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적진보의 조건(골3:16-17)
  • 조회 수: 285, 2013.07.27 20:55:50
  •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 염려 속에서 영적재충전 기간을 잘 마치고 특히 성지순례기간 동안 많은 것을 체험했습니다.  여러 경험들을 했지만 특히 마지막 2주간은 사도 바울이 걸어갔던 발자취를 걸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교만했지만 예수를 만난 이후에 사람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만이 모든 것이라며 복음을 들고 전하기 위해 다녔는데 이번에 그 발자취를 따라  다녔습니다. 로마를 제외하고 성경에 나타나는 고린도, 갈라디아, 빌립보, 에베소, 골로새, 데살로니가, 밧모섬까지 다 다녔습니다. 

    복음을 전한 이후에 사도 바울의 간절한 갈망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농부가 씨앗을 뿌려놓고 간절히 바라는 것은 씨앗이 잘 자라서 열매 맺히는 것이듯이 복음의 씨앗을 뿌려놓고 바울의 간절한 갈망은 복음이 싹트고 자라나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골로새란 지역에도 한 도시가 형성되면서 바울이 거기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고 거기에 초대교회가 시작되어 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장하면서 교회에 이상한 것들, 인본주의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이 하나 하나 들어오면서 교회가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평화롭던 교회에 갑자기 혼란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신학적인 논쟁이 벌어졌고 사람들의 주장이 강해지고 영지주의란 이단이 들어와서 교회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복음을 전했던 골로새 교회가 잘 성장하고 있는지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갇혔던 감옥현장에 가봤습니다. 그냥 땅굴이었습니다. 형편없는 시설 속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골로새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는 것입니다.

    평강을 잃고 사는 교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곧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의 마음을 주장하게 해서 평강를 되찾아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평강이 없으면 곧 분열하게 됩니다. 평강의 말씀이 아닌 다른 어떤 것들이 들어와서 평안을 빼앗아 간 겁니다. 말씀이 없으면 왜 분열됩니까? 말씀이 없으면 메말라가기 때문입니다. 모든 식물에게 필요한 것은 비입니다. 소아시아를 다니다가 한국에 내려보니 얼마나 풍요로운지! 소아시아 지역에는 우기와 건기가 있어 건기동안에 비가 안내려 온 들판의 풀이 노랗습니다. 자세히 보니 풀이 아니라 가시였습니다. 왜냐하면 식물에는 물이 필요하지만 물이 공급되지 않으니까 안 죽으려고 발버둥치다가 잎이 가시가 된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예수님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말씀하신 것이 실감남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못 먹고는 영적으로 절대로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사람들이 가시 같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기만 하면 찔리기 시작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못 먹으니 가시가 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발전되어가면 갈수록 세상은 악해져 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은 무엇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을 필요로 한 사람들에게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15절에 평강을 먼저 말씀하시고 16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할 때 너희 속에 평강이 너희를 주장하게 할거이다 라는 것입니다. 
