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하는 사람의 나라 (골3:15-17)
  • 조회 수: 185, 2013.07.25 12:48:01
  •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원망이나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는 말은 사람자체가 감사적인 인간이 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체질이 감사의 체질이 되고, 우리 성품이 감사의 성품의 되고, 우리 인격 자체가 감사하며 살아가는 그러한 인격으로, 사람으로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발명왕 에디슨 은 1300여 개의 발명을 해서 모든 인류가 그의 발명으로 혜택을 누리며 잘 삽니다. 전구나 영화를 보는 영사기의 전신인 활동사진도 있고 전축의 전신인 축음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저능아라 하여 학교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자기 실험실이 없어서 기차에서 실험을 하다가 불이 나서 승무원에게 한대 얻어맞아 귀먹어리가 되었는데도 발명왕이 된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당해본 사람만이 아는것 처럼 귀먹어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인생말년에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귀먹어리가 된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여깁니다. 귀먹어리가 되어서 답답하기는 했지만 저는 귀먹어리가 되어서 연구하는 일에만 몰두 할 수 있었습니다. 잡음이 들리지 않고 어떠한 소음도 들리지 않아서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하나님 제게 귀먹어리가 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어떤 불행이 닥쳤고 병들든지 가난하든지 실패하든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이며 얻은 것은 무엇인지 그 소중한 것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감사할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됨은 감사할줄 아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과 인격이 어느정도인가는 감사의 깊이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눅17장에 보면 열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에게 고침을 받았지만 그 열 명중 한 명만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병 고침 받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아홉 명은 어디 가고 한 명만이 온 것을 보시고 예수님 은

    “너희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런데 그 아홉은 어디 갔느냐? 이 감사하러 온 사람 외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러 온 자가 없느냐”라고 반문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그는 감사를 위해서 예물을 가져온 것도 아니고 특별한 예의를 갖춘 것도 아니고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꿇어 엎드려 감사한 것이 예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편으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아홉 명의 사람들이 안왔을까 하는 것입니다.

    “문둥병자가 병이 낳았다”과거는 그렇다고 해도 그 병이 나은 그 순간부터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옛말에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놓으니 내 보따리 달라고 하는 것처럼 죽는다는 그 순간에는 살아야 겠다는 그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막상 살고 보니 살 길이 막막하여 보따리를 바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홉 명의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았지만 앞으로 살 일이 막막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 와서 감사하기 보다는 앞으로 살 일을 생각하지 끔직했던 것입니다.

    사실 문둥병이 나았지만 누가 믿어줍니까? 누가 이런 사람과 결혼하고 이런 사람을 고용하여 일을 시키겠습니까? 요즘도 문둥병자들은 문제가 많습니다. 부모가 문둥병자 이기는 해도 자식은 문둥병자가 아닙니다. 의사가 자녀는 문둥병자가 아니라는 확증을 해 주어도 그런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공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이감아’라는 이름이 즉 아직 감염되지 않았다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어두운 가운데 일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문둥병자가 나았어도 미래를 생각하면 암담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것은 이들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제 결혼식에 참석하여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한편생각으로는‘우리교회에 있는 노총각, 노처녀들도 빨리 결혼을 했으면’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른 넘은 딸을 가진 집사님이

    “목사님 제 딸이 시집만 가면 저는 죽어도 한이 없겠어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시집을 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집사님 이제 죽어도 한이 없으시겠네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네 그래요 목사님!”하고 대답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 집사님은

    “왠걸요 걱정이 태산입니다. 시집가서 밥이나 제대로 해 먹을런지, 빨래는 제대로 하며 살런지... 목사님 제 딸이 애를 낳을 수 있을까요? ”라고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기쁜 것 보다 걱정이 더 많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이가 얼마나 똑똑하고 영리한지 무엇이든지 척척 잘 해내는 아이에게 제가

    “얘 너는 이제 학교 가니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아이는“예 목사님 참 좋아요”라고 대답하기는커녕

    “목사님 무슨 말씀이세요 고생문이 훤 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떤 얘기를 했기에 아이가 그런 얘기를 하겠습니까.

