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감사
  • 조회 수: 5410, 2018.02.27 11:36:01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할렐루야~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옆에 계신 형제, 자매들에게 당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 사람은 어떤날에는 기분이 좋을 때가 있고 또 어떤 날에는 기분이 나쁠 때가 있습니다. 기분대로 산다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고 매일같이 여러분은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기쁩니다. 즐겁습니다. 소망찹니다.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말을 하세요. 말을 하면 그 말한대로 됩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슬퍼져요. 나는 못해요. 안돼요. 할수없어요. 슬퍼요. 불행해요. 고통스러워요. 그러면 그대로 돼요.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인데 울면서 살지말고 웃으면서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론>


    우리 이번 주간은 추수감사주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크게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감사인 것입니다. 삶이 기쁘고 행복할수록 감사를 많이 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데 잘먹고 잘입고 잘살고 편안하면 감사가 많이 나오지요. 가만히 살펴보면 일상의 대화 속에 불평과 원망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삶이 행복하지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은 늘 원망과 불평과 탄식이 많습니다. 제가 해외를 많이 여행을 해보았는데 후진국에 갈수록 사람들이 불평이 많아요. 감사하다는 말이 별로 없어요.


    그러나 놀랍게도 선진국에 가면 감사하다는 말이 너무나 많아요. 제일 처음 미국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 미국 사람들 앉아도 감사하고 서도 감사하고 얻어 맞아도 감사하고 쓰다듬어 줘도 감사하고 무엇에도 땡큐, 땡큐. 그래서 저는 문화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느냐. 미국 사람 사회 속에 살려면 나도 감사를 배워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호텔방 거울 앞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땡큐, 땡큐, 땡큐 그렇게 연습을 했던 때가 있습니다. 왜, 그 나라 사람들은 감사를 많이해요.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이 그 감사에 응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도 감사하는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을 기뻐하셔서 그 권능의 손으로 도움을 베풀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시편 100편 4절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들어가는데 얼마나 천사가 지키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감사하면 그 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계신 곳에 감사하면 문이 열리고 찬양을 하면 궁정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감사와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가 있습니다.


    아이젝 월트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천국이고 또 한 곳은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계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국에는 하나님 사무보는 곳이고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의 별장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여러분이 감사를 하면 여러분 별장이 멋있기 때문에 와서 거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부형님 한분이 제게 기도를 받으러 왔어요. 이번 거래가 잘되면 목사님 위해서 별장을 하나 사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손사래를 했습니다. 나는 세상 별장이 필요없어요. 그 별장 지을 돈이 있으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 돕는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에 협조를 해주십시오. 사람들은 생활에 여유가 있으면 별장을 짓고 그곳에 가서 주말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도 여러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별장삼고 여러분 속에 와서 거하시기를 사모합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조금 행복하면 조금 감사하고 많이 행복하면 많이 감사해요. 감사가 그 사람 행복의 분량입니다. 그러므로 같이 대화를 해볼 때 감사하는 말을 많이 하면 이 사람 꽤 행복하구나! 그러나 감사말을 안하면 불행한 사람이구나. 그렇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론>


    1. 이스라엘의 죄


    첫째로, 하나님을 가장 격노케 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는 불평과 원망이었습니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바로 눈앞에 두고 하나님께 버림받아서 광야에 들어가서 40년 동안 방황하다가 애굽에서 나온 1세대는 다 죽었습니다. 원망, 불평, 탄식하던 세대는 다 죽었습니다. 오직 감사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간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에 보면 그들이 애굽 홍해가에 장마가 치고 있을 때 바로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그들을 잡으러 오니까 모두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만하면 좋겠는데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출 14:11)


    그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가지고서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자유로운 땅에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조금 어렵다고 엄청난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사람은 쉽게 원망과 불평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사람의 문둥병 환자를 고쳤는데 아홉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습니다. 오직 그 중에 한 사람 사마리아인이 고함을 치고 울부짖으면서 주여, 내가 병 나았나이다 하고 감사를 하러 왔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열사람은 고쳤는데 아홉사람은 다 어디가고 너 혼자 왔느냐? 저가 그것을 읽을 때 정말 그랬을까? 문둥병이 나았는데...감사하지 않을까?


