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과 교회(엡 5:22~23)
  • 조회 수: 359, 2013.07.19 21:38:38
  •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 없이 없게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마게도니아 지방의 첫 번 째 도시인 빌립보에서 전도를 하다가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인 루디아 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루디아는 성령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 자신뿐만 아니라 온가족이 세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례를 주고 그 집을 떠나려 하자 루디아는 만일 나를 예수 믿는 자로 안다고 하면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고 강권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과 실라는 루디아의 집에 거하면서 전도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40절을 보면 [바울과 실라는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위로하고 가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루디아의 집이 곧 교회가 된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언제나 교회의 시작은 한 가정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100여년전에 선교사들이 들어와 전도를 하여 교회를 세울 때에 한 가정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소래 교회라고 하는 교회의 사진을 보면 조그마한 초가집에서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집에 몇 사람이 모여 예배를 드림으로 비로소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정이요 가정이 교회였습니다. 사실 이상적인 가정은 교회와 같은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은혜충만한 교회 같은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이야말로 이상적인 가정입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교회 또한 가정과 같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절 이하를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 마치 가족이 모인 가정과 같았습니다.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자기의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부부지간에도 이런 관계는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은혜가 충만함으로 그 많은 성도들이 마치 한 가족처럼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한 가족이 모인 가정과 같은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은 한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 우리는 한 가족임을 믿습니다. 부부관계는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와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부부의 관계를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로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너무나 신비해서 비밀이라고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려고 하면 부부 관계부터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했고, 남편들에게는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요 법도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부부관계는 믿음안에서 온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평생 사랑만 하면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때로 갈등도 생기고 미움도 생기며 마음까지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위기가 올 때마다 이기려고 하면 부부간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성령충만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더 좋아집니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가정은 은혜를 충만히 받은 믿음 좋은 부부가 될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믿음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믿음이 좋을 때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죄와 악을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부간에 서로 믿음이 좋을 때에는 절대로 가정이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게 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와 악을 행하면서 타락하게 됩니다. 결국 그 가정의 갈등은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여 부부가 서로 믿음 안에서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국 초기 청교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목사가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해서 신혼 초부터 기독교적인 원리에 충실히 따르며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형성해 나갔습니다. 같은 때에 뉴 잉글랜드에서 그와 같이 자란 동네 친구였던 맥스 쥬크라는 사람은 신앙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방탕했던 여인과 결합하여 나중에는 자기 자신도 신앙을 저버리고 점차 잘못되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 어떤 한 사람이 이 두 사람의 가계를 추적하여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에드워드 목사의 후손인 873명을 조사해 보았더니 그 중에 대학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가 60명, 성직자가 100명, 군대 장교가 75명, 저술가가 80명, 변호사가 100명, 판사가 30명,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미국 부통령이 1명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맥스 쥬크라는 사람은 1292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어릴 때 죽은 사람이 309명, 직업적인 거지가 301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가 50명, 도둑이 60명, 살인자가 70명, 그저 그런 자가 53명이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가정을 이룰 때 그 후손들이 어떻게 되며, 또 믿음 없이 살 때 그 후손들이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 분명히 보여주는 경우입니다. 한 가정의 믿음이 이렇게도 중요합니다. ? 함께 기도하는 가정은 결코 깨어지지 않습니다. 헐리우드 장로교회를 담임했던 루이 에반스 목사님은 놀라운 사실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목사님은 “어떤 부부라도 먼저 일주일 동안 매일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해보라 그렇게 한 후에도 이혼하고야 마는 경우를 나는 결코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함께하는 기도는 용해제이자 동시에 접착제이기도 합니다. 함께 기도하다 보면 분노하는 마음과 울분이 모두 녹아지며 용서하게 되고 서로의 마음이 새로와져서 기쁜 조화 속에 합쳐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폴 토우니어씨도 말하기를 “남편과 부인이 하나님 앞에 함께 기도한 후에야 비로소 부부는 참된 화합의 비밀을 알게 되고 성격과 생각과 취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점이 가정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부부가 함께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보면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게 되고 먼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서로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할 때 부부간의 문제는 사라지게 됩니다. 