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스리며 삽시다(갈 5 :16-24)
  • 2013.07.15 07:36:46
  • 어느 고등학교 교실에서 한 선생님이 전체 반 학생들에게 단체기합을 주어야만 했습니다.  체벌을 하려고 보니 또 시끄러울 것 같아서 특별한 벌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학생들 모두다 의자위로 올라가게 했습니다.  "제군들은 지금부터 부지런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하네."  그리고 모두다 걸상위에 걸터앉아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시늉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페달을 밟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 학생이 페달을 밟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이 선생님이 묻습니다.  "자네는 왜 페달을 밟지 않는가?" "선생님, 제 자전거는 지금 언덕위를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래 그 교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어떤 핑계를 대든지 좀더 쉽게 편하게 좀더 간단하게 인생을 살려고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달려가는 사람은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걸어가는 사람은 좀 앉아 있기를 원하고 앉아 있는 사람은 좀 길게 누웠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은 세상 사람들에게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도 꼭같이 이런 쉽게 살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좀 힘들지 않게 신앙생활하면 좋겠다.'  '믿음 생활을 좀더 편리하게 하면 어떨까?'  '더 쉽게 믿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이런 생각을 성도들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그 자체가 멈추는 생활이 아니고 계속해서 전진하는 생활입니다.  편함을 추구하는 생활이 아니고 진리를 선택하는 생활입니다.  넓은 길을 선택하는 생활이 아니고 좁은 길을 선택하는 생활입니다.  타협하는 생활이 아니라 원칙의 말씀을 따라 사는 그런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된 새해 1999년을 맞이하신 성도 여러분, 올해도 쉬지 마시고 부지런히 믿음 생활에 페달을 밟으시기를 바랍니다.  바람이 불어도 바람을 거스리면서 나아가십시다.  고개가 있어도 고개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계속해서 전진하십시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고 오직 영혼을 구원함이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999년은 모든 것을 거스려 올라가서 쉬지 않고 전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귀한 축복을 받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금년 한해는 세상풍조를 거스리며 사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는 말씀은 세상풍조를 따라서 살지 말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부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이상한 풍조를 만들어서 도도한 강물처럼 우리를 끌어 그 강물속에 휩쓸리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이 모든 도도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장마철이 되면 강에는 온갖 것들이 다 떠내려 옵니다.  때로는 썩은 나무토막이 떠내려 오기도 합니다. 죽은 개가 떠내려 오기도 합니다.  값비싼 가재도구들도 떠내려 오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아도 송사리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상속에 있는 성도는 결단코 세상풍조와 함께 가지 않습니다.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돔성에 살고 있던 롯은 그곳에서 영원히 살 수 없었습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하고 죄악이 완연한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들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다른 방향으로 올라가며 살았습니다.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명령하신 대로 방주를 예비했습니다.  거스려 사는 귀한 삶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택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줍니다.  이렇게 거스려 사는 생활은 때때로 우리에게 고난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거스리는 생활속에 참된 진리가 있고 영생이 있는 것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비가 오면 사용하는 우산을 처음 만든 사람은 요나 한웨이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영국거리에 처음으로 우산을 쓰고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요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보니까 이상한 사람이예요.  이상한 것을 쓰고 있습니다.  돌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진흙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조금 다른 사람을 보면 세상 사람은 돌을 던집니다.  성도가 사는 생활을 세상이 보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하지 말고 담대히 거스리며 살아가십시다.  우산 하나 쓰고도 처음에는 차별을 당했는데 우리는 예수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하여 돌을 던져도 두려워 하지 말고 담대하게 거스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야가라 폭포 근처에는 종종 아주 잘 나는 날개달린 까마귀들이 익사해서 죽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상류에서부터 죽은 짐승의 시체가 둥둥 떠내려 오면 까마귀들이 그 시체를 뜯어 먹습니다.  먹기 위해서 발톱을 시체속에 깊이 박고는 부리로 맛있게 시체를 뜯어 먹습니다.  그러다가 나야가라 폭포가 시작되는 그 지점이 다가올 때에는 급히 날아갈려고 날개짓을 해 보지만 발톱이 빠지지를 않습니다.  