    여러분 농부가 감자 농사를 지어 풍년인데도 걱정이 태산입니다.

    “풍년이 들어서 참 좋으시겠습니다.”라고 말했더니 농부는

    “무슨 소리입니까? 작년에는 흉년이 들어 감자들이 다 못생겨서 돼지를 주었는데 요번 감자는 너무나 예뻐서 돼지 줄 것이 없어 걱정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의 문제이고 그 아홉 사람이 바로 나의 문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감사하지 않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죄라고 했고 그것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을 벌하는 법을 만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감사를 모르는 자는 하나님께서 직접 벌하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감사하지 않는다고 벌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께서 직접 벌하신다는 것입니다. 

     

    민1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광야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얼마나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 쪼이는지 하나님께 많은 원망과 불평을 하니 하나님께서는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들의 한쪽 진영을 불로 태웠습니다.

    모세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불은 꺼졌지만 그곳이 이름을“다베”즉 하나님이 불을 내리셨다고 했습니다.

    11장에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만 먹는다고 불평을 하니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배불리 먹고도 남았고 그 남은 메추라기를 볕에 말리면서도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일로 인해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아 바로 그 자리를‘탐욕의 자리’라고 이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도 할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빌4:13에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병든자가 건강해 지고 가난한 자가 부요해 지기때문에 기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은 매일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둘러싼 많은 문제와 환경은 계속해서 우리를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안타까움과 신앙적인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의 말씀은 그런 뜻 만이 아닙니다. 그 뜻은 어떠한 환경과 어려움이 닥쳐와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능력 있는 사람을 만드는데 배고픈 사람을 배부르게 만들고 병든 자를 건강하게 만드는 능력만이 아닌 것입니다.

    빌4:13의 바로 전 구절인 1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모든 환경 속에서도 적응 할 수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배가 부를 때에도 교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배가 고플 때에는 원망과 불평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당당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뜻대로 살려고 했습니다. 또한 빌4:12의 바로 전 구절인 11절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것입니다. 자족은 스스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외부적인 환경이 어떠하든지 내 마음속에는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내 속에는 만족한 환경상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자족함입니다. 더 나아가 평안함으로 통제 되어 있는 상태가 자족함의 상태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 괜찮다’하지 않고

    “내 어찌 하나님 앞에서 득죄 하리요”하며 그 일로 요셉은 감옥에 갇힙니다. 하나님앞에서 바른 신앙의 도를 보이기 위해서 애쓰고 수고한 결과가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실 것은 감옥은 요셉으로 하여금 국무총리가 되게하는 길이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에게 감옥은 오히려 복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행한 믿음을 잃지 않고 자족하고 감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빌1:12-13“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사도바울은 전도하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 일로 낙심하거나 체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전도하다가 이렇게 되었구나, 내 인생도 이제 끝이구나, 하나님 어떻게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실수 있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저는 사도바울의 고백을 압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도바울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께 사랑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찾아오는 로마의 귀족들에게 예수의 복음과 사랑을 알려주고 예수님의 사랑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중에 로마황제 가이사의 집의 사람들도 예수를 믿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바울의 신앙은 자족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일체의 비결을 배우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승리자의 외침을 외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외침이 바로 여러분들의 외침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찌모라 간조’라고 하는 일본의 목사님의 계셨습니다.

    이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적이 있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면 나는 거만하고 인정 없고 못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은 파괴 시키시고 내가 원치 않는 것을 주셔서 결국은 선을 이루셨다. 욕심대로 원하는 대로 기도응답이 된다면 그것은 나도 망하고, 너도 망하고, 우리 모두가 망하는 것이다.”

    기도응답이 되지 않는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내 뜻대로 안 된 것을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이것은 참 신앙인의 고백이었습니다.