부부간에 서로가 솔직해지고 정직하게 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남편들은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듯이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심 같이 주님을 본받으라고 했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되 교회가 주님께 하듯이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부부는 예수님이 가정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남편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아내를 사랑한다면 자연히 아내를 위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어떤 수고라도 할 수 있습니다. 장성 출신인 어떤 분이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불구자가 된 아내를 휠체어에 앉히고 언제나 함께 다녔습니다. 그들 부부는 예전에는 서로 바쁘다보니 둘만의 시간을 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현재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와같이 사랑은 수고로 나타나고 섬김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2~3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섬기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0:28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기쁨으로 복종할 수 없습니다.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편에 대해 주님께 하듯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내는 먼저 남편을 이해하고, 남편을 끝까지 신뢰할 뿐만 아니라 남편을 기쁨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께 하듯 복종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경외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높이고, 귀히 여기고, 예의를 지킬 수 있습니다.그런데 베드로전서 3장을 보면, 믿는 아내는 믿지 않는 불신 남편에게라도 순복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할 때 아내의 착한 행위로 말미암아 혹 남편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는 자로서 아내된 자는 몸단장으로만 남편을 즐겁게 하지 말고 더불어 자기 남편에게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순복하여 그 남편을 구원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입니다. 한 쌍의 젊은 남녀가 결혼하게 되었는데, 부인은 그리스도인이었고 그 남편은 불신자이었습니다. 그 부인은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예수님을 믿기로 약속을 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얼마 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부인이 교회에 가는 것까지도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자기를 택하든지, 예수를 택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리고는 만일 당신이 예수를 택한다면 서로 갈라서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이성을 잃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님때문에 당신을 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한평생 당신만을 남편으로 섬기며 살라고 가르쳐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예수님의 말씀만 아니었다면 제가 먼저 당신과 갈라서자고 말했을 것입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의 남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당신이 믿는 예수가 나를 버리지 말라고 했단말이요? 여보! 내가 잘못 생각했구려. 그런 예수라면 나도 교회에 나가리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참고 남편을 용서한 아내의 진실된 사랑이 결국 남편의 마음을 녹였고, 예수님 때문에 갈라설뻔한 위기의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믿음의 가정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지체인 것 같이 부부가 한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남편들을 향하여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부관계는 참으로 신비하여 이 비밀이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아내들에게는 남편을 경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편을 높이는 것이 자기를 높이는 것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머리가 둘이고 몸이 하나인 기형적인 아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랍비를 찾아가 이 아이가 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랍비는 한쪽 머리를 때려서 둘다 울면 하나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부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참으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는지 아닌지 알려고 하면, 남편의 몸이 아프면 부인도 아파하고 남편이 고민하고 괴로워 하면 부인도 마음 아파하고 안스러워하는 모습이 있는가 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부부가 한 몸이 되었다면 서로 사랑하고 복종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이 전혀 비굴해 보이거나 이상해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를 희생하고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주님을 머리로 모신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한 몸입니다. 우리 주님이 가시는 곳에 우리도 가고, 주님이 머무시는 곳에 우리도 머물고,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우리도 사랑하고,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우리도 미워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우리도 기뻐하고, 주님이 슬퍼하시는 것을 우리도 슬퍼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고, 주님의 목표가 우리의 목표가 되며, 주님의 소원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처음엔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나의 반쪽이 내가 찾아야만 할 나의 반쪽이 있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언제부턴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고 가슴 속엔 휑하니 바람이 일었습니다. 별과 바람과 구름 속에 시와 소설, 음악과 영화 속에 있는 허상의 반쪽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지쳐 쓰러져 갈 즈음 허상을 잡으러 다닐 땐 보이지 않았던 나의 방황을 지켜보던 눈길을 보았습니다. 처음 눈길을 맞춘 이후 난 나의 반쪽이 완전히 나와 같은 모습인줄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때론 왜 나를 닮지 않았느냐며 공연한 트집을 잡아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때론 문득 문득 피어나는 미련으로, 또 나와는 전혀 다른 나의 반쪽을 싸고 있는 주변환경들을 보면서 혹시 잘못 찾은 것은 아닌가 생각도 했었습니다. 무수한 세월을 지나 그 아픈 가슴 추수릴 엄두조차 내지 못할 지금에서야 이 아둔한 사람은 알았습니다. 나의 반쪽은 별과 바람과 구름 속에 시와 소설, 음악과 영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나와 똑같은 모습이 아닌 오히려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의 날카롭고 모난 부분을 감싸주며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바로 내 눈 앞의 당신이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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