    평강이란 단어를 히브리어로 "샬롬"이라고 평강이란 뜻입니다. 평강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샬롬 이라고 인사합니다. 샬롬 이란 인사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일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진정 평강이 있습니까?  저는 많은 곳을 가보진 못했지만 다닌 곳 중에서 제일 평강이 없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라고 생각됩니다. 입국이나 출국할 때 가장 힘들고 까다로운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적어도 공항에 3시간-4시간 전에 도착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갖고 다니는 가방 모든 것을 다 조사할 만큼 그들은 불안 속에 있습니다. 나라를 뺏고 빼앗기는 계속되는 반복 속에서 나라를 겨우 되찾고 그들이 평강을 얻으려고 이집트와 중동 여러 지역과 미국과 여러 나라들과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협상을 해도 그들은 진정한 평강을 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시려고 예수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집트와 다른 어떤 나라와 평강을 얻기 위해서 협상하기보다는 정말 그들이 평강을 얻는 길은 한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와 협상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죄 가운데서 불안에서 영원히 떨 수밖에 우리들을 구원해 주셔서 우리를 영적인 사람으로 삼아주시고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에 평강이 있습니까? 가정에 진정한 평강이 있습니까? 여러분  삶의 현장에 진정한 평강이 있습니까? 바울은 옥중에서도 평강이 넘쳤습니다. 감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에베소교회와 빌립보교회, 골로새교회에 쓴 옥중서신들을 읽어보면 그의 마음의 평강을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을 주장하도록 내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누구입니까? 말씀이 육신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되어오시는 예수를 만나고 그분을 마음속에 영접하고 사랑하는 사도바울에게는 어떤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가운데 있었습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평강이 넘치게 하는 방법을 16절에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면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게 되어집니다. 오늘날 내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고, 마음의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고,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입에나 다 주예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아버지 앞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마음의 평강이 우리에게 있고 말씀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12절 이하에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도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라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되는 띠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핵심은 말씀이 우리가운데 풍성히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안하고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불평하며 불만을 품고 사는 것은 어떤 환경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세상은 환경 때문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가르침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이라고 가르칩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할 때, 말씀이신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요 내 주님으로 나를 다스릴 때 우리는 우리의 내면 전체가 밝아질 수가 있습니다. 어둡던 우리의 길이 밝아집니다.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해결의 길이 보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풍성히 거하기만 하면 우리는 밝은 가운데 있습니다. 환경적으로 캄캄한 옥중에 있었지만 사도바울은 밝은 가운데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기쁨이 넘쳤고, 감사가 넘쳤고, 평강이 넘쳐흘렀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밖에 거하면 환경에 붙들려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집니다. 말씀 밖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교회상태에 붙들려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가면 큰 꿈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 밖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보다 교회 안에서 교회를 바라보고 교회에 대한 체험을 해보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교회 밖에서 교회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꿈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는 오직 천국이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어떤 사건이나 문제가 일어나면 얼마나 실망하는지 모릅니다. 왜냐면 자기들의 기대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직접 생활하니까 어떻습니까? 그렇게 아름답고 천사들만 모여있습니까?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실망을 주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시기하고 헐뜯는지 모릅니다. 사랑, 사랑하지만 보기 힘듭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왔다가 실망하고 떠나는 자들이 많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실망해서 불평하면서 살아갑니다. 여러분 수용하십시오! 교회는 우리가 밖에서 꿈꾸던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아닙니다. 죄인들이 주님에 의해서 불려진 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환경을 보고 교회의 상태를 보면 우리는 평강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매일 교회 안에서도 어둠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말씀이신 주님께 붙들리면 말씀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환경에 의해서 내 영적성장에 방해를 받지 않고 더 성장해갈 수 있습니다. 성경의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의 형들이 그를 노예로 팔았습니다. 팔려서 온갖 고통과 시름 속에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떤 환경과 상태에서도 그 환경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요셉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형들을 책망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리로 보내셨습니다. 나에게 어떠한 어려움을 제공해줘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의해 붙들리지 않고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곧 말씀을 통해서 성숙한 하나님의 사랑의 간증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이세상이 끝나는 어디가도 완전한 곳은 없습니다. 어떠한 가운데서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가운데서도 우리가 말씀으로 풍성히 거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면 패배하지 않고 승리하게 되어집니다. 
    다시 16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말씀으로 가르치고 말씀으로 권면하고 말씀으로 찬양하고 말씀으로 기도하고 그리하면 넘치는 은혜와 진리가 공급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은혜와 진리는 평강을 가져다 줍니다.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감사와 사랑과 관용을 베풀어주고 있습니다. 17절은 16절에 대한 정의입니다. 17절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베드로전서 4장11절에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같이 하고 일에나 누가 봉사하면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 주예수 이름으로 곧 말씀으로 하라 그럴 때 말씀에 힘을 입어 늘 감사가 넘칠 것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 평강이 없다면 이유는 하나입니다. 환경을 탓해선 어떤 가운데서도 해결해갈 수가 없습니다.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건져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우리 가운데 풍성히 거하기만 하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9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달 9월의 우리의 가장 큰 목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퀴즈하는 대행진이 있습니다. 행사가 아닙니다. 우리 속에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럴 때 만이 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갈 수 있습니다. 9월 한 달 열심히 해서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먹어 체질이 변화되어 어떤 환경 속에서도 평강을 누릴 수 있는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풍족하여 정말 천국을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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