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약백성의 자세(이사야 7:1-9)
  • 조회 수: 288, 2013.12.15 13:16:49
  • 아하스 왕이 통치했던 유다왕국의 외교정세는 지금의 한국 상황과 아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은 기존의 강대국인 미국과 신흥 강대국인 중국과의 사이에서 참 처세하기가 쉽지 않는데 아하스 왕의 상황이 그랬습니다. 그 당시 신흥강국은 앗수르인데 이 앗수르가 유다와 이스라엘, 아람 지역인 팔레스타인을 엿보고 있습니다. 이에 불안함을 느낀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은 앗수르의 침공에 대비하고자 그들보다 남쪽에 위치한 유다를 끌어들여서 대 앗시리아 연합전선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 왕 아하스는 앗수르에 대항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면서 살아남는 그런 길을 택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유다 왕 아하스가 아람-이스라엘 연합동맹 제안에 응하지 않으니까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예루살렘 침공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진짜로 전면전을 벌이려는 것은 아니고 살짝 겁만 주어서 자신들의 요구대로 응하게 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도전을 받고 있는 유다의 아하스 왕과 백성들은 마치 들판의 풀들이 바람결에 떨 듯 그렇게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와 그의 아들을 아하스 왕에게 보내어 다음의 말씀을 전합니다. 4절에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라고 하셨고, 9절에 보면 믿음에 굳게 설 것에 대하여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까지 하시며 경고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십니까?

     

    아하스 왕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유다왕국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백성으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같은 유대인이지만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깁니다. 그리고 본문에 보면 아람과 동맹을 맺어 형제국가를 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당연히 언약으로 맺어진 남 유다 왕국과 아하스를 도우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와 아하스 왕은 이런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특히 이런 위기의 때에는 더욱 더 하나님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이런 까닭에 9절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런 까닭에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아주 강력한 4가지 명령이 동사로 주어져 있습니다. 첫째 '삼가라'고 했는데 이는 두려움에 쫓겨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둘째, '조용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평온하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는 명령이 덧붙여지는데 하나님 없는 두려움이야말로 믿음의 정 반대이며, 그러한 두려움으로부터는 마음이 녹아내리는 낙심밖에는 아무것도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이 언약의 백성인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도 언약의 백성입니다. 이 언약의 백성인 우리는 이렇게 위기의 때가 오면 우리를 도와주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신뢰해야 하지, 앗수르를 상징하는 그 어떤 세력이나 힘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흔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우리를 언약의 백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역시 아하스 왕과 같이 우리를 두려워 떨게 만드는 어떤 위기나 상황을 만나게 될 때 하나님을 굳게 믿지 아니하고 다른 것을 붙들게 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의 편에 서 계시는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일이며 이런 모습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아하스 왕이 시편 46편과 같은 그런 고백을 하며 더욱 더 하나님을 굳게 믿었더라면 얼마나 결과가 좋아졌을까 생각해 봅니다. 시편 46편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1-3절까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10절에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우리가 여기서 잠시 언약의 백성, 언약의 나라가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약속에 대한 의식을 아주 장엄하게 치룬 예가 있습니다. 흔히 개인과 개인 간, 국가와 국가 간에 때로는 생명을 거는 약속이라 해서 짐승을 죽이고 그 피를 마신다든지, 아니면 약속 당사자 간에 직접 자신의 신체 일부에 피를 내어 그 피를 포도주에 타서 서로 교환하며 마시면서 혈맹을 다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약속에 대한 의식을 장엄하게 하는 이유는 그 약속이 나라의 운명, 생명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렇게 피를 흘리며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런 뜻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고대에는 주로 부족과 나라 간에 죽고 죽이는 전쟁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장엄한 약속의 예식을 통하여 약속을 지키는 것에 대한 엄중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약속과 약속에 의해서 이루어진 관계.... 이것을 성경적인 말로 표현하면 언약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흔히 선민사상이 강한 민족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강한 민족의 배타성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라기보다는 언약에 의해 맺어진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혈통적으로는 이스라엘일지라도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는 경고가 여러 번 반복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고, 또한 유대민족의 왕족이라 할 수 있는 유다 지파만을 놓고 보더라도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등의 이방인 출신의 여자가 5명이나 보이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비록 혈연적으로는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율법과 정의를 존중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오려 했던 자들에게는 이방인에게까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혈연을 강조했겠지만 언약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은 혈연이 아니라 언약에 얼마나 출실한가.... 이 기준에 의해서 언약의 백성인가, 아닌가를 결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은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쉬운 말로 시내산 언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대표로 시내산에 올라가서 율법을 받았다는 데서 이를 시내산 언약, 혹은 호렙산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시내산 언약의 세대가 광야에서 다 죽고 신명기에 이르게 되면 언약을 알지 못하는 다음 세대가 요단강과 여리고성을 마주하는 모압평지에 서게 되는데 이들에게 다시금 하나님과 맺은 시내산 언약에 대한 재확인을 하는데 이 장면이 신명기 29장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시내산 언약과 구별하여 모압 광야의 언약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신명기 29장에 보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은 언약의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29장 9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라고 하면서 하나님과의 맺은 언약을 지켜 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길임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그 한 시대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에 걸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똑같은 무개와 방식으로 그 언약을 준수하고 지켜 순종해야 할 것임을 14절과 1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 까지이니...” 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간에 맺은 언약은 그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언약 곧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언약임을 확인해 주며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언약에 대하여 장황하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오늘 학습과 세례를 받는 여러분들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언약백성으로 사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교회 회중 앞에서 서약을 하고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마치 시내산 위에 강림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세와 같은 운명입니다. 그 순간에 모세가 얼마나 두려워했겠으며, 얼마나 진지한 모습으로 섰겠습니까? 그 장면은 그 어떤 혈맹을 위한 예식의 자리보다 더 진지하고 엄숙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모세가 받은 언약의 내용은 광범위했지만 결론은 아주 명확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모든 언약을 따르고 순종하면 복을 받고, 형통하겠으나 언약을 따르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버리시겠다... 이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서약하며 학습과 세례를 받은 여러분들, 그리고 이미 이런 과정을 다 밟고 신앙의 깊은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되새기며 확인해야 할 일은 이미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서약한 그 말씀들을 힘써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이웃의 연합국이 쳐들어온다는 말에 유다의 아하스 왕과 백성의 마음이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처럼 떨고 있는데...  이런 그들을 보며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며 강대국 앗수르에게 기대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굳게 믿으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자로, 혹은 학습자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서약을 한 모든 분들께서 여러분들이 서약한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걸어가는 신앙의 길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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