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로 이룬 기적 같은 인생 김선태 맹인 목사의 이야기
  • 조회 수: 174, 2013.04.26 13:54:53
  • ▶ 김선태 목사 그는 누구인가?

     


    김선태,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기도와 의지와 신념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기적을 이룬 인물이다. 그는 서울에서 불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초등학교 2학년 때에 왕십리중앙교회에 출석하는 친구를 만나서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기회가 되어 후일 하나님이 함께 하는 성직자가 되었다.

     


    ▶ 김선태 목사의 어린 시절

     


    열 살 때 6.25 전쟁을 만나 부모님을 동시에 잃고 폭탄에 두 눈마저 잃은 절망의 상태가 되었다. 친척 집을 더듬 더듬 물어서 찾아갔으나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학대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견디다 못해 결국 한밤중에 도망을 나가 2년 반 동안 거지 생활을 했다. 다리에 동상이 걸려서 썩어 들어간 적도 있었고, 썩은 음식을 받아먹었기 때문에 식중독에 걸린 적도 있었고, 옻나무 곁에서 자다가 옻독이 온 몸을 뒤덮기도 했다. 견딜 수 없는 절망과 고난의 연속 속에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그 은혜에 감격해서 거지 소년의 가슴 속에는 감사함이 넘쳤다. 비록 깡통을 든 거지였지만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겠다는 아름다운 생각이 그를 교회로 가게 했다.

     

    ▶ 예수님을 만나게 된 어린 김선태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동냥한 돈에서 새 돈을 골라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다. 이상하게도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고 새 돈을 골라 헌금을 하면 집집마다 구걸할 때 많은 사람들이 거절하지 않고 먹을 것, 입을 것, 신발과 돈을 잘 주었다. 오히려 정상인 거지들이 가면 야단을 치고 동냥을 주지 않았는데 선태한테는 잘 주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셔서 거지들에게 같이 교회 가면 빵, 과자, 사탕도 사주고 돈을 줄 테니 교회에 가자고 했다. 그들은 선태 거지에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거지사회에서 대장이 되었고 목사님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 절망의 나락에서 희망으로...

     


    선태는 거지 체포령에 걸려들어 부산의 아동보호소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매일 같이 예배드리며 성경 암송을 하였고 착실한 아이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는 아동보호소의 원장과 총무의 도움으로 부산 송도 꼭대기에 자리 잡은 맹아원에 가게 되었고 점자를 배워서 맹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곳도 천국은 아니었다. 그는 춥고 깊은 밤 바닷가 앞에 있는 여관 계단 위에 올라가서 돌계단을 붙들고 야곱처럼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양사감이 말하는 대로 희망이 없습니까? 희망이 없다면 저 바닷가에 몸을 던져 죽겠습니다.” 라고 울면서 기도했다. 그 때 “선태야, 나는 너를 사랑한다. 희망이 있다. 너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다시 기도했다. “하나님, 저에게 희망이 있습니까? 희망이 있다면 제가 박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선태야, 박사가 될 수 있다. 낙심하지 마라.”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그는 죽으려고 했던 생각을 포기하고 마음을 바꾸고 다시 그 밤중에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는 그곳에 계속 있다가는 공부도 성직자도 박사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그날로 주머니에 단돈 1원 한 장도 없이 무임승차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걷게 되다

     


    서울 맹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당시에 학비 같은 사친회비를 못 냈기 때문에 담임으로부터 까닭 없이 미움 받고 매 맞는 왕따를 당했다. 여기를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때 마침 전교학생들이 소풍을 가서 먹은 음식이 잘못되어 모든 학생들이 장질부사에 걸려 신문에 보도가 되고 사회문제가 되어 학교는 휴교를 했다. 선태는 그 틈을 타서 부산에서 만나 뵈었던 전도사님을 찾아가서 사정 얘기를 했다. 그 전도사님은 한국에서 선교하고 있는 곽안전 선교사님이 미국 의사의 부탁을 받아 똑똑하고 희망이 있고 신앙 좋은 학생을 길러 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테네시 주에 어떤 의사가 한국에 있는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을 돕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고, 지금 현재 얼마의 돈도 와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의 암담하고 처참했던 운명이 바꿔지기 시작했다. 선태는 종로에 있는 영어학원을 다녔다. 몇 곳의 기독교학교에 원서를 냈다. 그중에서 그의 모교인 숭실중고등학교에서 제일 먼저 연락을 받았다. 그는 교장님과 교사들 앞에서 면접을 하고 몇 가지 시험을 봤다. “이 학교는 정상인 학생 삼천 명 중에서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은 너 하나인데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니? 교과서도 없고 앞 못 보는 사람을 위한 시설도 없는데 어떻게 하려고 하니?”라고 질문했을 때 그는 용감하게 대답했다. “저는 연약하고 힘도 없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기도하면서 순교적인 정신을 가지고 공부해서 쓸모 있는 지도자가 되겠습니다.” 대답을 들으신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은 “너는 참 똑똑하구나.” 하시며 합격시켜 주셨다. 그후로 숭실고등학교를 거쳐 숭실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과 대학원과 미국 맥코믹 신학교에서 공부하여 부산 바닷가에서 희망이 있고 박사가 될 수 있다는 주님의 음성이 드디어 그에게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는 한개의 박사학위 이외에도 그의 모교 숭실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와 명예신학박사를 받아 한국의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으로서 세 가지 박사 학위를 소지하여 아시아의 남자 헬렌 켈러가 되었다.

     

     

    ▶ 빛은 어둠에서 희망은 절망에서...

     

     

    그는 고아였지만 가정을 이루어 현재는 아내와 친딸, 양녀들, 수많은 친구들이 그에게 힘의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성직자가 되어서 시각장애인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천여 명의 젊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주어 지도자를 길러내는 큰일을 이루었다. 그뿐 아니라 하늘나라에 먼저 가신 한경직 목사님을 모시고 고려합섬 장치혁 회장님의 뒷받침으로 실로암안과병원을 설립하였다. 또한 어느 독지가의 기증으로 꿈에도 소원이었던 시각장애인을 위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을 만들었고, 노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요양원도 설립하였다.

    그는 믿는 자에게는 못할 일이 없다는 그 신앙을 가지고 용기 있게 밀고 나가서 한국 땅에 사랑의 금자탑을 이루었다. 그는 과거에 사심 없이 20만 넘는 시각장애인과 전국의 500만 명의 저시력자들에게 실명예방과 개안수술, 천여명이 넘는 젊은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실로암안과병원과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회를 설립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비롯하여 국민훈장 동백장, 모란장, 삼성에서 고 이병철 씨를 기념하여 만든 호암사회봉사상과 사회공헌 공적이 인정되어 아시아의 노벨상인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앞으로 하나님이 도우시고 한국교회와 뜻있는 성도들의 사랑의 힘이 모아질 때 저개발국가를 위해 선교하고, 도와줌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의 효인 ‘효명(曉明)’처럼 아침의 밝은 빛으로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빛이 되어 기적을 이루어 나갈 것이다. 그는 순교적인 믿음과 정신으로 땀을 바치고, 눈물을 바치고, 살을 깎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셨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도왔다. 그는 절망을 희망으로 어둠을 빛으로 바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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