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박국 3:8-19/ 성숙한 감사생활
  • 조회 수: 415, 2021.12.13 12:56:33


  • 여러분께서 기도하여 주셔서 지난 11월 1일부터 10일까지 싱가포르에서 모였던 아세아 복음화를 위한 교회지도자회의(Asian Leadership Conference on Evangelism)에 무사히 다녀온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아세아의 추수를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다함께 순종하자”(Together Obeying Christ for Asia's Harvest)라는 주제 하에 19개국 대표 350명이 모여서 아세아 복음화는 아세아 사람의 손으로 하자고 다짐하며 같이 기도하고 연구하고 결의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복음적인 노선을 걷는 교회 지도자 20여명이 참석하였었습니다.
    낮에는 주로 회의를 하고 저녁에 여덟 번 가진 특별집회 시간에는 원로층에 계신 교회 지도자들이 한 시간씩 맡아 집회를 인도했는데 가장 어리고 부족한 저더러 개회 예배 시간에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축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분이 기도로 도와주시는 것을 실제로 체험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3세계 교회 지도자를 훈련시키는 Haggai Institute에 가서 오전에는 “교회 성장”에 대한 강의를 한 주간 동안 하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종종 드리는 말씀이지만 아세아 교회들이 우리 한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으로는 아세아에서 우리 한국이 단연코 기독교 대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 속에서 우리 한국 교회를 키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렇게 축복 받은 한국 교회의 사명이 얼마나 큰 것을 이해하고 이제 우리는 아세아에서 제사장의 나라로, 받는 교회가 아니라 주는 교회로 탈바꿈하여야 겠습니다.
    이번 대회를 위해서 많은 재정적인 후원을 아낌없이 해주신 본 교회에 한국 위원회를 책임지고 있는 저로써 중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 하박국의 기도를 읽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감사의 성숙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감사한 것을 알고 마음으로 느끼는 동물입니다. 이것이 일반 짐승보다 다른 것입니다. 특별히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이 가을철을 맞이하여 교회에서는 11월을 감사의 달로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기회라고 믿어집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에도 물론 감사의 정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마는 기독교에서만큼 감사를 말하고 강조하는 데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언제나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표식이 감사이어야 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봉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봉사는 동기가 감사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도 역시 동기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사랑이어야 참 사랑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찬송의 동기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송할 때 그 마음에 감격에 있어야 합니다. 감사가 없는 찬송은 노래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그 대부분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우리가 예배 때 하나님께 헌금을 합니다. 여기에도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일반 다른 종교에서 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적선(積善)과는 다릅니다.

    중세 교회가 한창 타락할 때 헌금통에 헌금이 떨어져서 ‘딸랑’ 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의 영혼이 지옥에 가자니 선하고, 천당에 보내자니 좀 부족해서 그런 사람들의 영혼들이 기다리고 있는 연옥이 있는데, 그 연옥에 있던 심령이 그 부모나 자식이 세상에서 드리는 헌금 때문에 속죄를 받아 천당에 간다고 해서 한동안 “속죄표”를 파는 등 비 성경적인 일도 있었습니다.

    헌금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하도 커서 감격한 나머지 감사의 표시로 우리의 정성을 모두어 드리는 예물입니다. 감사의 정이 없이 드리는 헌금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감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표식이라”고 요한 웨슬레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보세요. 세상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잘 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감사하지 아니합니다. 로마서 1장 21절 이하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으로 어두워졌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기가 잘 잡히면 그것이 그물 덕분인줄 알고 그물에게 절하며 제사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그 심령이 어두운 세상 사람들의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는 아니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도 압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 사람 노릇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사는 마음의 자세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흔히 ‘감사하다’는 말을 합니다. 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야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런데 여기에도 단계가 있어요. 일반적으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감사하는 조건은 환경 문제입니다. 조건에 따릅니다.

    내가 무엇을 얻게 되고 소원이 이뤄지고 행복을 느낄 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사업이 성공하거나 수확이 풍성하면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위태로운 병에서 놓임을 받거나 명예나 권세를 얻었을 때 감사합니다. 이런 감사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는 얼마나 훌륭합니까?
    자기가 잘 나고 훌륭해서 모든 계획을 바로 세우고 결단성있게 추진시켜 가므로 이런 영광스러운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아는 사람보다야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아는 것은 매우 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에 미국에 라인홀드 니버박사는 성경 말씀 중에 특히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그런즉 우리에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했는데 자기로써 한 마디를 꼭 부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의미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의 요소를 배재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 교회의 경우를 보아도 주일마다 감사헌금을 드리는 분, 십일조 헌금을 드리는 분이 점점 많아집니다. 정말 귀한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계속 자라고 있는 표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크신 은혜와 축복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감사하는 일이 쉽지 아니합니다. 그러기에 다윗 같은 분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고 하였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리게 되면 결국 감사치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가시는 길에 문둥병이 든 불쌍한 열 사람을 다 낳게 하여 주셨습니다.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다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다시 찾아와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말 한 마디 한 사마리아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들은 이 크신 은혜를 받고 체험을 놀라워하면서도 아홉 사람은 감사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왜요? 다 잊어버려서 그랬습니다.

