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께 감사하라(시 136)
  • 조회 수: 298, 2013.03.15 21:39:50
  • 매년마다 지켜지는 추수감사절을 올해도 맞았습니다.
    이 추수감사절을 맞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바라며, 여러분의 삶속에 더욱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추수감사절은 1621년부터였습니다.
    1620년 영국 국교의 박해를 피해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해 102명(남78,여24)의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May Flower)라는 배를 타고 신대륙을 향해 출발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해 12월 21일에 청교도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습니다.
    저들은 신대륙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예배당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난 뒤 자기 집들을 지었습니다.
    그 해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거의 반수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이듬해 추수한 것 중에 가장 좋은 곡식과 열매들을 거두어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바쳤고 인디언까지 초청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미 구약 시대부터 추수감사절이 지켜져 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킨 수장절이 바로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민29:12-38).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36편은 감사의 조건 중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렇게 독특한 후렴구가 각절마다 있어 특이한 형식을 보여주는 본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인자하심을 보여주는 감사시입니다.
    여기 '인자'(히:헤세드)는 '자비', '친절', '사랑'의 뜻으로 피조물인 인생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에 속하는 감사는 권장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오늘도 본문을 중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우리 평생 하나님께 감사만을 올려 드리는 축복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1. 감사의 대상
    본문 1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 성도가 누구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지 그 대상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2절에서도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만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3절에서도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모든 주'는 모든 통치자들 위에 뛰어난 주권자 즉 땅위의 모든 주권자들을 말합니다.
    세상의 열왕들이 많지만 하나님만이 만주의 주요,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엉뚱한 것에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바치고, 인생을 걸고 있지만 성도만은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인생을 걸어야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이십니다. 그분의 사랑과 자비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사함을 얻게 되었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존재 의미를 찾아야 하고, 그 인생의 여정 속에 하나님께만 감사를 드리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 감사의 내용
    성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본문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감사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대한 감사와(4-9절), 두 번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10-22절).
    본문 4절부터 9절까지는 세상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명령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피조물로서는 도저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창조 사역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의 결정체입니다.
    하나님만이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분이십니다(4절). 하나님만이 홀로 놀라운 일들을 행사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큰 기사를 누가 감히 흉내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늘을 지으셨고(5절), 땅을 물위에 펴셨으며(6절),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신 분이십니다(7-9절).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땅을 밟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땅으로 우리에게 적합한 거주지를 삼게 했습니다. 이것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그리고 어제의 태양을 오늘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공중의 새, 화려하고 높은 산, 아름다운 골짜기 등 삼라만상을 볼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것 또한 우리의 감사의 내용입니다.
    본문 10절에서 22절까지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의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성도)을 위해서 행하신 하나님의 큰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출애굽부터 가나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해 내셨습니다(10-12절). 하나님은 가로막힌 홍해 바다를 갈라 이스라엘로 하여금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통로가 되었던 홍해가 애굽 군대에게는 무덤이 되었던 사건은 이스라엘에게 큰 감사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광야를 안전하게 지나게 하셨습니다(16절). 광야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양식을 주시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큰 왕들을 치시고(17절) 좋은 땅을 빼앗아 자기가 기뻐하시는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21-22절).
    그리고 하나님은 비천한 자를 기억하셨습니다(23절). 이것은 이스라엘이 고통스럽고 유약한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제공하셨습니다(25절).
    이것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입니다. 악인에게도, 선인에게도 똑같이 하나님은 햇빛을 비춰 주시고, 자기 백성에게만 식물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도 식물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신 곳에는 언제 어떤 때에도 합당하고 충분한 음식을 제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인생에게 베푸신 신비스러운 일들은 피조물로 하여금 감사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일들이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때때로 바로와 같은 사단의 억압에서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홍해와 같은 문제가 우리의  길을 가로막을지도 모릅니다. 광야 같은 외로움과 위험들이 우리를 위협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로 안전하게 광야를 걷게 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만나를 먹이신 하나님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각양 좋은 것들로 먹이실 것입니다. 때로는 메추라기로, 반석에서 시원한 생수로 인생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늘 당장 나에게 양식이 없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병아리가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을 향해 감사하듯이 오히려 나의 없는 것을 가지고 감사를 드리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3. 감사의 범위
    세상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잘 될 때만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전천후 감사가 있습니다.
    기쁠 때뿐만 아니라 슬플 때도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성도입니다.
    성공했을 때뿐만 아니라 실패의 쓴잔을 마실 때에도 감사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 성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만났든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괴로울 때에도 감사요, 슬픔 속에서도 감사요, 인생의 실패와 낙심과 절망 속에서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역설적인 진리를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합력해서 선을 반드시 이루어 내시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될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일이 안될 때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쁜 상황, 악조건 속에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아는 자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믿음의 선진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비참한 자리에서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은 믿음이 약한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참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는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다니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실망을 시키시지 않는 축복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이렇게 생사를 초월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믿음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또 구약 성경에서 욥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동방에서 큰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단이 주는 시험으로 말미암아 재산도, 열 명의 자식도 하루아침에 다 잃었습니다. 심지어는 가장 가까운 아내까지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이런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
    조그마한 일에도 원망을 하며 불평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욥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특별한 절기에만 감사를 드리는 절기형 감사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일년 365일이 나의 감사의 날이요, 무슨 일을 만났든지 감사할 수 있는 전천후 감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아픔과 고난을 겪었듯이 성도들도 여전히 광야 같은 삶속에서 고통과 슬픔을 맛볼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는 삶이 달라야 합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감사가 입에서 터져나와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마귀의 세계는 감사가 없다"
    감사가 없는 성도는 아직도 마귀의 종이 된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자는 그 입술에 감사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는 여러분의 신앙의 척도입니다. 감사하는 만큼 신앙이 성장합니다.
    우리에게 천지 만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우리를 구원하시며, 철마다 우리에게 식물을 제공하시는 그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리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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