을 어머니 이름으로 헌금하고 그 때부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소박한 삶속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자식들 기대지 않고 당당하게 사셨던 이 권사님의 삶의 비밀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통해 산 소망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잠시 잠간이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천국, 하나님 나라만이 영원한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실망하고, 실패하고, 넘어집니까? 

    제임스 그레이(James Gray)라는 유명한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본향길 가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 길에서 조그마한 어려움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우리가 추석 때 혹은 구정 때 보면 고속도로가 꽉 메워 지잖아요. 아마 고생 하고 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결심을 할 것 입니다. '내가 다시는 고향에 가나 봐라. 금년 이 마지막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또 가요. 네, 고향에 딱 도착하는 순간 다 잊어버리거든요. 고향에 찾아 온 기쁨 때문이지요. 우리가 갈 본향. 저 천국에 영원한 소망이 확실하다면 그 길에서 우리가 겪는 작은 어려움들은 견딜 만하지 않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아시아에서 고난당하는 성도들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고난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 이유를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늘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보장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런 산 소망을 가지고 당당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에게는 잠시 어려움이 있어도 하늘 기업이 내게 있다는 배짱이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어도 깜짝 깜짝 놀랍니다. 두려운 것이 너무 많습니다. 갑자기 벽에 걸려있던 그림 하나가 떨어져도 ‘이거 재수 없구나. 오늘 조심해야겠는데. 오늘은 운전하지 않는 게 좋겠어.’라 생각합니다. 이사도 아무 때나 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장가도 시집도 가지 못합니다. 궁합이 맞아야 한답니다. 문턱을 밟으면 재수 없다고 야단을 칩니다. 밤에는 휘파람도 불지 말고 손톱도 깍지 말라고 합니다. 아침에 여자가 첫 손님이면 재수 없으니 여자는 아침에는 물건 사러 가지 말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세상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많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약간의 어려운 일이 있어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원한 하늘의 기업을 약속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보장을 받았기에 어떤 어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산 소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크든지 작든지 아무튼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납니다. 이 어려움 앞에 성도들인 우리도 근심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잠깐 동안 근심하지만, 결국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역경과 시련을 통해 더 귀하게 훈련되어져 장차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5 - 7절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생산되는 고구마는 조금 과장해서 사람 머리통만 할 정도로 크다 합니다. 그 이유는 비료를 많이 주어서가 아닙니다. 가나안 농군학교는 비료를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구마가 사람 머리 통 만하게 큰 이유는 김을 맬 때마다 호미 날로 고구마 이삭에 상처를 주기 때문이랍니다. 고의로 고구마를 아프게 합니다. 아물면 상처를 주고 아물면 상처를 주면, 고구마가 열 받아서 그렇게 커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큰 고구마를 생산하려면 상처를 여러 번 주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의사가 다음과 같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IQ 150이 넘는 아이들을 살펴보았더니 많은 수가 돌이 되기 전에 홍역이나 독감을 앓았다.” 그러니까 독감이나 홍역을 심하게 앓으면서 머리에 자극을 받아 IQ가 150이 넘더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머리 나쁜 사람은 너무 평탄하게 살면서 자극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아무 도전이 주어지지 않아 머리가 발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독감에 걸리게 하지는 마시구요. 어려운 시련이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시련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셔서 강한 신앙의 사람으로 세우시고 또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온갖 시험과 시련을 견디도록 도우십니다. 그리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주십니다. 

    어느 성도의 간증입니다. 그분은 자수성가해서 성공하신 분이셨습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정말 가난했던 시절 어떤 작은 공장이 있는 회사 하급직원으로 출발하신 분이었습니다. 불과 50만 원 정도의 월급으로 출발하셨는데 열악한 직장의 환경 속에서도 그분은 아내의 기도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합니다. 그분은 자신의 아내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이웃 사랑하는 것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직장에 취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도난사건이 있었는데 혐의가 자기에게 쏠리고 있었답니다. 새로 들어왔고 청소를 도맡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장되시는 분에게 끌려가 문초를 받은 후 당장에 때려치우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그날 점심에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열었더니 아내가 넣은 작은 쪽지가 있었습니다. 의심받는 다는 사실을 알고 아내가 격려의 족지를 도시락에 넣은 것입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답니다. 나는 당신이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의심하기보다 차라리 의심받는 사람이 된 것이 감사하다고. 당신의 억울함은 하나님이 벗겨 주실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당신이 당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보다 축복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억울함을 느끼는 그런 어두운 직장이기에 나는 당신이 그런 직장에서 빛이 되시기를 기도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에 베드로전서 2:19이하의 말씀을 적었다고 합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오.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19-21)