    여러분 아이들의 이야기 가운데 마이러스 왕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은 금 덩어리가 되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만지는 대로 금 덩어리가 되니 얼마나 값이 나가겠으며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요즘같이 어려운 때에는 그렇게 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에게 사랑하는 딸이 달려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딸을 덥석 잡는 순간 사랑하는 딸도 금 덩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누구 때문에, 왜 내게 금이 필요한 것인가?’사랑하는 자식을 금으로 만들어 놓은 임금은 후회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응답이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오히려 주어진 환경을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성도인줄로 믿습니다. 

     

    서울대학 못 가서 그렇게 안타까워하던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는커녕 대학도 못갔습니다.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그런데 이 아들이 기술을 배워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유학까지 가서 그리고 지금은 회사에서 대학 나온 사람 이상으로 훌륭한 대접을 받는 일군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 부모님은 제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목사님 뭐든지 두고 볼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오늘 이 순간 당하는 문제를 가지고 안타까워 하고 괴로워 하고 원망불평 하지 말고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감사하는 복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사모님은 피아노도 잘 치고, 상냥하고 남편을 잘 위하는 사모님인데 그분에게 혈압이 좀 있었습니다.

    그런데 혈압으로 그만 반신불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은 얼마나 속상하고 그 목회하시는데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러나 목사님은 목회를 하면서도 살림을 감당하고 아이들도 키우고 17년 동안 가정생활과 목회생활을 힘써 왔습니다.

    그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아내가 나를 위해서 희생하고 고생하고 애쓴 것이 얼마나 큰것인지.. 내가 신학교 다닐 때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나를 가르쳐 목사가 되게 했습니다. 내가 이만큼 목회 하면서 아내가 쓰러졌다고 아내를 박대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아내를 내게 주셔서 내게 빚을 갚게 하시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목사님은 감사한 마음으로 17년 동안 헌신, 봉사하여 사모님은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목사님은 목회의 길에서 무엇보다 가정목회를 승리했다는 것이 그의 목회를 더 빛나게 하고 복되게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영국에 유명한 해군 제독 가운데 ‘웰링톤’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제독으로 일하는 가운데 골치 아픈 병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병사는 군대가 싫다고 자꾸 탈영을 하는 것입니다. 전시에 탈영하는 것은 사형감이므로 제독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병사를 고쳐보려고 야단도 치고, 매도 때리고, 노동도 시키고, 감옥에 가두기도 했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사고뭉치였습니다.

    그래서 제독은 더 이상 그 병사를 놔두면 군대의 기강도 해이해 지고 어지러워 지니 마지막으로 사형을 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웰링톤 제독은 그 병사를 불러 마지막으로 얘기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람 만들고 싶어서 가르치기도 하고 야단도 치고 매도 때리고 감옥에 가두기도 했지만 너는 안됐다. 그러므로 이제 네게 남은 것은 사형밖에 없다. 다른 병사들도 그간의 일을 본다면 내가 이 병사를 사형시키는데 이의가 없을 줄로 안다. 그러나 혹시라도 할말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아라”

    아무도 손을 든 사람이 없었는데 한쪽에서 한 병사가 손을 들었습니다.

    “제독님 한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제독님은 사고뭉치 병사를 위해 할 일을 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해 볼 때 하지 않으신 일이 딱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가 죄를 지었을 때마다 그에 때를 죄 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매도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노동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탁 드리는 것은 이번에는 그의 과거를 용서해 주시기 바라며 그의 죄도 묻지 마시고 그를 새 사람으로 살게 내버려 두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으니 다시는 가서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던 것처럼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독이 그 병사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게 언제든 죄 값을 치뤘습니다. 그래서 그 사고뭉치 병사의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병사가 그때부터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좋은 청년이 되고 성실한 군인이 되어서 나라에 충성하고 제독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용서하는 일, 용서 받는 일은 참으로 귀한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 받을 때에, 사랑을 느낄 때에 건강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용서 받은 것에 대하서 감사한 마음을 가질 때에 창의력도 생기고 지혜도 생기고 능력도 생겨서 우리가 기쁨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베드로는 말씀했습니다.

