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5:17-24/ 탕자의 귀향길
추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은 사실 지난 금요일 밤부터 시작되어 연휴가 5일, 길게는 6일까지 이어지다 보니 예년보다는 고향을 찾는 귀성길이 복잡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하네요. 명절 때 고향을 찾아 가는 길을 귀성길이라고 하고, 귀향길이라고도 합니다. 대신 고향에서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귀경길이라고 하죠. 귀성길, 귀향길... 다 같은 말인데 따지고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어요. 귀향길은 고향 향자를 써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뜻이 있지만 귀성길은 살필 성자를 써서 조상들 산소도 가보고, 부모님 형편도 살핀다는 뜻에서 귀성길이라는 단어를 더 잘 쓰죠.
귀성길, 귀향길.... 이 단어를 생각하다가 오늘 본문의 탕자비유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도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에는 집 떠난 자녀들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이 들어 있고, 또한 부모를 찾는 자녀들의 복잡한 마음도 있습니다. 어떤 형제들은 탕자의 비유에서 첫째 아들의 심정으로 추석 고향집을 찾을 것이고, 또 어떤 형제들은 둘째 아들의 심정으로 고향집을 찾고 부모와 형제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우리가 맞이하는 추석의 결말은 이 탕자의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처럼 용서와 사랑, 치유와 아량과 관용이 풍성해지는 그런 추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탕자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어느 집안에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에게 돌아오는 유산의 몫을 지금 빨리 주세요." 이런 아들이 조용히 부탁할 리 없습니다. 아마도 유산을 달라고 난리를 피웠을 것입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자기 몫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자기 몫을 받자마자 바로 챙겨서 멀리 외국에 나가서 탕진했습니다. "멀리 나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아버지 품을 벗어나서 독립했다는 말입니다. 돈만 있으면 스스로 잘 살수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자기 몫으로 받은 것은 당연히 자기가 누리고 사용해 잘 될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때가 되면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아들들에게 돌아갈 유산을 물려주었을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아들들이 잘 준비가 되어 유산을 잘 사용해서 큰 복을 누렸을 겁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잘 살 수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유산은 자기가 번 돈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힘써서 벌어놓은 재산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써서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 하니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그에게는 그 유산이 큰 재앙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재능을 가지고 돈과 명예와 권세를 어느 정도 쌓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것으로 대단한 부귀와 영화 명예를 누리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사용되겠습니까?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고 사용하니 말입니다. 둘째 아들의 경우처럼 그에게 그 재능, 그 조건들은 재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재능은 맘대로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니요 자기 스스로를 보장하라고 준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 조건들로 스스로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착각이고 오래가지 않아 그에게 가장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런 조건들과 재능들은 자기만을 위하고 자기만 보장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쓰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조건으로, 주님처럼 섬기고 때로는 희생하며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재능과 조건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모두 누리게 될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오래가지 않아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품을 벗어난 것이며 에덴동산에서 벗어난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는 파멸이고 재앙이며 오로지 하나님의 심판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벗어나면 내가 마음먹은 대로 멋지게 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하나님의 품보다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품은 무엇입니까? 유다서 1장 20절에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성도가 "주안에" 있을 때, 보장받습니다. "말씀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습니까? 주님을 주인으로 모셨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우리의 주인으로 살았습니까? 우리가 주인으로 살면, 아무 것도 보장받을 것이 없습니다. 말씀을 삶의 기준과 대안으로 삼고 살아왔나요? 아니면 내 지혜로 살아왔습니까? 내 지혜, 내 경험으로만 살면 우리는 언제나 사탄에게 짓눌리고 종노릇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둘째 아들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기지처럼 노예로 살다가 아버지 집을 생각합니다.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풍족한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이런 한탄으로 이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염치가 없어서 차마 아들로 돌아가지는 못하나 아버지 집의 그 많은 종들 중의 하나로 살도록 받아주지는 않겠나.... 이런 마음으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갑니다.
네들안드 화가였던 램브란트는 성경의 이 풍경을 상상하면서 탕자의 귀향길이라는 그의 마지막 유작을 남겼습니다. 램브란트는 사실 부유한 화가였고 그가 가진 풍족한 돈으로 한동안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고 거기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랑하는 아내와 4아들 모두를 잃고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말년에는 어느 정도 회복하여 안정을 이루었지만.... 엄청난 방탕과 인생의 역경을 경험하면서 영적으로는 성숙하게 되면서 그가 죽기 직전에 자신을 모델로 하여 탕자의 귀향이라는 성화를 유작으로 남겼습니다.
탕자의 귀향에는 회개와 용서,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주제가 있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아들은 우리를 상징하지만.... 저는 추석을 앞두고 고향과 부모님, 그리고 가족을 찾아가는 추석 고향길을 생각하면서 이번 추석에는 어떤 분들은 마치 첫째 아들과 같은 입장에 있을 것이고.... 첫째 아들은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왔지만, 갑자기 돌아온 형제에게만 관심과 사랑이 집중되는 것에 불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항상 여기 있었는데, 왜 그가 돌아왔을 때만 이렇게 환영해주는 걸까?" "내가 한 노력은 아무런 인정도 못 받는 걸까?" 이러한 감정들은 탕자의 비유에서 뿐만 아니라 추석과 같은 명절에 가족들이 모일 때 종종 일어나는 복합적인 감정과 유사합니다. 돌아오는 가족은 반가움과 함께 약간의 불안함을 느낄 수 있고, 항상 부모에게 머물던 가족은 자신이 묵묵히 해왔던 일들이 가볍게 여겨지거나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제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아량과 관용....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생각하고 이해할 것을 요청드리고요....
또 어떤 분들은 마치 둘째 아들과 같은 입장에 있을 분들도 계실 것인데.... 둘째 아들처럼 부모님을 찾아보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가족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처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가족에게서 떠나 있었던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이나 자신의 행한 일에 대한 후회, 그리고 가족의 반응에 대한 불안감이 클 수 있습니다. "내가 집을 떠나 있었지만, 가족이 여전히 나를 반겨줄까?" "내 잘못을 용서받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분들에게 제가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이라도 가족을 찾는 것은 늦지 않았다는 것, 가족은 항상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처음 느끼는 가족에 대한 어색함과 냉대의 느낌이 있을지라도 첫째 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고 겸손함과 인내, 그리고 사랑으로 가족을 품으시고..... 그 결과 용서와 사랑, 회복이 있는 복된 추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우리 온 가족에게 주님의 평강과 보호하심이 넘쳐나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자신이 구비한 내적 자원으로만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섬김과 희생과 나눔으로 세상에서 능력 있게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살려고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온 가족이 남은 한해의 시간도 그렇게 살아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