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찬의 의미 (고전11:17-34)
  • 조회 수: 367, 2012.12.22 15:31:44
  •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죤 칼빈(John Calvin), 그리고 쯔빙글리(Zwingli) 등과 함께 종교개혁을 시도하면서 1520년 4가지의 유명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첫 번째 작품은 당시 부패한 천주교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특별한 설교를 시리즈로 설교한 것으로서 그것은 1520년 3월에 시작하여 5월 까지 실시한 십계명 설교였습니다. 그 후 이 십계명 설교 시리즈는 '선행에 관한 설교'(Sermon von den guten Werken)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는데 그것이 종교개혁을 시도하면서 남긴 첫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종교개혁 두 번째 작품은 '독일 귀족에게 보내는 글'이란 것인데 1520년 7월 20일에 급히 완성되어 8월 18일에 출판된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작품은 '크리스챤의 자유'란 작품으로서 1520년 10월에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내는 편지에 첨가된 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의 작품은 '교회의 바벨론 감금'이라는 작품으로서 그의 종교개혁 초기에 발표한 십계명 설교인 '선행에 관하여'라는 글은 일반 교인들을 대상으로 발표한 종교개혁의 메시지이고, 그 다음으로 발표한 '독일 귀족에게 보내는 글'은 귀족을 대상으로 한 종교개혁 메시지였으며, 그 다음에 발표한 '크리스챤의 자유'란 글은 정치권을 향한 종교개혁의 메시지였다면, 마지막으로 발표한 이 '교회의 바벨론 감금'이라는 글은 특히 종교계 특히 신학자들과 지식인들을 위하여 라틴어로 쓴 성찬예식에 관한 글로써 1520년 10월에 발표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틴 루터의 저서 중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신학적인 논문 중의 하나로서 '교회의 바벨론 감금'이라는 말은 교회가 어떤 외부에 감금되어 있다는 말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가 성례전의 교리와 의식 밑에 감금당하여 영적인 손상이 초래케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 점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입니다. 마틴 루터는 이 논문에서 로마 교회가 가르치는 성례전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7성례를 중심으로 비판하면서 주로 성찬과 세례를 논하였는데, 그 중 성찬과 관련된 사항으로서는 세 가지 과오가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첫째 성찬식을 거행할 때 사제들은 떡과 포도주를 다 먹지만 평신도들에게는 떡만 주고 포도주는 주지 않는 당시의 성찬 제도가 잘못되었고, 둘째 성찬예식을 거행할 때 집례자가 기도를 하고 나면 성찬상 위에 있는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이 잘못되었으며, 셋째 성찬예식을 매번 행할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다고 믿고 해석하는 성찬을 '희생'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마틴 루터와 죤 칼빈 그리고 쯔빙글리 등 개혁자들이 시작한 종교개혁 운동은 결국 구교와 신교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오늘 이런 말씀을 서두에 드리는가 하면 이 시간 우리가 행하려고 하는 거룩한 성찬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를  기독교 역사적으로 그리고 성경적으로 바르게 이해하고 나서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찬이란 거룩한 식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성찬예식은 인간이 만든 작품이 아니라 주님께서 명하셔서 시작된 거룩한 예식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찬예식은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이란 늘 넘어지고 쓰러지는 죄인이지만 성찬을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영적인 체험을 갖게 하며 또한 성찬을 함께 나누는 성도들끼리 비록 겉모습은 죄인들이지만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하나이고 또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할 사람들임을 깨닫게 하는 거룩한 식사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 가운데는 이러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성찬예식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되며 인간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가?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단 한번 살을 찢기고 피를 흘린 것 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이 부서지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담이 부서지게 되어... 하나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가? 그러한 논리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이렇게 '나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되고...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바로 그 때.. 그 믿음 위에... 이해의 역사가 일어나며... 신비한 역사 곧 하나 되는 역사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이란 신비스러운 거룩한 식사이며 영적인 식사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  죄 된 본성을 지닌 인간이란... 아무리 깊이 연구하고 생각하고 수양하여도...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고, 이웃과도 하나가 될 수 없지만...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하나됨을 위하여 찢기신 그 살을 상징하는 빵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먹고....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 마심으로...  그 조그마한 떡과 잔이... 