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의 마지막 유언(왕상 2:1-12)
  • 2013.02.08 22:24:38
  • 오늘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주일입니다. 1999년도의 마지막 주일이면서 20세기의 마지막 주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의미있는 주일에 무슨 말씀으로 은혜를 나눌까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 천년!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표어를 정해 놓았으나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에 이재 새롭게 출발하는 그런 말씀으로 새 마음과 새 각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초보목회자로서 실수 투성이고 허물 많은 제 모습을 보니 '내가 오늘 말씀에 더 은혜를 받아야 할텐데...'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새 천년을 향하여 어떤 자세가 준비되어 있습니까?
    다시금 새롭게 하는 것이 없이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니 '먼저 내가 죽어야겠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새 천년, 새 천년하면서도 실상은 알맹이 없는 빈 캉통처럼 떠들썩하기만 한 것이 사실입니다. 나라에서도 '새천년준비위원회'라는 조직이 있지만 계획하는 행사들을 보면 너무너무 속상합니다. 너무 속상해서 주보의 신앙칼럼에 글을 올려 보았습니다.


    [주보신앙칼럼 내용삽입]

    ['DMZ 2000 - 새천년통일기원제'에 씻김굿이라니...]

    새 천년을 앞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소망과 희망이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나라마다 성탄절이 지난 다음날부터 밀레니엄 축제로 떠들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양선교회도 새천년에는 성숙한 교회로 성장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새 천년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표어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가슴 벅찬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새천년준비위원회(위원장:이어령)라는 공식적인 준비단체가 있습니다. 새천년준비위원회는 단국대 21세기 예술경영연구소(소장:이동일)와 공동으로 'DMZ 2000-새 천년통일기원제'라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행사에는 기독교계의 항의에 따라 당초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었던 '씻김굿'이 그대로 재현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1999년 12월 31일 오후 6시부터 2000년 1월 1일 새벽 1시 40분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가 참여하며, 한국의 MBC를 비롯하여 미국의 ABC, 영국의 BBC 방송사 등을 통하여 전세계 87개국으로 동시 생중계되는 국제적 행사입니다. 그러나 이 행사의 서막 1부 '길놀이'는 지난 천년의 한을 씻어내고 강에 드리워진 죽은 사람의 넋을 그릇에 담아 올린다는 '씻김굿 판'이 벌어집니다. 또 '영 돗'을 말아 세우고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일종의 무당 춤사위도 곁들인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지구상의 다섯 인종을 상징한다는 다섯 명의 무당이 다섯 개의 사다리 위에 올라가며 '길 굿'까지 펼쳐 새 천년맞이 행사는 시작부터 '무속문화'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진행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짐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씻김굿이란 죽은 사람을 위한 무당 굿으로 사람의 옷을 돗자리에 말아 몸통을 세우고 주발로 머리를 만든 다음 솥뚜껑을 덮어 갓을 쓴 인간의 모습으로 만든 후 물로 씻기는 굿입니다. 그러므로 이 씻김굿이 예술적으로 승화돼 재현될지라도 주술적 의식을 행하는 무속문화와 샤머니즘을 성행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묵은 천년의 온갖 슬픔과 고통을 모두 씻어 버리고 새 몸과 새 마음으로 21세기를 맞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하는 행사 담당자(영상담당자:손형식)의 말을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정말로 새 몸과 새 마음이 이런 한 번의 무당굿으로 주어질 수 있을까요?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18:31, 36:26 )
    [신앙컬럼의 내용 끝]


    그렇습니다.
    새 사람이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구약에 다윗이라는 신앙의 대선배가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길을 마치면서 그는 임종의 유언을 남기게 됩니다. 저는 다윗 왕의 임종을 바라보면서 '이 말씀이 나에게 주어진 유언의 말씀이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유언의 내용은 새 천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계승해야 할 모든 성도들에게 20세기의 유언처럼 남겨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우리의 마음과 심령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이 임종할 때가 되면 남아 있는 유가족들에게 특히 사랑하는 자식에게 길이 간직할 말을 남기게 마련입니다. 통일왕국을 세우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다윗은 자신이 세운 나라를 더욱 번영케 하며 강성케 하도록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1절).


    1. 서론 : 모든 인생은 하나님 앞에 설 것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2절상).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2절 상반절)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천년이나 되는 세월도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유한한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천년이란 시간은 이렇게 짧은 세월의 흐름에 떠내려가고 마는 것입니다.

    새 천년!
    그러나 이것 또한 언젠가는 그 시간의 막을 내려야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히 9:27)

    이것이 새 천년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남긴 20세기의 유언입니다.


    2. 본론(1) : 다윗의 첫 번째 유언은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2절하).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2절 하반절)

    다윗은 이런 연약한 인생을 향하여 이렇게 유언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대장부처럼 용감하라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생애는 정말로 대장부처럼 살았던 인생이었습니다.
    어린 목동시절에도 양들을 헤치려는 사자와 곰들에 맞서 싸웠습니다.
    블레셋과의 싸움에서는 거대한 골리앗 장군 앞에서 어린 몸으로 물매돌 하나 들고 대항하는 용기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수가 되어서는 전쟁의 맨 앞에서 싸움을 지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정복의 약속을 성취했던 이가 바로 다윗 왕이었습니다.
    이런 다윗이 이제 죽음을 앞두고 처음으로 유언하며 권면했던 첫 번째 내용은 바로 대장부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까?
    이 험난한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남자처럼 믿음의 대장부가 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세상은 영적인 전쟁터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가 강하게 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 속에 거하게 되면 믿음의 대장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새 힘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30-31)