이미 피와 함께 엉켜 붙어서 깊숙히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썩은 시체와 함께 나야가라 폭포 아래로 떨어져서 익사하고 마는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여러분에게 많은 이익을 주고 만족을 주고 기쁨을 준다고 할지라도 그 위에 빠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집착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세상풍조를 따라 함께 흘러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달콤함은 결국은 우리를 파멸로 인도하는 그런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마십시요.  세상은 물질만능주의로 흘러가지만 우리는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고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세상은 쾌락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지마는 우리는 영원한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중심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 교회는 저녁예배를 부활합니다.  여기에는 아주 의미있는 상징적인 뜻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편함을 위해서 낮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고 바로 이어서 2시에 오후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 불편하더라도 정성스럽게 저녁예배를 드리므로 자꾸만 세상풍조를 따라가려고 하는 우리의 삶을 세상을 거스려 사는 삶으로 성숙시키려 하는 우리의 바램이 바로 이런 변경속에 담겨 있다고 할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향해 말씀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
    하나니 이는 세상이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해를 맞은 성도 여러분, 세상풍조를 거스려 살므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복된 한해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금년은 육체의 정욕을 거스리며 살아가는 한해가 되십시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 속에 두가지 소욕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그것입니다.  로마서의 표현대로 하면 마음의 법과 육신의 법이 싸워서 죄짓기를 원하는 육체가 이긴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터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의 법과 육체의 법이 오늘도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해 내랴]  안데르센이 지은 동화 가운데 '분홍신'이라고 하는 동화가 있습니다. 

    어느 마술사가 예쁜 분홍신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 신을 신기만 하면 누구든지 끊임없이 아름다운 춤을 출 수가 있습니다.  한 소녀가 있었는데 유명하게 되고 싶고 또 박수갈채를 받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 분홍신을 발견합니다.  신을 신었습니다.  그 때부터 소녀는 아름다운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계속해서 분홍신이 이끄는대로 춤을 추었습니다.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지마는 어머니가 그 아이로 하여금 더이상 춤을 추지 않고 집을 나가지 않도록 만류해도 소녀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끊임없이 춤을 추었습니다.  

    결국은 춤을 추다 지쳐서 죽었다고 하는 그런 동화입니다.  여러분, 바로 끊임없이 세상에서 춤을 추게 하는 욕망의 근원이 우리 속에 있는 육체의 소욕입니다.  그냥 두면 이 육체의 소욕은 끊임없이 육체의 일을 만들어 냅니다.  멈출 수 없이 계속해서 육체의 일을 만드는 육체의 춤을 추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무려 16가지의 육체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술취함, 방탕함, 기타등등.  우리는 가만히 두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육체의 춤을 추게 되고 결국은 육체의 일을 행하게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소욕을 해결하는 방법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입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에도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바로 우리 몸의 행실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 전서에도 말씀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구원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육체의 정욕을 이기게 해 줍니다.  성령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앞에 두개의 신발이 있습니다.  육체의 춤을 추게 하는 분홍신이 있습니다.  그 신발을 벗으십시다.  계속해서 육체의 춤을 추면 육체의 열매, 16가지가 우리 삶 속에서 맺혀지게 될 것이요, 결국은 패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신발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신발을 선택하는 자는 성령의 춤을 추게 될 것이고 천국의 춤을 아름답게 추게 될 것입니다.  성령을 확신하고 성령을 인정하고 성령을 모셔 들이며 성령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다.  그러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우리 삶 속에 주렁주렁 맺히게 될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육체의 정욕에서 나온 육체의 열매만을 맺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몸뚱아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좇아 행하십시다.  성령과 함께 걸어 가십시다.  성령께서 내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금년 한해동안 내 속에서 끊임없이 흘러가는 정욕의 물결에 대하여 "아니요"라고 말하십시다.  그리고 성령께 순종하며 우리의 삶을 맡기십시다.  성령의 도움으로 음욕을 거스
    립시다.  혈기를 거스립시다.  미워하는 마음을 거스리며 살아가십시다.