    그런데 요사이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을 하면서 제가 직접 체험을 하니까 알게 돼요. 우리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려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1년 단위로 한달에 10만원씩 혹은 20만원씩 생활보조를 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에서 하고 도나 시에서 하지만 그들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는 우리도 협조를 하는데 왜 헐벗고 가난한지 알게 되었어요. 직장을 구할 수 없고 또 몸도 병도 들고 어렵지만 살겠다고 결심하면 어떻게 하든지 우리 한국 사회에서 오늘날 먹고 살 수는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보조가 끝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때 편지가 오던지 제게 전화가 옵니다. 왜 보조를 끊느냐. 그래서 처음부터 1년만 하기로 하고 그 다음은 더 가난한 사람을 도와줘야 되니까 양해해 달라고 하니까 아 입에 못 담을 욕이 나엑 돌아오는 것입니다. 1년 동안 정성들여 도와주었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하고 심한 욕을 하니까 아~ 하나님이 이렇게 욕을 잡수셨기 때문에 격노하셨구나. 느낄 수가 있어요. 그렇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잘 돌봐드렸는데 하나님께 욕을 하고 불평을 했으니까 하나님이 격노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에 오면 홍해를 건넌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가는데 사흘 동안 물이 없었습니다. 수르 광야에 이르러 연못물을 발견했는데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게 되매 또다시 불평과 원망과 탄식을 하고 엄청나게 저항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사 나무를 꺾어서 던지지 물어 달아져서 물을 마시게 되었는데 출애굽기 16장에 보면은 그들이 이제 신광야에 들어왔는데 고기가 없었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종살이 했어도 가마 곁에 고기를 삶아서 먹었는데 광야에 들어오니까 고기를 먹을 수 없으니까 엄청나게 원망을 했습니다. 고기달라. 애굽에 있을 때는 고기를 많이 먹었는데 가마 곁에 고기를 먹을 때 그때 죽었으면 좋을걸 가지고서 너 따라와서 고기도 못먹는 광야에서 살아서 뭘 하느냐? 그것 참 모세가 기가 막혔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야훼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 16:3) 그러니 하나님께서 기사와 이적으로 그들을 이끌어 내는데 우리 죽여요. 우리 죽여.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르비딤에 와서 장막을 칠 때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40년 광야 생활 중 그치지 않고 불평과 원망을 했습니다.


    여러분 심리학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 보통 한사람이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데 오만가지 생각 중에 85%가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 그렇게 말했지요? 그리고 서로 대화하는데 하루종일 우리 대화의 75%가 부정적인 대화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거할 곳이 없어요. 원망과 불평과 탄식하는 것은 연기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거할 곳이 못됩니다. 거기 어떤 것이 거하느냐. 사탄이 와서 거하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왜 심신이 불행하고 고통스러우냐.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너무나 부정적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7절로 30절에 보면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엄청나게 하나님의 분노가 그들에게 쏟아진 것입니다. 우리도 한가지에요.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면서 왜 못사느냐 한들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거기에 대한 응답으로 심판을 내리시는데요.


    영국의 크랜취 감독은 “은혜와 사랑과 감사”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는 이래요. 한번 들어보세요.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덩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리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 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도 있다.”