    아무리 피곤해도 잠 한숨 자고 일어나면 펄펄 날것 같은 소년이라도, 인생의 연륜과 경륜으로 무장한 인생의 최고봉의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권면한 내용은 한 마디로 "강하라" "담대하라" "두려워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수 1:6상)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수 1:7상)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수 1:9중)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전 16:13)

    강하지 않으면 이 험난한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더더욱 이러한 세기말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더욱 더 강한 믿음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믿음의 강건한 대장부가 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 3:16)

    성령의 능력이란 인간의 힘을 통한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지혜로 주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영적인 부분은 세상의 지혜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적인 권세와 능력이 있어도 그 힘과 권세는 순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무장해야만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권세 잡은 마귀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둘째로, 주 안에 있어서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 6:10)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딤후 4:17상)

    결국 이 세상의 승리는 일시적이요, 순간적이요, 영원한 승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인 승리는 이 세상에서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주 안에 있음을 이렇게 자랑했습니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27-31)

    바울 서신에 나온 중요한 단어가 "주 안에서"라는 말을 생각해 볼 때 그의 신앙의 승리의 비결을 단번에 짐작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영적인 면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우리는 믿음의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름받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그 어떤 위기도 결국은 믿음의 대장부 앞에선 힘없이 쓰러진 골리앗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의 투자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습니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 되는 법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우선순위 원리입니다.


    3. 본론(2) : 다윗의 두 번째 유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3-4절).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수백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씀입니다.
    다윗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한 복을 받으려면 말씀에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다윗은 자자손손 믿음의 후손이 끊이지 않으려면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그런 권면에 불과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윗의 일평생의 체험에서 나온 유언입니다.

    그의 일생의 실수라고 말하는 밧세바와의 범죄에서도 평생 형통할 수 있었던 것은 말씀으로 책망했던 나단 선지자의 경고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그 비참한 포로생활을 해야만 했습니까?
    결론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 이후에 수많은 왕들이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왕이 형통한 때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이었던 사울 왕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삼상 15:23,26)

    이와는 반대로 70년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신앙으로 회복하기 위하여 학사 에스라가 제일 먼저 실시했던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곳은 말씀회복 운동이었습니다.

    "9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9-10)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시작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마지막도 말씀에 관한 내용으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계 22:10)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형통함이 보장된다고 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의 대부 부분은 다윗의 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지금도 유대인들에게 가장 철저하게 암송시키고 있는 장은 119편입니다.
    어려서부터 노래로 만들어서 암송을 시킵니다.
    시편 119편은 176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에서 다윗은 말씀에 대한 찬양으로 전체를 도배합니다.
    그 중에 자신의 고백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시 119:81)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시 119:123 )

    119편!
    우리에게 119는 중요한 숫자입니다. 소방서의 전화번호입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이 번호를 제일 먼저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에도 문제가 발생하면 119를 펼치십시오.
    시편 119편을 말입니다.

    이 시대는 참 말씀의 사람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입니다.
    말로만이 아닌 삶 속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그런 말씀의 사람이 정말로 필요한 때입니다.
    진실하고 신실한 예수님의 제자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4. 본론(3) : 다윗의 세 번째 유언은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라는 것입니다(7-8절).


    하나님의 기준에 비추어서 정확하게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상벌을 확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을 자에게는 보상을, 은혜를 버린 자에게는 형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판단하실 때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먼저는 화평을 깨는 이를 처벌하라고 했습니다.

    "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본문 5-6절)

    남이 나의 평안의 깨는 것은 싫어하면서 남의 평안을 깨는 자들을 처벌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팔복 중에 화평케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했던 이를 처벌하라고 했습니다.

    "8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9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본문 8-9절)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쿠테타로 인하여 쫒겨나니까 완전히 망하는 줄 알고 침을 뱉고 저주하고 욕한 시므이에게는 벌을 내리라고 했습니다.
    형통할 때는 하나님께 붙었다가 힘들고 어려우면 세상의 방법을 택한 경우와 같습니다,

    셋째로,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던 이에게 은총을 베풀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본문 7절)

    그러나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쫒겨 갈 때에 망할 것 같은 나라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군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물을 공급하여 위로했던 바실래와 그 아들들에게는 은총을 베풀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결국에는 다윗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누가 심판대 앞에 설까요? 우리 모두입니다. 신자든 불신자든 누구든지 심판대 앞에 서는 것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심판은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에 대한 판단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의 행위에 대하여 선고를 받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든 불신자든 누구든지 심판대를 거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계 20:13)


    5. 결론 : 다윗의 유언을 받은 솔로몬 나라는 심히 견고했습니다(10-12절).


    "10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서 다윗 성에 장사되니 11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을 치리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치리하였더라 12 솔로몬이 그 아비 다윗의 위에 앉으니 그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다윗의 유언을 따라 나를 이어받은 솔로몬의 나라는 심히 견고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도 이 다윗의 마지막 유언을 통해서 다시 한번 견고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천년을 바라보는 양선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다윗의 유언을 20세기의 유언으로 받았습니다.

    새 천년에도 지금처럼 믿음의 대장부가 됩시다.
    새 천년에도 지금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됩시다.
    새 천년에도 공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0세기의 마지막 주일에 받은 다윗의 유언!
    이 유언을 자자손손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 땅에서의 희망이요 비전이기 때문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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