     


    그날 저녁 그는 회사를 청소하고 나오면서 자기를 문초한 부장의 책상 위에 이런 메모를 남겼답니다. “저는 부장님을 원망치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일로 서로를 의심해야 하는 오늘의 세상이 된 것을 원망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런 세상은 정직한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는 채찍으로 오늘의 교훈을 삼겠습니다. 부장님을 축복합니다.” 그 쪽지를 받은 부장이 감동을 했습니다. 그런지 얼마 후에 그의 누명은 벗겨졌고 그는 회사 모든 이들의 신뢰 속에 진급을 계속하다가 회사 대표이사 되신 분이 자손이 없이 은퇴하며 회사를 그분에게 넘겼다고 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어려운 시련을 견디게 하시고 시련을 통해 엄청난 축복을 주셨다 간증했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축복으로 바꾸어주시는 분이십니다.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도처에서 핍박을 받으면서 당시의 세상을 이긴 비밀이 바로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동일한 소망, 동일한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까?


    나치 독일이 유태인들을 말살하기 위해 마련한 폴란드의 강제 수용소 아우슈비치에 갇혀있었던 유명한 심리학자 빅터 플랭클(Victor Frankle)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 있는 동료들이 삶을 포기하고 죽어 가는 광경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저 조그마한 창이 보이지 않습니까?” 한 죄수가 신경질적으로 대답 합니다. “봐야, 회색 담벼락밖에 없지 않소.” 플랭크 박사는 다시 말했습니다. “아니, 그 회색 담벼락 저 건너편에 있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밤에도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하늘과 달과 별들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삶의 본질적 의미 즉, 삶에서 희망을 놓아버리는 순간 그 사람은 죽은 것이다. 라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그는 "수용소에 있는 인간상을 이렇게 구분해 볼 수 있었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곧 쇠약해져서 죽었다. 그러나 소망을 가진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소망을 가질 뿐 아니라 절망 속에 있는 이웃을 도와주고 소망을 계속 갖도록 격려하던 사람들은 몸도 마음도 건강한 상태에 있었다."라 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눈앞에 콘크리트 같은 차가운 벽만 보입니까? 담 너머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산 소망을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열 받는 일이 생겨도, 아무리 나를 찌르는 환경이 주어져도, 그것이 나를 왕 고구마와 존귀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깨닫고 산 소망을 가슴에 품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다음세대에게 신앙을 물려주지 못하면 앞으로의 우리 가정과 교회, 사화와 국가는 희망이 없습니다.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실패하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자녀에게 하늘의 산 소망을 가르쳐주십시오. 그러면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헛된 인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돈 많이 벌고 출세하고 명에를 얻고 지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없는 인생은 썩고 사라지는 헛된 삶입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과 같은 것입니다.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잘 나가던 사람이 자살하고 무너지는 것은 헛된 소망에 인생을 걸기 때문입니다. 공부 좀 덜하고 돈 좀 덜 벌고 출세 좀 덜해도 하늘에 산 소망을 두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앞길을 열어주시고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자손대대로 하늘의 산 소망을 두고 사는 복된 가문을 이루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찬양 : 나는 순례자

     

    이 시간, 제가 초청 받으신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또 교회 그 동안 계속 나왔지만, 복음이 무엇인지 확실히 이해하실 수가 없었던 분들도 포함됩니다. 목사님 말씀 듣고 보니, 저도 정말 예수님을 믿고 싶어요. 저도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어 산 소망을 갖고 살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생기시는 분은 한번 손 들어 주세요. 손 번쩍이요. 네. 괜찮아요. 부끄러운 손 아니거든요. 아름다운 손. 결심의 손. 번쩍 다시 한 번 올려주세요. 번쩍 올리시고요, 자리에서 잠깐만 일어나 주세요. 제가 기도해 드릴께요. 결심한 분들은 다 일어나세요. 모시고 오신 성도님들도 결심을 돕기 위해 같이 일어나세요.

     

    자, 일어서신 분들 저를 따라서 기도하세요. 성도님들도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산 소망을 갖고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 저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그 피로 저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 제 마음속에 오셔서 저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네,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많은 분들이 이렇게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들 딸로 받아 주시옵소서. 이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었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딸이다. 확신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남은 생애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로 신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높여 드리며, 주님을 따라가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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