    똑같은 은혜를 받고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그들이 사사건건이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했습니다. 그 때문에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하도록 하셨고 불평과 원망을 통해서 그들은 다 죽고 만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 절망, 불신앙, 탄식하는 말은 하나님 앞을 가로막는 연기입니다. 연기가 피어오르면 눈물, 콧물이 나오고 숨을 쉴 수 없지 않습니까? 바로 그와같이 하나님 앞을 막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8절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원망, 불평, 탄식은 악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잠언 19장 3절에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야훼를 원망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2007년에 한 구청장 부인이 선거를 앞두고 주민들에게 간고등어를 선물했습니다. 이로 인해 구청장이 발각이 되어서 검찰에 끌려가서 신문을 받고 구청장 직분을 잃어버렸습니다. 구청장 부인이 주민에게 선물한 고등어 값은 10여만 원에 불과했는데 벌금을 얼마나 물었느냐. 3백여만원 벌금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구청장 자리까지 박탈당했습니다. 순간의 잘못으로 몇십년 동안 노력해서 얻은 자리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인생의 낙오자가 되고 말은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능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로 인하여 모든 것을 빼앗기고 행복과 명예와 건강도 잃고 슬픔과 저주와 불안에 빠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40년 광야 생활을 해야 하고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바로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 대적하는 중대한 죄라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그대로 나쁜 습관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와 악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지은게 뭐냐. 원망과 불평과 탄식하는 것이 죄요, 악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와 악은 반드시 부정적인 파괴적인 대가를 지불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2. 감사가 가져온 하나님의 구원


    둘째로, 감사가 가져오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십시다.


    우리 성경에 보면 역대하 20장 1절로 30절에 이스라엘의 여호사밧 왕이라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변에 있는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마혼 자손들이 연합군을 형성해서 이 여호사밧 왕을 침공해 들어왔습니다. 이 여호사밧이 굉장히 마음에 고통을 당하고 불안해서 백성들을 성전으로 모으고 그곳에서 무릎을 꿇어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 여호사밧 기도에 우리가 하나 배워야 할 것은 굉장히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이여 도와주소서. 우리를 도와주소서. 하지 않고 굉장히 구체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소리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야훼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들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돌이켜 그들을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대하 20:6~12)


    그는 하나님께 탄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야하시엘이라는 사람에게 임하여서 예언을 했습니다. 뭐라고 예언을 했느냐면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대하 20:15)


    우리가 하나 알아야 될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는 것입니다. 네 짐을 야훼께 맡겨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돌보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수고로운 일이나 염려스러운 것이나 싸움이나 주님께 다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위해서 싸우시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도 홍해수가에 올챙이처럼 모였을 때 애굽의 바로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그들은 포위하고 들어올 때 주님께서 말했습니다. 너희는 잠잠이 있어 야훼가 어떻게 너희를 구원하는지 보라. 오늘 네가 본 저 바로와 그 군사들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이 하나님과 대적하고 싸우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이 하나님이 멸해버리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염려와 근심을 주께 맡길 수 있는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입술로는 주여 믿습니다. 맡깁니다 하고도 안 맡깁니다. 맡기면 내놓으라고 하면은 아니요~ 내가 가지고 있을테니까 해결하십시오. 우리 신앙의 훈련이라는 것은 살아가면서 조그마한 일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큰일까지 하나님께 맡기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맡기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도저히 우리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맡겨봤자 별도리없고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밀어 넣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하나님이 체험하게 만들어 주시면 그때부터 배우기 시작하는 거에요. 아~ 맡기면 되겠구나.


    제가 어릴 때 우리 집 대청마루가 높았습니다. 저 밑에는 마당이고... 그런데 아버님이 하루는 저 밑에서 용기야~ 예. 뛰어 내려라 내가 받아주마. 천지가 아뜩해요 내가 보니까. 저 아버지가 못받으면 그 밑에 돌멩이가 있는데 그 돌멩이와 부딪힐 것이라. 그래서 아버지가 날 받을 수 있어? 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뛰어라. 나 뛴다. 하나, 둘, 하나, 둘... 아 나 못 뛰어~ 못 뛰어~ 아버지가 절 사랑하는줄 믿느냐? 사랑하는줄 믿어요. 그러면 믿고 뛰어라. 그러다 안받아주면 어떻게 해? 아버님이 나중에 화를 내시더라구요. 내가 너 아버지가 아니냐? 왜 나를 믿고 뛰지 못하느냐! 그래서 나중에 이판저판 사판이다 까짓것... 뛰어보자고... 눈을 딱감고 탁 뛰니까 아버님이 덥석 받아주시더라구. 한번 뛰어보니 기분이 좋더라구요. 그 다음에는 아버지만 얼른 거리면 뛴다 뛴다. 아버님이 내가 받아준다고 할 때 뛰지. 자꾸 뛰지 마라. 내가 괴로워서 못견디겠다. 한번 두 번 뛰어보니까 재미가 있더라구요. 아~ 뛰면 받아주는구나.


