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부모, 위대한 자녀(엡 6:4)
  • 조회 수: 189, 2013.07.21 16:58:05
  • 왕대 밭에서 왕대난다는 말과 같이 신앙도 위대한 신앙인 부모 슬하에서 위대한 신앙인 자녀가 태어나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이 그대로 자식들에게 옮겨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밑에서 이삭이, 이삭 밑에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밑에서 요셉이, 아므람과 요게벳 밑에서 모세가, 한나 밑에서 사무엘이, 로이스와 유니게의 뒤를 이어 디모데가 자라난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신앙인 밑에서 위대한 신앙의 사람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자녀를 원하면 위대한 신앙의 부모가 먼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육학자 콜만 매카시는 1978년에 놀라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6세된 아이의 성격과 행동은 12세때 이미 결정되었고, 12세의 아이가 취한 행동은 8세때 이미 그 원인이 잡혔으며 8세의 아이가 나타낸 행동은 3세나 4세때에 그 뿌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속담에 3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과도 통하는 말입니다. 어릴 때부터의 올바른 신앙교육은 이런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의 시각으로 자녀를 보아야 합니다. 고대인들은 어린 아이를 어른의 소유물처럼 마음대로 취급하고 학대하였습니다. 희랍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뜨거운 알콜에 담궈두어 거기서 살아남으면 기르고 그렇지 않으면 산 속에 갖다 버렸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남자 아이는 가난해도 기르고 여자 아이는 부자라도 버려도 좋다는 아테네의 법률을 인정했습니다. 로마에서는 아이를 노예로 팔 수 있는 권리를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어떤 지방에서는 아이가 셋이 되면 하나는 눌러 죽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셨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영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그를 환영하고 그를 위해주고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인류역사상 예수님만큼 어린이를 존중해주신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장 3절에서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18장 6절에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멧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셨고 또한 18장 10절에서는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무조건 용납하셨고, 안아 주셨고, 축복해주셨습니다.철인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내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없어질 물질을 위해서는 많은 관심이 있는데 진짜 유산인 아이들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테네의 가장 높은 탑에 올라 한마디 말을 남기고 죽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면 나의 한 마디는 '시민들이여 어린이에게 투자하라'는 말일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미국 버지니아 해안에 가보면 맥아더 기념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맥아더 장군이 일생동안 받은 훈장과 상장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평소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받은 훈장 중에 가장 위대한 훈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자랑스러운 아들을 주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맥아더는 자기 아들이 태어나는 날,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해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선물을 주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의 유업입니다. 시편 127편3절에서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고 하셨습니다.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잘 양육하고 돌볼 의무가 있음을 깨닫고 양육하여 길러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할 의무가 부모에게 있습니다. 성경은 부모들에게 자녀를 양육할 것을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6장4절 말씀을 보면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습니다.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양육이라는 말은 헬라어 엨트르포로서 "꽃을 기른다", "애완동물을 기른다", "몸을 돌본다"라는 말을 할 때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시편 34편11절을 "너희 소자들아 와서 내게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라"는 말씀이나 시편 78편 5절에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잠언 3장1절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는 말씀이나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에베소서 6장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에서 양육을 명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11장18절에서 19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고 하여 자녀를 가르치고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부모들에게 자녀를 가르칠 책임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가정 교육을 학교 교육에 비한다면 가정은 학교이며 부모는 교사가 되며 성경은 교과서가 됩니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신앙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신앙으로 양육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자녀들에게 예의범절이나 이 세상에서 생계를 유지해 전문적 기술을 전수해 주는 것보다도 더 필요하고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사도 바울도 어린이의 신앙교육을 중시했습니다. 사실상 어린이를 잘 교육시키는 것은 한 민족의 번영에 큰 공헌을 하게 합니다.

     영국의 시인 콜리지에게 한 방문객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평소 콜리지를 존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화의 주제가 어린 아이에게로 옮겨졌습니다. 그 때 방문객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어린 아이들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일찍부터 자기 스스로 결심을 하는 법을 배우거든요. 어린 아이들이 자기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완전하게 키워 나가는 유일한 길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콜리지는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우리 꽃을 보러 갈까요?" 이렇게 말하고 콜리지는 방문객을 꽃이 만발하게 피어있는 정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방문객은 그의 정원을 한번 둘러보고는 놀라서 말했습니다. "아니! 왜 여기는 잡초 밖에 없나요?" "여기도 전에는 꽃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일부러 내버려 두었습니다. 자기들이 자라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어떻게 자라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잡초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자녀를 양육하려면 먼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6장 4절 말씀을 보시면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21절에서도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는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격노한다는 말이 본래는 "배가 항해를 하는데 바람을 없앤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입니다. 바람이 없으면 배가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배가 더 이상 항해할 수 있는 힘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기를 꺾어버리고 용기를 꺾어버리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자녀를 징계하거나 그르치게 자녀를 징계해서 만약 자녀의 마음속에 분노를 축적시킨다면 자녀는 나중에 기가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더 이상 항해할 수 없는 배처럼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상실합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합니다.

      두번째는 사랑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사랑이 없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디도서 2장 4절에서 젊은 여인들을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단어는 아가페가 아닙니다. 부모에게 자녀를 사랑하라고 말할 때는 아가페가 아니라 필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여기 필로스는 친구의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녀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 여러분! 자녀들과 얼마만큼 친구가 되어 주십니까? 얼마만큼 자녀들과 대화를 하십니까?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자녀가 그런 부모의 사랑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녀의 잘못도 있지만 부모의 잘못도 있습니다. 전달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모들이 자신들의 만족을 위한, 자기 중심의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자녀들을 바로 이해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사랑을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이런 사랑이 있어야 바른 양육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달라스 신학교에 계신 하워드 헨드릭스박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의 삶에서 아버지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이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새벽녁에 내가 거실을 지나갈 때, 나와 형제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시던 아버지의 목소리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팔을 걷어 붙이고 우리들과 씨름하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이 두가지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6절 이하를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하여 성경은 사람을 양육하는데 가장 좋은 교제가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링컨이 아홉 살 되던 해 그의 어머니는 풍토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어린 링컨에게 "부자나 위인이 되기보다는 성경 읽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라"고 유언하였습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배워 살고자 하는 링컨은 결국 세계를 감동시키고 모든 인류에게 커다란 모범을 보인 위인이 된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가수인 할버튼이 어느 날 어린 아들과 친구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한 소년이 아들에게 이런 자랑을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시장님과 아주 친하단다." 그 때 아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꾸했습니다. "그래, 우리 아버지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아주 친한데."이렇게 대꾸했습니다. 할버튼은 아들의 대답을 듣고나서 또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신앙을 심어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건강한 부모의 신앙, 그리고 건강한 신앙적 교육의 자세만이 건강하고 바로 사는 자녀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모든 분야에서 위대한 인물들이 되어 위대한 삶을 살게 되는 은총이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위대한 신앙인들이 되어 위대한 자녀들을 길러내는 위대한 부모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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