     다투는 마음을 거스리며 살아가십시다.  그리하여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만을 맺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금년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거스리며 살아가는 한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아갑니다.  보이는 것 때문에 영향을 받고 보이는 것 때문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보이는 것이 집착하여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눈에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살아가고 눈에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하여 웃고 울며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고 사는 복된 존재들입니다.  믿음은 바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능력입니다.  보이는 것을 거스리며 사는 능력이 바로 믿음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본토 친척 아비 친구들을 다 거스리면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하여 전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도 늙고 아내도 늙었지마는 눈에 보이는 그 상황을 무시하고 거스리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려 이삭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했던 열 두 정탐꾼 가운데 열 정탐꾼은 눈에 보이는 대로 보고했습니다.  가나안 사람은 크고 장대하며 자기들은 메뚜기에 지나지 않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눈에 보이는 대로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눈에 보이는 것을 거스려 보고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대로 보고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더불어 믿음으로 새로운 보고를 했습니다.  

    두려워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그들은 승리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눈에 보이는 물결을 거스리며 예수님을 보고 갈릴리 바다위로 걸어갔습니다.  밤새도록 고기 한마리 잡지 못한 상황을 거스리며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물이 찢어지게 많이 잡히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모세는 눈에 보이는 홍해를 거스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홍해가 갈라져 길이 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철성 여리고성을 거스리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복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거스리며 살던 분이었습니다.  죽어 있던 야이로의 딸을 보며 죽음을 거스리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병이어만 보시고도 오천명을 먹일 수 있는 음식으로 보셨습니다.  시시한 열두명의 제자를 바라보시면서도 주님은 눈에 보이는 그들을 거스려 영원한 미래에 그들을 통해서 온 세상이 복음화 될 것을 확신하면서 그들에게 말씀을 증거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수많은 불가능들이 보이십니까?  절망들이 보이십니까?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영향을 받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금년에도 우리 앞에는 수많은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족함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위기들을 당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보이는 대로 느끼거나 판단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보이는 것을 거스리며 살아 가십시다.  
    마른뼈 속에서 일어나서는 지극히 큰 군대의 환상을 보았던 에스겔의 환상속에서 올 한해를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능성을 보십시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십니다.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십시다.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동행하시는 기적의 하나님을 바라보시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더불어 이 복된 해를 살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부인이 있었습니다.  남편 이 실직을 했습니다. 거기다가 아들마저도 학교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퇴학을 당했습니다.  자녀들이 모두다 나쁜 길로 나아가서 불량 청소년들이 되었습니다.  이 부인은 괴로워 가슴을 치다가 눈에 보이는 모든 문제들을 바라보면서 자녀들과 함께 동반자살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스벨브를 열었습니다.  가스가 퍼지고 있습니다.  근데 마침 옆집의 열린 문을 통해서 라디오 소리가 들려 옵니다.  이 부인은 희미한 정신 속에서 들려오는 노래 가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런 가사가 들려 왔습니다.  '내 모든 시험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날 구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그는 희미한 정신 속에 들려오는 가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불가능과 절망들을 보던 눈이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앞에 인생을 맡깁니다.  근심을 맡겼습니다.  자기의 모든 문제를, 자녀들을 다 하나님 앞에 맡겼습니다.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가스벨브를 잠그고 창문을 활짝 열고 모든 가스가 다 밖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그는 자녀들을 깨우고 다시금 시골로 내려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속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가 '근심이여 안녕!' 이라고 하는 작품을 쓴 메니큐스 마네 부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거스리며 사는 삶이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절망을 거스려 그 속에서 희망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너무 커 보이는 문제에 절대로 실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문제를 거스려 해결된 뒤에 주님께서 나를 위해 펼쳐 주실 아름다운 미래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엘리사의 종처럼 절망하며 아 이제는 끝장이라고 말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엘리사처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들보다 많다" 라고 고백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거스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내 육신의 정욕이 이끌어 가는 대로, 내 눈앞에 펼쳐지는 온갖 절망의 상황이 보이는 대로 판단하며 살지 마십시다.  세상 풍조를 거스리며 성도답게 살아 가십시다.  '세상 풍조는 나날이 바뀌어도 나는 내 믿음 지키겠네'  육신의 정욕을 거스리며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아 가십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거스리며 믿음으로 살아 가십시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 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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