    우리 하나님께 맡기는 일도 그런 것입니다. 한번 두 번 맡겨보니까 일이 척척 해결되니까 야~ 이것이 진짜 믿음이구나. 그 다음에는 자꾸 큰일도 주님께 맡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앙의 훈련을 바로 그것으로 시키는 것입니다. 조금씩 어려움을 당하게 하므로 맡기는 훈련을 시켜서 나중에는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 왕에게 야하시엘이 하나님이 예언을 했습니다. 내게 맡겨라. 싸움은 내게 속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했느냐면 성가대를 조직해서 군대 앞에 성가대가 거룩한 옷을 입고 찬양을 부르면서 전쟁에 나갔습니다. 성가대가 전쟁에 나가는 것은 처음봤어. 여기 오늘 우리 성가대가 있는데 우리 성가대가 6.25 사변 같은 전쟁이 났는데 찬양을 하고 나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보기에는 절대 안될 것 같은데 하나님이 성가대와 같이 계시면 어떠한 적도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노래를 하면서 나가니까 하나님이 역사하니 모합과 암몬과 마혼사람 연합군이 함께 쳐들어오다가 지들끼리 마음이 틀려가지고서 싸워 가지고서 모합과 암몬 사람들이 마혼사람을 다 죽이고 그 다음 지들끼리 싸워서 다 죽어서 여호사밧이 가보니까 모두 다 시체가 되어 뻗어졌고 살아있는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하나님과 싸워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면 바보천치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니까 하나님은 감사와 찬양을 따라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노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와 찬양을 통해서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마귀의 세계는 감사가 없다. 마귀는 항상 원망, 불평만 할 뿐 절대로 감사가 없습니다. 초대 교회 교부인 크리스톰은 죄중에 죄는 감사하지 못한 죄라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 안하는 것이 못된 행실이 아니냐 하는데 행실 정도가 아니에요. 죄 중의 죄가 감사하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 여러분 젊어지려면 감사를 많이 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에 걱정과 근심이 떠나니까 젊어지는 거에요. 밀르는 감사의 크기에 따라 행복의 크기가 결정된다. 감사가 적으면 행복도 적고 감사가 크면 행복도 큰 것입니다. 노르웨이에는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사탄이 씨를 뿌릴수가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스펄존 목사님은 불행할 때 감사하면 불행이 쫓겨나가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계속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 절망, 불신앙, 탄식이 하는 말은 하나님을 가로막는 연기와 같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 하나님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은 손을 내밀어 그 사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전인구원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3. 언제 감사와 찬양을 해야 하나?


    셋째로, 언제 감사와 찬양을 해야 되냐.