    벧후 3:18“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성도가 살아갈 때에 무엇으로 신앙의 성숙이 이루어 지겠습니까?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가는 지식에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고 지옥에 가야하고 천국은 상상도 못하고 마귀의 종노릇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었다는 그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게하고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사는 새 사람이 되게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이 감사는 마땅히 범사에 감사로 나타나야 될줄로 믿습니다. 기도할 때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망이나 불평의 기도를 드리면 안됩니다.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지난 부활절때 성가대축제에 참여했습니다. 참가한 교회들은 모두가 큰 교회들 뿐이었고 유니폼은 평상시에 입던 것, 즉 얼마나 합창제를 많이 참석하였는지 평상시에 입는 유니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만 유독히 일부러 유니폼을 만든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른 교회는 보통 150여명을 뽑아서 나왔지만 우리교회는 100여명을 겨우 만들어서 나갔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합창제에 나가려는 마음은 있어도 어떻게 인원을 동원할까, 어떻게 연습할까 등 걱정거리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성가대원들을 만날 때 마다, 그 당일 날 기도할 때도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세상의 많은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있지만 한남제일교회에 이렇게 찬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일생에 이러한 기회는 또다시 오지 않을 줄로 믿고 감사함으로 이 일에 참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정성과 마음을 받으시고 우리를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힘을 달라고, 사람을 모아 달라고 기도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기도보다는 감사의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나니 성가대원들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똑같은 기도를 해도 감사의 기로를 할때에 그 마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그저 달라, 달라고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성숙된 기도는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 은혜 속에 살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감사의 조건들을 찾는 기도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감사의 기도속에 참 기쁨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골 3:16“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송가 중에서도 4/4박자 찬송을 참 좋아합니다. 느린 찬송보다 기쁨과 힘이 넘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찬송 부를 때 여러분의 얼굴을 쳐다보면 그 찬송부를때의 얼굴은 각자 가진 신앙의 경력과는, 성가대에 앉은 사람과는 상관이 없는것 같습니다.

    기쁨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찬송하면 그것이 복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물질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즉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엡 5:4“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사람을 기쁘게하고 그의 인격을 높이는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는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못사는 나라는 감사하다는 말이 없습니다. 북한에 소떼를 가져다 주었지만 그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안합니다.

    오늘도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복 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을 감사의 터 위에 심으면 믿음이 올바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령을 감사의 터 위에 세우면 성령도 크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부자이며 재산이며 그것이 보약이며 그것이 우리를 젊게 합니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빛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와 민족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그런 백성, 그런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어느 일본사람이 쓴 책 가운데 이러한 글귀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가서 기술을 배워 한국으로 돌아오면 몇해 지나지 않아 똑같은 기술을 배우러 다른 사람들이 오고 또 몇해 지나지 않아 똑 같은 기술을 배우러 또 다른 사람들이 오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이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의 나라에서는 왜 똑 같은 기술을 자꾸 배우러 옵니까?”

    그랬더니 한 사람이

    “이전에 기술을 배운 사람을 다른 회사로 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회사가 주는 돈으로 외국에 나가서 기술을 습득하면 그것을 가지고 그 회사를 위해 충성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봉급을 더 준다고 다른 회사로 옮겨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온전하겠습니까? 감사할줄 아는 사람, 그런 민족에게 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다 은혜 받고 살고 있습니까? 그런 가정이 복이 있고 그런 교회가 복이 있고 그런 직장이 잘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위 엘리트라고 하는 사람들, 반도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귀합니까 ? 그런데 그 사람들이 회사의 기밀을 뽑아서 경쟁국 대만에 팔았다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감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많은 것이 있어도 그것이 나를 복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감사하게 될 때에 그것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고 그것이 우리의 재산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소망을 준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나라의 백성, 그 백성이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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