    옛날부터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는데 매우 의미 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이 아팠던 일은 별로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돌비에 새긴 것과 같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마웠던 일은 얼마 가지 아니하고 잊어버립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정(常情)입니다.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 아니 구체적으로 말해서 모든 것이 잘 되었을 때 이에 대한 감사의 정을 품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감사생활의 첫 단계입니다.
    옛날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어느 무명 성도의 감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사망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구원함을 받은 체험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자기 영혼을 불러 깨우면서 감사하라고 합니다.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감사는 가진 것을 잃거나 소원했던 것이 성취되지 않거나 비방이나 오해를 받게 되면 감사보다 원망이 나오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환경과 조건이 좋아지므로 인해서 드리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감사도 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도 어린 수준의 감사생활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아버지나 어머니가 과자를 사다가 한 아름 안겨주면 어쩔 줄 모르고 좋아하며 조금 훈련받은 아이는 ‘아버지 고맙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하며 마냥 행복해 합니다. 그러나 어떤 큰 다른 애가 와서 과자를 뺏어가면 그렇게 좋아하던 어린애는 목을 놓아 웁니다.
    그리고 어린애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무엇을 사다 주어야 좋아합니다. 자기가 달라고 할 때 주어야 만족해합니다. 자기 뜻대로 되어야 감사해 합니다. 만일에 자기 생각대로 부모가 응해주지 않으면 감사한 생각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애가 자라서 성숙해지면 부모가 무엇을 사다 주지 않아도, 그저 부모를 생각만 해도 고마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어릴 때는 부모에게 매를 맞을 때 아프고 눈물나고 분하고, 부모가 미운 생각, 원망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는데 성숙한 사람이 되고 보니 그 모두가 부모님의 사랑이었던 것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성숙한 감사 생활입니다. 성숙한 감사생활은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서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한국 전쟁 때의 일입니다. 부산에 피난 가서 감사주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을 경험하고 그런 중에서도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축복이요 특권이었습니다. 저녁예배 때 저마다 받은 은혜를 나와서 가족적으로 감사하는 간증의 순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장로님은 나오셔서 “저는 피난을 이곳까지 와서 장사를 했는데 솔직히 말씀드려 서울에 살 때보다 여기 와서 더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간증했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우리 온 가족이 이런 동란 속에서도 다 평안히 지내온 것을 감사합니다” 라고 간증했습니다. 어느 어머니는 “제 아들이 전쟁터에서 무사히 돌아왔으니 감사합니다.”고 간증했습니다.
    이때 마지막으로 부모도 없이 외로운 어느 청년은 “저는 아무 가진 것도 없고 자랑할 것은 없습니다. 부모님은 폭력에 세상을 떠났고 하나밖에 없던 형님은 전사를 당했습니다. 내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시간 여기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다. 저도 전에는 많이 얻으면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여러분의 감사는 환경이 달라질 때 변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제가 깨달은 감사는 영원한 감사라고 믿습니다.” 이때 이 청년의 간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감사 성숙한 감사는 쓰라린 환경 속에서도 귀한 교훈과 어떤 가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는 생활 환경이나 물질적인 영향에 좌우되지 않는 성숙한 감사입니다.
    어떻게 이런 성숙한 감사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옥중에 있으면서도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한 것은 현재 당하는 처지에 만족해서 좋아서 감사하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고통은 고통이요 어려움은 어려움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와 사랑을 믿고 감사한 것입니다.

    지금 당하는 쓰라린 사정이나 감당키 어려운 여건 속에서라도 하나님이 보다 나은 목표를 위해 도와주실 것을 믿을 때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감사는 역경 속에서의 감사요,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감사입니다. 오늘의 처지는 괴로워도 내일의 평안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현재의 환경은 캄캄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고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감사 생활은
    시간적으로는 항상 감사하는 것이고
    내용적으로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고
    방법으로는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는 것이고
    대상으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는 정말 성숙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내 뼈에 썩은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왜요?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은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오늘 우리 영락교회 성도는 이렇게 성숙한 감사를 할 수 있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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