    나는 좋을 때 감사 찬양을... 좋을 때는 다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어요. 안좋을 때 감사하고 찬양해야 진짜 감사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 전하다가 잡혀서 실컷 얻어맞고 쫄쫄 배를 굶고 깊은 감옥 속에 갇혀서 드러눕지 못하게 차고에 묶어 놓았는데 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쇠고랑을 철렁 거리면서 찬송을 부르니까 그 찬송이 얼마나 은혜롭던지 죄수들조차도 귀를 기울여 듣는데 하나님이 찬송에 박자를 맞추어서 지진으로 흔들어 버리니까 쇠고랑이 다 풀려지고 감옥문이 다 열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도움을 끌고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란 뭡니까? 좋을 때와 안좋을 때, 기쁠 때와 슬플 때, 될 때와 안될 때 그것 상관하지 말고 늘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얼마나 좋은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저는 이 말씀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50년을 목회하면서 수없이 어렵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을 당할 때도 언제나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 참으라.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 지금 나쁜 것이 앞으로 좋게 되고 좋은 일은 좋아서 좋고 나쁜 것은 좋게 될것이니 좋아진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로마서 8장 28절의 약속 때문인 것입니다. 감사는 마귀의 힘을 뽑고 성도의 기도에 힘을 더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역사를 물리치고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는데 기름부어서 힘차게 기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에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 못하도록 임금님이 조서를 내려서 조서에 도장을 찍었는데 그것을 알고도 그는 자기 집에 가서 동편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하루 세 번씩 기도했었습니다. 왕이 참소하는 사람들의 참소를 따라서 다니엘을 잡아 사자굴에 던져 넣었는데 사자가 다니엘을 물어 죽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다니엘을 참소하던 사람들을 똑같은 사자굴에 던져 놓으니까 발이 땅에 닿기전에 사자가 일어나서 다 잡아 뼈를 깨뜨려 먹어 버리고 만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사자와 곰도 달라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의사들에 의하면 사람이 화를 내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맥박이 빨라지고 혈압이 상승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일수록 경련성 질환이나 소화기 장애가 쉽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심한 분노는 혈액이 응고되어 졸도하게 되고, 분노를 품고 잠자리에 들면 혈관이 수축되어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켜 불면증이나 소위 ‘화병’이라고 하는 질환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처럼 원망, 불평, 탄식, 화는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인 건강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치명적인 장애물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할 때 마귀는 힘이 없어지고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을 치고 하나님의 성도들은 기도에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로 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한 감사는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을 나타내는 스위치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오기를 원하면 감사를 한다. 감사를 하면은 하나님의 능력이 와요. 저는 옛날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장로교 장로님 한분이 새벽기도는 우리 교회 천막교회에 와서 새벽기도를 보고 본 예배는 시내에 자기가 나가는 교회에 나갑니다. 그런데 그분은 새벽기도 나와서 한시간 내지 두시간 기도를 하는데 뭐하냐고 내가 들어보니까 무릎 꿇고 앉아서 아버지 하나님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가 장로님! 무슨 기도가 그저그저 감사합니까? 무슨 말을 해야지요. 그러니까 내가 말 안해도 다 하나님이 알고 계시니까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아이 내 말을 좀 들으세요. 그러니까 목사님 말씀해 주시는 것도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꿇어 앉아서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내가 조금 치매에 걸렸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요사이 제가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어보니까 그저그저 감사한 것밖에 없어요. 무슨 잔소리를 할게 없어요. 그 영감님 생각이 자꾸 나요.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해요. 그저 감사할 것밖에 없어요. 우리는 모든 일에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그저그저 감사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4절로 15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환난을 당할 때도 감사하면 하나님이 건지니까 그저그저 감사할 일입니다.