믿음으로 먹은 그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먼저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이어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자들의 몸을 다 연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라는 신비한 역사가 일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이루는 예수님을 다른 성경에서는 '모퉁이 돌'이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퉁이 돌이란 건물의 벽과 벽이 만나는 지점인 바로 그 곳에 그 기초에 세워지는 돌로서  거기서 부터 서로의 건물 벽을 쌓아가기 때문에 모퉁이 돌이란 건물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벽과 벽을 연결하는 까닭에... 건물의 중심이 되기도 하는데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고리요 모퉁이 돌이며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고리이요 모퉁이 돌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같이 앉아있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이렇게 함께 모여 앉아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서로 거룩한 식사인 성찬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가까운 사람도 함께 앉아 있지만,... 서먹서먹한 사람도 예수를 믿기 때문에 함께 앉아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도 함께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다 하나님의 자녀이며 한 형제자매입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하나로 묶었으며,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예배하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가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면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셨기 때문에... !!  우리가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그분의 그 아름답고 숭고한 십자가 사건을 함께 기억하며... 기념하며... 성찬을 나누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24절입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고린도교회(Church of Corinth)는 그리이스의 고린도 지역에 AD 50년 경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 교회가 위치하였던 고린도라는 시(city)는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도 매우 번성하는 항구 도시였으며 상업 도시였습니다. 대부분의 대도시나 특히 항구 도시가 그러하듯 이 고린도시도 상거래가 활발하여 재정이 잘 돌아가는 부유한 도시였으며, 거기에다가 각종 문화도 공존하였으며, 특히 그리이스의 각종 철학적 종교들과 이방 신전이 즐비한 우상숭배의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도시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금권주의, 물량제일주의, 혼합주의, 분파주의, 이방종교 속에서 빈부격차 등... 좋지 않은 사회적 풍습이 교회 안에까지 파고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성령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주신 말씀이 고린도 전후서이며 오늘의 본문도 그 중의 일부분입니다.

     

    교회는 일치(unity)와 하나됨(oneness)을 향하여 나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됨과 일치를 반드시 이루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것을 말로 가르치고... 몸으로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바르게 세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찬예식을 거행한 것이며, 이렇게 실시하기 시작한 성찬예식은 초대교회에서 중세교회 시대까지 교회 안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찬예식에 사용하는 떡과 포도주에 대하여도 점점 과대하게 의미를 확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떡이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이다'라고 하는 이 명제를 놓고 논란하기를 '그렇다, 아니다, 단순한 기념일 뿐이다, 상징만이다... 기도하면 영적으로 임재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복잡한 토론과 격론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중세시대까지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살은 참된 양식이요, 그의 피는 참된 음료이며(요 6:55) 그것을 먹는 우리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요6:54) 선언하신 약속을 확인하는 것이요. 이 약속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가 성찬예식을 거행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성찬예식에서 경계해야 할 두 가지 점은... 떡과 잔을 경시함으로서 성찬예식의 신비를 너무 격하시켜서도 안 되며, 또한 떡과 잔이라는 것을 과도하게 격상시키고 찬양함으로써 물질을 신비 자체로 만들어가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24절에서도 말씀하시듯이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만 하셨지... 그것에게 '절하라' 하거나 그것에게 '예배하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단론자들은 주장하기를.... "만일 그것이 주님의 몸이라면 몸에는 영혼과 신성이 함께 있으며 몸에서 분리될 수 없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예배해야 된다"고 하면서 소위 떡과 잔을 과도하게 성별하고 기도하기만 하면 그 후에는 화체가 되었다고 하면서... 그것에 절하거나 경배하며 기도하도록 전시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행위들은 정말로 잘못되었으며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예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성찬의 바른 의미란 무엇이며 성찬에 바르게 참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고... 그 후에 기도하는 가운데 참여할 때 놀라운 은혜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59 admin 156 2012.12.20
58 admin 373 2012.12.21
57 admin 115 2012.12.21
56 admin 167 2012.12.21
admin 367 2012.12.22
54 admin 145 2012.12.22
53 admin 125 2012.12.22
52 admin 232 2012.12.22
51 admin 341 2012.12.22
50 admin 152 2012.12.23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