    골로새서 2장 6절로 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지난 주에 전 세계 상위 10% 국가의 대표들이 서울에 모였습니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G20 정상과 5개 초청국 정상들과 유엔, 국제노동기구(ILO) 등 7개 국제기구 수장까지 33명의 세계 가장 높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 외에 34개국의 사장들 1백 20명, 63개국에서 언론인 4천 2백 88명이 등록하는 등, 이번 서울에서의 G20 정상회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규모가 컸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번 서울 G20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경우 경제적인 파급효과가 24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같은 파급 효과는 현대차 쏘나타 자동차 1백만대 팔은 값과 같고 30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 1백 65척을 만들어 수출한 것과 동일한 값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취재한 영국 기자 한 사람은 그때 “한국이 발전하는 건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피우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60년 전에 우리 한국은 거지 대장이었습니다. 그냥 거지가 아니라 거지 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번에 미국 뉴욕 타임즈 기자가 와서 그 신문에 기록한 것을 보면 자기가 서울에서부터 온 시골로 다 돌아다녀 봤는데 한국 사람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잘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나도 지금 모르고 있어요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 그러나 외국 사람이 볼 때 너무나 잘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느냐. 사람의 힘과 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일본 36년 식민지 생활에 6.25사변으로 초토화된 이 땅에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셨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돼요. 원망, 불평하면 안됩니다. 우리 민족 전체가 하나님께 감사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국회의 국회의원들 싸움만 하지 말고 감사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국회의원들만 보면 싸움꾼 왔구나. 정상적으로 안보이고 싸움꾼으로 보여요. 건설적이고 창조적으로 국민을 위해서 의논하면 좋겠는데 전부 권력을 취하기 위해서 싸운다 말입니다. 정치는 있으나 이념은 없고 정당은 있으나 정책이 없고 뭐가 있느냐. 권력만 손에 넣으려고 물고 찢고 싸우는 것입니다. 나중에 우리가 표 주는가 봐라.

    아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서 도와주셨으면 나라를 책임진 분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 국민을 위해서 노력하고 일하면 우리가 얼마나 더 잘살게 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우리 하나님께서 한국을 더 크게 사용하게 되시기를 바라마지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콜린 파월은 뉴욕 빈민가 출신의 흑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흑인 최초로 미국합동참모본부 의장이 되었으며, 국무장관이 되었습니다. 그가 17살 때 여름방학에 그는 음료수 제조공장에 아르바이트를 갔는데 백인들에게는 다 코카콜라에 콜라 태우는 기계에 핸들 잡고 당겨서 콜라 채워서 내보내고 하는 이런 식인데 자기는 걸레질하는 직업을 주었습니다. 그때에 콜린 파월은 충분히 불평할 수 있습니다. 우리 똑같은 학교에서 왔는데 왜 내 동료들은 앉아가지고서 코카콜라 병에 코카콜라 채우는 일을 하는데 나는 걸레질하는 하인으로 쓰냐?


    그렇게 불평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평 안하고 그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건강주셔서 걸레질 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최고의 걸레질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래서 공장 전체를 아주 매끈하게 걸레질해서 닦고 티끌과 먼지가 없게 했습니다.


    그런데 방학이 끝나고 이제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갈 때쯤 되었을 때 감독관이 파월 오너라. 가니까 자네 정말 일 잘하는군. 명년에 또 오라. 그래서 파월은 나에게 걸레질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만한 일을 주신 것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다음에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가니까 콜라를 채우는 기계 앞에 앉을 수 있게 하고 그 다음에는 부감독으로 만들어 주었었습니다. 감사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 것입니까? 흑인이라고 차별대우 하는 곳에 감사가 차별도 다 제껴버리고 그를 인정을 받고 높은 자리에 앉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하나님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자를 지경이 넓혀지게 하고 축복을 받게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를 하며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절대로 그 사람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농사하여 수확을 얻지 않아도 여러 가지 삶의 노동의 열매로 먹고 사는 것입니다. 제일 좋지 않은 것은 노동없이 돈을 버는 직업이 많은 나라는 망조에 걸린 나라인 것입니다. 일 안하고 돈벌어 먹는 것 그것은 뭐냐. 부정 부패를 해서 먹고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일의 대가를 받아서 먹고 살아야 돼요. 일한만큼 땀 흘린만큼 그 대가로써 먹고 살아야지 부정 부패해서 뇌물 받아서 먹고 살면 그 나라는 망한 나라인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삶의 노동의 열매로 먹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여러 가지 수확에 감사할 때 하나님도 기뻐하고 우리도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때 비로소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감사할 때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느냐.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좋을 때만 감사하지 말고 나쁠 때도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넘치는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전혀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을 환경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 생활 속에 자갈밭이 있고 도랑이 있고 험한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 감사하고 나가면 모든 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평탄하게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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